부지깽이를 꽂아둬도 싹이 난다는 청명(淸明)이 코앞이건만 아침저녁으로 왜 이리 쌀쌀한지 모르겠습니다. 그쪽 제주 날씨는 완연한 봄이지요? 지난주에 제가 올레 길 트래킹을 다녀왔거든요. 바람은 거셌지만 곳곳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노란 유채꽃 덕분인지 마냥 따스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하늘도 질세라 맑고 푸르렀고요. 사실 제주로 떠날 때는 선생님을 한번 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도착해서 생각해보니 한창 바쁘신데 보태드리지 싶어 그저 송악산 자락의 선생님 댁 부근이랑 둘째 아드님 호섭 씨가 고사를 지냈던 ‘새끼섬’이랑 차귀도 항구 곁의 ‘수자네 식당’까지만 두루 돌아보고 왔답니다. 그런데 그냥 돌아오길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겠어요. 그새 그렇지 않아도 바람 잘날 없는 집안에 큰 사건 하나가 터졌으니 말이에요.
시아버님보다 더 큰 파란이 일어날 텐데 어쩌죠? 수십 년 전 처자식 버리고 떠나셨던 시아버님(최정훈)께서 느닷없이 빈 몸으로 들이닥치셨으니 며느리 입장에서 얼마나 심란하실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인품이 좋아 존경할만한 분도 아니시고 바람나서 이때껏 첩실 집에서 지내셨던 분을 집으로 모셔 돌아가실 때까지 수발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라고요. 큰 시동생 병준(김상중) 씨 말마따나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라는 게 있는 건데 객사를 하면 하셨지 어떻게 자식 신세를 질 생각을 하셨을까요. 그러나 막상 저에게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모르긴 몰라도 선생님과 같은 얘길 하게 되지 싶네요. 어쩌겠어요.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고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거늘 어떻게 부모님을 나 몰라라 하겠습니까. 그저 팔자려니 할 밖에요.
그렇지만 아무리 팔자 탓을 한다고 쳐도 선생님 모양 실타래처럼 엉킨 팔자도 드물지 않나요? 호랑이 같으신 시어머님(김용림)에다, 그 어머님에 버금가게 편치 않은 큰 시동생에, 물색없이 나설데 안 나설데 못 가리는 작은 시동생(윤다훈), 그리고 통 곁을 안 주려드는 전실 자식 태섭(송창의)까지, 집안에 상전이 어디 한둘이어야죠. 게다가 전 남편 소생인 따님(우희진) 내외를 한 울타리 안에 두고 계신 것도 은근히 시어머님 눈치가 보일 일이고요. 처음엔 시어머님이 엄하시긴 하셔도 경우만큼은 똑 부러진 분이신줄 알았는데 손자 태섭이를 두고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영락없는 시어머니시더군요. “전실 자식이라 무심한 거 밖에 안 돼. 그게 니 입장이라구. 니 맘속에 온전한 니 새끼가 아니니까 그렇겠지”라는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니 태섭 씨 결혼 안 하는 게 왜 선생님 탓이랍니까. 당신께서도 두 아드님을 여직 데리고 계시면서 웬 억울한 트집이신지 모르겠어요. 더구나 지금은 짐작조차 못하실 테지만 조만간 태섭 씨로 인해 시아버님의 귀향보다 몇 배는 더 큰 파란이 일 텐데 이를 어쩝니까?
이번만은 무조건 태섭 씨 편에 서주시길 곧 알게 되실 일인지라 슬쩍 귀띔을 해드리자면 큰 아드님이 아직까지 연애다운 연애를 하지 못했던 데에는 다 남모를 까닭이 있었더라고요. 빙빙 돌려 말할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성정체성 문제라던데 그 점에 대해 아직 제대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저로서는 딱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물론 몇 년 전이었다면 펄쩍 뛰며 꺼림칙해 했겠지만 지금은 다행히 많이 개화된 터라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건 아니에요. 다만 선생님께서 겪으실 마음고생이 걱정이 됩니다. 잘 기르지 못해서, 정성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하고 자책하실 것 같아서요. 혹시 시어머님께서 괜스레 퉁명을 부리며 책임 추궁을 하실 수도 있는 일이고요. 또한 아드님 태섭 씨와 연인 사이인 경수(이상우)의 어머니(김영란)도 범상치 않은 분이시던데 한바탕 곤욕을 치르게 되시는 건 아닐지, 그도 염려스럽네요.
그러나 지금껏 누구에게도 속내를 보이지 못한 채 끙끙 앓고 살았을 태섭 씨를 생각하면 딱해 죽겠습니다. 기억나시죠? 키우는 내내 겉도는 통에 시어머님보다 아들 눈치를 더 봤다며 서운해 하시는 선생님께 “어머니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고, 어머니만 최선을 다하신 게 아니라고, 어머니가 낳으신 지혜(우희진)와 지혜에게 다정하신 아버지, 그렇게 자신은 3대 1이었다”라고 말하는 태섭 씨의 표정을 보니 가슴 속에 뭉쳐진 응어리가 꽤 단단하던 걸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이해를 하고 못하고를 떠나 무조건 태섭 씨 편에 서주십사 청하고 싶어요. 아버지가 재혼하신 다섯 살 즈음부터 혼자였다고 하잖아요. 삼십년 가까이 마음 붙일 곳 없었던 태섭 씨에게 겨우 의지하고픈 사람이 나타났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주세요. 자신이 남다르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또 홀로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어려우시겠지만 그저 아무 말 말고 품어주시길 바래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시아버님보다 더 큰 파란이 일어날 텐데 어쩌죠? 수십 년 전 처자식 버리고 떠나셨던 시아버님(최정훈)께서 느닷없이 빈 몸으로 들이닥치셨으니 며느리 입장에서 얼마나 심란하실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인품이 좋아 존경할만한 분도 아니시고 바람나서 이때껏 첩실 집에서 지내셨던 분을 집으로 모셔 돌아가실 때까지 수발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라고요. 큰 시동생 병준(김상중) 씨 말마따나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라는 게 있는 건데 객사를 하면 하셨지 어떻게 자식 신세를 질 생각을 하셨을까요. 그러나 막상 저에게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모르긴 몰라도 선생님과 같은 얘길 하게 되지 싶네요. 어쩌겠어요.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고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거늘 어떻게 부모님을 나 몰라라 하겠습니까. 그저 팔자려니 할 밖에요.
그렇지만 아무리 팔자 탓을 한다고 쳐도 선생님 모양 실타래처럼 엉킨 팔자도 드물지 않나요? 호랑이 같으신 시어머님(김용림)에다, 그 어머님에 버금가게 편치 않은 큰 시동생에, 물색없이 나설데 안 나설데 못 가리는 작은 시동생(윤다훈), 그리고 통 곁을 안 주려드는 전실 자식 태섭(송창의)까지, 집안에 상전이 어디 한둘이어야죠. 게다가 전 남편 소생인 따님(우희진) 내외를 한 울타리 안에 두고 계신 것도 은근히 시어머님 눈치가 보일 일이고요. 처음엔 시어머님이 엄하시긴 하셔도 경우만큼은 똑 부러진 분이신줄 알았는데 손자 태섭이를 두고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영락없는 시어머니시더군요. “전실 자식이라 무심한 거 밖에 안 돼. 그게 니 입장이라구. 니 맘속에 온전한 니 새끼가 아니니까 그렇겠지”라는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니 태섭 씨 결혼 안 하는 게 왜 선생님 탓이랍니까. 당신께서도 두 아드님을 여직 데리고 계시면서 웬 억울한 트집이신지 모르겠어요. 더구나 지금은 짐작조차 못하실 테지만 조만간 태섭 씨로 인해 시아버님의 귀향보다 몇 배는 더 큰 파란이 일 텐데 이를 어쩝니까?
이번만은 무조건 태섭 씨 편에 서주시길 곧 알게 되실 일인지라 슬쩍 귀띔을 해드리자면 큰 아드님이 아직까지 연애다운 연애를 하지 못했던 데에는 다 남모를 까닭이 있었더라고요. 빙빙 돌려 말할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성정체성 문제라던데 그 점에 대해 아직 제대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저로서는 딱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물론 몇 년 전이었다면 펄쩍 뛰며 꺼림칙해 했겠지만 지금은 다행히 많이 개화된 터라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건 아니에요. 다만 선생님께서 겪으실 마음고생이 걱정이 됩니다. 잘 기르지 못해서, 정성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하고 자책하실 것 같아서요. 혹시 시어머님께서 괜스레 퉁명을 부리며 책임 추궁을 하실 수도 있는 일이고요. 또한 아드님 태섭 씨와 연인 사이인 경수(이상우)의 어머니(김영란)도 범상치 않은 분이시던데 한바탕 곤욕을 치르게 되시는 건 아닐지, 그도 염려스럽네요.
그러나 지금껏 누구에게도 속내를 보이지 못한 채 끙끙 앓고 살았을 태섭 씨를 생각하면 딱해 죽겠습니다. 기억나시죠? 키우는 내내 겉도는 통에 시어머님보다 아들 눈치를 더 봤다며 서운해 하시는 선생님께 “어머니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고, 어머니만 최선을 다하신 게 아니라고, 어머니가 낳으신 지혜(우희진)와 지혜에게 다정하신 아버지, 그렇게 자신은 3대 1이었다”라고 말하는 태섭 씨의 표정을 보니 가슴 속에 뭉쳐진 응어리가 꽤 단단하던 걸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이해를 하고 못하고를 떠나 무조건 태섭 씨 편에 서주십사 청하고 싶어요. 아버지가 재혼하신 다섯 살 즈음부터 혼자였다고 하잖아요. 삼십년 가까이 마음 붙일 곳 없었던 태섭 씨에게 겨우 의지하고픈 사람이 나타났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주세요. 자신이 남다르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또 홀로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어려우시겠지만 그저 아무 말 말고 품어주시길 바래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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