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회 이상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살인적인 부담에도 불구하고 25분의 형식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대체 뭔가.
김병욱 감독: 짧은 시간 같은데, 그 안에서도 충분히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펼칠 수 있다. 제법 사람들을 설득력 있게 끌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는 2,3회 분량의 이야기를 한 회 안에 풀 수 있을 정도로 이 형식에 적응을 했고, 구성적으로 발전을 해왔다. 더 길어지면 오히려 필요 없는 장면이 들어가고 장황해지지 않을까.

“캐릭터? 사랑받을 때까지 조율한다”
김병욱 감독│“<순풍>부터 시작된 가족 이야기는 이제 끝났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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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발전을 이루어내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해 왔는데, 시청률이 항상 좋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
김병욱 감독: 스타를 쓰지 않은 채 시청자에게 외면당하지 않았다는 점은 자랑스럽다. (웃음) 이번에도 젊은 층은 대부분 신인이었는데, 어떤 사람에게 애정을 가지면 그 사람이 예뻐 보이는 부분을 잘 파악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마침내 사랑받을 때까지 캐릭터를 조금씩 조율하는 식이다. 최다니엘(지훈)이 초반에 인터뷰를 하면서 캐릭터가 자꾸 바뀌어서 혼란스럽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시청률을 올리는 감각은 있다고 본다.

예능국 생활을 했던 경험이 바탕이 되는 건가?
김병욱 감독: 다분히 예능적인 판단이다. 노골적인 코드를 넣지 않더라도 내가 쓴 대본은 이상하게 자극적인 면이 있다고 하더라. 얄팍하지만 25분 동안은 뒤를 예측할 수 없이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달까. 그래서 보다 이 코미디는 형편없지만 사람들은 계속 드라마를 보게 되는 거다. 이상하게 살아있는 사람 같은 느낌을 받고.

처음에는 MBC 라디오 PD로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김병욱 감독: 우선 라디오는 사람들이 지원을 덜 할 것 같았고, 성격이 얌전하니까 TV가 안 맞을 것 같았다. 라디오 PD는 조용히 음악만 틀면 될 줄 알았지. (웃음) 86년에 입사해서 교양프로그램을 주로 하다가 91년에 SBS 예능국으로 옮겼다.

회사를 옮길 때는 예능에 대한 비전이 있었던 건가.
김병욱 감독: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니라 MBC에서 그쪽으로 옮긴 선배가 ‘너도 아웃사이더 같은데, 나랑 같이 가지 않으련’ 하길래 따라간 거다. 그때 SBS가 개국하는 시점이라 교양국에 가면 아마존 취재를 가야하는데 정글은 무섭고 힘들어서 두세 달씩 못 갈 것 같았고, 드라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예능을 택했다. 편할 줄 알았다. (웃음)

그래서 예능 PD로 처음 만든 작품이 이었다.
김병욱 감독: 장진, 장항준도 그때 함께 했었는데 당시에는 컬트적이라고, 선배들에게 평가가 좋았다.

그리고 주병대 감독과 < LA 아리랑 >을 하면서 시트콤 인생이 시작 된 거다.
김병욱 감독: 주병대 선배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을 바탕으로 나만의 이상한 것을 만들어 내기는 했지만. 그 분이 우리나라에 시트콤을 처음 도입한 분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 작품은 사무실이나 유사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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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프리랜서가 되었는데 는 어떻게 방송국에서 편성을 받았던 건가.
김병욱 감독: 오지명 씨 덕분이다. 그 전에 내가 쓴 SBS 대본을 보고 그 분이 나를 추천해 주셨다. 인생에 한 번뿐인 기회를 주신 거다. 는 총 590회를 방송했는데 당시에는 시청자들이 그런 코미디를 처음 접했기 때문인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 너그럽게 받아주던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10년간 매뉴얼이 없는 장르에서 시트콤이라는 형식을 스스로 학습했다.
김병욱 감독: 정의 할 수는 없지만 본능 같은 게 있다. 그렇게까지 반사회적이지 않은 범위 안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안달까. 하지만 감독으로서 대본에도 꽤 깊이 관여 하다보니 스스로 이도저도 아닌 것에 대한 괴로움이 있다. 고등학교 야구선수로 치면 나는 타자로서도, 투수로서도 제법 하는 사람인 셈이지만 프로리그에 가면 어정쩡해지는 거다. 연출도 대본도, 어쩌면 한 분야에서 뛰어나게 잘 하는 사람보다는 내가 못한 거다. 에 열광 했을지 모르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 내고나니 이제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있다. 앞으로는 정말 연출을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악명 높은 나와 일할 작가가 있을까 걱정도 되고. 분명한 건 이제 로부터 시작된 가족 이야기는 종말을 맞았다는 점이다. 다른 이야기를 찾아야 할 때다. 사무실 이야기도 괜찮을 것 같고, 유사 가족도 좋고.

이 리그를 아마추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다른 선수가 없어서 리그가 운영되지 않는 것뿐이지 않을까. (웃음)
김병욱 감독: 앞으로 뉴미디어가 생기면 모바일로 콘텐츠를 보니까 이 장르가 전도유망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적지에 가서 경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계속 시트콤을 하라더라. (웃음)

연출과 각본이 분리되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5개 에피소드를 뽑아내는 시스템이 문제가 아닌가.
김병욱 감독: 작가의 필요성은 확실히 있다. 지금도 가족 에피소드는 옛날부터 써왔고 내가 제일 잘 쓴다고 자부하지만 20대의 달달한 연애 이야기는 이영철작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거다. 이제 젊은이들의 대사를 쓸 때 확실히 감각이 부족한 것을 느낀다. 그들의 정서를 진정으로 모르는 거다.

본인의 젊은 시절에는 어땠나? 학창시절에도 활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김병욱 감독: 고등학교 2, 3학년 때는 음식을 통 못 먹어서 키도 별로 못 컸다. 거식증에 걸려서 생존에 필요한 만큼 하루에 반 끼 정도를 먹고 버텼는데 집에서 걱정이 많았다. 나중에 결혼해서 아내와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또 다시 비슷한 느낌을 받고 섬뜩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주식은 따로 있는데 외계인처럼 음식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이랄까. 죽음과 관련 있는 감정 아닌가. 그렇게 계속 먹지 못한다면 즉사하지는 않으나 보나마나 죽을 테니까.

그렇게 병약해서 공부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겠다.
김병욱 감독: 야간 자율학습을 하면 노트에 여백이 없을 정도로 낙서를 했는데 계속 잡생각을 하는 거다. 누나, 형이 좋은 학교를 갔으니 나도 일단 좋은 대학을 가 놓고 염세를 하든 해야 하는데, 병욱아, 공부를 하자, 그 생각을 쉬는 시간까지 계속 하는 거다. 쉬고 나면 다시 그 생각에 사로잡히고. 게다가 학교에 앉아서 수업시간을 버티는 게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수업을 안 들으면서 그냥 앉아 있었으니까. 그 역시 어느 날 다시 재발 한 적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 보험 회사에 갔는데 직원들이 마치 교실에 앉은 학생들처럼 앞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데 그 광경을 못 견디겠더라. 모두가 한 곳을 보고, 침묵 속에서 전화를 받으면 사람들이 은밀하게 귀를 기울이고, 다시 생각해도 숨이 막힌다.

“아무도 없을 때의 그 빈 공간, 그걸 정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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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파당하기 싫었던 걸까. 숨을 수 없는 상태를 싫어하는 것 같다.
김병욱 감독: 그래서 때로는 함께 일하는 작가들이 예상한 것과 다르게 행동할 때도 있다. 기분이 좋을만할 때는 인상을 빡빡 쓰고, 열 받았겠다 싶을 때 웃으며 들어가는 식으로. (웃음) 예측대로 표정을 짓지 않으려는 의식이 있다. 예상하는 대로 해주기 싫은 반골 기질인거지.

그래도 대놓고 대항하지는 못하지 않나.
김병욱 감독: 소극적으로 반항하는 사람이다. 예컨대, 싫어하는 선배가 있으면 친구들 모두 형이라고 할 때 끝까지 선배라고 하거나, 술 마실 때 원샷! 하면, 한 모금만 남긴다거나. (웃음) 노골적으로는 반항을 못한다. 살짝살짝만 거슬리게 하는 거다.

미달이나 해리를 보면 잔인하리만치 어린 아이에 대한 판타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김병욱 감독: 내 어린 시절의 반추이기도 하다. 나는 동심이 별로 없는 아이였다. 독서도 단계적으로 해야 하는데 초등학생일 때부터 아버지가 읽던 투르게니예프의 , 지드의 , 헤르만 헤세를 읽었다. 정서가 함양된 기반이 없는 채로 대중없이 독서를 하다 보니 어린 아이가 이상한 세계관을 갖게 된 거다. 그 소설들이 죄 실연의 상처와 왜곡된 사랑의 관념을 보여주었으니까. 그나마 가정이 화목해서 잘 극복했던 거다. (웃음) 그리고 사실 어린이들과 이야기 해보면 생각보다 어른스러운 모습이 많다. 산타 믿는다고 하면 비웃고.

해리의 인형을 받아주지 않은 신애의 모습은 어른스러워서 더 슬프기도 했다.
김병욱 감독: 어른스럽지. 원래는 해리가 인형을 숨겨놓고 보물찾기 하는 쪽지를 신애에게 남기는 시놉시스였다. 세경이 다음으로 온 가정부가 중간에 쪽지를 없애는 바람에 결국 신애가 인형을 못 찾고 그냥 가는데 해리가 그걸 알고 우는 거였다. 그런데 새 가정부가 들어오면 집이 텅 비지 않으니까 그 설정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떠나고 난 공간을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정말 슬픈 장면은 엔딩 신보다도 세경이가 텅 빈, 온기 없는 주방을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김병욱 감독: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장면이다. 사람이 난 자리를 보여주는 걸 좋아한다. 다 떠났을 때 혼자 남은 공간에 대한 애정이 있다. 고 3때 혼자서 중학교 1학년 때 교실에 가서 보름동안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아침에 해가 떠서 도시락을 먹고 나면 저녁때 반대편으로 해가 들어오는데 그 순간이 정말 좋았다. 이후로도 경주에 내려가면 그 교실에 종종 갔었다. 아무도 없을 때의 그 빈 공간, 그걸 정말 사랑한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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