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은 여전히 앨범을 내고 있는 뮤지션이다. 하지만 그는 음악학원의 원장이기도 하고, 한국 록의 사운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레코딩 엔지니어이기도 하며, 얼마 전에는 남성잡지 의 편집장을 맡았다. 무대 위의 락커와 공학자에 가까운 사운드 엔지니어, 그리고 남성들의 온갖 취향이 섞인 잡지 편집장까지, 가볍지만 진지하고, 고급스럽지만 쌍스러움을 함께 가져간다는 그의 현재에 대해 들었다.지금 신해철 씨를 보면 자신의 이미지 전략대로 먼 길을 돌고 타협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락커의 인생을 살게 된 거 같네요. 음악적으로도 80년대의 쾌락적인 헤비메탈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건 최근작 이었잖아요?
신해철 : 이번에 나올 넥스트의 음악은 과도 다르긴 하겠지만,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건 그런 음악을 하던 락스타들이 많은 영향을 줬죠. 사실 마음이 고플 때는 허세를 많이 떨었어요. 넥스트가 락스타가 돼서 교주 소리 듣고 이럴 때. 그 때 팬들은 이후에 어린 팬들 싫어해요. 그 시절 팬들은 아직까지 나를 해철 님이라고 부르고, 극존칭을 사용하고, 이후 어린 팬들이 반말로 나를 부른다는 거에 대해서 뚜껑이 열려. (웃음) 그런데 그 때는 방송국 안에서 음악을 한다는 게 음악이 아니라 태도까지 너무 굴종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그런 모습도 되고 싶었는데, 그런 갈증이 해소되고 나니까 아 내가 정말 쪽팔린 짓을 했구나, 내가 무슨 히틀러야 하게 되더라구요. (웃음)
“모든 사람들이 다 이해해주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거다” 에 교복을 입고 나올 수 있으면 게임은 끝” -3" /> 은 딱 80년대 헤비메틀처럼 대놓고 유치하고 허세 가득한 콘셉트가 재밌었어요. 있어 보이려는 키치가 아니라 그냥 그 시절의 유치함을 재현한 것 같던데요.
신해철 : 내 캐릭터는 이상하게도 데뷔 이후에 오랫동안 고급스러운 캐릭터로 받아들여졌거든요. 물론 어렸을 때는 엄마 영향을 받아서 대중음악보다 클래식 공연을 더 많이 보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학교 가면 얘기가 달라지잖아요. 애들이 빨간책부터 들고 오니까. (웃음) 그래서 이 두 가지 문화가 섞이면서 살다 결국 나는 어디다 발을 붙여놓고 살아야 되느냐를 생각하게 됐는데, 쌍스러운데다 발을 붙이고 위선 떠는 사람들한테 가끔씩 비웃음 날려주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사는 거군요. (웃음)
신해철 : 어느 나라든 욕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상류계층이나 하는 행동들이에요. 바로 밑 계층으로 가면 애들 없는데서 다 욕하고 그러는데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그런 삶의 문화를 강요받아요. 그리고 TV에는 실제로는 전혀 그러고 살지도 않는데, 재벌들이 우쭐 대고 사는 드라마가 나오고. 그러면서 우리 삶에 가까운 에 나오는 (웃음) 장모가 돈을 들고 튀는 이야기를 저질이라고 얘기들을 해요. 웃기는 거지.
하지만 한국에서 쌍스러운 락스타로 살고 그 시절 음악을 재현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 아닌가요? 그들은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거지만 신해철 씨는 그걸 하려면 굉장히 피곤한 일이 많을 텐데요.
신해철 :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걸 기만하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봤잖아요. 그게 더 괴로워요. 그리고 지금 고단하게 부대끼면서 살아도 “그게 너 사는 모습이라면”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옛날보다 엄청나게 늘어났으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다 이해해주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내 나름의 삶을 지킬 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은 그런 부분이 음악적인 태도에서도 드러난 거 같아요. ‘우주 해적단’ 같은 곡에서 두드러지듯이 80년대 헤비메틀 사운드를 완전히 재현했던데요. LP특유에서 나오는 질감이나 그 당시 메틀 앨범을 레코딩할 때의 공간감도 정확하게 나오고.
신해철 : 녹음하는 방법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져서 가능한 얘기긴 해요. 옛날 같으면 못 만들었을 사운드에요. 그 소리를 만들려고 여러 효과도 엄청나게 썼고. 요즘에는 그런 트릭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들도 굉장히 많은데, 중요한 건 그걸 사용하려는 목표를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80년대의 헤비메틀이 울리는 공간의 구조를 알아야 그 트릭을 사용해서 점점 그 공간으로 진입하는 건데, 그 목표를 모르니까 그걸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요. 은 매킨토시 한 대, 로직 프로그램, 헤드폰 한 개, 스피커 한 개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안 들었어요. 심지어 믹싱 할 때 녹음실도 안 썼어요. 가정집에서 했어요.
락스타로 살려다 보니까 레코드 엔지니어링도 마스터하게 됐군요. (웃음)
신해철 : 제가 지금까지 많은 일을 했고 지금도 여러 직업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 뮤지션은 나 자체니까 지금보다 음악을 잘하든 못하든 했을 거예요. DJ야 어렸을 때부터 음악다방 다니면서 하다가 방송에서 기회가 주어졌는데 성공하니까 라디오에서 하게 된 거고. 그런데 레코딩 엔지니어는 달라요. 제 일 중에 가장 어려웠고, 부귀영화 다 버리고 유학 가서 정말 고생하면서 한 거니까. 예를 들어 유학 가서 한국인들이 소리의 좌우상하는 잘 듣는데 앞뒤를 잘 듣지 못한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앞과 뒤의 공간을 만드는 녹음을 하는 건 레코딩 엔지니어의 핵심이에요. 그래서 그걸 하려고 위대한 엔지니어들이 온갖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런 문제들을 계속 고민하면서 공부한 거니까요.
락커 신해철보다 엔지니어 신해철이 더 자랑스러운 건가요? (웃음)
신해철 : 내가 레코딩 엔지니어링을 하는데 그 엄청난 시간을 쏟지 않았다면 발표하는 작품 양도 훨씬 많았을 거고, 더 좋은 곡도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왜 좋은 사운드가 나오지 않느냐는 원통함과 분함 때문에 시작한 건데 이제 후배 엔지니어들이 와서 앨범 할 때마다 물어보면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는 다른 게 아니고 내가 엔지니어링을 할 수 있다는 거에 있는 거다”라고 뿌듯하게 생각해요. (웃음)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가장 모르는 제 직업이 그거기도 해요. (웃음)
“우리는 천민자본주의 중에서도 가장 천박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에 교복을 입고 나올 수 있으면 게임은 끝” -3" /> 사람들이 신해철 씨의 그런 작업을 잘 모르고, 지금 제기한 음악적인 문제들은 결국 음악 비평의 문제와 연결되잖아요? 지금 한국 음악 비평은 시장 자체가 없다고 할 만큼 사라졌는데.
신해철 : 이건 근본적인 문제로 올라가서, 2-30대가 삶의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희망이 없어요. 이 사회가 대학 1학년부터 겁을 잔뜩 줘서 취직 걱정부터 하게 만드니까 젊어서도 음악에서 뭔가 멋진 일이 일어나길 꿈꾸지 않아요. 대중이 그런 일을 바라지 않으면 비평이 사라지는 건 당연하죠. 영국에서 살면서 왜 영국 노동자들은 상류층으로 살려는 욕망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 사람들은 퇴근해서 맥주 마시고 일요일 날 축구하고 노조 나갔다가 공장가면서 이대로 살다 죽을 거라고 말하거든요. 걔네는 상류층이 되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서 천박하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욕망이 없으면 정신이 썩은 놈이라고 하죠. 우리는 지금 천민자본주의 중에서도 가장 쌍스럽고 천박하면서 거기에 겁먹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그걸 인정해야 하는 거죠.
신해철 씨의 삶의 태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게 편집장을 맡은 잡지 이 되겠네요. 마음먹으면 A급과 B급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잖아요?
신해철 : 한국에서 ‘맥심스러운 것’이 어떤 의미일 것이냐를 생각하고 있어요. B문화를 다루면서도 인식 수준이 낮거나 지성이 저열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좋기 때문에 B를 다룰 수 있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가식과 체면에 허덕이지 않는 삶의 체질들을 만들어보자는 거죠. 그리고 음악은 A하고 B를 둘 다 다룰 생각이에요. “에서 이런 기사가 나와?”할 정도로 좀 더 진중한 기사도 다루면서 재밌고 쌍스러운 데 못하던 이야기도 하고. 영화는 몰라도 음악에 대해서는 정색을 할 수도 있는 게 현재의 인원 구조이기도 하고, 음악잡지가 전멸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럴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데, 살아남기 위한 의 전략은 뭔가요?
신해철 : 김혜수가 에 교복을 입고 등장할 수 있으면 게임은 끝난 거지. (웃음) 그 말 안에 내가 하고 싶은 게 다 들어 있어요.
하하.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사는 게 행복하세요?
신해철 : 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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