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예인 중에서 신해철은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그라고 가려야할 발언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는 사회에서 금기시 되는 발언들을 마음껏 쏟아내기도 하고, 비판 여론 속에서도 사교육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유지하며 대중을 향해 ‘Fuck you’를 날리는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무엇으로 움직이기에 이런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걸까. 가 신해철에게 물었다.

신해철 씨가 직접 강의하는 뮤지션의 이미지 전략도 있던데요. 뭘 가르치나요?
신해철 : 자기 자신을 상상하고 디자인하는 거예요. 마릴린 맨슨은 데뷔하기 전에 이상한 퀴즈 프로그램에 ‘쌩얼’로 등장한 게 인터넷에 돌아다니잖아요. 그 때는 아주 평범한 동네 청년이었는데 자기 자신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으로 거기까지 올라갔잖아요. 프로듀서가 꾸며주면서 너는 누구다라고 설명해주는 건 이미 늦어요. 어려서부터 자신을 디자인해야 하는데, 요즘에는 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해서 기획사에서 팀을 만들어서 기획사에서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 주겠지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반대로 인디 밴드들은 너무나 정직하게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있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80년대 말 LA메탈 시대의 정서가 나를 완전히 지배한다”
신해철│“좌우가 아니라 대화하는 방법부터 익혀야 한다” -2
신해철│“좌우가 아니라 대화하는 방법부터 익혀야 한다” -2
어떻게 자기 자신을 디자인하는 건가요?
신해철 : 다른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디자인하는가에 대한 케이스를 살펴보고, 자기 자신의 마음에 있는 욕망과 접촉해서 자기의 욕망을 알아보는 거죠. 한국에서는 관객에게 욕하면서 “다 나 따라해”같은 태도를 가진 뮤지션들이 거의 안 나오는데, 어린 시절에 그러고 싶어도 자신을 디자인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지배하려면 어떻게 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중에는 거세당해서 자신의 특징도 발휘하지 못해요.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거죠.

이미지 전략의 예로 본인에 대해서 말하나요?
신해철 : 그럼요. 내 케이스를 제일 먼저 얘기해요. 왜냐하면 자기가 원하는 이미지가 실현이 안 될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해줘야 하니까요.

무슨 뜻이죠?
신해철 : 나랑 동시대에 활동하던 사람들 중에서 자기가 원하던 이미지를 굉장히 조잡하게 대중에게 들이밀어서 그게 반응이 안 오니까 좌절해서 불만과 욕설로 술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결국 결과가 좋지 못했어요. 그런데 사실 나도 어릴 때부터 오지 오스본 뛰어다니는 거 보면서 자란 앤데 그 때 얌전하게 옷 입고 나와서 손 흔들면서 “여러분 사랑해요” 하고 싶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당시에 나는 그걸 되게 즐겁게 했어요. 그게 내가 원하는 이미지로 무대를 휘젓게 되는 날이 오게 할 방법 중 하나라고 믿었고. 당장 아니다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가든 결국 가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본인의 디자인 전략은 뭐였나요?
신해철 : 출발점을 잊지 않는 거죠. 저는 처음에 원했던 게 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의 성공도 해봤어요. 그런 상황에서 내가 옛날에 원했던 걸 잊어먹지 않는 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내가 어디서 시작했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죠.

원했던 게 뭔데요?
신해철 : 위대한 락 밴드의 일원이 돼서 스테이지를 휘젓는 거지! (웃음)

그건 딱 7,80년대 영, 미 락스타잖아요. (웃음) 신해철 씨가 왜 이렇게 사는지 이해가 되네요.
신해철 : 맞아요. 정확하게는 80년대 말 LA메탈 시대의 정서가 나를 완전히 지배해요. 음악적으로는 락이 스피릿을 상실하고 파티 음악으로 전락한 시기지만, 가장 솔직하고 가장 유흥적이면서도 개방적이었던 시기이기도 해요. 그 때에 동경했던 삶의 모습들, 쟤네들은 매일 파티처럼 인생 자체가 파티인데 내 삶은 꿀꿀하고.

“사실 자식 문제만큼 고민되는 게 없었다”
신해철│“좌우가 아니라 대화하는 방법부터 익혀야 한다” -2
신해철│“좌우가 아니라 대화하는 방법부터 익혀야 한다” -2
예전에는 그런 모습을 무대 위에서만 보여준 것 같은데, 요즘은 정말 락커로 사는 거군요. (웃음)
신해철 : 예전엔 락이 장르가 아니라 생활양식이라는 얘기가 잘 와 닿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대 밖에서는 얌전한 학삐리, 무대에서는 미치는 생활을 했었는데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뒤늦게 동화되기 시작했어요. 결국 락이라는 게 잰체하지 않고, 상류층에 편입되려고 하지 않고 자기 계급의 생활 방식 그대로 꼴리는 대로 살다 죽고 싶다는 소망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노동자 계층의 꿈이기도 하죠. 상류층에 편입돼서 리무진을 타서 클래식 공연을 보며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살지 않아도 되니까, 그 대신 내 맘대로 살 테니까 건들지 말라고 하는 꿈인 거죠.

그런 삶을 더 원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신해철 : 가장 결정적인 건 유학 갔을 때죠. CD를 통해서 문화를 전달받는 게 아니라 문화가 생겨나서 그게 음악이 돼서 CD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뒤집어서 보고 싶었던 게 유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유학 가서 현지 뮤지션들하고 교류를 해보니까 깨닫게 되는 게 뭐냐면, 이 인간들이 아무도 철이 안 들어!

하하. 오늘의 명언인데요.
신해철 : 아무도 철이 안 들어. 그런데 철이 든 것처럼 행동하고, 모든 걸 다 아는 척하는 부모 중에서 진짜로 철 들어서 자식들에게 지혜를 나눠주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어요. 내가 볼 때는 철 안 드는 확률은 똑같은데, 이 락커들은 자기들이 철이 안 들었다라는 걸 인정하고 (웃음) 그냥 그대로 사는 사람들이고, 일반 시민들은 자기가 철이 들었다라고 끝끝내 주장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철이 안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자식들하고 친구로 지낼 수 있어요. 자식들 앞에서 위선 안 떨고 훈계 안하니까.

자식하고 친해진 거 같아요?
신해철 : 세 살짜리 우리 딸이 내 말을 알아듣는다니까. (웃음) 아빠는 노래하고 음악 만드는 게 직업인데.. 너 직업 아니 직업? 너 콘서트장 와봤잖아 이러면 기억 난대요. 그러면 아빠는 다른 여러 사람들 즐겁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돈을 크게 벌고 말고 하는 게 상관없는 사람이야 이러면 알아듣는데 뭐. (웃음) 아침에 졸려서 애하고 못 놀아주면 애가 실망을 하잖아요? 그럼 아빠 졸린데 니 무릎 좀 베고 자자 이래요. 그래서 자다보면 애가 꼭 강아지 쓰다듬듯 내 머리를 토닥토닥 치고 있어. 그럼 된 거예요.

하지만 한국에서 락커의 삶을 살면서 자식을 키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일 텐데요.
신해철 : 사실 자식 문제만큼 고민되는 게 없었죠. 마누라는 그렇다고 치고 자식이 태어나면 자식 때문에 내가 싸움을 접을까봐 걱정했었어요. 그 문제에 대한 걱정이 살면서 받는 공포 중에서 거의 베스트일 거예요. 그런데 왠지 나는 자식이 생기니까 내가 바뀌는 대신에 오히려 확신이 생기더라구요. 얘네들 앞에서 잘난 부모가 되겠다는 생각을 안 하는 순간 모든 게 가능해져요. 그냥 얘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 (웃음)

철 안든 아버지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뭐라고 생각해요?
신해철 : 자신의 삶을 주장하는 거예요. 이게 내 삶이고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내 자식들에게도 “이게 아빠야!”라고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 삶을 주장하지 못하면 그 때부터 애들한테 무능한 아빠가 되고 “남의 집 아빠들 잘 나갈 때 아빠는 뭐 했냐”는 소리 듣는 거예요. 그리고 철 안든 락커도 부모는 부모에요. 자식들 생각하는 건 똑같아요. 다만 우리나라는 왜 모든 사람들에게 어른이 되면 철 들어라, 애들이 본다 이러냐는 거예요. 각자 자기가 행복해할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데 왜 우리는 전 국민이 스테레오타입으로 정해진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하냐는 거죠. 그걸 유학에서 뼈저리게 느껴서 을 시작할 때 내 캐릭터가 된 거죠.

“내 마음대로 한 말 때문에 화내는 사람들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신해철│“좌우가 아니라 대화하는 방법부터 익혀야 한다” -2
신해철│“좌우가 아니라 대화하는 방법부터 익혀야 한다” -2
그런데 마음대로 산다고 해도 사람들은 신해철 씨를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잖아요. 예를 들면 누군가는 신해철을 진보나 좌파로 생각하기도 해요.
신해철 : 그렇죠. 그래서 조선일보의 모 인사가 “왜 우파에 신해철같은 사람이 없냐”라고 한 거에 대해서는 그럼 난 좌파였단 말이냐고 말하게 되는 상황인데 (웃음), 그런 부분들은 사실 내 탓도 있어요. 내 말하기나 글쓰기는 남에게 이해받기 원하는 게 아니라 “아니면 말고” 스타일이라 (웃음) 굉장히 불친절해요. 거기서 생기는 오해도 있고, 예를 들어 영국은 자본주의 맞나 싶을 만큼 좌파적인 시스템도 있는 반면에 철저할 정도로 자본주의적인 요소도 있어요. 그런 것처럼 내가 누군가에게 좌파나 진보로 보인다는 건 현재의 내 생각이나 행동이 우리나라에서 현재 분류하는 진보에 해당되는 부분이 있어서겠죠.

그런 시각은 지난번 북한의 미사일 실험 같은 경우에 대한 태도 같은 것들 때문에 더 생기지 않았을까요? 조롱이 다분한 농담이었지만 한국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지지하는 글을 쓰는 건 보수단체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기 충분한 소재니까요.
신해철 : 북한 미사일 발언에 대해서는 반공 교육과 겁주기로 일관된 사회 시스템에 대한 조롱이라는 측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는 6. 25 때문에 집 식구들 몇 명씩 죽은 집안을 흔히 찾을 수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야 말로 화해와 용서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먼저 가진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그 때 생각한 게 나의 말로 불필요하게 상처를 받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요즘 그 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요. 내 마음대로 말은 해도 이거 때문에 화내는 사람들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거에요.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 나쁘다는 거하곤 다른 거죠.

입장은 달라도 인정은 해야 한다는 거군요.
신해철 : 계속 나를 물고 늘어져서 고소 고발하는 보수단체도 그 사람들이 이 놈의 나라 꼴 보기 싫다고 이민 간 사람들보다는 여기 남아서 애국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에게 가볍게 위트를 날릴 수는 있지만 그 사람들을 조롱해서 병신은 만들지 말자고 생각은 해요. (웃음) 실제로 그 사람들에게는 가벼운 위트를 날린 거 말고는 없어요.

그런데 7,80년대의 락커는 사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서 탄생한 건데, 한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지네요. (웃음)
신해철 : 우리는 좌냐 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빨리 대화하는 방법부터 익혀야 해요. 누구나 보수와 진보를 섞으면서 살고 있고 행복이라는 위대한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타협이 가능해요. 저는 선명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중요한 건 선명하게 자기 가치기준을 내세우는 것보다 선명한 가치기준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타협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자기 가치기준을 바꿔서 투항하든가, 아니면 투쟁하든가 그 둘 중 하나밖에 없어요. 공존을 모색하는 타협이 없어요. 정치만 봐도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일생동안 타협하는 건데 어떻게 그렇게 타협을 못하는지. (웃음)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