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알렸던 이후 조니 뎁은 팀 버튼, 라세 할스트롬, 로만 폴란스키, 짐 자무쉬 같은 개성 있는 감독들과 함께 역시 개성 있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왔다. 이전까지는 그 어떤 블록버스터 제의도 거부했을 정도로 그는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가 아닌, 선하면서도 마냥 순수하진 않고, 악행을 저지르지만 어딘가 인간적인 공감을 일으키는 인물을, 그도 아니면 그 어떤 선과 악의 프레임으로도 재단할 수 없는 독특한 존재를 스크린에 그려냈다. 다음은 그가 약 20년 동안 연기한 캐릭터 중 대표적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들이다.
![조니 뎁│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30916564658620_9.jpg)
![조니 뎁│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30916564658620_2.jpg)
조니 뎁은 종종 선한 역을 맡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윤리적으로 옳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유형이 아니다. 가령 의 에드워드는 외딴 성에 홀로 남겨진 자신을 마을로 데려온 펙의 호의에 감사할 줄 알고, 마을 사람들이 미용을 비롯한 어떤 일을 시켜도 불평불만이 없다. 하지만 착한 것과 윤리적으로 옳은 것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에드워드가 불행한 이유다. 그가 좋아하는 킴의 아버지는 그에게 묻는다. 지갑을 주우면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줘야 하는가. 그는 후자를 택했다. 그래서 킴과 그녀의 남자친구의 부탁 때문에 도둑질에 가담했다가 경찰에게 체포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 모든 것을 감내하는 그의 입은 무겁지만 눈은 슬프다. 그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는 건 조니 뎁의 청순한 얼굴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조니 뎁│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30916564658620_3.jpg)
500파운드가 나가는 어머니보다 더 무거운 마음의 짐에 짓눌려 있는 의 길버트 그레이프는 20대 조니 뎁의 슬픈 눈을 통해 완성되는 캐릭터다. 수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뉴욕의 아파트에서 쓰레기 투척 때문에 체포되기도 했지만 젊은 날의 조니 뎁은 더할 나위 없이 선량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 정신지체아인 동생 어니가 가스탱크에 올라갈 때마다 메가폰을 잡고 잘 달래는 그의 쥐어짜는 듯한 미소에선 하루하루를 인내하면서도 화내지 않으려하는 선한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나온다. 간혹 그것은 선하다기보다 무기력함에 가깝고, 어니가 생일 케이크에 손을 대자 억눌려 있던 짜증을 어니에게 쏟아내며 뺨을 때리기도 하지만 곧 그 때문에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 더 정확하게 말해 조니 뎁의 우울한 눈빛을 보면 길버트를 ‘좋은 놈’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조니 뎁│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30916564658620_1.jpg)
크레인은 앞의 착한 두 캐릭터보다는 이성적인 정의감에 더욱 불타는 인물이다. 어떤 사건이든 합리적 수사로 진실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그에게 고문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심문 방식은 악습일 뿐이다. 비록 그의 과학에 대한 신봉은 목 없는 기사가 나오는 마을 ‘슬리피 할로우’에서 무너지고 말지만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서도 어떻게든 진실을 구해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조니 뎁이 연기하는 ‘좋은 놈’은 어딘가 약해서 부서질 것 같은 정서적 약점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던 소녀 카트리나의 행동을 오해해 그녀가 사건의 범인이라고 결론내리면서도 그녀를 체포하지 않고 힘없이 돌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에드워드 같은 슬픈 로맨티스트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조니 뎁│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30916564658620_1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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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의 시그널에 의해 그들의 지구 침략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의 스펜서는 별로 고민할 여지없는 ‘나쁜 놈’이다. 어쩌면 바로 그 별로 고민할 여지가 없다는 점 때문에 스펜서는 더더욱 ‘나쁜 놈’일지도 모르겠다. 선한 역할을 맡을 때도 조금씩의 윤리적 약점을 드러내며 더욱 인간적이고 복합적인 매력을 남겼던 조니 뎁이지만 도대체 이 영화에선 아무런 매력을 드러내지 못한다. 노란 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은 종종 그가 조니 뎁이라는 걸 잊게 만들 정도로 촌스럽고, 틈만 나면 음흉만 미소로 임신한 아내를 감시하는 모습은 섬뜩하다기보다는 비호감에 가깝다. 결국 조니 뎁의 필모그래피에 가장 큰 오점을 남겼다는 점에서 의 스펜서는 정말 ‘나쁜 놈’으로 인정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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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의 스위니 토드는 그의 역대 출연작 중 가장 험상궂은 분장을 한 배역이고, 가장 많은 피를 본 인물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가장 슬픈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도시의 모든 이들에게 분노하며 그들의 목을 그어 인육으로 만드는 건 젊은 날 그의 아내와 아기를 터핀 판사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물론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모든 것을 잃은 그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선자로 규정하며 이발소에서 면도칼로 목을 그어 내다버리는 것에 공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그가 복수를 끝마치기 전까진 잡히지 않았으면 싶은 이율배반적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외적인 분노를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비탄에 젖어드는 조니 뎁의 연기는 여전히 발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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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속의 존 딜린저를 악역이라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마이클 만 감독부터 존 딜린저를 권력에 대해 저항하는 인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감독의 의도를 완벽하게 구현해내 실존하는 전설의 갱에게 인간적 공감대를 부여했다는 면에서 딜린저를 조니 뎁 식 ‘나쁜 놈’의 유형으로 구분해도 무방할 것이다. 분명 그는 법을 어기고 은행을 터는 깡패지만 조니 뎁의 옹호대로 “누군가가 기존 권력에 한방 먹이는 것을 보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불황의 원인으로 지목된 은행의 돈만 털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감수하는 기사도 정신은 그 시절 딜린저가 국민들에게 영웅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조니 뎁│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30916564658620_11.jpg)
![조니 뎁│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30916564658620_7.jpg)
우선 동명의 실존인물부터 이상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와 이라는 괴작을 만든 에드 우드는 동시대를 살았던 오손 웰즈와 대비되는 최악의 영화감독으로 꼽히던 인물이다. 그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 의 에드 우드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적 연출 기법도 배운 적 없는 그는 그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의 벨라 루고시 같은 왕년의 배우를 끌어들여 가공할 저예산 영화를 찍는다. 하지만 그 스스로 할리우드의 변방에 속해있던 팀 버튼은 그런 에드 우드를 영화에 대한 애정과 의욕이 충만한,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낸다. 특히 벨라 루고시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을 담아 캐스팅하는 모습에선 영화광의 순수한 열망이 느껴진다. 그것만으로도 영화 속 에드 우드는 이상하되 흥미로운 캐릭터다.
![조니 뎁│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30916564658620_8.jpg)
시리즈의 잭 스페로우야 말로 선역을 연기하면서도 윤리적 연약함을 드러내고, 악역을 연기하면서도 쉽게 미워할 수 없는 공감을 이끌어내던 조니 뎁의 연기가 복합적으로 결합하며 만들어진 정말 이상하고도 신기한 캐릭터다. 그를 바다의 악 데비 존스에 저항한 주인공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확히 말해 그는 정의의 이념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자유롭게 살기 위해 데비 존스와 싸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믿는 윌 터너과 엘리자베스를 속이거나 해적의 적인 동인도 회사와 손을 잡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가장 멋있고 해적다워 보이는 순간에도 비열한 계획을 짜고, 가장 한심하고 비겁해 보이는 순간에도 위기에 처한 부하들을 위해 배를 돌려 크라켄과 싸우길 주저하지 않는다. 즉, 이상하다는 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호함이 아닌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캐릭터 안에 표현해내는 조니 뎁 연기에 대한 최고의 찬사인 셈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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