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KBS 에서 그룹 카라의 구하라와 소녀시대의 유리는 전 회에서 줄어든 자신들의 출연 분량에 대해 걱정했다. 물론 그들의 말은 웃기기 위한 설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녀시대와 카라 정도의 걸그룹 멤버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한 축이 될 수 있을 만큼, 요즘 예능 프로그램은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은 드라마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수많은 연예인들은 활동분야에 상관 없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다. 그리고 출연하려는 사람도, 출연시켜야할 사람도 많은 예능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는 지금 오락 프로그램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오락 프로그램에는 왜 20명, 30명, 심지어는 100명이 넘는 출연자들이 등장했고, 왜 그들은 ‘편집’되지 않고 ‘고정’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가. 가 지금 이 순간 예능 프로그램의 흐름의 변화와, 고정이 되려고 오늘도 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리고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SBS 의 박상혁 PD의 인터뷰도 함께한다.강호동은 화요일에 SBS 에서 20명 이상의 연예인과 토크를 한다. 토요일에는 SBS 에서 다시 20여명의 연예인들과 게스트의 장기자랑을 지켜본다. 지난 주 KBS 의 ‘1박 2일’에는 105명의 시청자가 출연하기도 했다. 강호동은 매 주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그들로부터 쇼에 필요한 능력을 뽑아낸다. 춤이 필요할 때는 아이돌을 부추기고, 거침없는 멘트가 필요하면 선우용여 같은 연기자에게 발언 기회를 준다.
짧고 자극적인 쇼를 가능케하는 예능 상비군들 중국 전국시대의 귀족 맹상군은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도 식객으로 받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강호동도 슈퍼주니어의 이특부터 건축가 출신 가수 양진석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쇼에 끌어들여 예능 전국시대의 강자 자리를 유지한다. 물론 강호동은 1:1 토크쇼인 MBC 의 ‘무릎 팍 도사’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무릎 팍 도사’처럼 ‘A급 스타’가 계속 나오는 쇼를 제외하면, 오락 프로그램은 갈수록 더 많은 출연자들을 요구한다. 의 ‘토크 배틀’은 20여명 이상의 출연자들 때문에 가능하고, MBC 와 KBS 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많은 수의 출연자들은 그만큼이나 많은 것들을 보여주면서 오락 프로그램의 장르를 모호하게 만든다. MBC 의 ‘동거동락’ 같은 집단 버라이어티 쇼가 등장했을 때부터, 버라이어티 쇼는 한 프로그램 안에 토크, 상황극, 게임, 리얼리티 쇼가 혼재했다. 그리고 요즘 에서는 출연자가 마술을 하고, 에서는 장윤정이 노래를 부르면 갑자기 동네잔치처럼 모든 출연자들이 흥겹게 놀기 시작한다.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다수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오락에 영화와 드라마 같은 긴 스토리의 재미를 결합시켰다. ‘1박 2일’의 러닝타임은 회당 1시간 30분에 다다른다. 반면 , , 은 토크쇼에 카니발의 쾌락을 씌웠다. 기승전결을 따르는 토크의 맥락은 거의 사라졌다. 출연자들은 MC의 말이 떨어지는 즉시 춤을 추거나 울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케이블 TV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tvN 의 ‘남녀 탐구생활’도 짧고 압축된 이야기의 연속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거대 서사를 가진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열었고, 토크쇼는 노래마저 중요한 부분부터 시작하는 ‘후크송’을 듣고, 오락 프로그램에서 인상적인 부분만 1분 단위로 잘라 인터넷에 올리는 네티즌의 감각과 닮아 있다. 길고 풍부하거나, 짧고 자극적이거나. 장르대신 콘텐츠의 재미가 척도가 되는 시대의 정서가 예능 프로그램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사든 자극이든 그것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는 필수적이다.
짧고 자극적인 쇼를 가능케하는 예능 상비군들 더 많은 숫자는 그만큼 예능 프로그램의 인적 구성을 바꾼다. 2-3년 전만 해도 예능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들은 ‘1인자’와 ‘2인자’, 그리고 나머지 정도였다. 하지만 김현철은 최근까지 에 격주로 출연해 ‘반고’(반고정)라는 말을 들었다. 데니 안과 브라이언은 에 자주 출연하지만, 그들이 고정인지 게스트인지는 모호하다. 에서 김영철의 경쟁 상대는 강호동이나 이승기가 아니라 자신처럼 토크 사이에 한 마디씩 던지는 김효진 정도일 것이다. 그들에게 과 ‘1박 2일’ 같은 인기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고정은 이미 접근이 쉽지 않은 자리다. 대신 그들은 맹상군의 식객들처럼 여러 고정 출연자들 중 하나가 돼 프로그램의 톱니바퀴처럼 움직인다. 상대적으로 고정 출연자 수가 적은 KBS 에서도 유재석, 박명수, 박미선, 신봉선의 역할은 각자 다르다. 유재석이 진행을 하면 바로 옆 자리의 박명수는 유재석과 티격태격하고, 박미선은 토크의 흐름을 조율하는 지원 사격을 하며, 신봉선은 출연자들이 개인기를 할 때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운다.
의 박상혁 PD가 고정 출연자의 조건에 대해 “무엇이든 하나를 잘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고정을 노리는 연예인이라면 귀담아 들을 만하다. 감독부터 골키퍼까지 있는 축구팀처럼 예능 프로그램마다 각각의 역할을 가진 고정 출연자들이 팀을 꾸리는 요즘, 고정 출연자들은 자신의 역할부터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박미선이 “개인기 하나도 없는 내가 지금 활동했다면 활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은 겸손의 표현이겠지만,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흐름을 반영한다. 인기 개그맨이나 가수가 곧바로 메인 MC가 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고정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재주를 보여준 뒤에야 그 다음 단계를 말할 수 있다. 군에서 돌아온 천명훈, 노유민, 김종민은 , , MBC 의 ‘라디오 스타’를 순회하며 고정 출연을 위한 PR 활동을 했다. 2년여 동안 ‘1박 2일’을 통해 예능을 경험한 이승기도 의 MC를 맡는 것에 대해 기대보다 우려가 먼저 제기됐다. 출연자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과거보다 예능의 문은 더 개방됐다지만, 그들을 조율하는 메인 MC가 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에서 반고정처럼 출연하는 그룹 시크릿의 한선화가 이경실 같은 자리까지 가려면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대신 인기 오락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은 그만큼의 ‘위엄’을 과시한다. 김영철은 의 고정이 된 후 6개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한다. 이경실 정도의 예능인은 케이블 TV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당연히 메인 MC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시대가 시작됐다 그래서 공중파 오락 프로그램은 더 많은 숫자의 연예인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공급과잉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송관계자는 “출연료를 받지 않고라도 인기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는 연예인이 많다”고 말했다. 아이돌 가수들이 토크쇼에서 보여주기 위해 따로 퍼포먼스를 짜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다. 서사를 갖춘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음악에도 이야기를 부여하며 의 ‘올림픽대로 가요제’의 곡들이 음원차트를 지배하도록 만들었다. 짧고 자극적인 토크와 쇼의 조각모음 같은 에 출연한 연예인의 한마디는 인터넷을 술렁거리도록 만든다. 예능 프로그램이 시대의 감각과 정서에 어울리면서, 예능 프로그램은 한국의 모든 엔터테인먼트의 관문 역할을 한다. 조권은 토크쇼에서 ‘깝권’이 되면서 2AM의 인지도를 높였다. 1990년대에는 연기자와 개그맨도 음반을 취입해 가요 프로그램의 무대에 섰다. 하지만 2010년에는 연기자와 가수가 오락 프로그램에서 1분 안에 눈물 흘리는 연기를 하거나 춤을 춘다. 많은 연예인들은 그 과정을 통과한 뒤에야 노래든 연기든 자신의 분야에서 ‘고정’이 될 기회를 얻는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원하는 요즘 오락 프로그램의 모습은 단지 예능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많은 사람들로 더 다양한 재미를 추구하는 오락프로그램은 궁극적으로 종합적인 엔테테인먼트가 된다. 마치 인터넷의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웃기는 이야기와 슬픈 이야기, 야한 사진과 스포츠 동영상이 함께 있듯, 오락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수많은 종류의 즐거움을 전달하려는 엔터테인먼트 채널처럼 변한다. 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눠진 역할에 따라 웃음, 눈물, 춤, 노래, 성대모사를 나눠서 보여줄 수 있는 쇼. 어쩌면 우리는 모든 장르가 엔터테인먼트의 일부로 흡수되는 시대의 시작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호동이 필요하다면 ‘1박 2일’의 105명의 시청자 게스트들 앞에서 백지영과 ‘내귀에 돼지’를 부르고, 그 노래가 다시 원곡까지 화제에 오르게 하는 그런 시대 말이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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