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블리 본즈>│소녀는 죽어서도 자란다
│소녀는 죽어서도 자란다" />
수지 새먼(시얼샤 로넌)은 14살이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고, 속눈썹이 긴 소년을 좋아한다. 그리고 짝사랑하던 선배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은 날, 수지는 살해당한다. 피터 잭슨 감독의 신작 는 이미 죽어 세상을 떠난 소녀의 담담한 목소리로 시작한다. 자신이 죽고 난 후, 다정했던 아빠와 아름다운 엄마는 생의 근거를 잃고 서로에게 등을 돌린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딸의 죽음을 밝히려는 잭(마크 월버그)이 사건에 집착하면서 온기로 가득하던 집은 서서히 차갑게 식어간다. 그리고 수지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곳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러블리 본즈’는 예상치 못한 시련을 통해 점점 커지는 유대감을 뜻하는 말로 아픔을 통해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사랑을 가리킨다. 과연 영화의 제목처럼 수지가 남기고 떠난 사람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만들어가는 사랑을 관객들은 발견할 수 있을까?
영화 <러블리 본즈>│소녀는 죽어서도 자란다
│소녀는 죽어서도 자란다" />
죽은 후에도 계속되는 소녀의 일기
영화 <러블리 본즈>│소녀는 죽어서도 자란다
│소녀는 죽어서도 자란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는 영화 혹은 홍보문구가 주장하듯이 ‘러블리 본즈’보다는 사춘기 소녀의 사후 성장담에 가깝다. 수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암흑으로 변하기 전 행복했던 새먼네의 모습은 그녀의 부재로 인한 가족들의 아픔을 보여주기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후 전개에서 시련을 통해 가족들의 결속이 단단해지는 과정을 확인하기란 어렵다. 사건에 집착해 가정에 소홀한 남편과 집을 떠나는 엄마, 그리고 그녀 대신 새먼네를 돌보는 할머니, 이웃집 남자를 언니를 죽인 범인으로 의심하는 동생 등 몇 가지 사건들로만 존재하는 그들의 모습은 결속력이나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픔은 존재하되 서로를 보듬어가는 모습은 생략되고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러블리 본즈’만이 제시될 뿐이다.

오히려 감독은 사춘기 소녀의 심리묘사에 더욱 공을 들인다. 이미 로 십대 소녀의 세계를 성공적으로 그려낸 바 있는 피터 잭슨은 죽은 수지가 머무르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 세계를 묘사하고, 수지의 감정 파고를 보여주는 것에 에너지를 쏟는다. 살아서의 수지의 기억과 그녀가 부재한 현실, 그리고 죽은 후의 수지의 감정에 고루 영향을 받는 중간 세계의 이미지는 물론 매혹적이다. 아빠와 함께 만들던 모형배가 바다에 떠다니고,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스타가 되고픈 수지의 환상이 실현되는 세계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이미지로 14살 소녀의 절망과 환희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여기에 수지를 죽인 범인인 조지(스탠리 투치)와 새먼네와의 관계는 잘 짜인 스릴러로 그려지면서 치유에 중점을 줬던 원작소설에 판타지와 스릴러 등 영화적 재미를 낼 수 있는 요소가 적극 개입된다. 그러나 드라마와 판타지, 스릴러 등 서로 다른 세 가지 장르의 영화를 이어붙인 것처럼 극의 흐름은 그닥 고르지 못하다. 결국 가 남기는 것은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보다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어른이 된 14살 소녀의 심연을 표현해낸 어린 배우, 시얼샤 로넌이다. 영화는 2월 25일 개봉한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