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흙 속의 보석
김지석│흙 속의 보석
“전, 사람한테 잘 맞추는 편이거든요.” 눈을 살짝 찡긋하며 속삭이듯 김지석이 말했다. 사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예의바름과 장난기가 반씩 섞인 표정,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 태도와 함께 김지석의 첫인상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유연함이다. 내키지 않는 것을 상대에게 애써 맞추려는 노력이 아니라 밝은 천성과 여유로움에서 비롯된 순도 100%의 유연함은 상대를 즐겁게 한다.

서른, 데뷔 10년차 신인의 여유
김지석│흙 속의 보석
김지석│흙 속의 보석
“ 시사회 날은 폭설이 쏟아졌는데 기사가 묻힐까 봐 폭탄 발언을 많이 했어요. 나영 누나는 원래 말씀이 없으시고 아들 유빈 역 희수 군은 어리니까 제가 총대를 멨죠. 에라 모르겠다, 던지자! 하하!” 시사회 자리에서 민감한 군 입대 얘기를 먼저 꺼내고 “나영 누나는 여신” 이라는 찬사로 분위기를 띄운 것 역시 그런 김지석의 성격에서 나왔다. 극 중 남자에서 여자로 성 전환한 사실을 숨기느라 자신에게 늘 선을 긋는 애인 지현(이나영)에게 굴하지 않고 순수하게 애정공세를 펼치는 준서의 구김 없는 태도 그대로다. 지현의 비밀을 알게 된 뒤 준서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나라면 어땠을까’를 수없이 질문해본 끝에 “엄청나게 충격일 거예요. 그런데 배신감 느낀다고 연을 끊는다면 너무 잔인할 테니까 우정이 됐든 의리가 됐든 계속 만나다보면 사랑이 다시 시작될지도 모르죠?”라는 결론을 겨우 얻었다는 그는 올해 서른, 데뷔 10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극장에서 자신의 이름이 스크롤에 오른 걸 보며 여전히 감동하는 신인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지만 이름난 수재인 형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공부 아닌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싶었던 그는 무작정 연기학원에 다니며 ‘맨 땅에 헤딩’을 시작했다. “연기 시켜준대서 갔는데 정신 차려보니까 랩퍼가 되어 있어” 댄스 그룹 멤버로 데뷔하기도 했고 소속사 없이 단역만 맡고 다니기도 했다. 큰 고생 모르고 자란 데다 독어교육과를 졸업해 교사자격증도 땄지만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한 번 시작한 일이니까 고민도 연기 안에서 했죠. 한 번에 빵, 뜨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저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처음 가수 하다가 망했을 때에 비하면 지금 저도 날개 달린 용이 됐잖아요. 하하!”

“제 연기를 보면서 울고 웃을 수 있게 되는 게 숙제”
김지석│흙 속의 보석
김지석│흙 속의 보석
김지석│흙 속의 보석
김지석│흙 속의 보석
2008년 시청률 40%를 넘긴 는 김지석을 가장 주목받는 신인으로 올려놓았지만 촉박한 일일 드라마 시스템은 그에게 또 다른 숙제를 냈다. “어느 순간 제가 죽어 있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혀 다른 캐릭터로 호흡이 긴 작업을 하고 싶었죠.” 그렇게 만난 의 생활고에 찌든 청춘 칠구는 그의 새로운 얼굴을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고 뒤이은 준서와 왕손이 역시 각기 다른 코믹함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대길(장혁)이 이끄는 추노패의 막내로 말수가 많고 여색을 밝혀 극 중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왕손이에 대해 그는 한 마디로 설명한다. “준서에 비해 왕손이는 아예 발랑 까졌죠.” 한국판 이라는 농담처럼 전국을 돌며 촬영 중인 는 고생길이지만 김지석은 즐겁다. “입대 전 영화 하나, 드라마 두 편 정도는 더 할 수 있어요. 캐스팅 더 들어와야 하거든요! 그리고 삼십대에는 제 연기를 보면서 울고 웃을 수 있게 되는 게 숙제에요.” 유쾌한 뚝심과 진지한 연기 욕심 사이의 이 남자, 삼십대에도 많이 자랄 것 같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