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듯 요염하게 등장한 한 여자가 ‘Yankee Go Home’이 거대하게 쓰여진 망토를 번쩍 들고 외친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그 베를린 장벽. 어디 한 번 부셔보라구!” 그렇다. 뮤지컬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이 돌아왔다. 올 1월 네 번째 시즌을 마무리 짓고, 지방 구석구석을 방랑자처럼 떠돌던 언니들이 금의환향했다. 트리트먼트를 쥐어주고 싶게 만들던 금발, 눈 깜빡임 한번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 버릴 것 같던 기다란 속눈썹, 외로움을 감추기 위한 것 같은 화려한 패션, 그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대로여서 반갑고, 또 그래서 슬픈 뮤지컬 <헤드윅>이 벌써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았다.

내년 2월 28일까지 KT&G 상상아트홀에서 계속되는 <헤드윅> 시즌 5에는 5년째 헤드윅으로 살고 있는 송용진과 시즌 2에 등장했던 송창의 외에도 윤도현, 강태을, 윤희석, 최재웅이 함께한다. 윤도현의 등장으로 그동안 ‘록 스피릿’을 외롭게 전담하던 송용진에게 든든한 친구가 생긴 셈이다. “조승우 이후 최고로 코믹한” 윤도현을 위해 YB 멤버들은 기꺼이 앵그리인치 밴드가 돼 주고, 10년이 훌쩍 넘은 밴드의 호흡은 헤드윅의 감정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이날 소개된 또 한명의 헤드윅. 불과 일주일전만 해도 “독재자의 말로를 보라”며 링컨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던 강태을이 어느새 얼굴에서 암살자 부스를 지워버렸다. 2009년의 그를 설명해주던 웨이브 진 단발머리 역시 찰랑거리는 생머리로 변했고, 이제야 제 목소리를 찾은 듯 신나 보이기까지 한다. “분장이 예쁘게 되면 기분 좋은데, 안 되는 날이면 거울도 보기 싫을 정도”라고 고백할 정도니, 헤드윅이 다 됐다. 둥둥둥 가슴을 울리는 사운드와 슬픈 목소리, 이제 이마에 실버크로스를 그리고 맘껏 뛸 일만 남았다.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