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기아가 우승했다며? 아주 입이 귀에 걸렸네, 걸렸어.
아유, 뭘 또 그런 걸 묻고 그래. 이런 공식적인 지면에서 나 이런 거 티내면 안 되잖아. 다른 팀 팬들도 있는데. 기아 우승 얘기는 그냥 깔끔하게 만세 삼창만 하고 끝내자. 기아 만세! 종범신 만세! 나지완 만세! 기쁨은 여기까지. 자, 오늘은 뭐가 궁금해?

솔직히 지금 이러는 네 심리가 제일 궁금하긴 하다. 너 다른 프로그램에 너무 소홀한 거 아니야?
오해야. 내가 야구에만 정신이 팔린 거 같아도 < UFC 104 >에서 쇼군과 마치다의 대결도 보고, <드림 12>도 보고, 맨유랑 리버풀의 경기도 다 챙겨 봤어.

그거 말고, 예능 프로그램 말이야. 주말동안 밥 샙이라는 거인이 방송 3사 예능을 확 쓸고 갔다고. 솔직히 재밌긴 했는데 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격투기 선수라는데 하는 짓은 코미디언이고.
아, 밥 샙. 그 사람이 궁금했구나. 진즉에 물어보지. 우선은 그 사람이 가진 스포츠 경력부터 얘기하는 게 이해가 빠르겠다. 너 미식축구가 뭔지는 알지? 그래, 갑옷 같은 거 입고 공들고 뛰는 거. 그게 미국에선 메이저리그나 NBA보다 더 인기가 많은 프로 스포츠인데 밥 샙은 미식축구 리그인 NFL 선수로 2년을 활동했어. <애니 기븐 선데이> 같은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미식축구 선수들은 몸과 몸을 부딪치거나 태클을 피하면서 공을 단 몇 야드라도 더 옮기려는 게임이기 때문에 덩치는 산만하면서도 운동신경이 탁월한 선수들이 많아. 그러다보니 미식축구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 덩치와 운동능력을 살려 프로레슬링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지. WWE의 영웅이자 이제는 영화배우로 활동하는 ‘더 락’ 드웨인 존슨이나 WCW에서 173연승을 기록한 골드버그 같은 유명 프로레슬러들 모두 전직 미식축구 선수야. 밥 샙 역시 미식축구 선수로서의 생활이 그다지 잘 풀리지 않아서 프로레슬링에 진출을 하게 됐지. 여담이지만 현재 UFC 헤비급 챔피언인 브록 레스너의 경우 역으로 프로레슬링 챔피언에서 NFL에 도전했다가 기량 미달로 좌절했던 경험이 있어.

그래서 밥 샙은 프로레슬러인 거야?
얘기 안 끝났잖니. 꼭 너처럼 성격 급한 애들이 이번 한국시리즈 7차전 5 대 1 상황에서 채널 돌렸다가 역전승을 못 보는 거야. 아니, 난 야구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유를 하는 거지. 어쨌든 과거 K-1에서 제법 잘 나가던 샘 그레코라는 사람이 밥 샙의 엄청난 신체 조건을 보고 격투기로 끌어들였어. 그런데 진짜 이 괴물이 일을 낸 거지. 너 솔직히 밥 샙 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

글쎄? 솔직히 말해서 서커스단의 거인 캐릭터랄까, 그렇게 보여. 나와서 차력하고 구경거리가 되는 그런 거인.
그렇지? 하지만 사실 밥 샙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격투계의 패러다임을 뒤흔들었던 격투가라고 봐야 돼. 격투기라는 건 말하자면 싸우는 기술인 거잖아. K-1이나 프라이드는 이렇게 수백 년의 역사동안 때리고 차면서 다듬어진 기술을 십 수 년 동안 익힌 현대의 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곳이고. 그런데 겨우 몇 달 동안 킥복싱 수련을 한 게 전부인 밥 샙은 2m에 170㎏, 체지방율 10%대의 괴물 같은 신체의 힘만으로 그 모든 싸움의 기술을 부숴버렸어. 당시 효도르 이전 종합격투기 최고의 선수였던 노게이라와의 시합에선 노게이라가 암바로 겨우 역전을 하긴 했지만 밥 샙은 어디 긁힌 곳도 없었던 반면 노게이라는 전치 몇 주의 부상을 입고 “다시는 밥 샙과 경기하지 않겠다”고 했지. 하지만 최고의 이변은 입식격투기 K-1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어네스트 후스트가 이 초짜에게 2번이나 KO로 졌다는 거야. 정말 몇 십 년 동안 격투기술을 몸에 익히며 수많은 경기를 치러온 고수 중의 고수가 그냥 키 크고 힘 센 초보자에게 졌으니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야. 잘 모르겠어? <선덕여왕>에서 싸움 제일 잘하는 게 죽은 문노지? 이 사람이 몇 십 년 동안 무술을 갈고 닦아서 서라벌 최고의 무사가 됐는데 산에서 통나무를 나르던 나무꾼이 그냥 힘으로 문노를 이기면 얼마나 허무하겠어. 그러면 사람들은 수련이라는 것 자체에 회의를 느끼지 않을까?

그럼 밥 샙은 격투기를 안 배우고 격투기에서 1등까지 했던 거야?
거의 그럴 뻔 했지. 밥 샙의 전성기는 굉장히 짧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이 황소개구리가 격투기라는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어. 당시 제일 잘 나가던 격투가 중 하나인 크로캅이 밥 샙을 이기는 걸 보고서야 안심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지. 그런 전적이 있기 때문에 최홍만이 밥 샙을 이긴 게 큰 이슈가 될 수 있었던 거야. 물론 사람들은 또 다른 황소개구리의 출현을 우려하긴 했지만.

네 말 대로면 격투기에서 되게 잘 나갔던 사람인 건데 우리나라에선 왜 그렇게 웃긴 거야?
씨름에서 되게 잘 나가던 강호동도 우리나라에서 되게 웃기고 있잖아. 심지어 강호동은 씨름에서 1등까지 했고, 오랫동안 1등을 할 사람이었는데도. 밥 샙은 프로레슬러 출신이라 그런지 굉장히 엔터테이너적인 끼가 다분하고 실제로 일본에선 예능 활동도 많이 했어. 사실 그 괴물 같은 이미지도 프로레슬링적인 캐릭터를 격투기까지 가져왔다고 보는 게 맞아. 실제로는 격투기 선수의 권익과 복지에 대해 고민이 많은 지적인 사람이지만 격투기 무대나 <개그콘서트> 같은 예능 무대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지. 그것도 어떻게 보면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기에 가능한 거야. 대중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격투가로서, 또 엔터테이너로서의 생명을 유지하는 거지.

그냥 보던 것보다 되게 대단한 사람인 거 같네. 그럼 최홍만도 그 정도의 위치에 있는 거야? 요즘은 뜸하지만 한 동안 예능에도 많이 나왔잖아. 물론 그 때도 좀 서커스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물론 최홍만도 밥 샙도 누군가의 구경거리는 아니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그 사람들을 그렇게 소비하는 것뿐이지. 사실 최홍만도 뇌하수체 종양 제거 수술 이후에는 과거의 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한 때는 격투기에서 1등을 할 황소개구리로 꼽혔어. 신인 때 <드림>에도 나왔던 스타 격투가 레미 본야스키를 위협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괴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격투기 유망주에서 신기한 체형의 ‘무엇’ 취급을 받기 시작한 거지. 그러다보니 격투기 순위를 가리는 진지한 경기보다는 일회적인 이벤트 시합을 많이 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우리나라 격투기 마니아들은 최홍만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그건 잘못된 비난이야. 최홍만이 예능에 나오고 예능에 준하는 시합을 한다고 해서 싫어하는 거야 본인들 자유지만, 그에게서 그런 요소를 기대하고 시합을 짜는 프로모터는 생각하지 않은 채 최홍만이 제대로 된 격투기를 안 한다고 비난하는 건 반칙이지. 밥 샙이 <스타킹> 나와서 “행님아!” 하는 건 귀엽고, 최홍만이 예능 나와서 강호동이랑 팔씨름하는 건 외도로 모는 건 좀 모순적이라고 봐. 다만 최홍만은 밥 샙처럼 대중의 호기심을 영리하게 이용하진 못했던 거 같아.

그래서 결국 밥 샙은 정체가 뭐야? 한 때 잘나갔던 격투 셀러브리티 같은 건가?
굳이 따지면 셀러브리티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 이제는. 나이도 30대 중반이니 과거처럼 괴력의 격투가로 활동하기에는 더 힘들 수 있고. 하지만 엔터테이너로서, 또 관중을 모으는 격투기 이벤트의 주인공으로서는 지금도 잘나간다고 봐야겠지. 그리고 나는 이런 게 굉장히 필요하다고 봐.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강박적일 정도로 운동선수가 예능이나 CF 나오는 거 싫어하고, 그러다가 성적이라도 떨어지면 정말 욕을 바가지로 해대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양준혁이나 허구연 같은 사람들이 ‘무릎 팍 도사’에 나오는 것만으로 수많은 야구 문외한들이 전성기 삼성 라이온즈에 대해서, 야구 해설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잖아. 그 중에 99%는 거품이라고 해도 결국 1%는 진짜 야구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처럼 최홍만 때문에 K-1이라는 단체가 격투기 단체라는 걸 알게 된 사람들도 많잖아.

하긴. 그럼 네 생각엔 어떤 방식으로 이런 스포츠 셀러브리티가 활동하면 좋을 거 같아?
프로그램의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 우리 종범신 ‘무릎 팍 도사’ 한 번만 출연한 다음에 생각해보자.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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