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롯데와 두산의 준 플레이오프 1차전이 있는 날이었다. 가을 야구의 첫 경기를 앞두고 서서히 달아오른 잠실벌에 사람들의 시선이 머문 그 날 오전, 전라남도 함평의 전남야구장에서는 천하무적 야구단과 전남지역 사회인리그 우승팀 남해 포세이돈의 경기가 펼쳐졌다. 비록 ‘타격 머신’도, ‘임작가’도 없는 경기지만 두 팀의 승리에 대한 욕구만큼은 가을 야구의 그것에 못지않았다. 다음은 결코 ‘친선 경기’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승부욕이 불타던 그 현장의 기록이다.

함평역 근처에서 잡아 탄 택시는 갈수록 인적이 없고 풀만 울창하게 우거진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팔도 원정 5번째 경기가 펼쳐질 전남야구장은 그렇게 꼭꼭 숨어있었다. 사실 기아 타이거즈의 2군 경기장이기도 한 이곳 함평 경기장에 대한 전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이날 해설을 하던 김C의 말대로 “주위에 아무 것도 없어서 야구 밖에 할 게 없는 환경”을 보니, 2군으로 떨어졌다가 1군으로 복귀하기만 하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소위 ‘함평 매직’에 대한 얘기가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과연, 그 ‘함평 매직’이 천하무적 야구단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까.

전날 전주에서 벌어진 전주 피닉스와의 경기 때문일까. 마르코를 제외한 천하무적 야구단의 얼굴에는 피로함이 역력했다. 하지만 가벼운 달리기와 수비연습으로 몸을 풀기 시작하자 모두들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 때 덕아웃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아! 나도 야구하고 싶다!” 역시 이하늘이다. 대구 원정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던 그의 발목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있다. 카메라가 다가오자 “대체 멤버 김성수가 너무 잘하니 팀을 위해서 내 다리를 부러뜨려야겠다”고 농담을 던지지만 경기장까지 와서 야구를 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숨길 수 없었다. 역시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마리오 역시 멤버들의 연습 모습을 부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연습 중인 천하무적 야구단과 남해 포세이돈 선수들의 모습이 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경기장 주변은 스태프들로 북적북적했다. 카메라 설치하랴, 관중 통제하랴, 거의 80명에 달하는 스태프들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러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악!” 소리. 타격 연습을 하다 빗맞은 타구가 한 스태프의 발등에 다이렉트로 맞은 것이다. 경기장은 좁고 사람은 많은 탓이었다. 곧바로 대기 중이던 의사와 간호사가 뛰어와 파스를 뿌리고 상태를 살폈다. 살짝 부어오른 수준이지만 방송 사고보다는 중계 사고라는 말이 어울릴 법하다. 사실 그래서 ‘천하무적 야구단’ 현장은 예능보다는 중계 현장에 가깝다.

한 번이라도 조기축구회 아저씨들과 축구를 해본 사람이라면 고민해봤을 것이다. 대체 왜 호날두와 메시가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지. 사회인 야구팀도 마찬가지다. 남해 포세이돈의 선발 투수의 연습구가 미트에 박힐 때마다 ‘펑펑’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소리를 들으니 과연 1점은 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선두타자 임창정의 안타로 시작된 그들의 공격은 그 우려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루상에 나가있는 조빈을 불러들이며 김준이 첫 타점을 만들었고, 그 이후 끊임없는 치고 달리기를 통해 어느새 천하무적 야구단의 점수는 4점까지 올라갔다. 어쩌면 <10 아시아>가 역사적인 팔도 원정 첫 승의 목격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부푼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역시 지역 우승팀은 복불복으로 정하는 게 아니었다. 붉은 상의와 검은 바지가 과거 전라도의 자존심이었던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과 판박이인 남해 포세이돈은 1회 말 공격에서 5점을 퍼부으며 1점차 리드를 유지했고, 2회에는 무려 6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2회 말까지 스코어는 5대 11. 첫 승리는커녕 콜드게임 패배가 눈앞에 다가왔다. 감독은 이럴 때 나서는 법이다. “집중 안 해? 지금 한 점만 더 주면 콜드게임이야.” 김C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누가 넘어가는 거 잡으래? 자기 앞에 오는 거 잘 처리하라고. 왜 겁을 내? 지더라도 납득할 만한 시합을 하자고.”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 출연자들의 모습이라니. 정말 콜드게임으로 지면 스케줄이고 뭐고 전원 함평에 남아 하루 종일 지옥 훈련을 시킬 분위기였다.

다행히도 김C의 극약 처방은 금세 ‘약발’을 보였다. 스태프들에게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것”이라 평가받던 대체 멤버 조빈은 매 타석마다 깨끗한 안타를 뽑아냈고, 그 바로 다음 타자인 김준 역시 안타로 계속 조빈을 홈으로 불러들이며 연속 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날 천하무적 야구단의 가장 멋진 장면을 연출한 건 외야수 마르코였다. 사실 실제로 본 마르코의 혈기는 살짝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의 타석에서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외칠 때마다 번뜩이는 눈으로 그가 무언의 항의를 할 땐 원조 악동 김창렬조차 “마르코! 스트라이크야, 스트라이크”라고 달래야 할 정도였다. 승부욕이 넘쳐서 실수도 많은 이 사내의 머리 위로 타구가 날아왔고, 거짓말처럼 공은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4회 말 1점차 2아웃 상황이었다. “이예에에에!” 아르헨티나 마초의 함성만 들으면 경기가 천하무적 야구단의 승리로 끝난 걸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역전의 기회가 남은 마지막 5회. 하지만 그 날 경기의 기록은 여기서 마치겠다. 단순한 엠바고의 문제가 아니다. 김C의 말대로 납득할 수 있는 승부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들 모두를 이끌었던 건 승리하겠다는 열망이다. 야구란, 스포츠란 그런 것이다. 때문에 승패의 결과는 그것이 공식적으로 중계되기 전까진 비밀이어야 한다. 그것이 몸을 아끼지 않고 천하무적 야구단이 함평에서 보여준 진짜 스포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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