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MBC 수-목 밤 9시 55분
“사람은 나아질 수 있습니다.” 연쇄 살인마 서주희를 재판하는 자리에 증인으로 나온 이혜원(이진) 박사는 전문가로서의 소견을 말하라는 자리에서 자신의 신념을 한 번 되뇌더니 서주희를 정신분열증이라고 진단한다. 덕분에 변호사 백도식(김갑수)은 서주희의 무기징역을 무효화할 수 있었다. 이 사건과 신류(이서진)가 겪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병치시키며 <혼>은 정의를 위해 악도 행할 수 있다는 신류의 신념을 어느 정도 정당화하는 듯하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 이것은 신념의 문제도, 법의 허술함의 문제도 아니다. 혜원의 판단이 문제가 되는 건 인간의 착한 본성을 믿는 낙관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다. 시청자가 봐도 거짓말하는 게 빤한 살인마를 봉사활동 자료 화면만으로 옹호하는, 치밀한 관찰력과 분석력은 없고 낙관적이기만 한 정신 분석의를 마치 성선설의 대표자처럼 내세우며 신류의 방법론에 힘을 실어주는 건 반칙이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해 악인은 DNA부터 다르다는 신류 역시 대체 어디서 무엇을 공부하고 왔는지 알 수 없는 얼치기다. 즉 한 줄짜리 성격으로 모든 걸 파악할 수 있는 캐릭터인 셈이다. 이토록 단순한 인물들을 내세우며 인간의 본성, 그리고 법의 허술함과 정의의 방법론 등 거대한 가치담론들을 들먹이는 <혼>의 세계는 그래서 너무 어설프다. 문득, 비슷한 소재를 다뤘던 영화 <프라이멀 피어>가 얼마나 걸작이었는지 깨달았다는 점만이 이번 방영분을 시청하며 얻은 수확이리라.
글 위근우

‘라디오 스타’ MBC 수 밤 11시 5분
지난 1편에서 “예능에선 아직 붐 아래”로 소개되면서도 고군분투했던 옹달샘 세 멤버들에 게 프로그램 말미에 내려진 중간평가는 “뭐 나름대로 재미가 있구먼”이었다. 한 때 ‘반응 없는’ 개그맨이었으면서도 점점 잘 되기 시작하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며 김구라를 공격하는 장동민의 말에 ‘진화과정’으로 재치 있게 화답하는 신정환의 활약과, 그 때까지 조용하던 유상무에게 ‘욱하는 성격’을 캐릭터로 부여해주는 유세윤의 노력 덕에 한층 더 살아난 재미는 ‘못 질러서 못 지른 게 아닌’ 유상무의 잊지 못할 5분으로 마무리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라디오 스타’가 은연중에 드러내는 예능계의 불균형한 현실이다. KBS <개그콘서트>에서 주요 코너들에서 중요한 캐릭터로 활약하며 웃음을 주고 있는 이들이 정작 버라이어티에 와서는 찬밥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개그맨들에게도, 대중들에게도 버라이어티는 ‘입성’해서 ‘안착’해야 하는 곳으로 당연하게 인식 되면서, 토크쇼를 포함한 버라이어티에서 웃겨야만 마치 ‘진짜’ 웃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달샘의 세 멤버는 ‘라디오 스타’에서 ‘콩트연기’를 꾸준히 시도하고 ‘나름대로의 개그스타일’을 버리지 않는다. 장동민의 입시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소소한 이야기지만 듣는 재미를 살리는 연기가 숨어있고, 유세윤이 보여준 ‘알 낳는 바다거북이’의 디테일한 묘사는, <개콘>의 ‘사랑의 카운슬러’나 ‘착한 사람에게만 보여요’에서 보여주었던 것들과 맥을 같이한다. 분명히 이들의 개그는 ‘라디오 스타’나 리얼 버라이어티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 대세를 따를 순 없다. 그리고 내일은 누가 대세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라디오 스타’의 처음에 누구도 지금의 ‘라디오 스타’를 상상하지 않았던 것처럼.
글 윤이나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