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첫 방송된 SBS <드림>은 이미 오랫동안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작품이다. 2년이 넘는 기획 기간, 수차례의 방향 수정과 제작진 교체, 흥행에 성공하기 힘들기로 소문난 스포츠 소재,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하는 가수 손담비의 여주인공 캐스팅, 그리고 무엇보다 월화 드라마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MBC <선덕여왕>과의 맞대결까지 <드림>이 넘어야 할 산은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골리앗과 함께 링에 오른 다윗 같은 상황에 놓인 이 작품에서 대부분의 기대와 믿음을 짊어지고 있는 이는 바로 MBC <다모>와 <주몽>을 집필했던 정형수 작가다. 선 굵은 스토리와 흥미로운 캐릭터, 오락적인 재미를 함께 갖춘 작품들로 사랑받았던 정형수 작가는 <주몽> 이후 2년 반 만에 들고 돌아온 <드림>에서 어떤 승부수를 던졌을까. 23일 <드림> 1부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정형수 작가를 만났다.

<다모>를 통해 열성적인 팬을 얻었고 최완규 작가와 공동집필한 <주몽>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차기작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을 텐데 꽤 긴 시간이 지나서야 <드림>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의 어떤 면에 끌렸나.
정형수
: <드림>은 3년 가까이 기획되었던 작품이다. 이현세 씨의 만화 <지옥의 링> 원작을 사서 각색한다는 얘기도 있었고, K-1 전문 드라마라는 얘기도 있었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맡기 전에 작업을 하던 다른 인력들도 물론 있었다. 그런데 1년여 전부터 내가 <드림>을 맡으며 느낀 것은 격투기 자체만으로는 큰 이야기가 나오기 어렵다는 거였다. 그보다는 한 선수가 정상에 오르기까지 주위에서 도와주는 조력자들, 그 이면에 있는 메이커들의 이야기가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포츠 에이전트에 관심이 생겼다. 마침 김연아, 박지성, 이승엽 선수의 성공과 해외 진출 등을 통해 스포츠 에이전트의 존재가 심심찮게 기사화되고 노출되었는데 이런 것들은 미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에도 없었던 소재라는 점이 끌렸다.

“아직은 우리나라 스포츠 에이전트는 초동 단계”

주인공 남제일 역의 주진모가 연기하면서 롤 모델을 찾기 쉽지 않았다는 말을 할 만큼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에이전트의 세계가 보편적인 것은 아닌데.
정형수
: 사실 우리 현실과 드라마가 잘 맞는 것은 아니다. 김연아 선수가 속한 IB 스포츠 같은 회사도 있지만 우리나라 스포츠 에이전트 회사들은 미국 같은 곳에 비하면 초동 단계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앞으로 진보할 한국 에이전트계를 미리 당겨서 미국에 가까운 설정을 도입했다. 남제일의 롤 모델로는 스포츠 에이전트를 다룬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주인공이나 메이저리그의 유명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 등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거기서는 약간 행위적인 모티브를 가져온 정도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나본 한국 에이전트나 선수들은 어떤가.
정형수
: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에이전트보다 본인이나 부모님의 영향이 큰 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시스템으로 굴러가기에는 냉정하지 못한 면이 있는데, 점점 그런 현실까지 반영한 새로운 토착 시스템이 생겨나고 있는 과정이다.

<드림>은 16부작에서 20부작으로 연장되었다. 비열한 수법으로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강경탁(박상원) 사장과, 그의 오른팔에서 맞수로 변신하는 남제일의 갈등 구조를 끝까지 가져가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한 볼거리나 장치도 필요할 것 같은데.
정형수
: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웃음) 일단 남제일이 외적으로 싸우고 마지막에 넘어야 할 산은 강경탁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장석(김범)이나 소연(손담비)를 만나고 체육관에서 지내며 내면적으로 성숙해져 가는 치열한 과정이다. 남제일의 선수이면서도 전혀 통제되지 않는 장석은 그의 동지이면서 적이고, 둘 사이 멜로의 중심에는 또 소연이 있다. 장석의 아버지 영출(오달수)의 존재 역시 작품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1, 2부의 커다란 사건에 비해 앞으로는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도 많이 등장할 예정이다.

모델 마르코와 배정남, 가수 청림 등으로 구성된 ‘꽃미남 격투단’ 역시 볼거리를 위한 장치인가.
정형수
: 사실 이들은 드라마의 줄거리와는 다소 무관하다. 영화 <300>에서 배우들의 몸을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방식인데 지금은 이들의 존재를 극 속에 버무리고 있다. 초반에는 극의 설정과 메인 캐릭터에 대한 설명 때문에 많이 등장하지는 못하지만 중반으로 갈수록 각자 서서히 자기만의 사연들을 드러낼 것이다. 결코 병풍으로 등장시키는 건 아니다.

“손담비는 워낙 열심히 하는 친구라 보기 좋다”

가수 손담비가 여주인공 소연 역으로 캐스팅된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형수
: 손담비의 캐스팅은 많은 분들이 가장 ‘두고 보자’ 하는 부분일 거다. 나로서는 그동안 손담비를 TV 속 무대 위 모습만 보다가 편안한 자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소연이 캐릭터와 참 많이 비슷해서 굉장히 마음이 놓였고, “그럼 하는 거죠?”라고 바로 말했을 정도다. 손담비 본인도 시놉시스와 대본을 읽어본 뒤 평소 자기 모습과 굉장히 닮아서 놀랐다고 하더라. 초반의 소연이 캐릭터가 본격적인 멜로나 내면 연기를 펼쳐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손담비도 연기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자신과 닮은 부분을 편안하게 소화해 나가면 어떨까 한다. 대본 연습도 지켜보고 편집본 모니터도 봤는데 워낙 열심히 하는 친구라 보기 좋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대개 진지하거나 비장한 분위기인데 <드림>은 생각보다 밝고 코믹한 톤이 눈에 띈다.
정형수
: ‘링’이라는 건 무조건 어둡다거나 피투성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K-1의 한국 주최사인 FEG가 <드림> 공동제작을 맡고 있어서 작품을 준비하는 1년여 동안 FEG 사무실에서 일을 했는데 많은 경기가 준비되고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본 바로는 종합격투기의 세계가 실제로 정말 밝은 분위기다. 레이 세포처럼 험악해 보이는 선수가 도 레미 본야스키, 최홍만과 장난치는 모습을 직접 본다면 다들 깜짝 놀랄 거다. 사람들은 대부분 ‘격투기’ 하면 과거 권투의 김득구 선수나 최근 안타깝게 작고한 최요삼 선수의 경우를 떠올리는데 종합격투기는 부상도 권투에 비해 오히려 적은 편이고, 예전 김미 파이브라는 클럽에서 일어났던 사고 외에는 경기 중 사고도 거의 없다. 격투기는 이제 하나의 스포테인먼트다. 콜로세움에 선수를 세워놓고 피를 보며 즐기는 게 아니라 그 선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이면까지가 모두 상품화되는 거다. 그래서 대중들에게도 잔인한 싸움보다는 깨끗하고 화끈한 KO 플레이를 보여주는 종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혹시 <드림>을 쓰기 전에도 격투기에 관심이 있는 편이었나?
정형수
: 남자들이 기본적으로 투기 경기를 좋아하는데, 우리 때는 권투의 레너드, 헤글러, 헌즈, 듀란이 인기여서 광적으로 좋아했다. 그 이후로도 격투기 중계를 간간히 봤지만 <드림>을 맡으면서 그 이면까지 알게 되니까 지금은 굉장히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즐기면서 보고 있다. 내가 몸은 좀 뚱뚱해도 보는 건 좋아한다. (웃음)

1부에서는 레미 본야스키의 카메오 출연도 눈길을 끌었다.
정형수
: 레미 본야스키 선수는 오로지 <드림> 촬영 하나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한국까지 와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새벽까지 촬영한 뒤 아침 비행기를 타고 바로 돌아갔는데 현장에서도 굉장히 신사적이었다.

“이대호 선수가 특별출연 못한 게 아쉽다”

혹시 특별출연을 기대하는 다른 종목 스타들도 있나. 야구의 이승엽이나 박찬호 같은.
정형수
: 그런 바람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제작사 쪽에서도 선이 안 닿는 건 아니지만 선수들이 경기로 바쁜데 신경 쓰게 하기는 어려우니까 조심스런 부분이다. 조금 아까운 것은 우리나라가 WBC에서 좋은 성적을 냈을 때 이대호 선수를 비롯한 스타들이 출연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시즌 중이라 일정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 사극’으로 불렸던 <주몽>을 집필한 경험으로 잘 알겠지만 시청률 30%를 넘긴 사극과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작품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입장이 바뀌어 <선덕여왕>과 맞대결하게 된 소감은 어떤가. (웃음)
정형수
: 내 업보라고 생각한다. (웃음) <주몽> 때 우리를 상대하는 사람들의 맘을 몰랐는데 이제 알겠다. 나 역시 2년 반 동안 쉬기만 했던 게 아니라 이것저것 준비했던 작품들이 무산되고 <드림>을 맡았기 때문에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다. 김영현 작가와도 개인적으로 친하고 잘 아는 사이지만 시청률에 신경을 안 쓴다면 말이 안 될 거고, 그래도 방법은 하나인 것 같다. 잡겠다는 욕심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무소의 뿔처럼 우리 것만 보고 가되 일부러 상대를 의식해서 이상한 장치로 눈길을 끌 생각은 없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인 것 같다. 만약 우리 작품이 별로라면 <선덕여왕>의 시청률과 상관없이 점유율이 안 나오겠지.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면 사극을 보지 않는 시청자들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진인사 대천명이다.

<드림>은 연말 일본 TBS에서 방영 예정이다. 혹시 일본 시청자들을 타겟으로 한 내용이 특별히 있나.
정형수
: 전혀 그런 것은 없다. 내 지론은 한국에서 잘 된 드라마가 일본에서도 잘 될 수는 있지만 한국에서 안 되면 일본에서도 잘 안 된다는 거다.

이번 작품에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의미가 있다면 무엇인가.
정형수
: 일단 재미있고 흥미 있는 드라마가 되면 좋겠다. 날도 덥고 경기도 안 좋은데 보는 동안만은 현실을 잊고 시원하게 봐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드라마틱하다는 게 어차피 석세스 스토리라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강경탁이나 초반의 남제일처럼 이기적으로 사는 게 현실적으로 ‘잘 사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우리 드라마에서는 정직한 방법과 진정성 있는 행동이 궁극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사진제공_SBS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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