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긴장된 목소리로 더듬더듬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며 90도로 허리를 숙인다. 첫 출근한 신입사원이 기세등등한 선배들 앞에서 인사하는 듯한 이 장면은, 하지만 KBS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의 셋째 송선풍이 35년 만에 찾아온 첫사랑에게 고백하는 모습이다. 만남도, 연애도, 이별도 빠르게 진행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속도의 시대에 이 남자는 상대방과의 우연한 만남마다 티격태격 다투면서 고민을 들어주고, 충고해주고, 마음을 나눈 뒤 한참 자신의 감정을 복기하고서야 온몸의 용기를 쥐어짜 고백을 한다. 누가 봐도 속 터지게 느리지만 그래서 더 진중한 이 과정은 송선풍을 연기하는 배우 한상진이 서서히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과 흡사하다.
서울예대 동기 50명과 응시한 SBS 톱탤런트 선발대회에서 유일하게 그가 입상하며 ‘다음 주면 바로 스타가 될 거라 생각’했던 게 2000년이다. 하지만 4년이 지나 스타 농구선수였던 박정은과 결혼할 때도 그는 아직 무명씨였고, 2007년 MBC 드라마 <하얀거탑> 출연이 확정되기 직전에는 이민까지 고려할 정도였다. 물론 <하얀거탑>에서 기회주의적인 박건하의 모습으로 극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암투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해도 한상진이 한 번에 스타가 될 수는 없었다. 대신 MBC 드라마 <이산>에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됐다. 겁 없는 독설과 배짱을 지닌 정치적 인물 홍국영은 공명정대하기만한 주인공 이산(이서진)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배우 한상진의 얼굴은 비로소 대중에게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젠 강렬하진 않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주말 홈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의 송선풍이 된 그는 반짝 스타가 아닌 밥처럼 질리지 않는 모습으로 시나브로 대중의 뇌리에 스며들고 있다.
그래서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송선풍이 전화로 자는 것부터 세수하는 것까지 은지(유하나)에게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시시덕거리는 모습은 대중과 소통하는 재미에 싱글벙글하는 한상진의 현재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추천하는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한 음악과 함께라면 송선풍, 혹은 한상진이 그랬듯 오랜 기다림 끝에 새로운 세계를 만났을 때의 설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요조, 김진표의
“제가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잖아요. 그러니 처음 연애할 때의 설렘을 떠올리기 위해선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해요. 그래서 촬영 전에 요조와 김진표가 함께 부른 ‘좋아해’를 들어요.” 만약 순수하게 가사 내용만 따진다면 ‘좋아해’는 연애 초기가 아닌 이별 후의 감정을 담은 노래다. 하지만 가사 속 ‘너무 달지 않은 라떼’처럼 부드러우면서 적당히 달콤한 요조의 목소리가 상큼한 어쿠스틱 연주와 함께 아직 좋아하는 옛 연인에 대한 마음을 고백할 때, 이별의 아픔보단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노래는 ‘사랑을 해본 지 오래된 가슴을 뛰게 만드는’ 곡이자 설렘을 말하기보단, 직접 듣는 이를 설레게 만드는 곡이다. 특히 이런 스타일의 곡 대부분이 그렇듯 요조와 남자 보컬인 김진표가 주고받는 파트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대화처럼 목소리의 조화를 이룬다.
2. 이효리, 윤건의 <이뻐요>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문화를 많이 접해야 한다’는 한상진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역시 최신곡인 이효리와 윤건의 싱글 <이뻐요>를 추천했다. 앞서 소개한 요조의 음악적 파트너로 잘 알려진 허밍어반스테레오의 이지린이 윤건에게 준 곡답게 시부야계 특유의 통통 튀는 전자음이 감각적인 곡이다. 특히 호소력 짙은 과거 스타일 대신 목에 힘을 뺀 부드러운 소리를 들려주는 윤건과 역시 비음을 섞어 좀 더 간드러지게 부르는 이효리가 허밍어반스테레오 스타일 안에서 보여주는 조화는 예상보다 성공적이다. “지금 당장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며 조르는 가사는 마치 <솔약국집 아들들> 속 은지가 선풍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당당하면서도 귀여운 것 같아요.”
3. <드림걸즈> OST
파워 넘치는 목소리를 자랑하는 최고의 스타 비욘세와 <아메리칸 아이돌 3> 출신인 제니퍼 허드슨이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 <드림걸즈>의 음악적 완성도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실제로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발매 5주 만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영화 못지않은 관심을 끌었다. 이 중 한상진이 추천하는 곡은 ‘When I First Saw You’다. “상대방을 처음 본 순간을 세상 가장 아름다운 꿈이라 말하는 가사 때문일까요. 이 곡을 들으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이 나요. 두근거림을 넘어 찡한 기분이랄까요.” 기본적으로는 영화에서 야심찬 매니저로 등장하는 제이미 폭스의 솔로곡이지만 한상진이 추천하는 건 비욘세와 함께한 듀엣 버전이다. 처음 본 순간에 대한 제이미 폭스의 고백과 같은 멜로디와 비슷한 내용의 가사를 부르는 비욘세의 고백이 더해지며 만들어지는 감정의 폭발은 솔로 버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을 선사한다.
4. 동방신기의
30대 중반인 한상진이 최신곡인 ‘좋아해’와 ‘이뻐요’를 추천한 것이 놀랍다면, 동방신기의 ‘Hug’를 추천한 것은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다. 심지어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노래방에서 자주 불러주던 곡’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비틀즈의 ‘I Will’ 같은 클래식한 명곡보단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즐기는 노래를 추천하고 싶었다’는 한상진의 말을 떠올리면 아주 의외의 선곡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배려심 깊은 선풍 같은 남자라면 괜히 뜻도 잘 모르는 팝송을 불러주며 자신의 멋에 취하기보단 상대방도 알 만한 노래, 즉 ‘Hug’를 불러줄 것만 같다. 한국 최초의 아카펠라 아이돌이었던 동방신기의 과거를 대표하는 곡으로 ‘하루만 너의 고양이가 되고 싶어’라는 가사는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어쩌랴, 연애 초기란 그렇게 닭살스러워야만 하는 것을.
5. 지오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역시 연애할 때 자주 불러준 곡이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청혼할 때 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래서 지금도 이 노래 가사는 다 외울 수 있어요.” 어떤 사람들에게 지오라는 그룹 이름은 낯설지 모르지만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첫 소절을 듣는 순간 같이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90년대 중반 등장한 지오는 그리 활발한 방송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2002년 남성 2인조 UN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더욱 대중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원곡 역시 귀에 바로바로 들어오는 멜로디가 인상적인데 ‘네가 해주는 아침을 먹고 우리 둘 닮은 아이와 함께 사는 꿈을 꾼다’는 가사는 그 무렵 댄스 음악을 듣던 십대의 감수성에 딱 들어맞는, 조금 유치하지만 사랑스러운 느낌이다.
“둘이 만들었던 추억을 얘기해 봐요”
“서로 싸우고 사이가 서먹해졌을 때 가장 좋은 건 둘이 만들었던 추억을 하나씩 얘기해 보는 거예요. 아니면 추억의 장소에 함께 가보던가요.” 결혼 5년차 유부남인 한상진은 선풍과 은지가 혹 나중에 싸웠을 경우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시 처음의 설렘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아마 지금은 숨 쉬는 것조차 행복한 선풍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시큰둥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사실 모든 두근거림이란 일상이 되는 순간 그렇게 끝난다. 캠퍼스의 낭만도, 어렵게 구한 첫 직장의 희열도. 때문에 세상이 모두 자기 것 같았던 순간을 기억해보라는 한상진의 충고는 꼭 연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모든 감동 없는 삶에 대한 답변이 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조금씩 인지도를 더 많이 쌓아가고 있는 배우 한상진이 되뇌는 초심의 각오인 것은 아닐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서울예대 동기 50명과 응시한 SBS 톱탤런트 선발대회에서 유일하게 그가 입상하며 ‘다음 주면 바로 스타가 될 거라 생각’했던 게 2000년이다. 하지만 4년이 지나 스타 농구선수였던 박정은과 결혼할 때도 그는 아직 무명씨였고, 2007년 MBC 드라마 <하얀거탑> 출연이 확정되기 직전에는 이민까지 고려할 정도였다. 물론 <하얀거탑>에서 기회주의적인 박건하의 모습으로 극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암투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해도 한상진이 한 번에 스타가 될 수는 없었다. 대신 MBC 드라마 <이산>에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됐다. 겁 없는 독설과 배짱을 지닌 정치적 인물 홍국영은 공명정대하기만한 주인공 이산(이서진)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배우 한상진의 얼굴은 비로소 대중에게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젠 강렬하진 않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주말 홈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의 송선풍이 된 그는 반짝 스타가 아닌 밥처럼 질리지 않는 모습으로 시나브로 대중의 뇌리에 스며들고 있다.
그래서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송선풍이 전화로 자는 것부터 세수하는 것까지 은지(유하나)에게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시시덕거리는 모습은 대중과 소통하는 재미에 싱글벙글하는 한상진의 현재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추천하는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한 음악과 함께라면 송선풍, 혹은 한상진이 그랬듯 오랜 기다림 끝에 새로운 세계를 만났을 때의 설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요조, 김진표의
“제가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잖아요. 그러니 처음 연애할 때의 설렘을 떠올리기 위해선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해요. 그래서 촬영 전에 요조와 김진표가 함께 부른 ‘좋아해’를 들어요.” 만약 순수하게 가사 내용만 따진다면 ‘좋아해’는 연애 초기가 아닌 이별 후의 감정을 담은 노래다. 하지만 가사 속 ‘너무 달지 않은 라떼’처럼 부드러우면서 적당히 달콤한 요조의 목소리가 상큼한 어쿠스틱 연주와 함께 아직 좋아하는 옛 연인에 대한 마음을 고백할 때, 이별의 아픔보단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노래는 ‘사랑을 해본 지 오래된 가슴을 뛰게 만드는’ 곡이자 설렘을 말하기보단, 직접 듣는 이를 설레게 만드는 곡이다. 특히 이런 스타일의 곡 대부분이 그렇듯 요조와 남자 보컬인 김진표가 주고받는 파트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대화처럼 목소리의 조화를 이룬다.
2. 이효리, 윤건의 <이뻐요>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문화를 많이 접해야 한다’는 한상진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역시 최신곡인 이효리와 윤건의 싱글 <이뻐요>를 추천했다. 앞서 소개한 요조의 음악적 파트너로 잘 알려진 허밍어반스테레오의 이지린이 윤건에게 준 곡답게 시부야계 특유의 통통 튀는 전자음이 감각적인 곡이다. 특히 호소력 짙은 과거 스타일 대신 목에 힘을 뺀 부드러운 소리를 들려주는 윤건과 역시 비음을 섞어 좀 더 간드러지게 부르는 이효리가 허밍어반스테레오 스타일 안에서 보여주는 조화는 예상보다 성공적이다. “지금 당장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며 조르는 가사는 마치 <솔약국집 아들들> 속 은지가 선풍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당당하면서도 귀여운 것 같아요.”
3. <드림걸즈> OST
파워 넘치는 목소리를 자랑하는 최고의 스타 비욘세와 <아메리칸 아이돌 3> 출신인 제니퍼 허드슨이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 <드림걸즈>의 음악적 완성도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실제로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발매 5주 만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영화 못지않은 관심을 끌었다. 이 중 한상진이 추천하는 곡은 ‘When I First Saw You’다. “상대방을 처음 본 순간을 세상 가장 아름다운 꿈이라 말하는 가사 때문일까요. 이 곡을 들으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이 나요. 두근거림을 넘어 찡한 기분이랄까요.” 기본적으로는 영화에서 야심찬 매니저로 등장하는 제이미 폭스의 솔로곡이지만 한상진이 추천하는 건 비욘세와 함께한 듀엣 버전이다. 처음 본 순간에 대한 제이미 폭스의 고백과 같은 멜로디와 비슷한 내용의 가사를 부르는 비욘세의 고백이 더해지며 만들어지는 감정의 폭발은 솔로 버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을 선사한다.
4. 동방신기의
30대 중반인 한상진이 최신곡인 ‘좋아해’와 ‘이뻐요’를 추천한 것이 놀랍다면, 동방신기의 ‘Hug’를 추천한 것은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다. 심지어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노래방에서 자주 불러주던 곡’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비틀즈의 ‘I Will’ 같은 클래식한 명곡보단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즐기는 노래를 추천하고 싶었다’는 한상진의 말을 떠올리면 아주 의외의 선곡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배려심 깊은 선풍 같은 남자라면 괜히 뜻도 잘 모르는 팝송을 불러주며 자신의 멋에 취하기보단 상대방도 알 만한 노래, 즉 ‘Hug’를 불러줄 것만 같다. 한국 최초의 아카펠라 아이돌이었던 동방신기의 과거를 대표하는 곡으로 ‘하루만 너의 고양이가 되고 싶어’라는 가사는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어쩌랴, 연애 초기란 그렇게 닭살스러워야만 하는 것을.
5. 지오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역시 연애할 때 자주 불러준 곡이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청혼할 때 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래서 지금도 이 노래 가사는 다 외울 수 있어요.” 어떤 사람들에게 지오라는 그룹 이름은 낯설지 모르지만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첫 소절을 듣는 순간 같이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90년대 중반 등장한 지오는 그리 활발한 방송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2002년 남성 2인조 UN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더욱 대중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원곡 역시 귀에 바로바로 들어오는 멜로디가 인상적인데 ‘네가 해주는 아침을 먹고 우리 둘 닮은 아이와 함께 사는 꿈을 꾼다’는 가사는 그 무렵 댄스 음악을 듣던 십대의 감수성에 딱 들어맞는, 조금 유치하지만 사랑스러운 느낌이다.
“둘이 만들었던 추억을 얘기해 봐요”
“서로 싸우고 사이가 서먹해졌을 때 가장 좋은 건 둘이 만들었던 추억을 하나씩 얘기해 보는 거예요. 아니면 추억의 장소에 함께 가보던가요.” 결혼 5년차 유부남인 한상진은 선풍과 은지가 혹 나중에 싸웠을 경우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시 처음의 설렘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아마 지금은 숨 쉬는 것조차 행복한 선풍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시큰둥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사실 모든 두근거림이란 일상이 되는 순간 그렇게 끝난다. 캠퍼스의 낭만도, 어렵게 구한 첫 직장의 희열도. 때문에 세상이 모두 자기 것 같았던 순간을 기억해보라는 한상진의 충고는 꼭 연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모든 감동 없는 삶에 대한 답변이 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조금씩 인지도를 더 많이 쌓아가고 있는 배우 한상진이 되뇌는 초심의 각오인 것은 아닐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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