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는 어떤 엄마인가.
김미숙
: 좋은 엄마지. (웃음) 왜냐하면,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세상사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주려고 한다고 생각하니까. 난 아이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컸으면 좋겠다. 요즘 우리나라 엄마들은 교육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지만, 그걸 거부하지는 못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들이 뒤쳐질 것 같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을 정말 행복하게 살게 하고 싶다면 자기의 주관을 갖고 애들이 정말 행복한 게 뭔지 생각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에서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기는 쉽지 않다.
김미숙
: 어떤 사람은 부모가 원하는 만큼 자식이 만들어진다고도 하더라. 하지만 다 1등하고 천재 만들어서 뭐하나. 중요한 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해지는 거다. 부모 마음이 다 그러니까 나무랄 수는 없지만, 부모가 원하는 걸 아이에게 해주는 것 보다는 아이 스스로 행복한 일이 뭔지 찾게 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계속 아이를 지켜보고, 아이가 원하는 걸 찾아보고. 원하는 길이 있으면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나는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왔나.
김미숙
: 물론. 난 다섯 살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 했으니까. (웃음) 다른 것도 하고 싶었지만, 자라서 열아홉, 스물 되니까 배우가 내 길이다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 몰래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고, 그 뒤로는 내 꿈을 다 이루면서 산 것 같다.

아버지는 당신이 배우가 되는 걸 원치 않았나.
김미숙
: 아버지는 내가 배우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운동을 시켰다. 배구를 중학교 1학년부터 2학년까지 2년 했었다. 아버지 생각에는 딸이 그 당시엔 큰 키니까 운동을 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살집이 좀 있는 편인데 그 때는 너무 말라서 운동을 하면 좀 건강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셨다.

솔직히 당신이 스파이크를 날리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된다.
김미숙
: 하하. 하지만 그 때 운동을 했던 게 내 인생에서 정말 삶의 기초를 잘 다진 시절이었던 것 같다. 운동은 선후배 기강이 세지 않나. 합숙훈련을 방학 때마다 하기도 하고. 그 때 단체 행동을 배우면서 내가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근성을 만들어줬던 것 같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쓰러지면 쓰러졌지 도중에 포기하지는 않으니까. 연기자들이 힘들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끈기를 갖고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것 같다. 그런 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그걸 바탕으로 연기자가 되고 나서는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고. 연기자하면서 간호사나 선생님이 돼 보기도 하고, 하고 싶었던 DJ도 해보고.

연기와 함께 오랫동안 DJ도 함께 했다. DJ에 특별히 애착이 있나.
김미숙
: 라디오 DJ를 다 합쳐서 22년 정도 했다. 라디오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접하고, 다양한 감정들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게 나한테는 연기의 밑거름이 된 것 같다. 한 몇 년 동안은 연기를 하지 않고 라디오만 하기도 했고.

왜 연기를 쉬었었나.
김미숙
: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늘이 주신 내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누군가 연기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다. 그런 건 정말 연기에 인생을 건 분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감히 내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고, 오히려 거꾸로 연기가 날 좋아해준 것 같다. 축복인 거지. 물론 다른 사람 인생을 살아서 행복했던 시간이 더 많고, 한 작품을 끝날 때마다 얻는 보람이 있다. 하지만 전에는 정말 이 일이 징그럽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연기는 좋아하긴 너무 힘들다. 그만큼 어렵다.

“채원이를 보면 어렸을 때 날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은 시절 연기를 하면서 어떤 고민이 있었던 건가.
김미숙
: 나 스스로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나는 죽어도 이 대사는 못하겠고, 왜 이 대사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선배님들은 그게 그냥 그 캐릭터이기 때문에 표현해 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 나는 그 얘기를 듣기도 했고, 때로는 듣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고민이 있어도 물어보지 않기도 했고. 그런 고민을 말하면 내 고민을 덜어주는 것 보다는 “너가 받은 캐릭터를 해야 하는 게 배우의 본분”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어떻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지금 당신의 딸로 나오는 문채원을 보면 그 때 생각이 나겠다
김미숙
: 그렇다. 채원이를 보면 어렸을 때 날 보는 거 같기도 하다. 되게 용감하고 겁도 없다. (웃음) 그리고 고민도 많고. 여기서 왜 화를 내야 하는지, 이런 대사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럴 때는 이제 내가 그렇게 말한다. 너 안에 너가 너무나 많구나. 이건 문채원이 아니라 문채원이 표현해야 하는 승미이기 때문에 너 자신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라고. 채원이 같은 경우는 정말 엄마와 딸처럼 감정을 가지려면 사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참 중요한데, 서로 바쁘니까 오며가며, 밥을 같이 먹으면서라도 서로 마음을 주려고 한다.

그 시절을 다 보내놓고 보니 지금 연기하기는 어떤가.
김미숙
: 늘 새롭게 발견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계속 고민도 하고 갈등도 하고. 드라마 속에서 내가 연기하는 엄마는 가상의 인물인데, 여전히 내가 느끼기에 어설플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연기해야할지 갈등할 때도 있고. 사실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늘 고민하면서 하게 된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에서 어머니를 연기하기까지 30년 동안 연기를 했다. 당신과 같은 길을 걸을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미숙
: 어떻게 하라는 말은 못한다. 배우는 쉽게 하기도 어렵고, 쉽게 그만두기도 어려운 직업이니까, 이 길을 택한 사람들에게 각자의 생각이 있을 거라고 본다. 다만 배우라는 직업을 갖기 전에 자신의 인생관을 정립했으면 한다. 자기가 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이 직업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사람은 자기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기 마련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실현하기 위해서 제일 멀리 봐야할 게 무엇인지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도움이 될 거 같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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