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동왕자가 낙랑공주와 사랑에 빠져서 잘 먹고 잘 산줄 알았다. 그런데 호동왕자는 어린 나이에 자결을 했고, 왜 그가 죽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이 작품이 시작되었다.” 이지나 연출의 말처럼 뮤지컬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 3대왕이자 주몽의 손자인 무휼과 그의 아들 호동왕자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1992년 연재를 시작한 김진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바람의 나라>의 프레스 리허설이 6월 11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렸다.

2006년 초연이후 세 번째 오르는 뮤지컬 <바람의 나라>는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 대신 배우들의 몸짓과 이미지로 의미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한 신 한 신의 이미지가 도드라지는 작품인 만큼 40여분의 리허설 장면에서도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춘 3개의 장면을 선보였다. 극은 만화 속 장면과 배우들의 강렬한 몸짓으로 시작되고, 세트 대신 무대 뒤를 가득 매우는 영상을 이용해 그들이 있는 시간과 공간을 이야기한다. 특히 동양적인 선율과 현대적인 느낌의 장르가 결합된 이 작품의 음악은 MBC <대장금>의 음악을 담당했던 이시우 작곡가가 참여해 2006년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극중 테마인 ‘무휼의 전쟁’은 MBC <하얀거탑>에 ‘The Great Surgeon’으로 탈바꿈되어 삽입되기도 하였다. 이번 버전은 이미지를 더욱 강조했던 초연에 기본 토대를 두고, 김문정 음악감독이 참여해 화음과 악기구성에 변화를 주었다. 또한 고구려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배우들이 입고 있는 의상에서는 시대를 구분 지을 수 없는 몽환적인 느낌을 선보이며 조각조각으로 나뉜 의상은 그들의 몸짓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만화로 시작해 온라인게임, 뮤지컬, 드라마까지 영역을 확대한 <바람의 나라>의 무대버전은 6월 10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약한 자는 왕이 될 수 없다” 무휼, 고영빈ㆍ금승훈
주몽의 손자인 무휼은 고구려 3대 대무신왕으로, 고구려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다. 특히 무휼은 ‘전쟁의 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주위 수많은 나라를 공략했고, 이러한 성정은 아들 호동과 대립을 낳고 아들을 죽음에까지 몰고 간다. 3번째 무휼 역을 맡은 고영빈은 2006년 일본의 극단 <사계(四季)>에서 돌아온 이후 <벽을 뚫는 남자>, <컴퍼니>, <대장금> 등 창작과 라이선스 등을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에 참여하였다. 특히 그가 맡은 무휼은 다른 인물에 비해 대사와 노래 대신 몸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많고, 무대 위에서 직접적인 1:1 대화를 전혀 하지 않는 인물이다. “2007년 버전에서는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인물에서 벗어나 고영빈의 욕심과 열정이 무대에서 비춰졌던 것 같다. 특히 무휼이 침묵을 왜 지켜야 하는지와 그 사람 인생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3번째 하니까 이제는 무휼이라는 인물을 더 완벽하게 표현해내고 싶어서 정신적으로 초연 때보다 더 고달팠던 것 같다. (웃음)”

“나는 죽어 아우의 머리 위에 얹히리”
해명, 홍경수ㆍ양준모ㆍ임병근

무휼의 이복형이며 아버지 유리왕의 질투 끝에 명을 받아 창을 땅에 꽂고 자결하는 인물이며, 살아서 뜻을 이루지 못한 해명은 혼령이 되어 동생 무휼을 돕는다. 초연부터 계속 ‘고요하고 청순한 해명’을 연기한 홍경수와 새로운 해명 양준모와 임병근이 함께 한다. 특히 2009 버전의 해명 양준모는 최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역으로도 캐스팅되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배우다. 성악과 출신 특유의 깊고 묵직한 울림의 목소리는 카리스마 넘치지만 슬픔을 담은 해명의 성정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공연하기 전에 생각한 해명과 끝났을 때의 해명이 다르겠지만 너무 좋은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배우들끼리는 (홍)경수형 없으면 내가 너무 불안해한다고 할 정도로 형이 했던 노하우들을 다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에 해명을 인간적으로 표현하고 싶고, 또 하나의 슬픈 인물로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다.”

“당신 손을 놓고서 푸른 하늘로” 호동, 김태훈
무휼의 아들이자 눈물과 이별 없이도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신념을 가진 인물로, ‘강한 자만이 왕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아버지 무휼과의 대립 끝에 결국 자살에까지 이른다. 2006년 조정석, 2007년 김호영이 거쳐 간 호동 역에는 올 초 김호영과 함께한 뮤지컬 <자나, 돈트>에서 자나를 몰래 짝사랑하던 탱크, 김태훈이 맡았다. 조정석의 호동이 가슴에 눈물이 차있는 인물이었고, 김호영의 호동이 슬픔을 가졌지만 좀 더 발랄한 호동이었다면, 김태훈의 호동은 그들에 비해 아버지 무휼에 대응하는 좀 더 단단한 인물이 되었다. “지난 버전의 호동 캐릭터에 먹칠을 하지 않을까하는 부담감이 있었고, 그들의 장점 중에 내가 가진 게 뭘까 라는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런데 ‘굳이 따라갈 필요도 없고, 원하는 대로 해보라’는 연출님 말씀 덕에 내가 가진 장점들을 호동에게 많이 집어넣는 중이다.”

9척 장신에 눈에서 광채가 빛나는 괴유, 김산호ㆍ박영수
부여의 공격으로 일가족이 몰살당한 고구려의 장수로, 무휼의 곁에서 그를 호위한다. 특히 괴유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의하면 9척 장신에 얼굴이 희고 눈에서 광채가 빛나는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상반신을 가득 덮은 헤나와 눈에 띄는 은발 등 <바람의 나라> 캐릭터 중 가장 화려한 외형으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괴유 역에는 2006년 무휼, 2007년 괴유 역을 맡았던 김산호가 맡았다. 최근까지 뮤지컬 <쓰릴 미>를 통해 어린아이 같은 매력을 뽐내던 김산호는 <바람의 나라>에서 가장 비주얼 효과가 큰 괴유를 표현할 예정이며, 인간인 괴유를 사랑해 그의 여동생으로 태어난 천녀 가희와의 애틋한 사랑도 그리게 된다. “2007년 공연에서는 괴유와 가희의 신이 좀 묻혔었는데, 이번에 가희와의 관계를 좀 더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연기적인 부분을 보강했다. 그리고 괴유는 어떤 남자가 해도 멋진 역이라고 생각한다. 몸에 화려하게 헤나를 하고 은발머리를 한 채로 조명을 받으면 다 멋있다. (웃음)”

관전 포인트
이지나 연출 스스로 “스토리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안 맞을 수도 있다”고 언급할 정도로, 이 작품은 이미지와 배우들의 몸짓이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특히 2막에 등장하는 부여와 고구려의 전쟁장면은 15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동양적인 선율과 몇 개의 무리로 나뉘어 선보이는 배우들의 다양한 움직임만으로 신이 계속되어 뮤지컬보다는 퍼포먼스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MBC <하얀거탑>의 장과장님이 나오셔야 할 것만 같은 <바람의 나라> 테마곡에 맞춰 화려하게 진행되는 배우들의 봉술과 검술에 주목해보자. 신 자체를 감성으로 받아들이면 편하겠지만 그래도 스토리를 따라가고자 하는 이들은, 이 작품이 만화 <바람의 나라> 1~6권까지의 내용을 다룬 만큼 예습을 하고 간다면 더 적극적으로 극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_서울예술단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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