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으로 수직낙하 하는 사람은 드물다. 정신없이 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늪의 가운데에서 가라앉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요 며칠, 아침마다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심각한 얼굴로 만화책을 읽고 있는 내가 딱 그 짝이다. 출발은 오구리 슌이었다. 모처럼 한가롭던 어느 휴일, 개봉한지 한참 지난 <크로우즈 제로>를 발견하게 되었고, 미이케 다카시의 잔혹한 묘사나 학원 폭력물의 단순한 세계관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영화의 주인공이 오구리 슌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즐거웠고, 아기 사자처럼 포효하는 오구리 슌이 연기한 주인공 켄지는 반할만큼 멋있었다. 그래서 당연한 수순처럼 영화의 원작인 만화 <크로우즈>를 찾아보게 되었고, 나는 급기야 까마귀들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사실 영화 <크로우즈 제로>는 만화의 프리퀼에 해당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작자인 타카하시 히로시가 주인공인 보우야 하루미치를 실사화 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라는데, 정작 처음 만화책을 펼친 사람은 바로 그 보우야의 추레함과 무례함에 적잖이 실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폭력 세계의 강백호과 같은 그의 캐릭터는 회를 거듭할수록 빛을 발한다. 누구보다 강인하지만, 그 힘으로 무엇도 얻으려고 하지 않는 보우야는 상대방을 제압하는 순간의 성취감과 순수하게 몸으로 한계를 돌파하는 과정의 카타르시스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와 마주치는 많은 주먹들(실은 고등학생들)은 결국 그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동시에 그를 친구로 혹은 형제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보우야와 대적한 인물들은 또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고, 각자의 팬들을 거느린다. 말하자면, <크로우즈>의 세계관은 1인자의 퀘스트 수행과정을 따라가기 보다는 군웅할거의 캐릭터 잔치를 만끽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진정한 주인공은 끊임없이 난세의 영웅을 소환하는 스즈란 고등학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올 봄 <크로우즈 제로>의 속편이 개봉해 무난한 흥행 수익을 거뒀다. 피의 복수를 부른 호센 고교와의 일전을 담고 있다는데, 벌써 일본판 DVD의 복제 파일들이 온라인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이루어질 국내 개봉을 기다리며 순결을 지키고 있겠다. 마침 이번 주에는 완전판 17권이 발매된다. 이번 주말의 시작은 아무래도 서점에서 맞이하게 될 것 같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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