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조의 여왕> MBC 월-화 저녁 9시 55분
드라마에서 리얼리티는 진짜 현실을 모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의 세계를 실재하는 것으로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논리와 디테일이야말로 드라마가 확보해야 할 리얼리티의 실체다. 그런 점에서 <내조의 여왕>은 상당히 리얼한 드라마다. 그리고 치밀한 설정과 촘촘한 에피소드가 만들어 놓은 그럴듯한 세계에서 <내조의 여왕>이 화려하게 꽃피우는 것은 의외로 로맨스 판타지다. 천지애(김남주)를 향한 허태준(윤상현)의 감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팔아치운 결혼반지를 되찾아 주고, 울고 있을 때 나타나 위로를 건네고, 다급한 상황에 외제차를 대령하는 그의 태도는 ‘백마 탄 왕자’의 행동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표현은 수위를 넘지 않고, 천지애는 착하게도 그의 의도를 의심조차 하지 않은 채 열심히 ‘내조’에 만전을 기한다. 그러나 천지애가 본분에 충실할수록 그녀의 로맨스는 더욱 복잡해지고, 야근하는 남편을 위해 야식을 가져다 준 그녀에게 질투를 느낄 정도로 한준혁(최철호)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발산할 길을 찾지 못해 방황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소현(선우선)의 접근을 쉽사리 떨치지 못하는 온달수(오지호)의 모습은 천지애가 기혼자라는 상황의 굴레를 벗고 로맨스의 링 위에 본격적으로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임 해제의 장치’로 보일 지경이다. 평강회에서 양봉순(이혜영)이 내미는 녹음기와 블랙 컨슈머를 해결하러 간 온달수의 활약이 오늘따라 허술해 보였던 것도 역시 이제 이 드라마의 키워드가 더 이상 리얼리티가 아니라는 징후로 읽힌다. 불륜과 치정을 예고하는 것은 좋지만, 특유의 유쾌함과 통쾌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길목이다.
글 윤희성

<지식채널e> ‘개나리 필 무렵’ EBS 월-금 저녁 9시 45분
어제의 <지식채널e>는 ‘개나리 필 무렵’. 이 아름다운 계절에 여전히 등록금이라는 굴레에 갇혀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였다. 이 세상 ‘일자리 나누기’의 ‘나눔’은 가장 먼저 사회초년생들의 목을 졸랐고,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등록금과 은행 융자금의 이자는 그나마 대학생들이 졸업장을 따는 것마저 힘겹게 만들고 있다. 이자를 갚지 못하고 졸업하고 나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채로 취업전선에 몸을 내 던져야 한다. 누군가는 9년 동안 겨우 2학기를 등록하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세상을 떠나는데, 시절은 잔혹하게도 흘러 시작된 새 학기 교정에는 개나리가 핀다. 한참 뜨거웠던 지난 해, 그저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권력에 위협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던 <지식채널e>는 그 위협이 눈앞에 잔인한 현실로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실’을 통하여 ‘진실’을 말하고 있다. 때로는 통계수치가, 몇 장의 사진과 몇 마디의 말이, 아주 오래 전의 기록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 가려졌던 진실들을 드러내 보여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지식채널e>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글 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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