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윤
누가 유세윤이 예능인이기를 바랄까? 사실 유세윤은 KBS <개그 콘서트>에서 그동안 보여주었던 불후의 코너들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존재다. ‘사랑의 카운슬러’, ‘착한 녀석들’은 물론 ‘닥터 피쉬’와 지금 하고 있는 ‘할매가 뿔났다’ 까지 그의 개그는 자기복제에 빠지지 않으며 매번 어디로 튈지 모르게 독특하고 비범하다. 그리고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의 ‘건방진 도사’ 캐릭터 역시 사실은 <개그 콘서트>에서처럼 콘셉트를 갖고 보여주는 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건방진 도사’의 깐죽대고 안하무인인 캐릭터가 ‘무릎 팍 도사’ 같은 콘셉트쇼에는 적합하지만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 특히 최근의 대세인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어필하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개그맨이 되기 전부터 설정 연기를 즐겼고, ‘닥터피쉬’의 캐릭터 그대로 라디오에 출연한 것은 물론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설정놀이를 하는 데서 재미를 찾는 그가 KBS <상상 플러스>나 SBS <좋아서>에서 기대만큼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오히려 유세윤 본인의 개그 코드가 잘 드러나는 것은 YTN스타에서 유상무, 장동민을 비롯한 친한 개그맨들과 함께 출연하는 <기막힌 외출>이다. 게임을 하면서 뺨을 때리거나 침을 뱉는 식의 험악한 상황이 종종 등장함에도 정작 본인들은 남자 중학교의 쉬는 시간에 벌이는 짓궂은 장난처럼 신나게 낄낄대는 이 프로그램에서 유세윤은 ‘내성적인 공부벌레 남학생’이나 ‘교회 다니라는 전도에 맞서는 불교 신자’ 등 상황에 따라 짤막한 설정 연기를 자유롭게 집어넣는다. 그래서 미국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쇼>같은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 생긴다면 1순위로 불러야 할 출연자는 아마 유세윤일 것이다. 3월 초 파일럿으로 방송되었고 지금 정규 편성이 논의되고 있는 KBS의 비공개 코미디쇼 <웰컴 투 코미디> 역시 그의 능력을 보이기에는 나쁘지 않은 무대일 것 같다.

윤종신
험한 예능계에서 윤종신은 다리와 같은 존재다. 중요한 웃음의 고비에서 다음 화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윤종신의 잽은 방송의 흐름을 보다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소다. 전면에 나서서 흐름을 주도하거나, 은밀하게 준비해 온 이야기를 클라이막스에 터트리는 대신 윤종신은 끊임없이 웃음의 문맥을 점검하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부지런한 예능’이라는 고유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강호동, 유재석, 김국진 등 어떤 메인 MC의 옆에 있어도 특유의 색깔을 유지한다. 상대가 누구든, 그는 다리이자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에만 집중할 뿐 자신의 위치에 무리한 변화를 주지 않는다.

이것은 윤종신의 강점인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주연의 역할에 욕심을 내지 않는 덕분에 SBS ‘패밀리가 떴다’에서 그는 유재석과 있을 때는 ‘얄미운 늙은 형’의 역할을 해 내고, 이효리와 있을 때는 ‘능글맞은 윤회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유연한 그의 역할 바꾸기는 상대방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MBC ‘라디오 스타’에서 신정환이 윤종신에게 개그 소재를 던져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것 역시 그러한 이유에서다. 어디까지나 그는 스스로 흐름을 주도하거나 화제를 제시하지 못하는 중간 관리자인 동시에 존재하는 판을 재가공 하는 2차 생산자인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위치는 현재 예능계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분야다. 그러나 문제는 그 역할이 사라진다고 해서 전체 흐름에 대단히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윤종신이 존재함으로써 음악인들과 방송의 접점이 확장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가 없다고 해서 음악인들의 방송 출연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그래서 윤종신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제 넓이가 아닌 깊이다. 가능성 이상의 영역에서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만큼, 이미 확보해 놓은 분야에서 가능성을 완전히 입증해 보일 때가 온 것이다.

이경규
과거의 영광을 무게로 환산할 수 있다면, 이경규는 누구보다 묵직한 역사의 소유자다. 그는 ‘몰래 카메라’와 ‘양심 냉장고’라는 대한민국 예능역사상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어 낸 인물이며, 강호동이라는 걸출한 예능인을 발굴하고 조련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는 동시대에 활약했던 예능인 중에서 유일하게 도태된 적 없이 영원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이경규의 장수의 비결은 무엇보다도 방송의 흐름을 읽어내는 천부적인 감각에 있다. 1990년대, 짓궂지만 발로 뛰는 MC의 이미지를 통해 성실함을 부각 시켰던 그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점 괴팍하고 성미 급한 장년의 캐릭터를 굳혀 나갔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집에서는 부인과 딸의 눈치를 보는 불쌍한 가장임을 끊임없이 시청자들에게 주지 시켰다. 경력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권력을 누리면서도 감정적인 약점을 노출시킴으로서 보다 리얼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자신을 다듬어 나간 것이다. 그래서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호통을 치고, 후배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미움을 사기보다는 오히려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바로 그것이 그 또래의 가장들이 가진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출된 캐릭터와 달리, 사실 이경규는 누구보다 영리한 인물이다. 평균 정년이 40대 초반에 그치는 한국 예능계에서 그는 쉰의 나이에도 여전히 예능의 중심에 있다. 그리고 이미 입지와 생계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그는 이제 SBS <라인업> 등을 통해 진행력이 아닌 기획력을 평가받고자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래서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을 시작하면서 출연진들이 공개적으로 이경규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는 장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것으로 읽힌다. 이제 이경규는 ‘비난 하는’ 입장에서 ‘비난 받는’ 입장으로 전환되는 캐릭터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예능 초짜인 김성민에게 “왜 하필 그”라고 지적 받은 후 “진짜로 김성민은 싫었다”고 털어 놓는 그의 태도는 마냥 투덜대던 예전의 모습과 달리 상대방의 비난을 오히려 부각시켜주는 느낌이 든다. 조금 초라해졌다고 그의 모습에 속지 말라. 예능역사상 가장 영리한 여우는 지금 또 한 번의 둔갑을 준비 중이다.

최양락
“그렇게 말해도 절대 밉지가 않네요. 그게 장점이야.” 얼마 전 SBS <야심만만2>에서 안문숙이 자신을 놀리던 최양락에게 했던 말처럼, 지금 최양락은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남자다. 그는 김구라마저도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방송해야 하는 코미디계의 대 선배이면서도, <야심만만2>에 출연한 김현중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할 줄 아는 포용력 있는 윗세대의 아저씨다. 지난 30여년을 계속 전장에서 굴러온 이경규가 생존을 위해 독해진 가장의 이미지를 가진다면, 오랜만에 돌아온 최양락은 갑자기 돌아와 ‘빵’ 터뜨린 재밌는 아저씨이자, 이봉원과 김정렬 등 잊혀진 1980년대 코미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1980년대를 추억하는 자리라면, 그는 언제든지 좋은 활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왕의 귀환’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그의 ‘올드’ 이미지는 오히려 그의 장기적인 활약에는 제약이 될 수도 있다. 그는 1980년대에 ‘남 그리고 여’, ‘네로 25시’, ‘괜찮아유’등을 통해 당시로서는 드물게 상대를 가리지 않고 놀리는 깐죽거리는 개그를 했었고, 2000년대에는 MBC 라디오 <재밌는 라디오>를 통해 정치인을 대놓고 놀렸다. 상대방에 대한 분별없는 비난대신 그들의 약점을 살짝 꼬집는 깐죽거림은 요즘 토크쇼에서도 통할 수 있는 그만의 무기다. 그러나 그가 좋은 ‘옛날 아저씨’ 노릇을 할수록 이런 깐죽거림을 보여줄 기회는 줄어든다. 최양락은 이봉원이나 이경규 같은 동년배 코미디언과 함께 방송을 할 때는 얼마든지 그들을 놀릴 수 있지만, 어린 스타들이 출연할 때는 충실한 진행자에 머무른다.

그 점에서 이경규와 함께 진행한 MBC <명랑히어로>가 그의 투입 직후 폐지된 것은 아까운 일이다. 또한 최근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그의 가장 큰 장기인 개그 연기를 보여주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 최양락은 자신이 마음껏 놀 자리를 펴줄 ‘인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얼마 전 <야심만만2>에 출연한 김병세처럼 자신과 이야기가 통할 동년배 연예인들과의 방송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굳히고, 장기적으로는 이경규처럼 10대 연예인들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하면서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필요가 있다. 또한 MBC 에브리원 <가족이 필요해>처럼 그의 개그 연기가 요즘 대중에게 먹힐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탁재훈
탁재훈이 KBS <상상플러스> 말고는 이렇다 할 공중파 고정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KBS ‘대상의 저주’ 때문이 아니다. 그가 대상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오락 프로그램의 흐름은 출연자들이 몸을 굴리고, 장시간의 녹화 시간을 버텨야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로, 더 센 수위의 토크쇼로 옮겨가고 있었다. 다만 탁재훈은 그 흐름에 몸을 맡기지 않았을 뿐이다. 그가 <상상플러스>와 KBS <해피선데이> ’불후의 명곡‘처럼 게스트를 비교적 정중하게 모시는 토크쇼에만 머무르는 사이 신정환은 SBS <라인업>,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 MBC <명랑히어로> 등 요즘 스타일의 오락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이 차이가 지금 MBC <일밤> ‘대망’에서 “먹고 살만한 신정환”과 “한 때 잘나갔던 탁재훈”을 가르는 차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단지 도전과 안주의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언제나 대책 없이 개그를 저지르고 보는 신정환이 어떤 프로그램에서든 ‘2인자’로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드는데 반해, 신정환과 장단을 맞춰 개그를 하면서도 신정환에 비해 정돈된 진행을 할 수 있는 탁재훈은 컨츄리꼬꼬일 때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 그는 모든 게스트를 재치 있게 요리할 수 있는 MC가 아니라, ‘불후의 명곡’에서 도인 같은 풍모를 보여주는 김창완이 출연하면 아예 ‘컨츄리꼬꼬 쇼’를 벌여 웃음을 일으키는 자기 중심형 MC다. 그가 ‘대망’ 이전까지 좀처럼 여러 출연자를 통솔해야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선택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게스트를 구경꾼 삼아 춤을 추며 웃길지언정, <해피선데이> ‘꼬꼬관광’처럼 여러 캐릭터의 출연자들을 통솔하고, 그들의 캐릭터를 받쳐주기는 쉽지 않다.

<상상플러스>류의 토크쇼가 대부분이던 과거에는 이런 진행 방식만으로도 충분히 ‘대상감’이었지만, 지금 이런 토크쇼의 입지는 상당부분 줄어들었다. 이런 경우 보통은 새로운 프로그램에 도전할 것을 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탁재훈에게 더욱 중요한 건 그가 그럴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어쨌든 <상상플러스>는 꾸준히 방송 중이고, 그는 MC말고도 할 사업이 많으며, 소율이는 잘 자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탁재훈이 굳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싶을까. 요즘 <상상플러스>에서 게스트에 따라 몇 마디 질문만 던지고 마는 그를 보면 평생직장을 얻은 공무원 같다는 느낌도 든다. 어쩌면 여러 오락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화려한 입담을 선보이는 것이 더 긍정적일지도.

글. 강명석 (two@10asia.co.kr)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