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는 사람들의 목을 탐하고 신선한 피를 빼앗지만, 김동호는 누나들의 마음을 뺏는다. 연신 껌뻑거리는 긴 속눈썹과 큰 눈은 소의 눈을 연상시키며, 중간 중간 유연하게 던지는 농담은 그가 왜 누나들에게 어여쁨을 받는지 단숨에 보여준다. 2005년 뮤지컬 <비밀의 정원>으로 데뷔한 김동호는 이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해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고, <뷰티풀 게임>을 통해 영국인이면서도 아일랜드의 사회상과는 상관없이 축구를 했으며, <쓰릴 미>를 통해 강해보이는 겉모습에 외로움과 절박함을 숨기기도 했다. 2008년의 <쓰릴 미> 이후 길었던 휴식을 마치고 오래간만에 다시 무대에 서는 김동호에게 “연기가 필요 없었을 정도”로 자신과 너무 닮았던 두디와 “지금 내 모습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그리스>에 대해 물었다.

1972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37년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컬 <그리스>는 라이델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청소년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2003년 초연 이후 매년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올해 4월 4일부터 티버드파와 핑크레이디파를 재정비하여 2000회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야말로 <그리스>를 거쳐 가지 않은 뮤지컬 배우들이 없을 정도로, 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수많은 배우들이 <그리스>에 등장했다. 이제는 TV에서 만날 수 있는 강지환, 엄기준, 오만석, 홍지민 등을 포함하여 현재 뮤지컬계를 이끌고 있는 김소현, 이영미, 송용진, 조정석, 윤공주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 중 김동호는 1년 동안 3개의 각기 다른 무대에서 대니와 두디로 관객들을 만났으며, 특히 수줍고 순수한 두디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김동호가 대니로 첫선을 보였던 2006년은 초연멤버들이 모두 모여 화제가 되었던 해였다. 엄기준, 고영빈 등 쟁쟁한 선배 대니들 사이에 나이로도 경력으로도 삐죽하게 도드라졌지만, 스스로도 그 당시 관객들의 관심을 얻기엔 부족함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대니는 약간 능글맞아야 하는데 그런 성격도 아니었고, 거기다가 대니랍시고 선배들 사이에 있었는데 너무 주눅들어있기도 해서 연출님이 굉장히 답답해하셨어요. 노래 한 소절 하려고 하면 종이컵 날아오고 그랬죠. (웃음)” 이젠 지난 일이라며 수줍게 웃지만, 1개월가량의 시간동안 딱 2번 오른 무대에서는 공연 중간 관객들이 나가기도 했다. 그때의 상처는 고스란히 약이 됐고, 그 후 기회는 2007년에 다시 찾아왔다. 이지나 연출은 호기심을 가득 담은 눈빛과 어수룩한 말투의 김동호를 “너는 하늘에서 내린 두디”라며 무대에 세웠고, 이후 다른 배우들의 대사까지 뺏어가며 그가 맡은 두디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믿음은 곧 무대 위에서 여유와 자신감으로 빛을 발했고, 결국 “두디의 비중을 키운 건 오만석 이후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듣기에 이르렀다. “대니는 내 안에 내제되어 있는 것들을 끌어내야 했지만, 두디는 사실 제 실제모습과 똑같았어요. 그래서 대사도 평소에 제가 말하는 투로 했었고, 그래서 그런지 <그리스>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친근하고 지금의 나를 만든 작품인 것 같아요.”

<쓰릴 미> 이후 6개월, 그동안 <뮤지컬 토크>나 <신상남 콘서트> 등과 같은 뮤지컬쇼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김동호는 “객석을 하도 뛰어다녀서 허리가 다 아플 지경”에까지 이르며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공간을 한껏 즐겼다. 그리고 이제 4월, 그동안 작품속 캐릭터에 감춰져있던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는 작업들을 통해 에너지를 담뿍 흡수한 그가 무대로 돌아온다. 이번엔 외롭고 고독한 드라큘라다. 하지만, “작가가 <드라큘라>의 음산함을 비웃기 위해 썼나 싶을 정도”로 코믹한 <드라큘라 : 더 뮤지컬?>에서는 주변 인물들에 의해 드라큘라의 위상은 점점 낮아질 예정이다. 당분간은 진지한 김동호 대신 어리버리해서 더 귀여운 딱 스물다섯의 김동호를 만날 수 있겠다. 이제 대학로에 나타난 훈훈한 드라큘라에게 기꺼어 목을 내어줄 일만 남았다.

‘Beauty School Dropout’
김동호는 두디의 수줍은 사랑을 표현한 ‘Beauty School Dropout’을 <그리스> 베스트 넘버로 꼽았다. 헤어디자이너를 꿈꾸던 프렌치가 뷰티스쿨에 떨어져 낙심해 있을 때 은근슬쩍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를 위로하고 자신감을 북돋아주며 부르는 곡이다. “영화에서는 50년대 당시 아이돌이었던 프랭키 애버론이 프렌치를 위로하며 상상 속에서 부르던 노래였는데, 이지나 연출님이 두디솔로로 바꾸신거에요. 사실 <그리스>는 쇼뮤지컬이라서 상황에 딱딱 들어맞는 곡들이 많지 않은데, 이 곡은 작품 안에서 그 상황과 분위기에 적절하게 맞았던 것 같아요.”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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