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던, 이민기의 관심과 애정은 결국 연기에 닿아 있다. “음악을 하고 싶어서 <오이시맨>을 선택한 건 아니에요. 그 영화 덕분에 음악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거죠.”라는 그의 말은 그래서 듬직하다. 음악적 재능을 펼치더라도 결코 연기의 영역에서 훌쩍 떠나버리지는 않을 것 같은 뿌리가 느껴진다. <해운대>를 찍으면서도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자연스러운 사투리를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표준어 구사를 자제했다고 할 정도다. “이제 영화 끝났으니까 다시 표준어 써야하는데, 영 불편하고 어렵네요.”라고 쑥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그는 곧 영화 <10억>을 촬영하러 호주로 떠난다. 모델이 되기 위해 훌쩍 상경하고, 우연한 기회로 단막극에 데뷔하면서 연기를 시작한 청년은 이제 일 년 달력을 빼곡히 촬영으로 채워 넣는 누구보다 바쁜 배우가 되었다. 그런 이민기에게 ‘처음 듣는 순간 나를 사로잡은 음악들’을 추천 받았다. 단숨에 반해 버리는 순정, 그리고 그 애정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의리. 그것이야말로 이민기의 ‘My way’다.
“아, 시원하더라구요. 보컬 때문인가? 앨범 전체는 몽환적인 느낌이 있기도 한데, 한 곡 한 곡 듣고 있으면 마음이 확 뚫리는 느낌이 들어요. 뭔가 미국 록 밴드들 특유의 그런 느낌 있잖아요. 쫙 내지를 때 내질러 주는.” 한 곡의 노래를 선곡하기 보다는 앨범 전체를 들으려고 하고, 추천 이유에 대해서도 ‘좋으니까 좋은 거죠’라며 굳이 이유를 꼽기 주저하던 이민기가 천천히 생각해낸 Blue October의 매력은 미국적이면서도 미국적이지 않은 특유의 감수성이다. 텍사스 출신의 5인조 밴드인 이들은 키보드와 바이올린을 적절히 이용해 강한 비트에도 불구하고 멜랑콜리한 느낌을 잘 살린 모던하면서도 감상적인 곡들을 주로 발표해왔다. 특히 이들이 2006년 발표한 앨범
이민기가 두 번째로 선택한 음악은 영국의 3인조 밴드 South의 두 번째 앨범
“4년쯤 전부터 갑자기 음악을 열심히 들었어요. 그 당시에 킨이라든지 콜드플레이, 데미언 라이스, 악틱몽키즈… 닥치는 대로 듣고 음악에 빠져 있었죠. 신보 개념도 없었고, 밴드 멤버들도 잘 몰랐어요. 그냥 막연히 좋았던 거죠. 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은 없었는데, 그 한순간엔 열정적이었어요. 모든 일이 그렇듯이.” 폭식하듯 음악을 섭렵하던 그 무렵에 만난 밴드들 중에서도 특히 Coldplay는 단숨에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고. “왜 세계적인 밴드가 되었는지 알 것 같아요. 어떤 반열에 올라서면, 그 다음에는 실험성이 필요한 거죠. 스스로 다음 단계로 나가려고 하는 도전의식 같은 거. 앨범 타이틀 보세요. Viva La Vida. 어디서 들었는데 인생 만세, 그런 뜻이래요. 새로움을 찾는 인생은 그야말로 만세죠, 뭐.”
“연기는 우연히 시작했다가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게 된 건데, 음악은 좀 달라요. 연기를 하는 도중에도 음악이 정말 하고 싶을 때가 있었어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교 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순간이 음악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 했거든요.” 이민기가 마음을 움직이는 뮤지션으로 선택한 막시밀리언 헤커는 부서질 듯 섬세한 보컬과 감성적인 멜로디로 유명하며, 국내에서도 여러 번 공연을 가질 만큼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독일 뮤지션이다. 그 중에서도 그의 두 번째 앨범
Weekenders는 일본 시부야계의 유명 프로듀서 스즈키 신이치와 작곡가 와타나베 노보루와의 하우스 유닛이다. 특히 스즈키 신이치는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보유한 프리템포를 발굴한 프로듀서이며, 프리템포가 소속된 포레스트넛 레코드(Forestnaut Records)의 대표이기도하다. “제가 참 운이 좋은 게, 작년에 제가 프리템포가 한국에서 발표한 곡에 피쳐링을 했었잖아요. 그걸 들은 스즈키 신이치씨가 저를 보컬로 발탁해 주셨어요. 그래서 나온 싱글이 ‘we can`t forget the reason’입니다. 제 노래랑 비교될 것 같아서 이 앨범 추천하는 것을 조금 망설이기도 했는데, 워낙 앨범이 좋아요. 이런 시부야 계열 음악이 이젠 국내에서도 친숙한 장르인데, 이 앨범은 진짜 알차게 잘 짜여 진 느낌이에요. 스즈키씨가 천재라는 말이 진짜구나 싶더라구요.”
“어느 날 뭘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의 십년 뒤의 계획을 묻자, 아니나 다를까 모호한 답변이 돌아온다. “어느 날 뭘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포장마차를 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차라리 가이드를 하면 좋겠다 싶기도 해요. 하하. 유럽도 하고, 동남아도 하고, 일본도 다 돌아보고 싶은데. 그러려면 언어부터 공부해야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엉뚱하지만 모든 순간 진심을 담는 그의 매력이 십년 뒤에도 스크린에서 빛나기를. 그리고 그 영화들을 통해 유럽과 동남아에 그의 얼굴이 알려지기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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