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와 <파이어플라이>에 이어, 조스 위든의 새로운 폭스 TV 시리즈 <돌하우스>를 소개한다. 위든은 사실 <파이어플라이>를 처음부터 곱게 보지 않았고, 또 조기 종영까지 시킨 폭스 TV를 정말 미워했다. 그래서 다시는 TV 시리즈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때문에 <닥터 호러블의 싱-얼롱 블로그> 처럼 새로운 매체를 이용해, 방송사의 압력이 없는 자유로운 환경에서의 작업을 원했다. 그런 위든을 다시 TV 세계로, 그것도 폭스 TV로 끌어들인 것은 <버피>에서 페이스 역을 맡았던 일라이자 두쉬쿠다. 두쉬쿠의 <버피> 출연 후 친해진 이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시리즈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돌하우스>는 파일럿 제작 승인을 건너뛰어 7편의 에피소드 제작을 주문받았고, 촬영 시작 전에 13편으로 주문이 늘어났다. 하긴 구상 단계에서부터 위든이 앞으로 5년간의 이야기 방향과 캐릭터 설정을 다 정했다니, 폭스 측에서는 그를 꼭 잡고 싶었을 게다. 편당 150만 ~ 200만 달러 가량의 제작비가 소요되는 이 시리즈는 폭스 TV의 또 다른 새내기 시리즈 <프린지> 처럼 광고시간을 6분이나 줄여, 본 방송 시간을 늘리고 있다. 요즘엔 워낙 DVR이나 티보 등을 이용해 녹화한 후, 본인이 편한 시간에 광고를 빨리 돌려가며 보는 시청자들이 늘어나고 있어, 이들을 위한 배려라고 한다.

기억을 지우는 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

<돌하우스>의 주인공 에코 (일라이자 두쉬쿠)는 능력이 참 많다. 섹시한 옷차림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밤 거리를 질주 하기도 하고, 맨손으로 암벽을 등반하고, 기막히게 금고를 털기도 한다. 납치 협상 전문가로 죽은 줄 알았던 소녀를 구사일생으로 구출하고,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팝 디바의 백업 싱어로 목청높여 노래를 부르다가 수상한 팬이 접근하면 손목을 꺾어주기도 한다. 이렇게 바쁜 생활을 하는 에코는 일이 끝날 때 마다 보디가드 보이드 (해리 레닉스)의 안내를 받으며 고급 스파로 ‘치료’를 받으러 간다. 문제는 이 ‘치료’를 받는 ‘돌하우스’에서 에코의 기억은 매번 삭제돼 백지상태가 되며, 또 다른 역할이 분담되어야 데이터가 입력된다.

에코를 비롯한 ‘액티브’로 불리는 백지 상태의 젊은 남녀가 모여사는 이 곳은 돌하우스. 백만장자들의 욕구를 비밀리에 충족시켜주는 불법 기업체다. 얼음여왕 같은 돌하우스의 대표 아델 (올리비아 윌리암스)을 비롯해 액티브들의 캐릭터 다운로드와 삭제를 담당하는 기술자 토퍼 (프랜 크랜즈), 보이드처럼 ‘핸들러’로 불리는 보디가드 등이 액티브를 관리, 보호, 감독한다. 이들의 반대편에는 돌하우스의 정체를 밝히려는 FBI 요원 폴 밸러드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타모 페니켓)와 아직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돌하우스에서 유일하게 탈출한 ‘알파’가 있다. 알파는 과거 액티브였으나, 지속되는 캐릭터 다운로드와 삭제의 반복으로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 살인을 저지른 후 탈출했다. 폴은 캐롤라인(에코)이라는 젊고 발랄한 대학 졸업생이 돌하우스라는 정체불명의 집단에 연루된 속내를 파헤치려 한다.

위든 씨, 진가를 보여주세요!

간혹 등장하는 에코의 뒷 이야기에 따르면, 야심찬 여대생 캐롤라인은 대학 졸업 후 어떤 큰 문제에 연루됐다. 그래서 캐롤라인이 액티브로 자원하는 대신, 돌하우스는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돌하우스에서 에코로 다시 태어난 그녀는 여전사에서 섹스 파트너까지 매번 임무가 바뀐다. 늘 아이처럼 백지 상태로 돌아가지만, 언제부턴가 에코는 기억해서는 안 될 지워졌어야 하는 일들을 서서히 기억한다. 아무리 깨끗이 지워도, 칠판을 계속 쓰다보면 남겨진 글자들이 보이는 것처럼.

<돌하우스>는 시리즈 전체를 특정한 하나의 장르로만 규정지을 수 없다. 에코의 새로운 임무에 따라 이 시리즈는 액션이 되기도 하고, 스릴러에서 로맨스로, 때로는 를 연상시키는 수사물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있다. 그러나 <타임>의 평처럼 위든과 두쉬쿠는 마치 연기학교에서 다양한 상황과 캐릭터를 연습하는 학생 같다. 거기다 <돌하우스>의 기발한 콘셉트를 배우들의 연기가 받쳐주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특히 주연을 맡은 두쉬쿠는 극중에서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여기에 걸맞게 변신하지 못해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어느 작품이나 아이디어만 좋다고 성공하기는 힘들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걸맞는 캐릭터 연구가 따라줘야 관객들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물론 위든의 시리즈는 시간이 흐를 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경향이 있고, 열혈 팬들이 진을 치고 있다지만 치열한 방송계가 언제까지 기다려 줄지는 의문이다. 위든의 ‘왕팬’인 필자 역시 <돌하우스>의 장수를 기원하지만,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스토리 전개나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연기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위든 씨, 진가를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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