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화이트 데이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연인이 있는 남녀들은 사탕과 선물과 그 밖의 것들을 주고 받으며 연애의 행복을 만끽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일 없는 솔로들에게는 올리브 TV <연애불변의 볍칙>(이하 <연불>)을 권한다. 수많은 남자들이 그들을 유혹하는 ‘작업녀’에게 무너지고, 그것을 모니터로 지켜보는 ‘의뢰녀’들이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을 보다보면, 솔로로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또한 커플에게도 <연불>은 연애의 쓰린 맛에 대한 내성을 키워줄 것이다. 화이트 데이에 당신에게 편의점에서 산 6천 원짜리 사탕 세트를 선물한 남자친구가 또 다른 여자에게는 수제 초콜릿 전문점에서 산 9만 9천 원짜리 한정판 선물세트를 살지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물론 그 자극성 때문에 ‘막장’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연불>은 요즘 (일부의) 20대들에 관한 가장 적나라한 연애 보고서다. <연불>의 가장 ‘징한’ 에피소드들, 제작 과정, 그리고 <연불>에서 알려주는 연애의 패턴을 읽다보면, 당신도 다가오는 토요일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화이트데이 특집이다.올해 그래미 시상식이 있던 날, 가수 크리스 브라운은 그의 여자친구인 가수 리한나를 실신 상태가 될 때까지 때렸다. 며칠 뒤 미국의 연예 가십 사이트들에는 엉망이 된 리한나의 얼굴 사진이 올라왔고, 모두 크리스 브라운은 끝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탕아를 구원한 것은 바로 리한나였다. 리한나는 크리스 브라운의 사과를 받아들여 함께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리한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여자이긴 해도 특이한 여자는 아니다. 올리브 TV <연애불변의 법칙>(이하 <연불>)에 따르면 그렇다.
<연불>은 나쁘고, 찌질하고, 병신 같은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연애지옥이다. 이 남자들은 3년 6개월을 사귄 연인에게는 한 푼도 쓰지 않아도 제작진이 투입한 ‘작업녀’에게는 신용카드로 50만 원을 긋고, 동거녀를 식모 취급 하던 남자는 처음 본 ‘작업녀’에게 결혼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이 꼴을 모니터로 보던 여자는 “앞으로 잘 할 거지?”라며 남자를 용서한다. 남자는 자기 좋다는 예쁜 여자에게 99% 넘어가고, 여자들은 그 때마다 울지만, 그래도 남자를 용서한다. 그게 <연불>의 ‘연불’이다. 이 법칙은 지난 3년여 동안, <연불>로부터 ‘플러스’, ‘커플 브레이킹’ 등을 통해 계속 증명됐고,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과 유사한 여성들의 사연이 줄을 잇는다. 심지어 ‘나쁜 남자’ 시즌은 케이블 TV의 성공 기준인 1%대 시청률을 유지하고, 타겟 시청자인 20-34세 여성들에게는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이쯤 되면 ‘멀쩡한’ 남자친구를 사귄 여자들은 자신의 행운에 감사해야할 지경이다. 물론, 그 남자친구도 밖에서 무슨 딴 짓을 할지는 모르지만.
연애라 쓰고 막장이라 읽는다
그래서 당시 <연불>에서 흥미로운 인물은 남자가 아니라 ‘의뢰녀’였다. <연불>의 장난스런 분위기 속에서, ‘의뢰녀’들은 그들의 연애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늘 “내 남자만은”을 말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연인과 ‘작업녀’ 사이의 “뽀뽀까지는 봐주겠다”며 자신의 남자도 결국 ‘남자’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어떤 출연자는 남자친구 사이에서 아이를 갖게 된다면 어쩔거냐는 질문에 덤덤한 표정으로 “지금은 책임질 수 없으니 지운다”고 말했고, 또 다른 여자는 단 한 번도 기념일을 챙겨주지 않은 남자친구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으면서도 “오늘 무슨 결과가 나와도 (남자친구를) 잡을 생각”이라 말했다. <연불> 속 20대는 말 그대로 ‘사랑’대신 ‘연애’를 하고, 상대에 대한 순정 따위는 남아있지 않다. 남자는 여자 몰래 적당히 한 눈을 팔고, 여자는 그 사실을 알고도 어느 선까지는 인정한다.
건조할 만큼 낭만 없고, 스킨십과 의심만이 남은 이 20대들의 연애는 <연불>이 점진적으로 변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연불>이 2,3시즌을 거쳐 ‘플러스’로, ‘커플 브레이킹’과 ‘나쁜 남자’로 가는 과정은 알 거 다 아는 그들이 상대의 어느 선까지 용인하느냐는 것을 시험하는 과정이다. 여자는 남자친구가 ‘작업녀’의 손을 잡는 것을 봐줄까? 그렇다면 키스는? ‘플러스’는 남자가 ‘작업녀’의 문자 한 통에 달려와 스킨십을 시도하는 것을 보여줬고, ‘커플 브레이킹’에서는 남자가 “여자친구가 있다”면서도 얼마 뒤 ‘작업녀’에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나쁜 남자’의 한 남자는 ‘작업녀’를 모텔로 끌고 가려고 했다. 장난 같던 몰래 카메라는 여성에게 남자와 공식적으로 헤어질 기회를 주는 심각한 멜로드라마가 됐고, 가벼운 마음으로 남자의 마음을 시험하려던 ‘의뢰녀’들은 이별을 결정하기 전 마지막 수단으로 <연불>을 찾는다. 그들은 연애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인정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이 용인할 수 있는 선은 한계에 가까워진다.
아름답진 않지만, 지금 어딘가 존재하는 현실
물론 <연불>의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연애담은 종종 이 프로그램이 ‘막장’이라는 논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 씨이자 ‘나쁜 남자’의 MC가 된 김현숙은 눈물을 흘리는 여성 출연자에게 “인생에 답이 없는 것처럼 연애도 답이 없다”고 말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골백번은 헤어져야 하지만 상대에 대한 미련과 애증으로 질질 끌고 가다 누군가는 결국 이별을, 누군가는 마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연애다. <연불>은 그것을 최대한 건조하게, 그대로 보여주면서 ‘길티 플레저’의 재미와 연애에 대한 리얼리티를 동시에 확보했다. 혹시 <연불>이 불편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이 프로그램이 혹시라도 출연자들의 연애에 사랑의 아름다움과 재회의 감동을 억지로 강조할 때일 것이다. 그들의 연애를 보여주는 데는 감동이나 따뜻함은 필요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상대가 바람피는 꼴을 수십 번 봐도 화이트 데이에 사탕 하나 받는 게 필요할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연불>이 보여주는 연애다. 물론 그게 행복인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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