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먼저 말을 해서 그 호흡에 맞춰 곡을 붙이나, 아니면 곡부터 작업하나.
장기하:
가사만 먼저 나오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가사와 멜로디가 같이 나오거나 멜로디가 먼저 나왔던 거 같다. 기타를 퉁기면서 작업할 때도 있고, 나중에 집에서 녹음해보면서 반주도 입혀보고 편곡도 하면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내가 거의 완성된 데모를 만들어서 멤버들에게 들려주고 거의 그대로 연주를 한다.

‘별일 없이 산다’ 같은 곡은 상당히 합주 지향적인 느낌인데 그런 것도 자기 안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건가.
장기하:
그렇다. 물론 합주 하면서 조금씩 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일단은 내가 다 만들어서 한다.

“밴드가 재미 이상의 어떤 덕목을 갖춰야 하나”

음악을 만드는 방식도 개인적이고 가사 역시 개인적인 이야기다.
장기하:
앞으로 어떤 게 나올지 모르지만 사회적인 토픽에 대해 노래를 만드는 거엔 크게 관심 없다. 하지만 어떤 것도 결국 자신에게서 출발할 수밖에 없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만들면 그게 사회적인 게 되는 거라고 본다. 가령 내가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을 때 만드는 노래가 ‘싸구려 커피’인 거지.

그런 면에서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청춘, 혹은 한국대중가요의 대안 등의 수식으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장기하와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장기하 간의 괴리 같은 걸 느끼진 않나.
장기하:
내가 뭐 한국음악의 대안을 찾으려고 음악한 것도 아니고, 88만원 세대를 대변하려고 음악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생각했을 때 재미있고 좋은 음악을 만들려고 한 것뿐이다. 하지만 내 음악과 활동에 대해 수식을 붙이는 건 또 듣는 사람 자유다. 내가 마음대로 음악 만드는 것처럼 듣는 사람도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작품에 대해 ‘내 의도는 이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냥 손을 놓는 사람이 있는데 후자 같다.
장기하:
말로 할 것 같았으면 굳이 노래로 할 필요가 없지 않나. 애초에 말을 하지 오해 받을 걸 감수하면서까지 짧은 어휘와 운율로 표현을 하겠나. 노래로 만들었다는 건 그 모습 그대로 전달하고 싶어서 그런 거다. ‘말하러 가는 길’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우리 싸이 클럽 회원 중 거기서 뭘 말하러 가는 거냐고 물으며 ‘장기하는 답변을 하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말할 거였으면 노래로 안 불렀지. 애초에 그건 설명을 안 해주는 게 작품에서 더 재밌을 거 같아서 안 한 건데 굳이 내가 ‘이러이러한 걸 말하러 갑니다’라는 건 의미 없는 것 같다.

재미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장기하:
재미에 가치를 많이 둔다. 우리는 재밌게 살아야하고, 음악도 들었을 때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이런 말이 오해를 살 수 있는 게 재미라는 말의 의미를 너무 좁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방방 뜨고 즐거워야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들을 땐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음악도 재밌고, 라디오헤드 음악 역시 재밌다. 재미가 있는 요소는 다른 거다. 혹자는 우리에 대해 ‘걔넨 그냥 재밌기만 한 밴드잖아’라고 하는데 대체 밴드가 그 이상의 무슨 덕목을 갖춰야 하는지 알고 싶다.

“사람은 일시에 폭삭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최근에 재밌는 일은 뭐가 있었나.
장기하:
재밌으면서도 가장 믿을 수 없는 일은 15일에 있을 서태지 콘서트에 오프닝 게스트로 정해졌다는 거다. 이건 뭐 포레스트 검프 아닌가. 대통령 만나고 역사적인 현장에 항상 있는 것과 같은 그런 경험. 이렇게 음악하면서 존경하던 음악적 영웅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배철수 선생님과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같이 방송도 하고, 김창완 밴드와는 같이 공연을 하고나서 밤새 술을 마셨다. 공연을 하기 때문에 좋은 공연을 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지난 토요일 로로스 공연을 보러 갔는데 로로스도 좋았지만 게스트로 나온 백현진 씨와 방준석 씨 공연이 정말 좋았다. 방준석 씨 기타 톤은 정말 처연한 느낌이었고, 워낙 좋아하던 백현진 씨의 ‘학수고대했던 날’을 들을 땐 눈물이 났다. 정말로.

결국 음악인들과 연관된 경험이다. 그 바깥에서의 인간관계는 별로 없나. 대학 친구들은 뭐 하나.
장기하:
행시 붙은 애도 있고, 사시 붙은 애도 있고, 알만한 기업 다니는 친구도 있고, 아직 고시 공부하는 친구도 있다. 가끔 보면 잘 돼서 보기 좋다고 축하해주고, 조금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해주는 친구도 있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음악이란 바운더리 바깥에 있는 친구들과는 만나기 어렵다.

그러면 인디 신 혹은 대중음악계 전체에서 친한 건 누가 있나.
장기하:
크라잉넛 같은 경우는 완전 형이지. 우리가 형들을 좋아라 하고 형들도 우릴 좋아라 하고, 술도 자주 먹고. 음악적으로도 훌륭하고 만났을 때도 사람이 좋아 의지가 많이 된다. 선배라고 부를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이적 형과도 김광석 추모 콘서트 때 만나 술 마시며 친해지고.

언젠가 20대 중간마다 테트리스 블록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갑자기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인디 가수로서의 명성, 음악인들과의 만남 등 짧은 시간 안에 이룬 것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없나.
장기하:
사람은 일시에 폭삭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 관심이나 이런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그게 싹 빠졌을 때 사람이 황폐해질 것 같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반대로 관심이 좀 줄어들면 그땐 그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고.

마지막으로 지금 장기하는 별일 없이 사나? 사는 게 재밌나?
장기하:
별일은 많고, 사는 건 재밌다. 아니 별일이 많아서 사는 게 재밌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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