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들은 말한다. 재미없는 편을 꼽는 편이 더 낫다고. 잘 만들어진 가십 잡지처럼 자극적인 정보와 소소한 재미들이 균형 있게 포진되어 있는 ‘라디오 스타’는 어떤 에피소드를 플레이 하더라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준다. 그러나 40팀 이상의 게스트들 중에서 몇몇은 유난히 더 큰 웃음과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엑기스를 뽑듯, ‘라디오 스타’ 최고의 에피소드들을 어렵게 선정했다. 라스 명예의 전당을 만나보자.

2007. 09. 12 (2주)
천무 스테파니 : (오페라 톤으로) 롸이징 써어어어언!

자포자기였을까.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도 언제나 야무진 모습만 보여주던 스테파니는 결국 메조소프라노로 ‘라이징선’을 외치고야 말았다. 좀처럼 망가진 모습을 보이지 않던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다른 멤버들도 이날만큼은 소개팅을 가장한 장기자랑에 참가해 이를 갈고, 눈썹으로 웨이브를 하고, 손가락을 구부려 보이며 각자 신체의 비밀을 공개 했다. 물론, MC들의 장기자랑은 대부분이 대실패. 다만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귀를 움직이거나 빛의 속도로 혀를 날름거리는 능력을 과시한 김구라만이 그 재능을 인정받았을 뿐이다. 또한 이날은 이름 개그가 유난히 잦았는데, 신정환은 “썬데이 서울”, “그레이스면 봉고차 타고 다니냐”, “다나의 본명은 오다나”, “데스티니스 차일드 멤버 이름은 병-세” 등의 자잘한 유머를 끊임없이 날렸다. 참, 이 날은 김국진이 MC로 본격 합류한 첫 날이었다.

2007. 09. 26 (1주)
봉태규 : (변강쇠의) 라이벌로는 둘리 정도가 있죠.

<무한 도전>에 출연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봉태규는 방송 내내 MC들에게 치이고, 시달리기만 했다. 등장하는 순간부터 MC들은 봉태규의 의상을 두고 무성의 하다, 거지같다고 투덜대기 시작했고, 류승범, 려원에 이어 문소리까지 봉태규의 전화를 받지 않자 무시의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급기야 봉태규는 <두 얼굴의 여친>을 홍보하려던 출연 취지를 잊고 크랭크인도 안한 <가루지기> 얘기에 매진하는데, 캐릭터 설명에 심취한 나머지 변강쇠와 둘리를 비교하는 실언을 하고 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아니, 둘리에게 그런 면이!”하고 놀라는 것은 당연히 덧개그의 달인, 윤종신의 몫. 분위기에 편승한 김구라는 자신이 정자 왕임을 자랑하고, 신정환은 그런 김구라가 “정자로 치면 중국!”이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한편, 이 날은 신정환이 윤종신에게 ‘예능계의 늦둥이’라는 별명을 하사한 중요한 날이기도 하다.

2007. 12. 12 (3주)
박진영 : (가사가) 설마 실화라고 해도, 제가 그렇다고 말 하겠어요?

등장부터 대접이 달랐다. 성공한 프로듀서로 환영하는 대신 원더걸스를 데려오지 않았다고 불만을 늘어놓는 MC들에게 박진영은 내내 웃음으로 대응했다. 원래 말장난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 때문인지, 곤란한 상황을 세련되게 넘기는 특유의 처세술 때문인지는 몰라도 천하의 달변가 박진영이 제압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음에는 분명하다. 알 켈리와의 일화나 제작자로서의 이야기보다는 “섹스는 게임이다”라는 오래전의 발언에 더 관심을 두는 MC들 앞에서 박진영은 구성애 선생님마냥 “OECD 국가 중에서 성 만족도 최하위”라는 근거를 들어가며 위험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정작 이날의 희생양으로 당첨된 사람은 신정환. “진정한 게이머”, “프로게이머”라는 비난에 대꾸조차 못하고 당황하는 그의 모습 역시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야한 발라드 작곡가 윤종신에게까지 미치는데, 그의 대표적인 가사가 ‘교복을 벗고’라는 사실이 새삼 조명되었다. 또한 김구라는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 집’의 가사가 김국진의 경우에 들어맞는다며 짓궂은 장난을 시작하는데, 심지어 신정환 조차 가담하기를 거부할 정도로 위험한 수위를 넘나드는 그의 독설은 정신적 물리치료의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다.

2008. 01. 09 (2주)
이승철 : 결혼, 아! 죄송합니다…… 애는 없었죠?

시작은 건전했다. 새해를 맞이해 MC들은 각자의 소망을 밝혔는데, 신정환은 2인자 탈출, 윤종신은 개그 발전과 앨범 발매, 김국진은 웃기는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다만, 김구라는 MBC 제작센터가 일산으로 옮겨가는 동향을 포착, 새 스튜디오의 매점을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 소망을 욕망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날뛰는 이들과 대적한 이승철은 겉으로는 허허실실 웃으면서 MC들을 각개격파 해 나가는 고수의 내공을 보여준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김구라에게는 의상이 개선되었다고 칭찬하면서 “옛날에는 말도 안 되게 입고 다녔다”며 은근한 공격을 가했고, 신정환에게는 예능인으로서의 운명에 순응하라는 조언을 하다 말고 “세계를 돌면서 한번 때리던지”라는 폭탄을 투척해 좌중을 실색케 했다. 이날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것은 김국진. 이혼남으로서의 처지에 공감하는 듯하면서 미묘하게 과거를 들추는 이승철의 화법은 “나를 보고 희망을 가져라” “아직 완치가 안 된 것 같다” “10년이 걸린다” 등 크레센도로 충격을 선사하는 가공할만한 위력을 자랑했다. 게스트에게까지 놀림 받았지만, 이것은 김국진의 캐릭터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2008. 03. 12 (2주)
민경훈 : (나에게 음악은) 젠장! 이다.

김구라가 “박상민은 무릎 팍 도사로 보내고, 우리는 짝퉁 박상민을 데려오자”고 했을 때만 해도 박상민은 자신이 민경훈에게 포커스를 내어주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욕과 기부를 동시에 전하는 음지의 기부천사라는 사실을 아무리 강변해 봐도, “곧 군대가야 하는데 그 전에 더 해야죠”라고 담담하게 상황을 서술하는 민경훈의 시크함을 당할 수는 없었다. 급기야 여자 친구를 공개한 후 예전 같지 않은 팬들의 반응, 그러나 이미 끝나 버린 연애, 솔로 활동의 어려움까지 매사를 술술 진술하는 민경훈의 엉뚱함에 MC들은 모처럼 당황의 연속을 경험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민경훈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미쓰라에 대한 막말 전문가 김구라의 분석이었다. 특히 “미쓰라의 파트를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민경훈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김구라는 “군대를 빨리 가서 미쓰라가 후임병으로 들어오면 밟아!”라는 놀라운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이날 방송은 소소한 발언들의 재미로 채워진 덕분에 ‘무릎 팍 도사’보다도 방송 시간이 30초 더 길었던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러나 시청률은 최하 5위안에 드는 굴욕적인 날이기도 했다.

2008. 04. 30 (2주)
DJ 투컷츠 : 제 시야를 넓혀준 통장에게 감사합니다.

의외의 복병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민경훈에게 순순히 공개사과를 하고 고운 음성으로 ‘네버 엔딩 스토리’를 부르는 미쓰라는 김구라를 만족시킬만한 막말 전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김구라의 관심이 집중 된 것은 “다른 멤버 둘이 라디오 할 때 차나 닦아라”는 독설에 대응을 못할 정도로 순진한가 싶더니 “통장에 입금이 되자 나를 신처럼 떠받들어 주더라”는 타블로의 폭로에 선뜻 수긍하는 배포를 보여준 투컷츠였다. 김구라가 재산을 환원하고 다시 인터넷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타블로의 바람에 “그럼 인터넷의 손석희지!”하고 정확한 추임새를 넣거나 고음과 저음을 넘나들며 ‘손에 손잡고’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 반한 김구라는 급기야 무형문화재가 된 심정으로 그를 진정한 후계자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2008. 05. 14 (2주)
김규종 : 오세정씨, 대한민국 어딘가에 계시다면 연락 주세요.

믿을 수 없게도, 김구라는 거미를 호의적인 태도로 맞아 주었다. 그러나 본성을 견디지 못하고 “기자들이 김현중과의 스캔들을 안 믿어서 속상했다”고 말하는 거미에게 “그건 그래”라고 못을 박더니 급기야 성형에 관한 화제를 꺼내 거미를 울려버리기까지 했다. 억울함에 비디오 판독까지 주장했지만, 누가 봐도 결승 테이프를 먼저 끊은 것은 김구라였다. 이날 최고의 검색어는 정작 출연하지도 않았던 오세정이었는데, SS501의 김규종은 내내 오세정 타령을 하더니 결국은 그녀를 위한 노래까지 부르는 순정을 보여줬다. 거미도 이날 노래를 불렀는데, 전 출연진과 듀엣을 했으니 역사상 가장 많은 노래를 부른 게스트였던 셈이다. 이날의 우승자는 노래방 기계로 97점을 받은 신정환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위너는 ‘예에에~’ 댄스로 모든 MC들을 공황상태에 빠지게 한 김국진이었다. 드디어, 20세기의 제왕이 새 시대에 적응의 한 발을 내 딛는 순간이었다.

2008. 06. 11 53 (3주)
성대현 : 박철우 씨는 지금 실버타운에 계십니다.

게스트 패키지를 유행 시키고, 예능계의 인력시장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방송이었다. 케이블을 통해 이미 활동을 시작했던 성대현과 고영욱, 신동욱은 이 방송에서의 시너지를 통해 각자의 위치를 찾아 갈 수 있었고, 특히 성대현은 이날 만들어진 ‘절실한 생활인’으로서의 이미지를 통해 ‘세바퀴’, <스타 골든벨> 등의 프로그램에 안착 할 수 있었다. R.ef의 배신과 음모, 협잡과 암투의 대하드라마를 듣는 재미도 있었지만, 사실 방송 당시 가장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고영욱의 고자질 시리즈. 룰라 시절 작곡가, 녹음 기사, 김지현에게 구타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멀리 미국에서까지 이현도에게 핍박을 받은 신정환의 사연은 그를 ‘구타의 아이콘’으로 재탄생 시켰다. 그 외에도 성대현과 윤종신의 브로큰 백 마운틴, 송대관 사무실 출신의 김지현, 표절이 아닌 ‘이별 공식’과 사장님의 방침이었던 ‘천상유애’, 탁재훈의 전 재산 500원 등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던 그야말로 전설적인 방송이었다.

2008. 09. 24 (2주)
김태원 : 아,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건 아닙니다.

‘라디오 스타’의 팬들이라면 누구나 김구라가 김태원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김구라는 김태원 버전의 ‘마지막 콘서트’라 할 수 있는 부활의 ‘회상3’을 자신의 애창곡이라고 소개한 바 있고, 에픽하이가 출연 했을 때도 “부활은 김태원이 살아있는 한 건재하다”며 애정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김태원을 소개하면서 김구라는 “한국의 지미 핸드릭스. 약물 과용으로 죽은 사람”이라고 초장부터 과감한 공격에 돌입했다. 하지만 김태원은 자신의 과오를 쿨 하게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을 타자화 시키는 ‘전지적 3인칭 화법’, 아련하게 말꼬리는 늘이는 ‘수타 어미 연장 화법’ 등의 기술을 선보이며 새로운 예능 늦둥이의 탄생을 알렸다. 이에 더해 하루에 14시간 수면을 취하는 기벽과 의심스러운 UFO 목격담, 이승철과의 열애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정보의 난립은 그를 더욱 흥미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김태원의 선전에 가려 처절하게 소외당한 김흥국은 결국 빈 수화기를 들고 “여긴 아름다운 방송입니다. 으아~”하고 막개그를 던지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으니, 아저씨 예능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2008. 12. 10 (3주)
탁재훈 : 내가 과자를 사 갔잖아, 포카 앤 칩이라고.

깐족대고, 꼬투리 잡는 것에 관한 한 탁재훈 만큼 강력한 적수는 없다. 등장과 동시에 MC들에게 공격의 잽을 날리던 탁재훈은 내부의 적, 김종국과의 분열로 잠시 전력을 잃는다. 이에 더해 ‘KBS 연예대상 징크스’라는 그의 아킬레스건이 공개되자, 천하의 미꾸라지 탁재훈도 잠시 침묵 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는 얄미운 김종국에게 “현역 갔어야 되는데.” “목에 모기가 이만큼 들었어!” 등의 독설 공격을 퍼붓고, 도와주지 않는 신정환에게 ‘칩사마, 어디냐’고 문자를 보낸 후 “포카 앤 칩이라는 과자”를 사들고 찾아갔던 일화를 공개하며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 내내 한마디도 않고 있던 휘성이 “죽도록 널 까고 싶어”라고 노래하며 탁재훈을 공격했지만, 이대로 죽을 그가 아니다. 탁재훈은 음악의 애비는 베토벤인데, 그것은 자신이 배씨이기 때문이며, 사실 본명은 지밀이라는 포스트 모던한 개그로 결국 방송을 장악하고야 말았다. MC와 게스트들이 일합을 겨루는 ‘말장난의 쇼다운’ 같았던 방송이었다.

2009. 01. 28 (3주)
붐 : (자동반사) 제가 좀 경솔했습니다.

게스트의 테마 선정은 안정적이고, MC들의 공격력과 분업화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게다가 발달한 테크놀로지는 검은 날개로 무장하는 수준을 넘어서 ‘혓바닥으로 때리기’, ‘턱 잡아 늘이기’등의 CG 개그까지 가능한 경지에 도달했다. 최상의 컨디션에 어울리는 최고의 게스트 붐은 그야말로 전설이 되기 위해 ‘라디오 스타’를 찾아 온 재물이나 다름없었다. 10년째 유망주라는 야유, 5억이 아니라 500만원 피소가 어울린다는 진단, 어쩐지 중퇴의 느낌이 난다는 의혹에 이어 “준코” 바운스까지 크리티컬 공격의 종합 선물세트를 받아 든 붐은 그저 “제가 경솔했습니다”라는 멘트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늘 그렇듯 슴슴하고 무난한 이수근과 아이돌답게 재킷의 소재가 양가죽이라는 것도 어렵게 공개하는 대성과 달리 붐은 “체인지 변장 모습을 닮았다”는 확인사살 끝에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영턱스의 ‘타인’을 멋지게 개사해 MC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야말로 쉐킷 붐테스크루 발레파킹 나인티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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