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심야에 방송되는 MBC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의 첫 회 시청률은 12%를 기록했다. 드문 일이다. ‘지구 온난화’라는 새로울 것 없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이 게시판에 감상을 남기고, 의견을 나눴다. 더욱 드문 일이다. 이 기현상의 일등 공신으로 북극의 풍광과 생생한 동물들의 모습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 <북극의 눈물>의 가장 큰 매력은 ‘가르치기 보다는 느끼게 하겠다’는 프로그램의 어조다. 그리고 나직하지만 또렷한 그 목소리를 만든 사람은 그동안 MBC에서 <평양의 미국인>, <황하> 등을 각자 만들어 온 허태정, 조준묵 두 PD다. 전복 맛이 나는 마탁(고래 가죽 고기)과 개고기와 결이 비슷하다는 순록고기를 직접 먹으며 북극에서 한 철을 보낸 두 사람을 만나서 <북극의 눈물>의 눈물겨운 제작기를 들어보았다.

시청률이 잘나왔다.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허태정
: 반응이 좋지. 주변에서 명품다큐라고 해 주시니 보람을 많이 느낀다.
조준묵 : 사실 제작 기획서에는 목표 시청률을 15%로 써 넣었었다. 원래 시작할 때는 꿈이 큰 법 아닌가. (웃음) 요즘 공중파 시청률 자체가 많이 빠졌는데, 특히 다큐멘터리는 10%만 넘어도 대박이라고들 한다.

“이렇게까지 머릿속에서 계획한 대로 그림이 안 잡히는 건 처음”

<북극의 눈물>은 언제,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 인가?
조준묵
: 원래 허태정 PD가 갖고 있었던 기획은 쇄빙선에 관한 거였다. 2부에 나온 내용인데,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얼음이 녹아 북서항로라는 것이 열렸다. 그 길을 배를 타고 따라가는 기획이 있었고, 나는 에스키모랑 고래잡이에 대한 다큐를 하고 싶었다. 그 두 가지 기획을 합하면서 북극에 관련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그렇게 정리가 된 거다.
허태정 : 작년 11월부터 창사 기획을 했는데, 그 때 의기투합 했다. 팀이 조합 된 것은 2월 중순이었고, 3월 초에 헌팅을 갔다. 촬영은 두 사람이 따로 갔다 와서 조합을 한 건데, 한 팀이 4개월 반씩 나가 있었다. 그걸 합쳐서 촬영 기간 9개월이 나온 거다.

북극이라는 지역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것 같다.
허태정
: 북극이라는 데가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 팀이 북극곰 처음 찍으러 간 데는 캐나다에서 3일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토론토에서 몬트리올로 가면, 거기서 북극으로 가는 비행기가 하루에 한 편 있다. 그걸 타고 북극으로 들어가서도 또 비행기를 갈아타고, 스노모빌로 10시간 이상 들어가야 했다.
조준묵 : 우리 팀은 목적지가 그린란드였는데, 캐나다 북부까지는 허태정 PD 팀과 같이 움직였다. 오타와에서 섬 쪽으로 들어가서 전용기를 빌렸다. 보통 그린란드로 가려면 코펜하겐에서 비행기를 너 댓 번 갈아타는 식인데, 짐이 워낙 많아서 비행기 환승할 때마나 오버차지를 무느니 전용기를 빌리는 편이 싸겠다 싶더라. 고생도 덜하고. 두 팀이 각각 700KG씩 장비를 들고 다녔다. 팀이래봐야 4명인데, 힘들었지.

막상 북극에 가 보니까 어땠나. 각오했던 것과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허태정
: 북극은 정말 변수가 많고, 감독의 의도대로 되는 곳이 아니더라. 이렇게까지 머릿속에서 계획한 대로 그림이 안 잡히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추위도 대단했다. 처음 갔을 때 영하 10도 정도 됐는데, 바람이 부니까 체감 온도가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더라. 야외에서 곰을 기다릴 때는 거위 털 파카 안에 여섯 겹 쯤 껴입고 핫 팩도 붙이고 있었다. 텐트 안에도 온도를 재보니까 영하 7도 정도더라.
조준묵 : 차라리 아프리카라면 가이드들이 동물의 위치를 알고 있어서 계산이 가능하다. 그런데 북극에서는 동물이 어디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일단 가 봐야 한다. 그리고 이동 수단은 썰매 아니면 스노모빌인데, 얼음판이 거칠어 길이 험하다. 썰매는 충격 완충제가 없으니 타고 있는 동안 진동을 몸으로 다 받아야 한다. 그런 와중에 카메라를 들고 찍어야 할 때도 있는데, 나는 감독이니까 “잘 찍어라, 흔들린다” 궁시렁대고, 그러면 카메라맨은 “니가 찍어봐라”하는 거고. (웃음) 카메라맨들이 특히 고생이 많았다. 그렇게 기껏 다가가면 동물들은 다 도망가고. 해외 제작자들이 북극 촬영은 ‘long term, big budget’ 프로젝트라고 걱정하던 이유가 다 있었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씨네플렉스인가?
조준묵
: 그렇다. 씨네플렉스는 얼음 벌판을 훑거나 산을 넘어갈 때도 좋지만 카메라가 360도 회전할 수 있을 뿐더러, 굉장히 큰 망원렌즈를 옵션으로 부착해 멀리 떨어진 것을 찍을 수도 있다. 실제로 BBC에서 방송했던 <플래닛 어스(Planet Earth)>에서 동물을 근접촬영 하거나 따라가는 것도 씨네플렉스가 있어서 가능했던 거다. 동물들이 놀라지 않을 만큼 멀리서 화면을 당겨서 찍을 수가 있으니까.

“밤에 캠프로 곰이 접근 했는데 그때도 우린 촬영한다고 난리”

그런 장비를 도입하기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았겠다.
조준묵
: 당연하다. 장비를 뉴욕에서 대여했는데, 일주일에 1억 정도가 들어갔다. 그 일주일 중에 이동 시간 빼고, 헬기가 뜰 수 있는 날은 운이 좋아야 이틀이다. 미치는 거지. 하루에 돈이 2천씩 깨지는데. 그래서 장비 전문가한테 “헬기 못 뜨는 날은 반값으로 계산하자” 그랬더니 자기는 일이 밀려있으니까 그럴 거면 다른 데로 간다고 하더라. (웃음) 어쩔 수 있나, 장비가 많지 않은데 입장이 그런 거지. 그 대신 그 사람이 아주 전문가라서 헬기가 뜨는 날에는 참 열심히 찍어줬다. 프로의식이 어찌나 강한지 엔딩 크레딧에도 회사 말고, 자기 이름을 꼭 넣어 달라더라.

수중 촬영을 할 때도 해외 스태프를 고용했다고 들었다.
허태정
: 국내 장비를 가져갈 수 없어서 독일 수중 카메라맨을 고용했다. 수온이 영하 10도 정도 됐는데, 한 번 들어가면 40분씩 촬영을 했다. 한번은 물개 구멍을 찍으러 들어갔는데, 얼음 밑에서 바닷물 유속이 빨라져서 카메라맨이 떠밀려 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카메라맨을 묶은 밧줄을 느슨하게 풀어주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나와서는 사력을 다해서 헤엄쳐 왔다고, 큰 일 날 뻔 했다고 그러더라. MBC <빙하>를 찍을 때 국내 카메라맨이 남극에서 수중 촬영을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사실상 극지에서 이렇게 물 속 생태계를 촬영한 것이 이번이 국내 최초다.

동물에 접근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을 텐데. 어떤 동물이 가장 위협적이었나.
허태정
: 역시 북극곰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너무 천진난만하고 귀엽다. 그렇지만 곰은 기본적으로 영리하고 게다가 민첩하다. 현지 가이드들이 “배고픈 곰을 만나면 우리가 런치가 된다”고 항상 경고를 했다. 곰이 시속 40km의 속력을 내기 때문에 일정 거리를 유지하라고 교육을 받았다. 그래도 우리는 타이트 샷을 찍으려고 꾸역꾸역 10m까지도 다가갔다. 가이드들은 위험하다고 난리가 났지. 장비가 많아서 곰이 공격을 해도 철수가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날 촬영은 성공 했는데 밤에 야영 캠프로 곰 두 마리가 접근을 했었다. 공포탄을 쏴서 쫒아냈는데, 그 와중에도 우리는 곰 촬영하겠다고 난리가 났었다. (웃음) 그런데, 동물들이 위협하는 것 보다는 도망가는 게 더 힘든 일이었다. 특히 순록은 초식동물이라서 정말 예민하더라. 추운데서 무작정 기다리는 게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조준묵 : 사냥 하는 장면을 찍을 때도 그랬다. 바다코끼리는 좀 둔해서 어떻게 접근을 할 수 있었는데, 고래는 사냥꾼들조차 가만히 기다려야 잡을 수 있는 동물이라서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멀리서 보면 요만하게 보이는데, 별 수 없이 당겨서 찍고 그랬다.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는데, 스태프 중에 다친 사람은 없었나?
조준묵
: 우리 팀 조연출이 여자였는데, 두 번이나 물에 빠졌다. 사냥꾼을 따라가다가 조연출이 유빙을 잘못 밟아서 빠진 걸 사람들이 건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소변을 보러 멀리 가길래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같이 간 이누이트 사냥꾼이 계속 조연출이 가는 쪽을 보고 있는 거다. 그때는 속으로 추접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장대를 들고 막 달려가더라. 조연출이 물에 빠진 걸 그 사람이 건졌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얼어 죽었을 거다. 우리는 몰랐는데, 조연출이 얼음이 약한 쪽으로 가더란다. 이누이트들은 그런 걸 다 아는 거지.
허태정 : 우리 팀은 그 정도는 아니고, 발만 빠졌었다. 순록을 촬영하러 툰드라 지대에 갔었는데, 툰드라가 얼음 위에 모래가 퇴적된 지형이다. 밑에 얼음이 녹기 시작하니까 땅이 질퍽질퍽해서 조연출이 건너다가 발이 쑥 빠졌었다. 빠져나오느라고 30분 정도 애를 먹었다.

“실제 이누이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 마리 북극곰 같다”

<북극의 눈물>에서는 동물 뿐 아니라 북극에 사는 사람들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누이트들을 촬영 하는 것은 힘들지 않았나?
조준묵
: 정말 선한 사람들이라서 같이 지내기 편했다. 경쟁도 없고, 효율을 따지지도 않아서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냥을 따라 갔다가 하루 꼬박 굶은 적도 있었다. 우리 밥 먹자고 이 사람들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게시판에서는 야만적이라고 난리가 났더라. 그건 피상적인 이해다. 이누이트들은 농부가 벌판에 나가듯이 얼음판에 나가는 사람들이다. 사냥은 그들에게 벌판에 나가서 수확물을 거둬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허태정 : 사냥은 그들에게 삶의 일부고 생계다. 그린피스처럼 사냥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고, 그래서 이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 할 때도 있었다. 예민해지면 촬영이 어렵기도 했고.

1부 같은 경우, 곰과 사람이 동시에 부각되는 바람에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에 혼선을 겪었던 것은 아닐까. 동물에 감정을 몰입 했는데, 사람들이 동물을 죽이는 장면이 나왔으니까.
조준묵
: 1부의 콘셉트는 북극이 자꾸 눈물을 흘려서 쫄딱 없어진다면 누구라도 사냥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을 감성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북극을 대표하는 곰과 사람의 수난을 교차해서 보여 준 거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사람들이 메시지를 읽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실제 이누이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 마리 북극곰 같다. 나에게는 둘이 같은 피사체였다.

나레이션을 안성기에게 맡긴 것도 감성적인 접근의 한 방식인가.
허태정
: 사실 전달력 때문에 전문 성우를 쓸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지만 안성기 씨가 좀 더 편안하게 전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준묵 : 안성기 씨 같은 경우는 얘기를 전달할 때 가르치는 식이 아니면서도, 강단이 있다. 그리고 목소리에 약간의 금속성이 있으면서도 그렇게 차갑지는 않은 미묘한 점이 있다. 물론 홍보적인 면을 고려한 것도 있고. (웃음)

다시 북극을 촬영 할 기회가 생긴다면, 갈 수 있을 것 같은가?
허태정
: 생각해 봐야겠다. 아니다, 갈 것 같다. 쉽게 간다고 하면 편했구나, 그럴 수 있으니까 일단 고민은 좀 해야지. (웃음) 그래도 다시 가고 싶을 만큼 너무 좋은 곳이었다. 내가 촬영한 곳 중에 쿠바도 있고, 평양도 있지만 북극이 가장 강렬했다. 4부에 메이킹이 방송되면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들이 많을 것 같다.
조준묵 : 어휴, 나는 다시는 못가겠다. 초원에서도, 고원에서도, 사막에서도 자 봤지만 북극이 가장 힘들었다. 앞으로 북극은 형이 계속 가면 되겠네. (웃음)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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