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박명훈: 원래 이렇다. (웃음) 영화에선 지금보다 몸무게가 8kg 정도 빠진 모습이다.
10. 근세 역할을 위해 살을 뺐나?
박명훈: 시나리오를 봤을 때 살을 빼야 할 것 같았는데 봉 감독께서 살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정도만 뺐다.
10. 영화에서의 모습과 많이 달라 깜짝 놀랐다.
박명훈: ‘머릿발’이라고 하지 않나. 머리카락이 자라 달라 보이는 것도 있다. ‘기생충’ 촬영 전에 머리카락을 숱가위로 쳐서 반(半) 대머리처럼 만들었다. 지금은 피부도 하얗지 않나? 태닝도 했었다. 남자치곤 하얀 편이라 피부를 태워도 금방 되돌아온다. 그래서 영화를 본 분들이 아직까지 날 몰라본다. 하하.
10. 사실 ‘박명훈’이라는 이름이 낯설다.
박명훈: 15년 넘게 연극과 뮤지컬만 했고, 주로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관객들이 모르는 게 당연하다.
10. 15년 넘게 드라마나 영화엔 전혀 캐스팅이 안 됐나?
박명훈: 공연이 너무 재미있었다.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그렇게 안주하며 살다가 40살에 결혼을 했는데, 그제야 영화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메라 앞에 서면 어떨까 싶더라. 그래서 독립영화부터 시작했다. 장편 4~5편, 단편까지 10편 정도 찍었다.
10. ‘기생충’엔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박명훈: 봉 감독께서 캐스팅 한 이유를 직접 말해 준 적은 없다. 미루어 짐작하기엔 2017년에 내가 출연한 ‘재꽃’이라는 독립영화를 보고 캐스팅한 것 같다. 당시에 ‘옥자’가 넷플릭스에서 개봉해 한참 바쁘셨을 텐데도 우리 영화를 봐주셨다. 감독님이 ‘재꽃’ GV(관객과의 대화)에 사회자로 참석해, 한 시간이나 진행을 해주셨다. 독립영화에 힘을 실어 주신 것이다. 뒤풀이 때 ‘술 취한 연기의 달인’이라며 극찬을 해주셨다. 7개월 뒤에 갑자기 연락이 왔고, ‘기생충’ 시나리오를 택배로 받았다. 그때 택배를 품에 안았을 때 기분은 영원히 못 잊을 것 같다.
10. 극 중 근세는 스릴러로 전환될 때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큰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데 부담은 없었나?
박명훈: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그저 놀라웠다. 왜 봉준호 감독인지 알겠더라. 술술 읽다 보니 한 시간쯤 지나서 내가 나왔다. 근세는 이 영화에서 ‘히든카드’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면서도 봉준호, 송강호와 함께하니 나는 손해 볼 게 없겠다 싶어 오히려 편했다.
10. 임팩트가 강한 인물이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 연기했나?
박명훈: 처음엔 기이한 캐릭터로 설정했는데 생각이 틀렸다. 촬영 전에 감독님과 인물에 관해 얘기했는데, 이렇다 저렇다 규정짓지 않고 ‘뭘 하던 사람일까?’ ‘직업은 뭐였을까’라며 열린 질문을 하더라. 영화에선 뭔가 무섭게 비치지만 순해서 사기를 당했을 수 있고, 자영업을 하면 100% 망했을 것 같고, 그래서 사채를 했을 것이고…. 평범한 사람으로 접근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저씨로 표현하려고 했다. 평범한 사람이 상황 때문에 기이해진 데 초점을 맞췄다.
10. 실감 났다. 기이해진 인물을 연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박명훈: 촬영하기 한 달 전부터 세트장 지하 공간에서 몇 시간씩 있어 봤다. 잠도 잤다. 처음엔 내 공간 같고 편했는데 오래 있어 보니 뭔가 몽롱해지고 이상해지더라. 근세는 주인이 집을 비울 때 빼고 4년을 갇혀 살았다. 말도 어눌해지고 이상해지는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10. 근세는 말 그대로 ‘비밀병기’였다.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도 스포일러를 강력하게 차단했다. 자신은 SNS도 끊었다던데 답답하진 않았나?
박명훈: 비밀을 유지하는 데 답답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짜릿했다. SNS를 젊은 친구들처럼 활발하게 한 것도 아니어서 불편하진 않았다. 이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도 비밀이 유지된 것 같아 기쁘다. 하하.
10. 비밀 유지 각서를 썼다고 하던데?
박명훈: 사실 자세히 안 읽었다. 시나리오만 보였다. 빨리 사인하고 읽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비밀 유지 각서를 쓰긴 했는데 1년이 넘어서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아들한테도 얘기 안 하고 지켰다.
10. 칸 국제영화제에도 다녀왔다던데 전혀 몰랐다.
박명훈: 첫 공식 상영 날 뤼미에르 극장에 있었다. 상영 전에는 숙소에 있다가 공개 이후에 잽싸게 도망쳤다. 칸에 머무르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웃음) 매니저랑 리스로 여행을 떠났다. 남자 둘이서 해변을 걸어 다녔다.
10. 칸 현지에서의 반응을 직접 체감하니 어땠나?
박명훈: 아무리 거장의 영화라도 재미없으면 야유를 보내고 나가버린다. 그런데 단 한 명도 나가지 않았다. 중간에 어떤 장면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기립박수를 받았을 땐 정말 놀랍고 뭉클했다. 어떤 분이 ’20년간 칸에 왔는데 이런 반응과 이런 놀라운 영화는 처음이다’라고 하더라. 예의상 말하나 싶었는데 눈빛이 진짜 같았다.
10. 영화를 본 관객 중 찜찜하다는 반응이 많다. 박 사장과의 싸움이 아니라 지하와 반지하의 싸움으로 보고 슬프다는 사람도 많다.
박명훈: 나도 반지하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에서처럼 한 지붕 아래 세 가족이 살았던 적도 있다. 그런 반응이 너무나 이해가 간다. 나는 다섯 번 봤는데 볼 때마다 다르더라. 이야기와 방향성은 분명히 같은데 기택(송강호)의 시선으로 볼 때와 근세의 시선으로 볼 때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었다. 희한한 영화다.
10. 봉준호 감독에게 감동 받았다는 이야기는 뭔가?
박명훈: 감독님 덕분에 나와 내 아버지가 가장 먼저 ‘기생충’을 봤다. 아버지는 영화광이다. 타계하신 신성일 선생님과 비슷한 연배이신데 젊은 시절 영화배우를 꿈꾸셨다. 그런 아버지의 격려로 나는 배우를 할 수 있었다. 지금 아버지는 폐암으로 투병 중이다. 봉 감독께서 어디선가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내게 먼저 전화해 주셨다. ‘하루라도 빨리 보여드라자’고 했다. 울컥했다. 아버지도 감격해서 말을 잇지 못하셨다. 봉 감독님의 디테일은 인간에 대한 배려와 관심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기술적으로 훌륭하지만 그런 인간에 대한 마음 때문에 거장이라 불리는 것 같다.
10. ‘기생충’으로 인해 러브콜이 많아질 텐데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건가?
박명훈: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기생충 효과’를 보고 싶다. 더 많은 작품에서 더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
10. 근세 캐릭터가 워낙 강렬해서 앞으로 비슷한 역할이 많이 들어 올 것 같은데, 염려는 안 되나?
박명훈: 근세라는 역할은 나한테 도전이었다. 비슷한 역할이라도 또 다른 도전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할 것이다. 그게 배우의 숙명 아닐까?
10. 어떤 작품에 출연하고 싶나?
박명훈: 배우는 선택을 받는 직업이다. 훌륭하신 분들은 자신이 선택하기도 하지만, 난 시작이다. 어떤 작품이든 가리지 않을 것이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누군가 싶었다. 영화에서 본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후덕하고 단정했다. 말도 또박또박 잘 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4년 넘게 지하실에 숨어 산 남자 근세를 연기한 배우 박명훈이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봉 감독은 물론 제작진, 배우들 모두 그를 꽁꽁 숨겼기 때문이다. 단역이 아닌데도 그는 제작보고회, 언론시사회 등 홍보를 위한 무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아들에게조차 자신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얘길 안 했단다. 극 중 근세처럼 철저하게 숨어 있다가 이제야 세상 밖으로 나온 박명훈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10. 살이 찐 건가?
박명훈: 원래 이렇다. (웃음) 영화에선 지금보다 몸무게가 8kg 정도 빠진 모습이다.
10. 근세 역할을 위해 살을 뺐나?
박명훈: 시나리오를 봤을 때 살을 빼야 할 것 같았는데 봉 감독께서 살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정도만 뺐다.
10. 영화에서의 모습과 많이 달라 깜짝 놀랐다.
박명훈: ‘머릿발’이라고 하지 않나. 머리카락이 자라 달라 보이는 것도 있다. ‘기생충’ 촬영 전에 머리카락을 숱가위로 쳐서 반(半) 대머리처럼 만들었다. 지금은 피부도 하얗지 않나? 태닝도 했었다. 남자치곤 하얀 편이라 피부를 태워도 금방 되돌아온다. 그래서 영화를 본 분들이 아직까지 날 몰라본다. 하하.
10. 사실 ‘박명훈’이라는 이름이 낯설다.
박명훈: 15년 넘게 연극과 뮤지컬만 했고, 주로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관객들이 모르는 게 당연하다.
10. 15년 넘게 드라마나 영화엔 전혀 캐스팅이 안 됐나?
박명훈: 공연이 너무 재미있었다.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그렇게 안주하며 살다가 40살에 결혼을 했는데, 그제야 영화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메라 앞에 서면 어떨까 싶더라. 그래서 독립영화부터 시작했다. 장편 4~5편, 단편까지 10편 정도 찍었다.
10. ‘기생충’엔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박명훈: 봉 감독께서 캐스팅 한 이유를 직접 말해 준 적은 없다. 미루어 짐작하기엔 2017년에 내가 출연한 ‘재꽃’이라는 독립영화를 보고 캐스팅한 것 같다. 당시에 ‘옥자’가 넷플릭스에서 개봉해 한참 바쁘셨을 텐데도 우리 영화를 봐주셨다. 감독님이 ‘재꽃’ GV(관객과의 대화)에 사회자로 참석해, 한 시간이나 진행을 해주셨다. 독립영화에 힘을 실어 주신 것이다. 뒤풀이 때 ‘술 취한 연기의 달인’이라며 극찬을 해주셨다. 7개월 뒤에 갑자기 연락이 왔고, ‘기생충’ 시나리오를 택배로 받았다. 그때 택배를 품에 안았을 때 기분은 영원히 못 잊을 것 같다.
박명훈: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그저 놀라웠다. 왜 봉준호 감독인지 알겠더라. 술술 읽다 보니 한 시간쯤 지나서 내가 나왔다. 근세는 이 영화에서 ‘히든카드’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면서도 봉준호, 송강호와 함께하니 나는 손해 볼 게 없겠다 싶어 오히려 편했다.
10. 임팩트가 강한 인물이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 연기했나?
박명훈: 처음엔 기이한 캐릭터로 설정했는데 생각이 틀렸다. 촬영 전에 감독님과 인물에 관해 얘기했는데, 이렇다 저렇다 규정짓지 않고 ‘뭘 하던 사람일까?’ ‘직업은 뭐였을까’라며 열린 질문을 하더라. 영화에선 뭔가 무섭게 비치지만 순해서 사기를 당했을 수 있고, 자영업을 하면 100% 망했을 것 같고, 그래서 사채를 했을 것이고…. 평범한 사람으로 접근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저씨로 표현하려고 했다. 평범한 사람이 상황 때문에 기이해진 데 초점을 맞췄다.
10. 실감 났다. 기이해진 인물을 연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박명훈: 촬영하기 한 달 전부터 세트장 지하 공간에서 몇 시간씩 있어 봤다. 잠도 잤다. 처음엔 내 공간 같고 편했는데 오래 있어 보니 뭔가 몽롱해지고 이상해지더라. 근세는 주인이 집을 비울 때 빼고 4년을 갇혀 살았다. 말도 어눌해지고 이상해지는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10. 근세는 말 그대로 ‘비밀병기’였다.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도 스포일러를 강력하게 차단했다. 자신은 SNS도 끊었다던데 답답하진 않았나?
박명훈: 비밀을 유지하는 데 답답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짜릿했다. SNS를 젊은 친구들처럼 활발하게 한 것도 아니어서 불편하진 않았다. 이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도 비밀이 유지된 것 같아 기쁘다. 하하.
10. 비밀 유지 각서를 썼다고 하던데?
박명훈: 사실 자세히 안 읽었다. 시나리오만 보였다. 빨리 사인하고 읽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비밀 유지 각서를 쓰긴 했는데 1년이 넘어서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아들한테도 얘기 안 하고 지켰다.
10. 칸 국제영화제에도 다녀왔다던데 전혀 몰랐다.
박명훈: 첫 공식 상영 날 뤼미에르 극장에 있었다. 상영 전에는 숙소에 있다가 공개 이후에 잽싸게 도망쳤다. 칸에 머무르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웃음) 매니저랑 리스로 여행을 떠났다. 남자 둘이서 해변을 걸어 다녔다.
10. 칸 현지에서의 반응을 직접 체감하니 어땠나?
박명훈: 아무리 거장의 영화라도 재미없으면 야유를 보내고 나가버린다. 그런데 단 한 명도 나가지 않았다. 중간에 어떤 장면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기립박수를 받았을 땐 정말 놀랍고 뭉클했다. 어떤 분이 ’20년간 칸에 왔는데 이런 반응과 이런 놀라운 영화는 처음이다’라고 하더라. 예의상 말하나 싶었는데 눈빛이 진짜 같았다.
박명훈: 나도 반지하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에서처럼 한 지붕 아래 세 가족이 살았던 적도 있다. 그런 반응이 너무나 이해가 간다. 나는 다섯 번 봤는데 볼 때마다 다르더라. 이야기와 방향성은 분명히 같은데 기택(송강호)의 시선으로 볼 때와 근세의 시선으로 볼 때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었다. 희한한 영화다.
10. 봉준호 감독에게 감동 받았다는 이야기는 뭔가?
박명훈: 감독님 덕분에 나와 내 아버지가 가장 먼저 ‘기생충’을 봤다. 아버지는 영화광이다. 타계하신 신성일 선생님과 비슷한 연배이신데 젊은 시절 영화배우를 꿈꾸셨다. 그런 아버지의 격려로 나는 배우를 할 수 있었다. 지금 아버지는 폐암으로 투병 중이다. 봉 감독께서 어디선가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내게 먼저 전화해 주셨다. ‘하루라도 빨리 보여드라자’고 했다. 울컥했다. 아버지도 감격해서 말을 잇지 못하셨다. 봉 감독님의 디테일은 인간에 대한 배려와 관심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기술적으로 훌륭하지만 그런 인간에 대한 마음 때문에 거장이라 불리는 것 같다.
10. ‘기생충’으로 인해 러브콜이 많아질 텐데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건가?
박명훈: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기생충 효과’를 보고 싶다. 더 많은 작품에서 더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
10. 근세 캐릭터가 워낙 강렬해서 앞으로 비슷한 역할이 많이 들어 올 것 같은데, 염려는 안 되나?
박명훈: 근세라는 역할은 나한테 도전이었다. 비슷한 역할이라도 또 다른 도전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할 것이다. 그게 배우의 숙명 아닐까?
10. 어떤 작품에 출연하고 싶나?
박명훈: 배우는 선택을 받는 직업이다. 훌륭하신 분들은 자신이 선택하기도 하지만, 난 시작이다. 어떤 작품이든 가리지 않을 것이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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