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기자]
국내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을 재구성한 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에는 8명의 배심원들이 등장한다. 1번 윤그림(백수장 분), 2번 양춘옥(김미경 분), 3번 조진식(윤경호 분), 4번 변상미(서정연 분), 5번 최영재(조한철 분), 6번 장기백(김홍파 분), 7번 오수정(조수향 분), 마지막으로 합류하는 8번 배심원 권남우(박형식 분)까지.
박형식은 푸릇한 첫사랑의 감정이 결결이 담긴,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의 소년 히로와 똑 닮았다. 그에게는 무구한 소년의 표정이 있다. 때 묻지 않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순정의 정석을 표현한다. 이번에 스크린 속으로 들어온 박형식은 포기를 모르는, ‘적당히’가 안 되는 청년 창업가이자 8번 배심원 권남우로 관객을 마주한다. 오는 15일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박형식을 만났다.
10.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보았는지?
박형식: 첫 영화여서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봤다. 기술시사 때 처음 봤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는지도 궁금하고, 내가 잘했나, 영화는 어떻게 나왔나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정신없이 봤다. 영화는 좋았다. 관객의 입장으로는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웃음)
10. 허진호 감독의 중편 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2017)를 보면서 스크린에서 긴 호흡으로 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형식: 허진호 감독님이랑 작업하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나에게 이런 영광이…. 한지민 선배님이랑 호흡을 맞춘 것도 굉장히 좋았고, 내용 자체도 너무 따뜻해서 힐링을 하는 시간이었다. 촬영 기간이 길지 않았지만 정말로 행복했다. 촬영 당시에는 추웠지만, 봄날 같은 작품으로 기억에 남는다.
10. 이번 작품이 상업영화로는 첫 데뷔다. 시나리오를 받으면서 가장 끌렸던 점은?
박형식: 배심원들 각각의 성격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재미있었다.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었다. 나도 굉장히 이입해서 대본을 읽었다. 너무 재미있고, 나중에는 찡하고, 가슴 먹먹해지고…. 전혀 예상 못한, 정말 성격이 안 맞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판사 앞에서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말할 때, 참 좋았다.
10. ‘배심원들’을 보기 전까지는 시드니 루멧의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이 막바로 떠올랐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한민국 최초 국민참여재판을 재구성한, 배심원이 익숙지 않은 우리 문화에서 다뤄지는, 색다른 호흡이었다.
박형식: 감독님도 그 영화가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아셨다. 하지만 그 작품이 모티브가 아니라는 것이 딱 느껴졌다. 그 작품을 참고하지 않았고, 그냥 우리끼리 정말 옹기종기 좌충우돌로…. 그 느낌이 좋았고, 맞았다고 생각한다.
10. KBS 드라마 ‘슈츠’에서 천재 변호사 역이었는데 이번 작품에 도움이 되었는지? 이를 테면 다른 배우들에게 법률용어를 설명해 준다든지.
박형식: 내가 물어보면 물어봤지 다들 잘 알고 계셨다. (웃음) 그래도 뿌듯했던 점은 내가 알아듣는다는 것. 판사가 앞으로 재판은 뭐로 넘어가겠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돼서 어떻게 되는 건지가 들리더라. 그때 외우느라 고생했는데 이런 보람은 또 있네,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는 척 하면 안 됐다. 권남우는 아무 것도 몰라야 해서. 그래서 알아도 모르는 척 했다. (웃음)
10. 자신이 연기한 8번 배심원 권남우라는 인물을 어떻게 접근했나?
박형식: 맨 처음에 감독님이 요구하신 건 “아무것도 하지 마라”였다. 연구도 하지 말고, 공부도 하지 말고. 감독님이랑 둘이서 소울메이트처럼 함께했다. 사실 촬영할 때는 감도 안 잡히고, 이렇게 찍어도 되나 걱정했는데 영화를 보니까 알겠더라. 남우라는 아이 자체는 선택을 할 때도 어떤 목적이나 개인적인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그 의미가 애매해질 수 있겠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 영화를 보고 가장 인상적인 대사를 꼽자면 권남우의 “싫어요”다.
박형식: 정말 누구도 상상 못한 말이다. 갑자기 거기서…. 사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뭔가 제의를 했을 때 “싫어요” 했다면, 상대에게 왜 싫은지 시원하게 말을 해줘야 하는데 거기서 스톱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답답했다. 감독님이 나를 설득했다. 그런데도 너무 어려웠다. 감독님은 나에게 ‘진짜 사나이’에서 아기 병사 때의 딱 그 상황과 그 모습을 원하셨다. 감독님에게 “과연 그게 연기로 될지 모르겠어요” 했다. (웃음) 드라마에서 CEO, 왕, 천재 변호사 같은 역을 하다가 27세 평범한 남자를 하려니까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나 보다. 힘을 빼는 작업을 굉장히 많이 했다.
10. 권남우는 포기를 모르는, ‘적당히’가 안 되는 청년이다. 평소 자신의 모습과 닮았는지?
박형식: 남우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끝까지 놓지 않는다. 개인회생, 파산까지 하라고 그러는데도 말도 안 되는 호신용품을 붙들고 끝까지 버틴다. 남우가 한번 시작한 건 끝까지 가는 성격이라는 점은 되게 마음에 들었다. 나도 하나를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서.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점도 나하고 좀 비슷했다. 나 역시 자꾸 물어본다.
10. 전에 조수향 배우를 인터뷰할 때 ‘배심원들’의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스크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쟁쟁한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작품이어서 서로 좋은 기운을 주고받는 현장이지 않았나?
박형식: 너무 든든하다고 해야 할까? 나만 잘하면 될 것 같은 느낌. 사실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가장 좋다. 내가 고민이 있거나 할 때도 선배님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면서 기댔다.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다.
10. 스치는 인연인지만, 청소요정 김선영과의 케미도 좋던데 어떠했는지?
박형식: 내가 볼 때 김선영 선배님의 빨아들이는 크기가 엄청나다. 다 그냥 자기 걸로 만드신다. 너무 깜짝 놀랐다. 처음 뵀는데 이미 옛날부터 오래 알고 지낸 것 같고, 표정도 너무 정감이 가고, 왠지 따라가야 될 것 같고, 믿음이 확 가는 구석이 있었다. 촬영할 때 정말 재미있었다. 빨아들이는 매력이 어마어마하시다.
10. 극 중 배심원들을 ‘법에 대해 무지한 일반인’으로 묘사하는 대사가 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배심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진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8명 배심원들의 시점에 관객도 자연스레 얹힌다고 할까.
박형식: 처음 대본을 읽을 때는 스토리 그 자체로 읽는데, 나도 그 지점이 가장 좋았다. 과하지 않고 어쩌면 이렇게 현실적이게 적어놓으셨을까, 혹시 감독님 주변에 있는 사람을 모티브로 이걸 쓰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10. 권남우는 그간 드라마에서 해온 역들과 많이 다르기는 했다.
박형식: 사실 이제껏 해왔던 작품에서는 왕, 게임회사 CEO, 변호사 그것도 천재 변호사 등등의 설정들이 딱딱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권남우였다. 작품을 하면서 감독님과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결국에 답은 없었다. 왜냐하면 특정한 설정이 없기 때문에. 캐릭터가 추상적이라서.
10. 다른 배심원들은 개인적 삶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단 한마디로도 설명이 되는. 이에 반해 권남우는 명쾌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 빚어내기 힘든 인물이었다.
박형식: 나를 위로해주시는 것 같다. 내가 느꼈던 딱 그것이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것이 있다. 감독님의 페르소나가 권남우다. 촬영하다가 문득 감독님을 봤는데, 감독님이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웃음)
10. 홍승완 감독도 이 부분에 동의했는지?
박형식: 문소리 선배님이랑 둘이서 “8번 배심원 완전 감독님이야, 감독님”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8번 배심원 권남우가 감독님의 페르소나라고 생각한다. (웃음)
10. 그럼 홍승완 감독의 작품에 앞으로도 쭉 함께인 건가?
박형식: 그런데 남우가 페르소나지 내가 아니어서. 하하.
10. 감독의 페르소나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에게도 남다른 애정이 있지 않을까?
박형식: 그렇기는 했다. 나를 좋아해 주시기는 했다. 내 옆에 계속 와서 설명해 주시고···.
10. 배우 문소리는 인터뷰에서 배심원팀, 법조원팀 단톡방이 따로 있다고 하더라. 시스템이 잘 갖춰 있다고.
박형식: 누군가가 팀별로 이렇게 하자고 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냥 저절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었다. 나도 그쪽 팀이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다. 뭔가 법조원팀에 이야기할 것이 있으면 우리끼리 의견을 조율해서 정한 후 조한철 선배님이 대표로 그쪽 방에 전한다. 지금 시스템이 굉장히 깔끔하고, 정신없지도 않고 좋다.
10. 소년의 얼굴이 담겨있다. 때가 묻지 않은, 초롱초롱한, 무구한 눈매가 특히 그러하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의 주인공 히로가 떠오른다. 본 적이 있는지?
박형식: 아직까지 철이 안 들어서 그런가? (웃음) 아, 그 만화는 못 봤다.
10. 가지고 싶다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눈매가 아니다. 군대에 다녀와서도, 이 눈매는 변치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다.
박형식: 너무 때묻지 말라는 말인가? (웃음) 이런 말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긴 한데, 내가 언제까지 ‘아무 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을 품고는 있다.
10. 지금까지 MBC 예능 ‘진짜 사나이’의 ‘아기 병사’로 당신을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가수도 배우도 아닌 인간 박형식의 민낯이 드러나는 프로였다. 아기 병사는 온 가족이 사랑하는, 호불호가 없는 캐릭터였다. 다음달 10일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대로 입대한다. 진짜 사나이, 즉 진짜 병사가 되는 심경은?
박형식: 확실히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부대에서 가장 힘든 훈련만 받고 나오는 거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군대 생활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훈련의 경험은 내가 군대 다녀오신 분들보다 더 많다. 나는 매달 그 부대에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훈련을 다 받았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헬기 타고, 레펠 타고, 파병 나가고, 탱크 타고, 도하 하고…. 그렇게 훈련의 경험은 많지만 사실상 생활, 즉 시스템적인 부분은 전혀 모른다. 아마 가서도 어리숙한 모습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10. 입대를 앞두고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있다면?
박형식: 버킷 리스트가 있었다. 꼭 한 번 스카이다이빙을 해보고 싶었다. 겁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소리는 엄청 지르는데 해보고 싶었다. 가기 전에, 이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면서 “으~~~아!” 하고 싶었는데. 스카이다이빙을 못하고 가는 것이 가장 아쉽다. (웃음)
10. KBS 드라마 ‘화랑’으로 인연을 맺은 박서준, 방탄소년단 뷔와 각별한 사이라고 들었다. 입대를 앞두고 따로 만났나?
박형식: 태형이(뷔)가 너무 바쁘다. 한국에 있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에 태형이가 한국에 있던 날이었는데, 음악 방송이 있어서 새벽부터 녹화하고 생방하고 끝난 시각이 밤 11시였다. 그 다음 날 또 나가야 하는데 형들 보고 싶다고 찾아왔다. 우린 미안했다. 내일 일정도 있는데 어떡하려고 그러냐고. 그런데 자기도 이때 아니면 형들을 볼 수가 없으니까 왔다고 하더라. 내가 동생이 별로 없는데 너무 이쁜 동생이 생겼다. 참 기분이 좋다. 이제껏 내가 받았던 사랑과 이쁨을 몰아주려고 한다.
10. 당신에게 사랑과 이쁨을 준 형들에는 임시완도 있을 것 같다. 여러 모로 자극도, 용기도 주는 존재일 것 같은.
박형식: 시완이 형이랑은 거의 소울메이트다. 형 동생이지만 거의 친구처럼 지내는. (웃음)
10. 이제는 가수 박형식보다 배우 박형식이라는 타이틀에 익숙한지?
박형식: 회사도 옮겼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수식어는 너무 부끄럽다.
10. 그래도 ‘아기 병사’라는 수식어는 할아버지가 되도 따라붙을 것 같은데.
박형식: 마치 ‘트루먼 쇼’(1998)라는 영화 같지 않나?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렸지만. 온 국민이 나의 성장기를 보고 응원해 주시는, 따뜻한 마음을 느꼈던 적이 있다. 내가 촬영하고 있는데 직장인 남자 분이 지나가면서 잘 보고 있다고 응원을 해주고 가셨다. 또 식당에서 매니저랑 삼계탕을 먹고 있는데 혼자서 소주에 음식을 드시던 아저씨가 인사를 하시길래 같이 했다. 나중에 계산을 하려고 보니, 그 아저씨가 이미 해주고 가셨다. 너무 고생한다고 밥값을 내주신 것이다. 진심으로 응원해주신다는 마음을 느꼈다. 너무 감사했다.
10. 끝으로, 좋아하는 배우 혹은 연기가 있다면?
박형식: 에드워드 노튼을 좋아한다. 자기 얼굴 활용을 너무 잘하는 배우다. 한없이 따뜻할 때는 웃는 얼굴이 귀엽지만, 거기서 반전이 있는 얼굴도 튀어나온다. 그런 매력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박형식은 푸릇한 첫사랑의 감정이 결결이 담긴,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의 소년 히로와 똑 닮았다. 그에게는 무구한 소년의 표정이 있다. 때 묻지 않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순정의 정석을 표현한다. 이번에 스크린 속으로 들어온 박형식은 포기를 모르는, ‘적당히’가 안 되는 청년 창업가이자 8번 배심원 권남우로 관객을 마주한다. 오는 15일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박형식을 만났다.
10.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보았는지?
박형식: 첫 영화여서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봤다. 기술시사 때 처음 봤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는지도 궁금하고, 내가 잘했나, 영화는 어떻게 나왔나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정신없이 봤다. 영화는 좋았다. 관객의 입장으로는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웃음)
10. 허진호 감독의 중편 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2017)를 보면서 스크린에서 긴 호흡으로 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형식: 허진호 감독님이랑 작업하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나에게 이런 영광이…. 한지민 선배님이랑 호흡을 맞춘 것도 굉장히 좋았고, 내용 자체도 너무 따뜻해서 힐링을 하는 시간이었다. 촬영 기간이 길지 않았지만 정말로 행복했다. 촬영 당시에는 추웠지만, 봄날 같은 작품으로 기억에 남는다.
10. 이번 작품이 상업영화로는 첫 데뷔다. 시나리오를 받으면서 가장 끌렸던 점은?
박형식: 배심원들 각각의 성격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재미있었다.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었다. 나도 굉장히 이입해서 대본을 읽었다. 너무 재미있고, 나중에는 찡하고, 가슴 먹먹해지고…. 전혀 예상 못한, 정말 성격이 안 맞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판사 앞에서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말할 때, 참 좋았다.
10. ‘배심원들’을 보기 전까지는 시드니 루멧의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이 막바로 떠올랐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한민국 최초 국민참여재판을 재구성한, 배심원이 익숙지 않은 우리 문화에서 다뤄지는, 색다른 호흡이었다.
박형식: 감독님도 그 영화가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아셨다. 하지만 그 작품이 모티브가 아니라는 것이 딱 느껴졌다. 그 작품을 참고하지 않았고, 그냥 우리끼리 정말 옹기종기 좌충우돌로…. 그 느낌이 좋았고, 맞았다고 생각한다.
10. KBS 드라마 ‘슈츠’에서 천재 변호사 역이었는데 이번 작품에 도움이 되었는지? 이를 테면 다른 배우들에게 법률용어를 설명해 준다든지.
박형식: 내가 물어보면 물어봤지 다들 잘 알고 계셨다. (웃음) 그래도 뿌듯했던 점은 내가 알아듣는다는 것. 판사가 앞으로 재판은 뭐로 넘어가겠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돼서 어떻게 되는 건지가 들리더라. 그때 외우느라 고생했는데 이런 보람은 또 있네,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는 척 하면 안 됐다. 권남우는 아무 것도 몰라야 해서. 그래서 알아도 모르는 척 했다. (웃음)
10. 자신이 연기한 8번 배심원 권남우라는 인물을 어떻게 접근했나?
박형식: 맨 처음에 감독님이 요구하신 건 “아무것도 하지 마라”였다. 연구도 하지 말고, 공부도 하지 말고. 감독님이랑 둘이서 소울메이트처럼 함께했다. 사실 촬영할 때는 감도 안 잡히고, 이렇게 찍어도 되나 걱정했는데 영화를 보니까 알겠더라. 남우라는 아이 자체는 선택을 할 때도 어떤 목적이나 개인적인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그 의미가 애매해질 수 있겠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형식: 정말 누구도 상상 못한 말이다. 갑자기 거기서…. 사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뭔가 제의를 했을 때 “싫어요” 했다면, 상대에게 왜 싫은지 시원하게 말을 해줘야 하는데 거기서 스톱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답답했다. 감독님이 나를 설득했다. 그런데도 너무 어려웠다. 감독님은 나에게 ‘진짜 사나이’에서 아기 병사 때의 딱 그 상황과 그 모습을 원하셨다. 감독님에게 “과연 그게 연기로 될지 모르겠어요” 했다. (웃음) 드라마에서 CEO, 왕, 천재 변호사 같은 역을 하다가 27세 평범한 남자를 하려니까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나 보다. 힘을 빼는 작업을 굉장히 많이 했다.
10. 권남우는 포기를 모르는, ‘적당히’가 안 되는 청년이다. 평소 자신의 모습과 닮았는지?
박형식: 남우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끝까지 놓지 않는다. 개인회생, 파산까지 하라고 그러는데도 말도 안 되는 호신용품을 붙들고 끝까지 버틴다. 남우가 한번 시작한 건 끝까지 가는 성격이라는 점은 되게 마음에 들었다. 나도 하나를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서.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점도 나하고 좀 비슷했다. 나 역시 자꾸 물어본다.
10. 전에 조수향 배우를 인터뷰할 때 ‘배심원들’의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스크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쟁쟁한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작품이어서 서로 좋은 기운을 주고받는 현장이지 않았나?
박형식: 너무 든든하다고 해야 할까? 나만 잘하면 될 것 같은 느낌. 사실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가장 좋다. 내가 고민이 있거나 할 때도 선배님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면서 기댔다.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다.
10. 스치는 인연인지만, 청소요정 김선영과의 케미도 좋던데 어떠했는지?
박형식: 내가 볼 때 김선영 선배님의 빨아들이는 크기가 엄청나다. 다 그냥 자기 걸로 만드신다. 너무 깜짝 놀랐다. 처음 뵀는데 이미 옛날부터 오래 알고 지낸 것 같고, 표정도 너무 정감이 가고, 왠지 따라가야 될 것 같고, 믿음이 확 가는 구석이 있었다. 촬영할 때 정말 재미있었다. 빨아들이는 매력이 어마어마하시다.
10. 극 중 배심원들을 ‘법에 대해 무지한 일반인’으로 묘사하는 대사가 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배심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진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8명 배심원들의 시점에 관객도 자연스레 얹힌다고 할까.
박형식: 처음 대본을 읽을 때는 스토리 그 자체로 읽는데, 나도 그 지점이 가장 좋았다. 과하지 않고 어쩌면 이렇게 현실적이게 적어놓으셨을까, 혹시 감독님 주변에 있는 사람을 모티브로 이걸 쓰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10. 권남우는 그간 드라마에서 해온 역들과 많이 다르기는 했다.
박형식: 사실 이제껏 해왔던 작품에서는 왕, 게임회사 CEO, 변호사 그것도 천재 변호사 등등의 설정들이 딱딱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권남우였다. 작품을 하면서 감독님과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결국에 답은 없었다. 왜냐하면 특정한 설정이 없기 때문에. 캐릭터가 추상적이라서.
10. 다른 배심원들은 개인적 삶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단 한마디로도 설명이 되는. 이에 반해 권남우는 명쾌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 빚어내기 힘든 인물이었다.
박형식: 나를 위로해주시는 것 같다. 내가 느꼈던 딱 그것이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것이 있다. 감독님의 페르소나가 권남우다. 촬영하다가 문득 감독님을 봤는데, 감독님이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웃음)
10. 홍승완 감독도 이 부분에 동의했는지?
박형식: 문소리 선배님이랑 둘이서 “8번 배심원 완전 감독님이야, 감독님”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8번 배심원 권남우가 감독님의 페르소나라고 생각한다. (웃음)
10. 그럼 홍승완 감독의 작품에 앞으로도 쭉 함께인 건가?
박형식: 그런데 남우가 페르소나지 내가 아니어서. 하하.
10. 감독의 페르소나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에게도 남다른 애정이 있지 않을까?
박형식: 그렇기는 했다. 나를 좋아해 주시기는 했다. 내 옆에 계속 와서 설명해 주시고···.
10. 배우 문소리는 인터뷰에서 배심원팀, 법조원팀 단톡방이 따로 있다고 하더라. 시스템이 잘 갖춰 있다고.
박형식: 누군가가 팀별로 이렇게 하자고 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냥 저절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었다. 나도 그쪽 팀이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다. 뭔가 법조원팀에 이야기할 것이 있으면 우리끼리 의견을 조율해서 정한 후 조한철 선배님이 대표로 그쪽 방에 전한다. 지금 시스템이 굉장히 깔끔하고, 정신없지도 않고 좋다.
박형식: 아직까지 철이 안 들어서 그런가? (웃음) 아, 그 만화는 못 봤다.
10. 가지고 싶다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눈매가 아니다. 군대에 다녀와서도, 이 눈매는 변치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다.
박형식: 너무 때묻지 말라는 말인가? (웃음) 이런 말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긴 한데, 내가 언제까지 ‘아무 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을 품고는 있다.
10. 지금까지 MBC 예능 ‘진짜 사나이’의 ‘아기 병사’로 당신을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가수도 배우도 아닌 인간 박형식의 민낯이 드러나는 프로였다. 아기 병사는 온 가족이 사랑하는, 호불호가 없는 캐릭터였다. 다음달 10일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대로 입대한다. 진짜 사나이, 즉 진짜 병사가 되는 심경은?
박형식: 확실히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부대에서 가장 힘든 훈련만 받고 나오는 거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군대 생활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훈련의 경험은 내가 군대 다녀오신 분들보다 더 많다. 나는 매달 그 부대에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훈련을 다 받았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헬기 타고, 레펠 타고, 파병 나가고, 탱크 타고, 도하 하고…. 그렇게 훈련의 경험은 많지만 사실상 생활, 즉 시스템적인 부분은 전혀 모른다. 아마 가서도 어리숙한 모습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10. 입대를 앞두고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있다면?
박형식: 버킷 리스트가 있었다. 꼭 한 번 스카이다이빙을 해보고 싶었다. 겁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소리는 엄청 지르는데 해보고 싶었다. 가기 전에, 이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면서 “으~~~아!” 하고 싶었는데. 스카이다이빙을 못하고 가는 것이 가장 아쉽다. (웃음)
10. KBS 드라마 ‘화랑’으로 인연을 맺은 박서준, 방탄소년단 뷔와 각별한 사이라고 들었다. 입대를 앞두고 따로 만났나?
박형식: 태형이(뷔)가 너무 바쁘다. 한국에 있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에 태형이가 한국에 있던 날이었는데, 음악 방송이 있어서 새벽부터 녹화하고 생방하고 끝난 시각이 밤 11시였다. 그 다음 날 또 나가야 하는데 형들 보고 싶다고 찾아왔다. 우린 미안했다. 내일 일정도 있는데 어떡하려고 그러냐고. 그런데 자기도 이때 아니면 형들을 볼 수가 없으니까 왔다고 하더라. 내가 동생이 별로 없는데 너무 이쁜 동생이 생겼다. 참 기분이 좋다. 이제껏 내가 받았던 사랑과 이쁨을 몰아주려고 한다.
10. 당신에게 사랑과 이쁨을 준 형들에는 임시완도 있을 것 같다. 여러 모로 자극도, 용기도 주는 존재일 것 같은.
박형식: 시완이 형이랑은 거의 소울메이트다. 형 동생이지만 거의 친구처럼 지내는. (웃음)
10. 이제는 가수 박형식보다 배우 박형식이라는 타이틀에 익숙한지?
박형식: 회사도 옮겼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수식어는 너무 부끄럽다.
10. 그래도 ‘아기 병사’라는 수식어는 할아버지가 되도 따라붙을 것 같은데.
박형식: 마치 ‘트루먼 쇼’(1998)라는 영화 같지 않나?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렸지만. 온 국민이 나의 성장기를 보고 응원해 주시는, 따뜻한 마음을 느꼈던 적이 있다. 내가 촬영하고 있는데 직장인 남자 분이 지나가면서 잘 보고 있다고 응원을 해주고 가셨다. 또 식당에서 매니저랑 삼계탕을 먹고 있는데 혼자서 소주에 음식을 드시던 아저씨가 인사를 하시길래 같이 했다. 나중에 계산을 하려고 보니, 그 아저씨가 이미 해주고 가셨다. 너무 고생한다고 밥값을 내주신 것이다. 진심으로 응원해주신다는 마음을 느꼈다. 너무 감사했다.
10. 끝으로, 좋아하는 배우 혹은 연기가 있다면?
박형식: 에드워드 노튼을 좋아한다. 자기 얼굴 활용을 너무 잘하는 배우다. 한없이 따뜻할 때는 웃는 얼굴이 귀엽지만, 거기서 반전이 있는 얼굴도 튀어나온다. 그런 매력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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