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tvN 토일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한 장면. 사진제공=tvN
tvN 토일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한 장면. 사진제공=tvN
“들을수록 황당하고 이상할 겁니다. 그래도 이야기의 시작이 궁금하시다면···. 제가 알함브라 궁전에 간 것은 아니었어요. 포르투갈 여행을 갔다가 알함브라 궁전에서 서로 싸우고 일사병까지 얻어 온 작가들을 만난 거예요. 에피소드가 너무 재밌었죠. 일사병에 걸린 삼류 기타리스트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 이 드라마예요. 처음에는 드라마가 아니라 블랙코미디 시놉시스였고요.”

tvN 토일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하 ‘알함브라’)을 집필한 송재정 작가의 말이다. 송 작가는 15일 ‘알함브라’의 종영을 2회 앞두고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공동 인터뷰를 갖고 이렇게 말했다. ‘알함브라’는 국내 최초로 AR(증강 현실)과 게임을 접목한 드라마로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게다가 예측불가의 전개로 시청자들을 꾸준히 끌어들이고 있다. 첫 회부터 7.5%(닐슨코리아)로 시작한 시청률은 회를 거듭하며 상승세를 타 지난주 14회는 10.0%를 기록했다.

송 작가는 한계를 뛰어넘는 신선함으로 유명하다. 그의 이력이 이를 증명한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거침없이 하이킥’ 등의 시트콤 작가로 약 10년간 일하다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건 ‘인현왕후의 남자'(2012)를 통해서였다. ‘몰아보기’ 신드롬을 부른 ‘인현왕후의 남자’ 이후에는 ‘나인: 아홉 번의 시간 여행’과 ‘W’까지 연타석 흥행에 성공하며 ‘믿고 보는 작가’가 됐다. 하지만 처음 ‘인현왕후의 남자’를 드라마 제작사에 보여줬을 때는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제가 드라마계에선 신인 작가인 데다 시트콤을 하다 갑자기 판타지물을 내놓은 거예요. ‘이게 말이 돼?’라는 둥 너무 많은 사람들의 구박을 받았어요. 한 방송국에서는 어떤 박사님이 쓴 ‘인현왕후의 남자’ 비판 자료를 줬는데 ‘판타지의 구조를 무시했고 기본도 모른다. 애초에 구조를 잘못 짰다’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저는 ‘판타지의 구조를 누가 세웠나? 내가 만들어가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지금은 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세요.(웃음)”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집필한 송재정 작가. 사진제공=tvN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집필한 송재정 작가. 사진제공=tvN
분야를 바꾸고도 인정 받은 송 작가의 필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는 자신을 “혼종”이라고 표현했다. “정통 드라마를 많이 벗어난 이상하고 낯선 혼종의 이야기를 짜는 것 같다”고 했다.

“드라마의 작법을 공부해본 적이 없어요. 짧은 단막극으로 끝나는 시트콤과는 달리 드라마는 기본으로 16개의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제 감정을 16개로 나누고, 엔딩도 16개를 정해놨어요. 1회를 하나의 단막극처럼, 그 엔딩이 정점을 찍도록 이어나가는 식으로 구성해요. 평소에는 오히려 소설처럼 스토리텔링이 있는 책 보다는 인물 평전이나 인문 서적을 많이 봐요. 잡지도 많이 보고, 포털사이트의 포스트도 좋아하고 잡다하게 보죠.(웃음)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느꼈어요.”

송 작가는 ‘알함브라’의 유진우(현빈)도 세계적인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알함브라’의 인물 구상부터 소재, 발상까지 독특하지만 송 작가는 “구조는 의외로 보편적”이라고 말했다.

“저는 이야기를 고대 그리스 영웅 신화에서 출발해요. 유진우는 오디세우스 같은 인물입니다. 모든 걸 가진 잘난 왕이지만 전쟁에 참가하러 갔다가 반격도 당하고, 사이렌을 만나고 요정한테 쫓기기도 하는 등 신화적인 일을 거쳐요. 그처럼 마법과 현실, 양쪽의 고난을 겪는 것이 유진우의 이야기예요.”

이러한 신화적인 인물의 여정은 ‘알함브라’ 뿐만 아니라 ‘W’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됐다. 송 작가는 “마치 재벌이었다가 영웅이 되는 이야기의 ‘배트맨’ ‘아이언맨’처럼, 내 드라마 주인공들도 히어로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내 주인공들은 전형적인 히어로이지만, 묘사 지점을 어디로 잡는지에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W’에서도 강철(이종석)은 이미 영웅이었지만 저는 에필로그처럼 드라마를 전개했어요. ‘알함브라’의 유진우도 이미 재벌이지만 어떻게 퀘스트에 목숨을 건 ‘만렙 영웅’이 되어가는지 그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그렇게 진짜 영웅이 되는 과정이 ‘알함브라’의 메시지에요.”

송 작가가 “인간 감정의 리얼리티를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판타지는 오히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저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의 감정을 간과하고 금방 영웅이 되어버리도록 쓰지는 못해요. 감정의 극복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희주(박신혜)와 진우의 관계도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나치치 않았어요. 그래서 어떤 시청자들은 중간 과정이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한 장면. 사진제공=tvN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한 장면. 사진제공=tvN
나름의 독특한 장르를 구축한 탓에 ‘알함브라’ 이후의 작품에도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송 작가는 “처음에 시트콤을 할 때는 이런 드라마를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호기심을 쫓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시트콤이 너무 재밌어서 하다 보니 10년이 지났어요. 코미디만 하다 보니 판타지도 하고 싶어서 하게 됐고, 판타지 하다 보니 좀 더 깊은 멜로가 하고 싶어서 점점 확대된 것 같아요. 제 욕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자꾸 ‘혼종’이 나오는 것 같아요. 하하. 놀라운 판타지의 세계를 그리거나 규모감 있는 작품을 좋아해요. 리들리 스콧이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인간의 감정을 엄청나게 잘 다루는 이안 감독을 존경합니다. ‘알함브라’가 끝나면 추천 받은 작품인 ‘밴더스내치'(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한 인터랙티브 작품)를 볼 예정이에요. 옛날에도 해보고 싶었던 장르거든요.”

‘알함브라’의 결말이 궁금해 팁을 요청했다. 송 작가는 “결말이 타임슬립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엠마(박신혜)의 중요한 기능이 남아있어요. 엠마가 왜 엠마여야 하는지 15~16회에 나오고요. 엠마가 16회에 여러분을 많이 놀라게 할 테니 기대해주세요.”

‘알함브라’ 15, 16회는 오는 19일과 20일 밤 9시에 방송된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