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이엘리야 : 마지막 재판을 마치고 돌아오는 한세상에게 민사44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마무리를 하는데, 그 장면을 대본으로 읽을 때부터 뭉클했어요. 울컥한 마음으로 마무리를 해야 하는게 부담됐죠. “진짜 영웅의 이야기”라고 하면서 그들을 바라보는데, 저절로 감정이 나왔던 것 같아요. 찍을 때 진짜 눈물이 나더군요.
10.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이엘리야 : 이전 작품에서 악역을 많이 했어요. 어쩔 수 없이 외로웠죠. 물론 촬영장에서 동료들과 잘 지내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남모를 외로움과 거리감이 생기거든요. 이번 작품은 제가 마음껏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았잖아요.(웃음) 오랜만에 마음으로 행복하고, 배우로서도 즐거운 작품을 만났어요. 아주 행복한 현장이었습니다.
10. 사전제작이서 다른 점도 있었습니까?
이엘리야 : 여유 있게 시청할 수 있었어요. 극 중 이도연이란 인물이 이렇게 표현돼 나오는구나, 뭉클했어요. 사전제작이 아닌 드라마는 그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체감이 사라지지 않은 채로 보는데 이번에는 그리움 같은 새로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10. 도연이란 인물을 어떻게 풀어내려고 했나요?
이엘리야 : 말을 많이 하는 인물이 아니에요. 극 후반으로 가면서 정보왕(류덕환)과 이야기를 나누긴 하지만, 일상의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죠. 그러면서 해야 할 말은 다 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인물이에요. 다른 이들이 ‘저 사람은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해하는데 늘 절제된 표정을 짓고 있죠.
10. 냉철하고 당당한 커리어 우먼을 표현할 때 주로 단발머리를 하는데, 그 반대여서 신선했어요.
이엘리야 : 전작에서 단발머리를 해서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무엇보다 이도연이란 인물을 만났을 때 이번엔 이엘리야로서, 제가 가진 것을 다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가장 저와 닮은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원래 어두운 색깔의 머리카락을 좋아해요. 긴 것도 저에게는 익숙한데, 데뷔 후에 작품을 하면서 단발을 많이 했어요. ‘미스 함무라비’의 이도연은 이엘리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은 듯했고요.
10. 자신을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이 작품을 마치는 게 더 아쉽겠어요.
이엘리야 : 연극을 할 때도, 데뷔한 뒤에도 제가 연기한 삶을 빠져나오지 못해 일상이 흔들리는 걸 항상 경계하고, 중심을 잡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전작의 여운이 오래 가는 데 대해 공감을 못했어요. 물론 악역을 하고 나면 작품이 끝난 뒤에도 말투나 표정이 당분간 남아 있긴 해도 그리워하고 보내기 싫은 느낌은 이 작품이 처음이에요. SNS에 이도연을 보내는 사진과 말을 올리는데 마음이 울컥하더라고요.
10. 좋은 의미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군요.
이엘리야 : 자신 있게 터닝 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 ‘미스 함무라비’는 다른 장치 없이 이야기가 가진 힘으로 가는 작품이어서 배우들의 부담도 컸을 것 같은데요.
이엘리야 : 사실 우려한 부분도 있어요.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는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가득한 데다 악역도 없고 자극적인 사건도 없어요. 소소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루고 있죠. 근데 대본을 읽으면서 매회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시청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야기가 좋은 만큼 제 마음은 물론 보는 이들의 마음도 울린 것 같아요. 그저 이도연과 함께 하고 싶다는 작은 마음에 출발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해주고 좋아해 주셔서 희망을 느꼈습니다.
10. 도연의 ‘쏟아지는 비…’ 대사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어요. 사실 그 대사는 대본을 집필한 문유석 판사가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이죠?
이엘리야 : 맞아요, 그 대사 촬영을 하기 전에 문 작가님이 말해주셨어요. “정말 좋아하는 책에 있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라고요.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인데, 저도 사서 읽었어요. 대사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싶어서죠. ‘쏟아지는 비를 멈출 수 없다면 같이 맞아야 된다’는 말인데, 참 좋았습니다.
10. 모든 캐릭터가 작가로 나선 문유석 판사의 모습이 조금씩 투영된 모습인데, 이도연에게는 문학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습니다.
이엘리야 : 이상과 기형도의 시를 비롯해 작가님이 좋아하는 책들이 저도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신기했어요.(웃음) 현재 판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 아니라 도연에게는 일을 마친 뒤 자신의 꿈을 키워온 작가님의 모습을 투영해, 저에게는 더 의미가 있었죠. 아무도 몰라주는 자신의 노력을 녹여주셔서요.
10. 문유석 작가와 이야기도 많이 나눴습니까?
이엘리야 : 현장에 자주 오는 작가였어요.(웃음) “이도연과 정보왕이 이렇게 말을 하네~”라며 소년같이 좋아하셨죠. 모니터를 할 때는 판사님이 아니라 작가님 같았고요.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도연의 직업이 속기사이니까 실제 속기사님도 소개해주셨어요. 작가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자신의 첫 배우들이어서 애틋함이 있다고요.(웃음)
10. 속기사라는 직업도 생소했을 것 같아요.
이엘리야 : 문 작가님이 재판하는 현장을 가서 봤어요. 촬영장도 실제 재판장이랑 아주 흡사했죠. 속기사님이 자판 치는 것을 보고 연구했는데, 속기사들이 쓰는 자판은 다르더라고요. 소품팀에 부탁해서 자판을 받아 손 모양과 속도 등을 연습했어요. 속기사님이 일하는 자리는 어떻게 돼 있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사진도 찍어 보내주셨어요.(웃음) 속기사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밀한 면까지 보고 듣고, 재판이 끝난 뒤 녹음된 것들을 다시 들으면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구나, 감탄했어요. 단 한순간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안 되죠.
10. 이 작품으로 연기관도 달라졌습니까?
이엘리야 : 이 작품이 특별했던 건 제가 추구하는 연기를 할 수 있어서예요. 악역을 맡았을 때는 제 상태와 감정을 다 보여주고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반면 이도연은 그렇게 하면 연기를 한다는 티가 날 것 같았죠. 성동일 선배님을 정말 한세상 부장 판사로 생각하고 대했어요. 그랬더니 이도연이라는 인물로 자연스럽게 감정이 나왔고, 의도하지 않는 것들이 표현됐죠. 시청자들은 어떻게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연기하지 않는 연기를 했어요.(웃음) 연기 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 저만의 노하우가 생겨, 연기관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저는 어떤 인물을 만났을 때 그 인물로 존재했어요. 이도연이 실제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그의 삶을 사는 거죠. 연기를 하면서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해온 역할들이 유독 강한 인물이어서, 이번 도연이란 인물이 더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극적인 상황도 없어서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10. 류덕환과의 연기 호흡도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이엘리야 : 연기를 할 때, 대본에 없는 약속하지 않은 상황도 나오잖아요. 류덕환 오빠는 매번 다양한 것들을 갖고 왔어요. 새롭고 생동감이 넘쳤죠. 살아있는 연기를 해준 덕분에 저는 리액션을 받기만 했는데 좋은 장면이 나왔던 것 같아요.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죠. 항상 저의 상반신만 찍고 있는데도 앞에서 똑같이 연기를 해줘요. 어느 날은 뺨을 때리는 장면이었는데, 사실 상대방은 찍히지 않는 상태이니까 제 팔만 때리는 척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앞에서 연기를 너무 잘 해주고 있어서 감정이 올라왔어요. 안 찍히는데, 찍힐 때보다 더 세게 때렸어요.(웃음) 성동일 선배님께도 감사해요. 한세상 부장판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저는 선배님의 상반신을 촬영하는 줄 알고 정말 자연스럽게 대화하듯 답을 했어요. 나중에 보니까 저도 같이 찍혔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이 나왔죠. 정말 행복했어요. 카메라를 위한 연기가 아니라 진짜 대화. 선배님이 잘 받아주신 덕분이죠.
10. ‘미스 함무라비’를 통해 연기하는 힘을 얻었겠습니다.
이엘리야 : 나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스물아홉 살에 대한 질문이 나와서 생각해 보게 됐어요. 20대의 마무리를 ‘미스 함무라비’처럼 아름다운 작품으로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게다가 저는 그냥 연기를 했을 뿐인데 ‘감동받았다’ ‘감사하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있어서 저에게도 참 감사한 일이에요. 이런 경험들이 낯설고, 모두 처음이죠. 제가 더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20대의 마지막을 추억하면서 글을 한 번 써보고 싶어요. 올해가 가기 전에 시간을 내서 제가 느낀 감정을 글로 녹이면 어떨까, 하고요. 시가 될지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남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 어떤 배우가 되고 싶습니까?
이엘리야 : ‘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하고, 보고 싶은 그런 배우요.(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낯설고 신기하고 행복했습니다.”10. 마지막 회에서 도연이 한세상(성동일)을 비롯해 임바른·박차오름(고아라) 등 판사들에게 인사하는 장면은 뭉클했습니다. 찍을 때는 어땠나요?
배우 이엘리야가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극본 문유석, 연출 곽정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극 중 서울중앙지법 민사44부 속기 실무관 이도연 역을 맡은 그는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과 차분한 표정, 똑 부러지는 말투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회를 거듭하면서는 내면의 풍부한 감성을 드러내며 극을 따뜻하게 감쌌다. 2013년 tvN 드라마 ‘빠스껫 볼’로 데뷔한 이엘리야는 ‘미스 함무라비’를 만나 더 길게 나아갈 힘을 얻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20대의 언덕 끝자락에서 당당하게 ‘터닝 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난 배우. 이엘리야는 “늘 궁금하고 보고 싶은 연기자가 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엘리야 : 마지막 재판을 마치고 돌아오는 한세상에게 민사44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마무리를 하는데, 그 장면을 대본으로 읽을 때부터 뭉클했어요. 울컥한 마음으로 마무리를 해야 하는게 부담됐죠. “진짜 영웅의 이야기”라고 하면서 그들을 바라보는데, 저절로 감정이 나왔던 것 같아요. 찍을 때 진짜 눈물이 나더군요.
10.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이엘리야 : 이전 작품에서 악역을 많이 했어요. 어쩔 수 없이 외로웠죠. 물론 촬영장에서 동료들과 잘 지내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남모를 외로움과 거리감이 생기거든요. 이번 작품은 제가 마음껏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았잖아요.(웃음) 오랜만에 마음으로 행복하고, 배우로서도 즐거운 작품을 만났어요. 아주 행복한 현장이었습니다.
10. 사전제작이서 다른 점도 있었습니까?
이엘리야 : 여유 있게 시청할 수 있었어요. 극 중 이도연이란 인물이 이렇게 표현돼 나오는구나, 뭉클했어요. 사전제작이 아닌 드라마는 그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체감이 사라지지 않은 채로 보는데 이번에는 그리움 같은 새로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10. 도연이란 인물을 어떻게 풀어내려고 했나요?
이엘리야 : 말을 많이 하는 인물이 아니에요. 극 후반으로 가면서 정보왕(류덕환)과 이야기를 나누긴 하지만, 일상의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죠. 그러면서 해야 할 말은 다 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인물이에요. 다른 이들이 ‘저 사람은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해하는데 늘 절제된 표정을 짓고 있죠.
10. 냉철하고 당당한 커리어 우먼을 표현할 때 주로 단발머리를 하는데, 그 반대여서 신선했어요.
이엘리야 : 전작에서 단발머리를 해서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무엇보다 이도연이란 인물을 만났을 때 이번엔 이엘리야로서, 제가 가진 것을 다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가장 저와 닮은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원래 어두운 색깔의 머리카락을 좋아해요. 긴 것도 저에게는 익숙한데, 데뷔 후에 작품을 하면서 단발을 많이 했어요. ‘미스 함무라비’의 이도연은 이엘리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은 듯했고요.
10. 자신을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이 작품을 마치는 게 더 아쉽겠어요.
이엘리야 : 연극을 할 때도, 데뷔한 뒤에도 제가 연기한 삶을 빠져나오지 못해 일상이 흔들리는 걸 항상 경계하고, 중심을 잡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전작의 여운이 오래 가는 데 대해 공감을 못했어요. 물론 악역을 하고 나면 작품이 끝난 뒤에도 말투나 표정이 당분간 남아 있긴 해도 그리워하고 보내기 싫은 느낌은 이 작품이 처음이에요. SNS에 이도연을 보내는 사진과 말을 올리는데 마음이 울컥하더라고요.
이엘리야 : 자신 있게 터닝 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 ‘미스 함무라비’는 다른 장치 없이 이야기가 가진 힘으로 가는 작품이어서 배우들의 부담도 컸을 것 같은데요.
이엘리야 : 사실 우려한 부분도 있어요.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는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가득한 데다 악역도 없고 자극적인 사건도 없어요. 소소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루고 있죠. 근데 대본을 읽으면서 매회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시청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야기가 좋은 만큼 제 마음은 물론 보는 이들의 마음도 울린 것 같아요. 그저 이도연과 함께 하고 싶다는 작은 마음에 출발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해주고 좋아해 주셔서 희망을 느꼈습니다.
10. 도연의 ‘쏟아지는 비…’ 대사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어요. 사실 그 대사는 대본을 집필한 문유석 판사가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이죠?
이엘리야 : 맞아요, 그 대사 촬영을 하기 전에 문 작가님이 말해주셨어요. “정말 좋아하는 책에 있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라고요.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인데, 저도 사서 읽었어요. 대사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싶어서죠. ‘쏟아지는 비를 멈출 수 없다면 같이 맞아야 된다’는 말인데, 참 좋았습니다.
10. 모든 캐릭터가 작가로 나선 문유석 판사의 모습이 조금씩 투영된 모습인데, 이도연에게는 문학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습니다.
이엘리야 : 이상과 기형도의 시를 비롯해 작가님이 좋아하는 책들이 저도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신기했어요.(웃음) 현재 판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 아니라 도연에게는 일을 마친 뒤 자신의 꿈을 키워온 작가님의 모습을 투영해, 저에게는 더 의미가 있었죠. 아무도 몰라주는 자신의 노력을 녹여주셔서요.
10. 문유석 작가와 이야기도 많이 나눴습니까?
이엘리야 : 현장에 자주 오는 작가였어요.(웃음) “이도연과 정보왕이 이렇게 말을 하네~”라며 소년같이 좋아하셨죠. 모니터를 할 때는 판사님이 아니라 작가님 같았고요.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도연의 직업이 속기사이니까 실제 속기사님도 소개해주셨어요. 작가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자신의 첫 배우들이어서 애틋함이 있다고요.(웃음)
10. 속기사라는 직업도 생소했을 것 같아요.
이엘리야 : 문 작가님이 재판하는 현장을 가서 봤어요. 촬영장도 실제 재판장이랑 아주 흡사했죠. 속기사님이 자판 치는 것을 보고 연구했는데, 속기사들이 쓰는 자판은 다르더라고요. 소품팀에 부탁해서 자판을 받아 손 모양과 속도 등을 연습했어요. 속기사님이 일하는 자리는 어떻게 돼 있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사진도 찍어 보내주셨어요.(웃음) 속기사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밀한 면까지 보고 듣고, 재판이 끝난 뒤 녹음된 것들을 다시 들으면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구나, 감탄했어요. 단 한순간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안 되죠.
10. 이 작품으로 연기관도 달라졌습니까?
이엘리야 : 이 작품이 특별했던 건 제가 추구하는 연기를 할 수 있어서예요. 악역을 맡았을 때는 제 상태와 감정을 다 보여주고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반면 이도연은 그렇게 하면 연기를 한다는 티가 날 것 같았죠. 성동일 선배님을 정말 한세상 부장 판사로 생각하고 대했어요. 그랬더니 이도연이라는 인물로 자연스럽게 감정이 나왔고, 의도하지 않는 것들이 표현됐죠. 시청자들은 어떻게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연기하지 않는 연기를 했어요.(웃음) 연기 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 저만의 노하우가 생겨, 연기관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저는 어떤 인물을 만났을 때 그 인물로 존재했어요. 이도연이 실제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그의 삶을 사는 거죠. 연기를 하면서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해온 역할들이 유독 강한 인물이어서, 이번 도연이란 인물이 더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극적인 상황도 없어서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엘리야 : 연기를 할 때, 대본에 없는 약속하지 않은 상황도 나오잖아요. 류덕환 오빠는 매번 다양한 것들을 갖고 왔어요. 새롭고 생동감이 넘쳤죠. 살아있는 연기를 해준 덕분에 저는 리액션을 받기만 했는데 좋은 장면이 나왔던 것 같아요.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죠. 항상 저의 상반신만 찍고 있는데도 앞에서 똑같이 연기를 해줘요. 어느 날은 뺨을 때리는 장면이었는데, 사실 상대방은 찍히지 않는 상태이니까 제 팔만 때리는 척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앞에서 연기를 너무 잘 해주고 있어서 감정이 올라왔어요. 안 찍히는데, 찍힐 때보다 더 세게 때렸어요.(웃음) 성동일 선배님께도 감사해요. 한세상 부장판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저는 선배님의 상반신을 촬영하는 줄 알고 정말 자연스럽게 대화하듯 답을 했어요. 나중에 보니까 저도 같이 찍혔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이 나왔죠. 정말 행복했어요. 카메라를 위한 연기가 아니라 진짜 대화. 선배님이 잘 받아주신 덕분이죠.
10. ‘미스 함무라비’를 통해 연기하는 힘을 얻었겠습니다.
이엘리야 : 나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스물아홉 살에 대한 질문이 나와서 생각해 보게 됐어요. 20대의 마무리를 ‘미스 함무라비’처럼 아름다운 작품으로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게다가 저는 그냥 연기를 했을 뿐인데 ‘감동받았다’ ‘감사하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있어서 저에게도 참 감사한 일이에요. 이런 경험들이 낯설고, 모두 처음이죠. 제가 더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20대의 마지막을 추억하면서 글을 한 번 써보고 싶어요. 올해가 가기 전에 시간을 내서 제가 느낀 감정을 글로 녹이면 어떨까, 하고요. 시가 될지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남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 어떤 배우가 되고 싶습니까?
이엘리야 : ‘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하고, 보고 싶은 그런 배우요.(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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