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손예지 기자]
이보영: 마지막 촬영일 저녁에 ‘마더’ 15회를 봤어요. 극 후반부에 영신 엄마(이혜영)가 돌아가시는 장면에서 속울음이 나더라고요. 진짜 끝난 건가… 싶기도 하고.
10. 아직 수진이라는 인물에 빠져 있나요?
이보영: 수진이에게 몰입했다기보다 이 드라마 자체, 모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컸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10. 극 중 영신의 수양딸인 수진과 이진(전혜진)·현진(고보결)의 이야기는 입양 가정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이보영: 입양이라는 제도가 어떻게 마련되어 있는지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제도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입양 가족에 대한 배려가 생겨야 한다고 봅니다. 입양 가정도 보통의 가정과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고 받아 들여주는 성숙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10. 혜나가 학대받는 모습이 현실적으로 그려져 시청자들을 많이 울렸는데요.
이보영: 일부러 강조해 촬영한 건 아닙니다.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마더’를 통해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섬세해지고 사회적으로는 아이의 부모를 만들어주는 제도가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10. 수진이 우는 장면이 많아 연기하는 데 힘들지 않았나요?
이보영: 하도 울어서 나중에는 내가 강수진인지 이보영인지 모를 정도였어요. 우는 모습이 반복되면 진정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거든요. 감정 과잉이라고 느껴질 수 있죠. 그래서 촬영 전마다 ‘울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결국 또 눈물이 나더라고요.(웃음)
10. ‘마더’는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원작의 인기가 워낙 탄탄해 부담도 느꼈을 텐데요.
이보영: 걱정이 많았죠. 원작을 보고 나서 장면의 여운에 얽매이기도 했어요. 특히 14회 마지막에 수진이와 윤복이(수진이 혜나에게 붙여준 이름)가 통화하는 장면이요. 원작에서는 감정이 극으로 치닫는 부분이에요. 저도 원작만큼의 감동을 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원작의 잔상이 남아서 연기하기가 힘들었어요.
10. 원작과는 또 다른 감동과 교훈을 줬다는 평이 많습니다.
이보영: 원작과 일부러 차이를 둬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원작에서의 수진이는 말을 안 하고 감정을 숨기는 인물이었는데 우리 대중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죠. PD님과 상의 끝에 수진이가 좀 더 감정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원작과의 비교를 지우고 상황 자체에 몰입해서 연기했죠. 내가 생각하고 갔던 연기가 현장에 가면 또 달라지기도 했어요. 율이에게서 오는 감정, 이혜영 선생님과 주고받은 호흡을 바탕으로 연기했습니다.
10. 결말을 비롯해 원작과 다른 설정들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인가요?
이보영: 촬영 시작 전에 이미 10회치 대본이 탈고된 상태였어요. 11~14회까지 초고가 나왔고요. 관계나 설정은 모두 계획대로 갔어요.
10.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이보영: 작가님이나 PD님의 이름을 보고 결정한 적은 거의 없어요. 박경수 작가님의 ‘귓속말’(2017) 빼고요. 보통은 시놉시스나 대본에서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을 골라요. ‘마더’에서는 거기에 꽂혔어요. 수진의 대사요. “김혜나, 잘 들어. 지저분한 아이는 공격받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신호니까.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돌봐야 해. 너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이 대사를 너무 하고 싶었어요.(웃음)
10. 아역 배우 허율과 파트너로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보영: 전혀 없었습니다. 초반에 아역 캐스팅 논란이 일었는데, 이해가 안 됐어요. 학대받는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아이의 체구와 나이가 중요한가요? 9살 아이는 학대를 안 받나요? 무엇보다 어떤 성인 연기자가 와도 율이처럼은 못 했을 거예요. 밤늦게까지 촬영이 계속돼도, 자다가 바로 촬영해야 할 때에도 인상 한 번 쓰지 않았어요. 너무 수월하게 촬영해 오히려 고마웠어요. 율이의 심리 상태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아요. 다행히 율이는 현장에 나오는 것을 즐거워했어요. 대신 1회부터 7회까지는 촬영마다 상황을 설명해줘야 했어요. “이렇게 울어볼까?” “이렇게 대사를 읽어볼까?” 물으며 연기를 잡아갔죠. 그러다가 9회에서 윤복이가 캐비닛에 갇히는 장면부터 (허율이) 훅 빨려 들어갔어요. 마지막 촬영 날엔 율이가 촬영을 끝내는 게 싫다고,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10 허율을 보며 딸도 아역 배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이보영: 20살이 넘고 자기 생각에 중심이 잡힌 다음 아이가 배우를 선택한다면 지지하고 응원해줄 수 있지만, 지금은 시키고 싶지 않아요. 어른들의 세계를 빨리 접하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율이는 연기를 해야만 하는 아이였고요. 지유는 아직 그 정도 끼는 없는 것 같아요.(웃음)
10. ‘엄마 이보영’은 어떤 엄마인가요?
이보영: 나쁘지 않은 엄마?(웃음) 저는 배우로서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다 해봤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일보다 아이가 소중하죠. 배우가 아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엄마가 됐을지도 몰라요. 아직 엄마가 된 지 30개월밖에 안 돼서 아이가 예쁘기만 해요. 앞으로 아이의 사춘기와 격동기를 함께 겪어야 할 텐데 그때 아이가 자신의 힘든 일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을 수 있는, 편한 엄마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단단해져야 하겠죠. 아이를 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자기중심이 선 사람,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요. 지성 씨도 같은 생각이에요.
10. 지성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보영: 한동안 외국에 있어서 드라마를 늦게 봤어요. 저희 부부는 서로 연기에 관한 조언을 해주지는 않아요. 연기에는 정답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마더’를 보고서 해외에서 구구절절 길게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웃음) 요약하자면 고맙다고, 이 드라마를 보고 치유 받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말이었어요.
10. ‘마더’를 비롯해 ‘귓속말’(2017) ‘신의 선물-14일’(2014) 등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들에 출연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이보영: 들어오는 대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베스트 작품을 고른 거예요. ‘무거운 작품에 출연해서 내 연기력을 보여줘야지’라는 마음을 가진 건 아니고요.(웃음) 로맨틱 코미디나 따뜻한 느낌의 작품도 출연하고 싶어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의 짱변(장혜성) 같은 역할을 너무너무 하고 싶죠. 다만 이제 그런 장르에서는 제 나잇대의 여자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의 폭이 한정적이에요. 이혼이나 불륜의 설정이 따라오죠. 악역도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악역을 하면 무서울까요?(웃음)
10. ‘마더’는 여자배우들이 중심이 된 작품이었습니다.
이보영: 너무 좋았어요. 포스터도 정말 마음에 들었고요.(웃음) 특히 이혜영 선생님과 촬영하는 모든 장면이 감동이었어요. 일부러 연기하지 않아도 선생님에게서 받는 에너지가 남달랐어요. 수진이는 영신 엄마의 입양아라는 사실이 방송을 통해 공개된 아이예요. 원하지 않았던 일이라 받은 상처가 컸죠. 그런 수진이를 생각하며 ‘엄마를 미워하는 눈으로 봐야지’ 마음 먹고 촬영장에 들어가도 이혜영 선생님의 대사를 들으면 눈물이 났어요. 이렇게 상대 배우의 에너지를 온전히 받은 경험은 오랜만이었어요.
10.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이보영: 오랜 배우 생활 중 최고의 현장이었습니다. 율이가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촬영을 빨리 끝냈어요. 영신 엄마가 홍희(남기애) 엄마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새벽 4시까지 촬영했는데, 그것 말고는 거의 밤 10~11시에 촬영을 마쳤죠. 수면 시간, 배우들이 각자 생각할 시간이 충분해서 연기하기 수월했어요.
10. 최근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이 방송가의 화두였는데, 한 작품을 이끄는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보영: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드라마는 대본, 연출, 연기가 잘 맞아야 좋은 작품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쉽지 않아요. 대본이 늦게 나오는 경우, 대본은 나왔는데 촬영을 미루는 경우도 많아요. ‘생방송 촬영’이 되면 배우들은 피곤하고 예민해지죠. 모두의 인식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인권 문제가 많이 떠오르고 있으니 차츰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0. ‘마더’가 제1회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경쟁부문에 선정됐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이보영: 해외에서도 수진이와 윤복이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요. 많은 시청자가 윤복이가 실존 인물인 것처럼 이 아이를 누가 구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가장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에요. 배우 이보영이 아니라 어디엔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수진이로 불리는 것 말이죠.
10. 수진이와 윤복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이보영: 행복하게, 잘살고 있지 않을까요? 두 사람은 그래야만 해요.
10. 수진이 아니라 ‘배우 엄마 이보영’은 앞으로 어떻게 지낼 계획인가요?
이보영: 지유 옆에 있어야 해요. 촬영하는 내내 너무 미안했거든요. 지유에게 엄마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촬영장에 데려간 적이 있는데, 율이를 의식하더라고요. “왜 엄마 옆에 다른 언니가 있어?”라면서요.(웃음) ‘마더’에서 영신 엄마가 수진이에게 이런 말을 해요. “난 네가 보고 싶어. 8살 때의 너, 9살 때의 너.” 촬영하는 동안 지유가 말도 늘고 행동도 달라졌어요. 제 눈에 담지 못한 지유의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워요. 당분간 지유를 열심히 보려고 합니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2002년 광고모델로 얼굴을 알리고 2003년 SBS ‘백수탈출’로 드라마에 데뷔한 배우 이보영은 2014년 SBS ‘신의 선물-14일’까지 쉼 없이 일했다.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오가며 꾸준히 얼굴을 비췄다. 그런 그가 ‘신의 선물-14일’을 마치고 약 3년 간 작품 활동을 쉬었다. 2013년 배우 지성과 결혼한 지 1년 만에 ‘엄마’가 돼 육아 휴직에 돌입해서였다.10. ‘마더’를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아이를 낳고도 모성이 생기지 않았어요.” 이보영은 솔직했다. 딸 지유가 태어난 지 100일까지 ‘이 애가 진짜 내 애가 맞나?’ 의문이 들고 정신이 없었단다.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관습들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사회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상하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지유가 생후 30개월이 된 지금은 다르다. 남편 지성에게 “만약 지유가 병원에서 바뀐 딸이라고 해도 나는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다소 엉뚱한 말을 했을 정도로 딸바보가 됐다. 이보영은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가 tvN ‘마더’(극본 정서경, 연출 김철규 윤현기)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다.
‘마더’는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각색한 작품이다. 이보영은 극 중 엄마에 대한 상처를 지닌 딸이자,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혜나(허율)의 엄마이기를 자처한 수진을 맡아 열연했다. 담담하게, 때로는 절절하게 수진의 감정을 그려내며 이보영만의 ‘마더’를 완성했다.
이보영: 마지막 촬영일 저녁에 ‘마더’ 15회를 봤어요. 극 후반부에 영신 엄마(이혜영)가 돌아가시는 장면에서 속울음이 나더라고요. 진짜 끝난 건가… 싶기도 하고.
10. 아직 수진이라는 인물에 빠져 있나요?
이보영: 수진이에게 몰입했다기보다 이 드라마 자체, 모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컸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10. 극 중 영신의 수양딸인 수진과 이진(전혜진)·현진(고보결)의 이야기는 입양 가정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이보영: 입양이라는 제도가 어떻게 마련되어 있는지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제도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입양 가족에 대한 배려가 생겨야 한다고 봅니다. 입양 가정도 보통의 가정과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고 받아 들여주는 성숙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10. 혜나가 학대받는 모습이 현실적으로 그려져 시청자들을 많이 울렸는데요.
이보영: 일부러 강조해 촬영한 건 아닙니다.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마더’를 통해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섬세해지고 사회적으로는 아이의 부모를 만들어주는 제도가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10. 수진이 우는 장면이 많아 연기하는 데 힘들지 않았나요?
이보영: 하도 울어서 나중에는 내가 강수진인지 이보영인지 모를 정도였어요. 우는 모습이 반복되면 진정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거든요. 감정 과잉이라고 느껴질 수 있죠. 그래서 촬영 전마다 ‘울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결국 또 눈물이 나더라고요.(웃음)
10. ‘마더’는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원작의 인기가 워낙 탄탄해 부담도 느꼈을 텐데요.
이보영: 걱정이 많았죠. 원작을 보고 나서 장면의 여운에 얽매이기도 했어요. 특히 14회 마지막에 수진이와 윤복이(수진이 혜나에게 붙여준 이름)가 통화하는 장면이요. 원작에서는 감정이 극으로 치닫는 부분이에요. 저도 원작만큼의 감동을 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원작의 잔상이 남아서 연기하기가 힘들었어요.
10. 원작과는 또 다른 감동과 교훈을 줬다는 평이 많습니다.
이보영: 원작과 일부러 차이를 둬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원작에서의 수진이는 말을 안 하고 감정을 숨기는 인물이었는데 우리 대중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죠. PD님과 상의 끝에 수진이가 좀 더 감정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원작과의 비교를 지우고 상황 자체에 몰입해서 연기했죠. 내가 생각하고 갔던 연기가 현장에 가면 또 달라지기도 했어요. 율이에게서 오는 감정, 이혜영 선생님과 주고받은 호흡을 바탕으로 연기했습니다.
10. 결말을 비롯해 원작과 다른 설정들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인가요?
이보영: 촬영 시작 전에 이미 10회치 대본이 탈고된 상태였어요. 11~14회까지 초고가 나왔고요. 관계나 설정은 모두 계획대로 갔어요.
10.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이보영: 작가님이나 PD님의 이름을 보고 결정한 적은 거의 없어요. 박경수 작가님의 ‘귓속말’(2017) 빼고요. 보통은 시놉시스나 대본에서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을 골라요. ‘마더’에서는 거기에 꽂혔어요. 수진의 대사요. “김혜나, 잘 들어. 지저분한 아이는 공격받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신호니까.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돌봐야 해. 너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이 대사를 너무 하고 싶었어요.(웃음)
이보영: 전혀 없었습니다. 초반에 아역 캐스팅 논란이 일었는데, 이해가 안 됐어요. 학대받는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아이의 체구와 나이가 중요한가요? 9살 아이는 학대를 안 받나요? 무엇보다 어떤 성인 연기자가 와도 율이처럼은 못 했을 거예요. 밤늦게까지 촬영이 계속돼도, 자다가 바로 촬영해야 할 때에도 인상 한 번 쓰지 않았어요. 너무 수월하게 촬영해 오히려 고마웠어요. 율이의 심리 상태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아요. 다행히 율이는 현장에 나오는 것을 즐거워했어요. 대신 1회부터 7회까지는 촬영마다 상황을 설명해줘야 했어요. “이렇게 울어볼까?” “이렇게 대사를 읽어볼까?” 물으며 연기를 잡아갔죠. 그러다가 9회에서 윤복이가 캐비닛에 갇히는 장면부터 (허율이) 훅 빨려 들어갔어요. 마지막 촬영 날엔 율이가 촬영을 끝내는 게 싫다고,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10 허율을 보며 딸도 아역 배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이보영: 20살이 넘고 자기 생각에 중심이 잡힌 다음 아이가 배우를 선택한다면 지지하고 응원해줄 수 있지만, 지금은 시키고 싶지 않아요. 어른들의 세계를 빨리 접하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율이는 연기를 해야만 하는 아이였고요. 지유는 아직 그 정도 끼는 없는 것 같아요.(웃음)
10. ‘엄마 이보영’은 어떤 엄마인가요?
이보영: 나쁘지 않은 엄마?(웃음) 저는 배우로서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다 해봤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일보다 아이가 소중하죠. 배우가 아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엄마가 됐을지도 몰라요. 아직 엄마가 된 지 30개월밖에 안 돼서 아이가 예쁘기만 해요. 앞으로 아이의 사춘기와 격동기를 함께 겪어야 할 텐데 그때 아이가 자신의 힘든 일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을 수 있는, 편한 엄마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단단해져야 하겠죠. 아이를 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자기중심이 선 사람,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요. 지성 씨도 같은 생각이에요.
10. 지성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보영: 한동안 외국에 있어서 드라마를 늦게 봤어요. 저희 부부는 서로 연기에 관한 조언을 해주지는 않아요. 연기에는 정답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마더’를 보고서 해외에서 구구절절 길게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웃음) 요약하자면 고맙다고, 이 드라마를 보고 치유 받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말이었어요.
10. ‘마더’를 비롯해 ‘귓속말’(2017) ‘신의 선물-14일’(2014) 등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들에 출연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이보영: 들어오는 대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베스트 작품을 고른 거예요. ‘무거운 작품에 출연해서 내 연기력을 보여줘야지’라는 마음을 가진 건 아니고요.(웃음) 로맨틱 코미디나 따뜻한 느낌의 작품도 출연하고 싶어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의 짱변(장혜성) 같은 역할을 너무너무 하고 싶죠. 다만 이제 그런 장르에서는 제 나잇대의 여자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의 폭이 한정적이에요. 이혼이나 불륜의 설정이 따라오죠. 악역도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악역을 하면 무서울까요?(웃음)
10. ‘마더’는 여자배우들이 중심이 된 작품이었습니다.
이보영: 너무 좋았어요. 포스터도 정말 마음에 들었고요.(웃음) 특히 이혜영 선생님과 촬영하는 모든 장면이 감동이었어요. 일부러 연기하지 않아도 선생님에게서 받는 에너지가 남달랐어요. 수진이는 영신 엄마의 입양아라는 사실이 방송을 통해 공개된 아이예요. 원하지 않았던 일이라 받은 상처가 컸죠. 그런 수진이를 생각하며 ‘엄마를 미워하는 눈으로 봐야지’ 마음 먹고 촬영장에 들어가도 이혜영 선생님의 대사를 들으면 눈물이 났어요. 이렇게 상대 배우의 에너지를 온전히 받은 경험은 오랜만이었어요.
10.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이보영: 오랜 배우 생활 중 최고의 현장이었습니다. 율이가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촬영을 빨리 끝냈어요. 영신 엄마가 홍희(남기애) 엄마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새벽 4시까지 촬영했는데, 그것 말고는 거의 밤 10~11시에 촬영을 마쳤죠. 수면 시간, 배우들이 각자 생각할 시간이 충분해서 연기하기 수월했어요.
10. 최근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이 방송가의 화두였는데, 한 작품을 이끄는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보영: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드라마는 대본, 연출, 연기가 잘 맞아야 좋은 작품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쉽지 않아요. 대본이 늦게 나오는 경우, 대본은 나왔는데 촬영을 미루는 경우도 많아요. ‘생방송 촬영’이 되면 배우들은 피곤하고 예민해지죠. 모두의 인식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인권 문제가 많이 떠오르고 있으니 차츰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0. ‘마더’가 제1회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경쟁부문에 선정됐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이보영: 해외에서도 수진이와 윤복이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요. 많은 시청자가 윤복이가 실존 인물인 것처럼 이 아이를 누가 구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가장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에요. 배우 이보영이 아니라 어디엔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수진이로 불리는 것 말이죠.
이보영: 행복하게, 잘살고 있지 않을까요? 두 사람은 그래야만 해요.
10. 수진이 아니라 ‘배우 엄마 이보영’은 앞으로 어떻게 지낼 계획인가요?
이보영: 지유 옆에 있어야 해요. 촬영하는 내내 너무 미안했거든요. 지유에게 엄마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촬영장에 데려간 적이 있는데, 율이를 의식하더라고요. “왜 엄마 옆에 다른 언니가 있어?”라면서요.(웃음) ‘마더’에서 영신 엄마가 수진이에게 이런 말을 해요. “난 네가 보고 싶어. 8살 때의 너, 9살 때의 너.” 촬영하는 동안 지유가 말도 늘고 행동도 달라졌어요. 제 눈에 담지 못한 지유의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워요. 당분간 지유를 열심히 보려고 합니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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