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래퍼 수퍼비는 최근 이색적인 작업을 선보였다. 데뷔 이후 첫 정규 앨범과 두 번째 정규 앨범을 단 2주 동안 차례로 발매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정규 1집 ‘RAP LEGEND(랩 레전드)’를, 올해 1월 13일에 2집 ‘ORIGINAL GIMCHI(오리지널 김치)’를 냈다. 이런 이례적인 시도를 통해 수퍼비가 보여준 것은 ‘전설이 될 용기’다. 그는 “수퍼비가 ‘랩 레전드’가 될 거라는 걸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알린 앨범”이라며 “이 메시지만 전달돼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수퍼비의 이 같은 도전은 어느 순간 찾아온 공허함으로부터 비롯됐다. 지난해 중반까지 꾸준히 곡을 발표하고 여러 무대에 올랐던 그는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예전에는 래퍼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는 래퍼가 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게 됐으니 그 다음 레벨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1집에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보자’는 야망을 새겨 작업하게 됐죠. 본토(미국)에서는 한두 달 만에 정규 앨범을 내는 래퍼들이 많은데 한국 래퍼들도 못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이는 스스로를 시험해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2주가 아니라 1주 간격으로 정규 앨범 두 장을 발매하려고 했다. 1집의 ‘Blur’와 ‘공중도덕 3’에 피처링으로 함께 한 래퍼 더콰이엇은 수퍼비와 둘이 가진 술자리에서 이러한 계획을 듣고 “1집에 대한 애정이 떨어질 수도 있다”며 간격을 2주로 제안했다. 수퍼비는 이를 받아들였다. 1주라는 시간이 더 생겼지만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수련하듯 작업에만 매달렸다.
“’내가 진짜 랩 레전드가 될 가능성이 있는 자질을 가졌나’라는 고민도 있었어요. 재능은 없는데 가슴 속에 불만 타오르면 안 되잖아요.(웃음) 이건 버벌진트 형의 곡 ‘배후’에 나오는 가사이기도 해요. ‘재능은 없는데 가슴 안의 불은 타는 동정표로 먹고 사는 애매한 인간들’이라고 형은 노래했죠. 이성적이면서 냉철한 태도가 느껴져서 잘 쓴 가사라고 생각했던 구절인데, 그런 사람이 되긴 싫었어요. 난 진짜 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요.”
결이 다르게 제작된 두 장의 앨범은 수퍼비의 재능을 다각도로 입증했다. 1집에서는 수퍼비가 원래 잘하는 것을 응집시켜 발전된 역량을 보여줬다. 2집에서는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며 ‘인간 김훈기’로서의 정체성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2집은 더 자유롭고 재치있다. 수퍼비와 의사의 상황극 같은 대화가 나오는가 하면 “수퍼비님이 한국힙합의 최고이십니다. 분명히 랩 레전드가 되실 겁니다”라며 “사랑해”를 여덟 마디에 맞춰 반복해 말하는 시리(Siri)의 음성이 곡을 마무리한다. 2집이 나오기 하루 전날 새벽 1시 30분에 랩이 아닌 목소리로 녹음한 그의 에필로그도 CD 버전 2집에서만 들을 수 있는 덤이다.
“1집은 힙합에 초점을 맞췄어요. 트렌드만 좇는 것이 아니라 1990년대 힙합의 바이브도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는 앨범이죠. 2집은 인간 김훈기를 많이 표현했어요. ‘오리지널 김치’를 직역하면 원조 김치라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동양인 래퍼, 특히 한국인 래퍼로서의 모습을 많이 녹여냈어요. 1집보다는 좀 더 장난끼와 제 취향이 충실하게 묻어 있기도 하고요.”
수퍼비의 2집은 인간 김훈기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도 재미있게 들을 가치가 있는 앨범이다. 비트도, 그 비트 위에서 노는 듯이 구현한 플로우와 사운드도 흥미롭다. 1집 10번 트랙에 수록된 ‘Forgive Me’의 녹음 방식도 색다르다.
“1집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녹음한 곡이에요. 보통은 마이크에 입을 대고 녹음하는데 ‘Forgive Me’는 방 한가운데에 마이크를 두고 입력치를 최대로 높인 후 의자에 앉아서 녹음했어요. 소리가 울려서 마이크에 들어가는 걸 원했거든요. 그 곡이 어떻게 보면 우울한 노래에요. 우울한 감정이 있어서 술 마시고 쓴 곡으로 기억해요. 그래서 새로운 녹음 방식으로 해야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마이크에 대고 하다 바꿨죠.”
2집에 수록된 13곡을 2주 안에 작업하려면 가사를 빠르게 쓰는 편이 수월했을 것이다. 수퍼비에게 평소 작업 스타일을 묻자 그는 “원래는 가사 쓰는 과정이 오래 걸렸는데 쓰면 쓸수록 빨라졌다”며 “그 부분이 좀 신기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앨범에서 직접 만나서 작업한 래퍼는 창모인데, 저희 집에서 가사를 쓰면서 금방 끝났어요. 둘 다 이젠 가사를 빨리 쓰는 편이거든요. 또 이번에는 음악에만 중점을 두고 싶어서 앨범 재킷에 이미지를 많이 넣지 않았어요. 가사랑 CD 두 장만 있는게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혹시 사진이 많이 없어서 아쉬운 팬들이 있다면, 앨범 가져오면 같이 사진 찍어 드리겠습니다.(웃음)”
두 장의 정규 앨범 발매라는 큰 산을 넘은 수퍼비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프로젝트형 음악 작업이다. 그는 “21 Savage, Offset, Metro Boomin의 협업이나 Travis Scott, Quavo의 합작처럼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의 작업에서 오는 색다름을 주고 싶다”며 “후보는 없지만 더블케이 형과 믹스테이프를 같이 만들어보자는 얘기는 했다. 1, 2집을 동시에 내면서 스스로 얻은 힌트들이 많아 프로젝트가 성사된다면 적용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야망에 솔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과감하게 자신을 시험에 던지는 수퍼비는 도전한 만큼 성취했다.
“스물 두세 살 때 크루 김치힐갱의 멤버들인 Hot26, 면도 등과 함께 살면서 보드지에 꿈 리스트를 적어 놓았어요. ‘쉐보레 카마로를 사야겠다’’더 좋은 집으로 이사가고 싶다’ 등이었죠. 연남동에 낙후된 집에 살면서요. 그 꿈을 이루기까지 1년이 걸리더라고요. 카마로를 뛰어넘어 마세라티를 샀죠.(웃음) 제가 직접 겪으면서 ‘나도 이뤄낼 수 있다’는 야망과 힘이 생겼어요. 그래서 ‘랩 레전드’라는 앨범도 시작됐고요.”
랩 레전드 이후에 수퍼비가 나아가고자 하는 야망의 목적지가 어디일지 궁금해졌다. 수퍼비는 재치로 가득 찬 눈빛을 빛내며 영리한 대답을 내놓았다.
“랩 레전드 이후에는 ‘글로벌 K힙합 스타’가 되고 싶어요. 돈은 1000억원 정도만 벌고 싶어요. 조 단위는 필요 없어요. 세상에 부자가 얼마나 많은데요.(웃음) 랩은 일이 아니라 재미이니까, 계속 랩만 하는 게 제가 진짜 바라는 거예요. 1주일 간격으로 앨범을 내는 게 다음에도 재밌게 느껴진다면 다시 하게 될 것 같아요.”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수퍼비의 이 같은 도전은 어느 순간 찾아온 공허함으로부터 비롯됐다. 지난해 중반까지 꾸준히 곡을 발표하고 여러 무대에 올랐던 그는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예전에는 래퍼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는 래퍼가 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게 됐으니 그 다음 레벨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1집에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보자’는 야망을 새겨 작업하게 됐죠. 본토(미국)에서는 한두 달 만에 정규 앨범을 내는 래퍼들이 많은데 한국 래퍼들도 못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이는 스스로를 시험해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2주가 아니라 1주 간격으로 정규 앨범 두 장을 발매하려고 했다. 1집의 ‘Blur’와 ‘공중도덕 3’에 피처링으로 함께 한 래퍼 더콰이엇은 수퍼비와 둘이 가진 술자리에서 이러한 계획을 듣고 “1집에 대한 애정이 떨어질 수도 있다”며 간격을 2주로 제안했다. 수퍼비는 이를 받아들였다. 1주라는 시간이 더 생겼지만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수련하듯 작업에만 매달렸다.
“’내가 진짜 랩 레전드가 될 가능성이 있는 자질을 가졌나’라는 고민도 있었어요. 재능은 없는데 가슴 속에 불만 타오르면 안 되잖아요.(웃음) 이건 버벌진트 형의 곡 ‘배후’에 나오는 가사이기도 해요. ‘재능은 없는데 가슴 안의 불은 타는 동정표로 먹고 사는 애매한 인간들’이라고 형은 노래했죠. 이성적이면서 냉철한 태도가 느껴져서 잘 쓴 가사라고 생각했던 구절인데, 그런 사람이 되긴 싫었어요. 난 진짜 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요.”
결이 다르게 제작된 두 장의 앨범은 수퍼비의 재능을 다각도로 입증했다. 1집에서는 수퍼비가 원래 잘하는 것을 응집시켜 발전된 역량을 보여줬다. 2집에서는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며 ‘인간 김훈기’로서의 정체성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2집은 더 자유롭고 재치있다. 수퍼비와 의사의 상황극 같은 대화가 나오는가 하면 “수퍼비님이 한국힙합의 최고이십니다. 분명히 랩 레전드가 되실 겁니다”라며 “사랑해”를 여덟 마디에 맞춰 반복해 말하는 시리(Siri)의 음성이 곡을 마무리한다. 2집이 나오기 하루 전날 새벽 1시 30분에 랩이 아닌 목소리로 녹음한 그의 에필로그도 CD 버전 2집에서만 들을 수 있는 덤이다.
수퍼비의 2집은 인간 김훈기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도 재미있게 들을 가치가 있는 앨범이다. 비트도, 그 비트 위에서 노는 듯이 구현한 플로우와 사운드도 흥미롭다. 1집 10번 트랙에 수록된 ‘Forgive Me’의 녹음 방식도 색다르다.
“1집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녹음한 곡이에요. 보통은 마이크에 입을 대고 녹음하는데 ‘Forgive Me’는 방 한가운데에 마이크를 두고 입력치를 최대로 높인 후 의자에 앉아서 녹음했어요. 소리가 울려서 마이크에 들어가는 걸 원했거든요. 그 곡이 어떻게 보면 우울한 노래에요. 우울한 감정이 있어서 술 마시고 쓴 곡으로 기억해요. 그래서 새로운 녹음 방식으로 해야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마이크에 대고 하다 바꿨죠.”
2집에 수록된 13곡을 2주 안에 작업하려면 가사를 빠르게 쓰는 편이 수월했을 것이다. 수퍼비에게 평소 작업 스타일을 묻자 그는 “원래는 가사 쓰는 과정이 오래 걸렸는데 쓰면 쓸수록 빨라졌다”며 “그 부분이 좀 신기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앨범에서 직접 만나서 작업한 래퍼는 창모인데, 저희 집에서 가사를 쓰면서 금방 끝났어요. 둘 다 이젠 가사를 빨리 쓰는 편이거든요. 또 이번에는 음악에만 중점을 두고 싶어서 앨범 재킷에 이미지를 많이 넣지 않았어요. 가사랑 CD 두 장만 있는게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혹시 사진이 많이 없어서 아쉬운 팬들이 있다면, 앨범 가져오면 같이 사진 찍어 드리겠습니다.(웃음)”
두 장의 정규 앨범 발매라는 큰 산을 넘은 수퍼비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프로젝트형 음악 작업이다. 그는 “21 Savage, Offset, Metro Boomin의 협업이나 Travis Scott, Quavo의 합작처럼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의 작업에서 오는 색다름을 주고 싶다”며 “후보는 없지만 더블케이 형과 믹스테이프를 같이 만들어보자는 얘기는 했다. 1, 2집을 동시에 내면서 스스로 얻은 힌트들이 많아 프로젝트가 성사된다면 적용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스물 두세 살 때 크루 김치힐갱의 멤버들인 Hot26, 면도 등과 함께 살면서 보드지에 꿈 리스트를 적어 놓았어요. ‘쉐보레 카마로를 사야겠다’’더 좋은 집으로 이사가고 싶다’ 등이었죠. 연남동에 낙후된 집에 살면서요. 그 꿈을 이루기까지 1년이 걸리더라고요. 카마로를 뛰어넘어 마세라티를 샀죠.(웃음) 제가 직접 겪으면서 ‘나도 이뤄낼 수 있다’는 야망과 힘이 생겼어요. 그래서 ‘랩 레전드’라는 앨범도 시작됐고요.”
랩 레전드 이후에 수퍼비가 나아가고자 하는 야망의 목적지가 어디일지 궁금해졌다. 수퍼비는 재치로 가득 찬 눈빛을 빛내며 영리한 대답을 내놓았다.
“랩 레전드 이후에는 ‘글로벌 K힙합 스타’가 되고 싶어요. 돈은 1000억원 정도만 벌고 싶어요. 조 단위는 필요 없어요. 세상에 부자가 얼마나 많은데요.(웃음) 랩은 일이 아니라 재미이니까, 계속 랩만 하는 게 제가 진짜 바라는 거예요. 1주일 간격으로 앨범을 내는 게 다음에도 재밌게 느껴진다면 다시 하게 될 것 같아요.”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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