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뮤지컬 ‘올슉업’에 출연 중인 가수 허영생.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뮤지컬 ‘올슉업’에 출연 중인 가수 허영생.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거울 앞에 앉아 분장을 받는데, 문득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해 왔나, 잘한 건 없는 것 같은데…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네, 싶더군요.”

눈이 휘날린 지난 1일 서울 신사동 카페에서 만난 허영생(31)이 데뷔 12주년을 맞은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 2005년 5인조 아이돌그룹 더블에스오공일(SS501)로 가수 생활을 시작한 허영생은 당시 스무 살이었다. 그룹 젝스키스, 클릭비를 키워낸 DSP엔터테인먼트의 새 얼굴로 주목받았고, 출발선에 서자마자 앞섰다. 2010년부터 멤버들이 다른 기획사로 둥지를 옮기면서 그룹 활동은 힘들어졌다. 지난해 2월 허영생과 김규종·김형준이 뭉쳐 ‘SS301’이란 팀명으로 활동을 재개하며 “언젠가는 5명으로 뭉칠 것”이라고 약속했다. 데뷔 후 줄곧 가수 활동에 매진한 허영생은 지난달 24일 개막한 뮤지컬 ‘올슉업'(연출 성재준)을 선택하며 폭넓은 활동을 예고했다.

10. 2011년 ‘삼총사’ 이후 6년 만에 다시 뮤지컬을 선택했네요.
허영생 : 뮤지컬은 늘 하고 싶었어요. ‘삼총사’ 때는 출연 횟수가 많지 않아서 다음에 할 땐 좀 더 작품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이후 연이 닿지 않았는데, ‘올슉업’이란 좋은 기회가 왔죠.

10. ‘올슉업’ 속 엘비스는 자신감 넘치고 뻔뻔한 인물이에요. 실제 성격은 조용하다고 들었는데 연기하기 힘들지 않습니까?
허영생 : ‘삼총사’ 때 인연을 맺은 제작사 대표님이 출연 제안을 하면서 “이번엔 진지하게 가려고 한다. 춤도 없다”고 했어요. 우선 춤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었고요.(웃음) 실제론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엘비스와는 반대죠. ‘나’를 내려놔야 합니다. 하하.

10. 같은 엘비스 역의 가수 휘성, 손호영도 ‘올슉업’을 할 땐 내려놓는 것 같더군요.
허영생 : 저도 휘성 형은 어색할 줄 알았는데 정말 잘해서 놀랐어요.(웃음) 원래 성격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10. 개막한지 일주일이 흘렀는데, 조금 익숙해졌나요?
허영생 : 사실 연습 내내 불안했어요.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더군요. 엘비스의 활발한 성격과 밝은 기운에 집중했어요. 기본에 충실했죠. 나머지 부분은 공연을 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10. 거의 모든 장면에 엘비스가 등장하는 만큼 체력 관리도 필수겠습니다.
허영생 : 확실히 체력이 20대 때와 달라요.(웃음) 더군다나 엘비스가 굽이 높은 구두를 신어서 춤을 추거나 계단을 뛰어다닐 때 허리, 무릎도 아파요. 그래서 시간이 나면 한의원 가서 침도 맞고 있습니다.

10. 프레스콜 때 엘비스를 연기하며 성격도 밝아지는 것 같다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허영생 : 엘비스의 옷을 입고 무대 위에 올라가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돼요. 퇴장하고 빠지면 금세 저로 돌아오고요. 확실히 달라지는 것 같아요.

10.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은요?
허영생 : ‘버닝 러브(Burning Love)’를 부를 때 엘비스가 가장 진지한 순간이에요. 속마음을 털어놓는데, 그때는 실제 저의 성격과도 비슷해요. 다른 배우들의 솔로곡도 좋아하는데, 특히 극 중 데니스(박한근·김지휘)가 부르는 발라드 곡이 마음에 들어요.

10.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가수들이 연기에 도전할 때, 홀로 가수 활동에 매진한 이유가 있습니까?
허영생 : 연기를 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무조건 노래 부르면서 가수로서 활동하고 싶었죠. 생각이 바뀐 건 ‘삼총사’를 하면서부터예요. 연기에 재미를 느끼고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뮤지컬은 노래와 함께하는 거니까 장점을 가져가면서 연기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좋았습니다. 뮤지컬을 시작으로 훗날에는 드라마, 영화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선은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 말이죠.

“뮤지컬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드라마, 영화도 하고 싶다”는 가수 허영생.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뮤지컬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드라마, 영화도 하고 싶다”는 가수 허영생.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연기의 어떤 면이 좋았습니까?
허영생 : 그땐 처음이어서 대사 외우기에 급급했어요. 마음까지 녹일 정신이 없었죠. 그래서 유준상, 신성우 선배가 항상 끌어주셨어요. “진심이 아니야” “진짜 이 상황이 됐다고 생각해봐”라며 다시 해보라고 했죠. 서서히 와닿았어요. 회를 거듭할수록 진짜 내 동료같고, 콘스탄스도 사랑하는 여자친구처럼 보이더군요. 마지막 공연 날엔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신성우 형님이 “드디어 마지막에 달타냥이 됐구나”라고 했죠.(웃음) ‘연기란 이런 거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계속 하고 싶더라고요.

10. 그땐 끌어주는 선배들이 있었는데, 이번엔 홀로 끌고 가야 하는 주인공이어서 부담이 크겠어요.
허영생 : 누군가에게 의지하고도 싶고 상대의 마음도 받으면서 연기하고 싶은데, 엘비스는 기본적으로 혼자 막 던지는 인물이에요.(웃음) 그래서 첫 등장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나오면 환호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기술이 부족해서 무척 힘들었어요. 첫 공연을 마치고 팬들에게 도움을 청했죠. 처음 나오는 장면과 일부 장면에선 환호를 해 달라고요.(웃음) 덕분에 두 번째 공연부터는 힘을 얻어서 매끄럽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등장할 때 몰입이 힘들면 그날 공연 내내 삐걱대요.

10. 숱하게 콘서트를 했는데도, 뮤지컬 무대는 또 다른가 보군요.
허영생 : 콘서트를 할 때도 거의 노래만 하는 편이에요.(웃음) 노래 중간에 이야기를 해도 항상 진지하죠. 신나는 곡을 부를 때 “소리 질러!”라고 외치는 정도가 다여서 팬들도 적응이 안 됐을 거예요. 어느 날 ‘올슉업’을 하면서 팬과 눈이 마주쳤는데, 눈을 돌리더라고요. 하하.

10. 이번 작품을 통해 꼭 얻고 싶은 게 있습니까?
허영생 : 극 중 솔로곡은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요. “멋있다”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엘비스로서는 관객들을 웃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10. 꼭 출연해보고 싶은 뮤지컬은요?
허영생 : 그간 뮤지컬을 많이 보러 다니진 못했지만 ‘지킬 앤 하이드’는 언젠가 출연하고 싶습니다. ‘데스노트’도 (김)준수가 공연할 때 관람했는데, 극 중 엘(L)이란 캐릭터가 매력적이었어요. 보면서도 ‘나라면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죠. 극과 극의 성향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 심오한 작품을 하면서 연기에 빠져들고 싶어요.

10. 2005년 데뷔해 어느덧 12년이 흘렀습니다. 돌아보면 어떤 마음인가요?
허영생 : 스물여섯 때 슬럼프를 겪었어요. 멤버들이 모두 다른 소속사로 흩어지면서 같이 활동하기 힘들어졌을 때였죠. 딱히 옛날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최근 일본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초대 받아서 멤버 4명과 오랜만에 만났는데 SS501로 활동했을 때 영상을 보여줬어요. 멤버들끼리 “기억 난다”하면서 웃었어요. 옛날 생각은 그게 다예요.

10. ’12년 동안 잘 버텼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싶지 않습니까?(웃음)
허영생 : 음…오늘 이상하게, 거울 앞에서 문득 그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도 분장을 받고 이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요. ‘그럼, 나 잘한 건가? 잘한 건 없는 거 같은데…뭐라도 하고 있네’ 싶었죠.(웃음)

10. 같은 시기에 활동한 사람들에 비하면 입대를 빨리 한 편이에요. 2013년 겪은 군 생활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됐을 것 같습니다.
허영생 : 2012년 발표한 두 번째 솔로 음반의 결과가 제 기준에선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저를 둘러싼 모든 그래프가 떨어지는 걸 체감했죠. 그 시기에 사람들도 다 같이 떨어져 나갔어요. 상처 받았고, 울기도 했어요. 술도 많이 마셨고요. 집에 혼자 있으니까 괜히 공허하고 마음을 다잡고 ‘성공할 거야’라고 다짐하지만, 다음날이면 또 똑같고. 그때, 군대를 가기로 한 거예요. 훈련소에 들어가면서부터 사소한 것에 감사함을 느꼈어요. 어두운 아이였는데 군생활을 하면서 사람이 좋아지고 순수해졌어요. 친한 동생이 “형, 그러면 안 돼. 너무 믿지 마”라고 할 정도로 말이죠. 근데 저는 의심하고 경계하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 ‘바보’라고 해도 그냥…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웃음)

10. 아이돌그룹으로 많은 걸 겪은 만큼 후배들이 조언도 구하겠어요.
허영생 : 그렇다고 해도 딱히 해줄 말은 없어요. 제가 겪은 일들을 똑같이 겪고 있는 후배들을 보면서 “다 겪는 일이야”라고 하면 도움이 안 되잖아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들어주는 거죠. 그러면서 “순간의 감정과 환경으로 급하게 결정짓지 말고, 너의 앞길을 오래 생각하고 대화를 많이 나누고 결정하라”고 말해주죠. 사실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10.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허영생 :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뮤지컬도 꾸준히 해서 뮤지컬 무대 위에서는 가수보다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고 싶고요. 그게 내년의 목표입니다. 길게는 ‘노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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