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가수 휘성 / 사진제공=리얼슬로우 컴퍼니
가수 휘성 / 사진제공=리얼슬로우 컴퍼니
2002년 ‘안 되나요’로 단숨에 자신만의 색깔과 입지를 굳힌 가수 휘성은 이후에도 줄곧 개성 넘치는 곡으로 사랑받았다. ‘사랑은 맛있다’ ‘불면증(Insomnia)’ ‘결혼까지 생각했어’ 등은 가수뿐만 아니라 작곡가로도 인정받게 해준 노래들이다. 15년 동안 음악 안에서 충분히 자유로운 줄 알았으나 그에게도 풀지 못한 답답함이 있었다. 더 자유롭게, 일상처럼 편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휘성의 또 다른 이름인 ‘리얼슬로우(Realslow)’를 앞세운 프로젝트이다. 그 첫걸음으로 지난 23일 ‘아로마(Aroma)’를 발표했다.

10. 지난해 6월 내놓은 미니음반 이후 약 1년 4개월 만입니다.
휘성 : ‘아로마’는 독립회사인 리얼슬로우 컴퍼니를 설립하고 처음으로 내놓는 곡이에요. 기존 음악색과는 다른 가장 휘성다운 음악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만들었죠. 좋아하는 흑인 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기 위한 시작입니다. 팬들에게도 새로운 소식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게 ‘리얼슬로우 프로젝트’이죠.

10. 휘성의 또 다른 이름이면서 독립적으로 세운 회사의 이름이기도 하군요.
휘성 : 소속사에서 나와 독립한 이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첫 결과물이 ‘아로마’죠.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내 갈 길을 간다’, 마이웨이(My Way)예요. 쓰고 싶은 단어, 소재, 연출하고 싶은 뮤직비디오, 의상까지 모두 제 맘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10. 음반 작업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했습니까?
휘성 : 틀이 잡힌 건 지난해 초부터예요. 1년 정도 구상을 했는데, ‘나는 누구인가?’부터 시작했어요. 저에 대해서 관찰했죠.

10. ‘아로마’는 창법부터 신선합니다.
휘성 : 이 곡도 1년 전 쓴 거예요. 이전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되고 홀로서기를 하는데, 최근 유행하는 장르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슬로우잼 장르를 택했고,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하지?’ 고민했어요. 우선 ‘리얼슬로우 프로젝트’는 저의 일상이 반영된 음악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 삶을 비출 수 있는,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거죠. 자꾸 숨기면 사람은 더 음흉해져요. 누군가가 막고 억누르면 제대로 된 ‘나의 삶’을 살 수가 없죠.

10. 변화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휘성 : 지난해 서른다섯이 되면서 위기감 같은 걸 느꼈어요. 서른 살에 군대를 가서 서른둘에 제대를 하고, 어영부영 보내니 서른다섯인 거죠. ‘그동안 뭐 했지?’란 생각이 들더군요. 뭘 한 것 같지도 않은 기분에 허탈했죠. 마치 바람 빠진 삶이라고 할까요? 그때부터 ‘진짜 내 삶은 어디 있지?’란 고민에 빠져서 성찰했어요. 첫 번째로 한 건 판타지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었어요.

10. 판타지요?
휘성 : 사랑을 예로 들면 판타지가 깨지면 실망하잖아요. 그다음은 후회하고요. 판타지를 깨지 못하면 계속 그런단 말이에요. 끌려만 다니던 제가 기준을 만들어서 ‘나’로 사는 연습을 계속했어요. 지금도 그 과정이죠.

휘성 / 사진제공=리얼슬로우 컴퍼니
휘성 / 사진제공=리얼슬로우 컴퍼니
10. 휘성의 ‘판타지’는 무엇이었습니까?
휘성 : 데뷔하자마자 1등을 했어요. 과정 없이 손만 대면 잘 됐죠. 운이 좋은 사람은 물을 찾으면 바로 앞에 물이 있어요. 손만 뻗어 마시면 되죠. 그들을 우리는 천재 혹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건 곧 사라지는 거예요. 누군가 자동차를 만들어 출발 지점에 섰어요, 열심히 만든 차가 나가니까 ‘간다! 간다!’하고 좋아하죠. 그러다 차가 멈춰요, 과정을 겪은 이들은 자기 손으로 고칠 수 있어요. 자동차 상태를 확인하고 나사도 조이면서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하죠. 반면 완성된 자동차가 눈앞에 놓여있었던 저는 그냥 엑셀을 밟았어요. 빠르게 달리더군요. 거기에 익숙해졌다는 거죠. 그렇지만 자동차가 멈췄을 때 다시 출발하는 법을 몰라요. 이런 게 저의 판타지예요, 언제든 출발하면 갈 수 있다는.

10. 그걸 깨닫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군요.
휘성 : 지금까지는 실체가 없는 ‘휘성’으로 산 거예요. 영화 속 캐릭터처럼 말이죠. 그래서 일상을 살기로 했어요. 그게 두 번째 단계였어요. 일상이란 건 자고 먹고 깨고 걷고 햇빛을 받고, 추위를 느끼는 지극히 평범한 거잖아요. 그런 것들에 집중했어요. 그러니까 사물이 달리 보이더군요. 다른 사람의 감정이 아닌 내 감정을 먼저 돌아보고, 그랬더니 주위 상황도 훑을 수 있었어요. 정면으로 마주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10. ‘아로마’를 시작으로 리얼슬로우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겠군요.
휘성 : 꺼리고 금하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툭 던지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자연스럽게 말이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왜 막는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겪고 살고 있는 일상을 언어로 풀어내는 것뿐인데 말이에요. ‘왜 못하게 할까?’란 고민을 하다가 얻은 답은 목적으로만 상대를 대하다 보니 꺼려지는 것 같아요. 목적이 없다면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 뒤에 숨은 의미와 의도를 생각하죠. 꿍꿍이 같은 거요. 그래서 목적성을 갖지 않고 음악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소재를 찾아 다양하게 말할 거예요. 사회·정치·경제·문화·건강·성 등등. 있는 걸 있다고 얘기하는데 눈치 볼 필요 없잖아요?

10. 휘성의 음악은 늘 솔직했던 것 같습니다.
휘성 : 맞아요, 저는 사실 이전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구 꺼내놨어요. 1집부터 잘 살펴보면 그때 당시에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가사로 풀어냈죠. 감정은 소중한 거잖아요. 즐거움, 기쁨, 슬픔이란 감정을 표출해야죠. 마음 안에 있는 여러 감정을 청소해야지, 그렇지 않고 쌓아두면 나중엔 무슨 감정부터 털어내야 할지 모를 거예요.

10. 휘성은 대중 가수입니다. 불특정 다수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죠.
휘성 : 말 그대로 불특정 다수예요. 반면 특정 소수를 흔히 ‘마니아’라고 하죠. 불특정 다수가 한국의 보편적인 기준을 만들어요. 그들에게 맞추려면 연기를 해야 하고, 그들은 의도가 아닌 격을 읽어요. 예를 들어 나이가 몇인지, 그 격으로 관계가 이뤄지죠. 그러면 대중가수 휘성은 그 격에 무릎을 꿇어야 해요. 불특정 다수에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요. 그럼 그 안에 풀어내지 못한 감정은 어떡해요. 창의적인 사람인데,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밥을 차릴 때도 자신의 입에 맞는 반찬을 꺼내잖아요. 그걸 어떠한 규격 때문에 막을 순 없죠. 그래서 리얼슬로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겁니다. 특정 소수를 끌어모으는 작업이라고 할까요? 자유를 보장하는 음악을 하는 거죠. 꾸준히 내놓을 거예요.

휘성 / 사진제공=리얼슬로우 컴퍼니
휘성 / 사진제공=리얼슬로우 컴퍼니
10. 앞으로 더 당당하고 건강하게 음악을 할 휘성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휘성 : 숨어서 하는 건 재미없어요. 써놓은 곡 중에 이런 내용도 있어요. 결국에 ‘나’라면 인정하고 받아들이자고요. 미움과 두려움도 결국 나이고, 그 무엇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자는 거죠.

10. 보기 싫고 인정하기 싫은 ‘나’도 있을 텐데요.
휘성 : 한 철학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자식이 공부를 잘 할 때 예뻐 보이고, 그렇지 않을 때 미워 보인다면 그건 자식을 사랑한 게 아니라 기준을 사랑한 거라고요. 내가 키가 작고 못나서 싫다면 그건 진짜 ‘나’로 사는 게 아니에요. 냉장고에 별다른 게 없어도 그것 갖고 요리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배는 고프니까요. 자신만의 묘안을 연구해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냉장고 속 별거 아닌 재료와 마주해야죠. 굶을 건가요? 외면하면 판타지 속으로 숨어요. 거기에서 빠져나와 힘들더라도 애써 한발 디뎌 마주해야 해요.

10. 곡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습니까?
휘성 : 단어 하나에도 영감을 받아요. ‘아로마’도 음악 색채와 어울릴 것 같아서 제목으로 정했어요. 무언가를 떠올린 뒤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완성하기도 합니다. ‘나’라는 냉장고 안에서 꺼낼 수 있는 기술은 다 써보는 거예요. 그러면 곧 ‘나’를 닮은 요리가 나오죠.

10. 곡을 만들면서 가장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어딥니까?
휘성 : 가사를 쓸 때예요. 제 이야기를 할 때.

10. 지난해에 이어 오는 11월 24일 개막하는 뮤지컬 ‘올슉업’에도 참여하죠. 무대 위에서 캐릭터로 사는 휘성은 매우 행복해 보였습니다.
휘성 : ‘올슉업’은 코믹 요소가 많은 작품이에요. “바쁘겠다”고 하는데, 오히려 바쁜 게 더 좋아요. 피곤해도 혼자 가만히 있으면 우울하잖아요.(웃음)

10.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휘성 : 창작자로서 좀 더 완성도 높은 곡을 들려드릴 수 있도록 할 겁니다. 혼자 다 해 먹으려는 욕심은 없어요.(웃음) 순수하게 남을 수 있는 실체가 있는 걸 발견하고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치·경제·예술·건강·성 등 다양한 소재의 노래를 할 거고요. 11월 1일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를 하면서 뮤지컬도 병행할 계획입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