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배우 박하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박하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것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으로 할리우드를 수놓았던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죽기 직전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가족들 앞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시를 읊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 열성적인 구호 활동을 이어갔던 오드리 헵번의 진심이 담긴 시였다.

배우 박하은도 오드리 헵번 같은 삶을 꿈꾸고 있다. 인기와 명성을 얻기 위해 정상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사람이 아닌 대중들에게 연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소소한 기쁨, 여운이 남는 즐거움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직 갈 길이 먼 신인 배우지만 언젠가 세상에 짙은 향기를 남기길 원하는 박하은을 만났다.

10. 시선을 끄는 예쁜 외모다. 어릴 때부터 연예인 해보라는 얘기 많이 들었을 것 같다.
박하은: 정말 어릴 때부터 길거리 캐스팅 제의를 많이 받았다.(웃음) 몇 번 거절하다 계속 같은 제안을 받게 되니 호기심이 생기더라. 그리고 조그만 회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회사가 생기니 부모님의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 오디션을 보러가야 하는데 못 가고 그런 일이 반복되니 결국 회사에서 계약을 해지했다.

10. 회사가 포기할 정도면 부모님 반대가 정말 심했나보다.
박하은: 그 후로도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주변에서 계속 연예인을 해보라 하니 욕심이 생기더라.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내가 공부를 좀 했었다.(웃음) 그런데 고3 때 대학 안 간다고, 입학원서도 안 쓰고 아르바이트만 했다. 결국에 어머니가 아동학과에 가서 아동심리치료를 전공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시더라. 그런 다음에 정말 하고 싶은 걸 해보라고 하셨다.

10. 아동심리치료사가 아닌 배우가 됐다. 부모님이 본인의 고집을 꺾지 못했나보다.
박하은: 아동학과에 진학은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 길이 아닌 것 같더라.그래서 결국 부모님 몰래 자퇴하고, 학원비를 직접 벌어서 연기 레슨을 받았다. 2~3달 공부하고 경기대학교 연기학과에 붙었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연기를 정식으로 배웠다.

10. 결국 원하는 길에 들어섰다.
박하은: 승부욕이 좀 있다.(웃음) 어릴 때 무용·수영·피아노 등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내가 하나에 빠지면 잘 할 때까지 한다. 피아노는 피아니스트를 꿈꿀 정도로 정말 열심히 했다. 다들 체르니, 베토벤 하나하나 밟아갈 때 난 한 곡만 3~4달 치는 스타일이었다. 열 살 때 한미 콩쿠르에서 2등을 했었다. 그런데 결국 손목 인대를 다쳐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었다.

배우 박하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박하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연기는 피아노처럼 하나만 판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박하은: 사실 어릴 때는 막연하게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비유하자면 안개 낀 호수를 좋아했던 것 같다. 막상 연기를 배우기 시작하고, 방송에 출연하니 실상을 마주하고 진중해졌다. 호수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고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책임감이 생겼다.

10. 연예인은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이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굉장히 긴장될 수도 있는데?
박하은: 무대 체질인지 그다지 떨리지 않는다.(웃음) 피아노 치면서 무대에 자주 오른 경험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연극 무대에도 자주 올라갔는데 관객의 반응을 피부로 느끼면서 내 연기를 펼치는 것이 떨리면서도 행복하다. 그 미묘한 떨림이 좋다.

10. 배우로서 본인이 가진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하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두려움도 많이 없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대학도 미련 없이 자퇴하고 연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던 거다. 또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관찰하는 것도 좋아한다. 연기를 배우면서 느낀 것이 내 자신을 많이 알아야 하더라. 결국 연기는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을 꺼내는 거라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지켜보고 관심을 두려 하고 있다.

배우 박하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박하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배움에도 욕심이 많을 것 같다. 요즘 배우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박하은: 요즘에는 골프에 빠졌다. 소속사 대표님이 프로 선수할 거냐고 물어볼 정도다.(웃음) 또 연기과 교수님께서 강아지 표정을 따라하다 보면 감정 묘사를 잘할 수 있다고 조언해주신 적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강아지의 심리를 읽는 공부를 해보고 싶다.

10. 오랫동안 한 가지 꿈을 위해 달리다보면 슬럼프를 경험하곤 한다.
박하은: 한번 딱 슬럼프를 겪은 적이 있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작품이 없을 땐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다. 화장품도 팔아보고, 피자집에서도 일해보고, 백화점에서도 일했다. 그런데 내가 아르바이트에 너무 몰두한다고 생각했는지 이전 소속사 대표님이 “지금 알바를 하는 것이 무엇을 위해 하는지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그 얘기를 듣고 한동안 내가 무엇을 위해 연기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10. 다양한 알바를 경험해봤다는 건 연기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박하은: 그런 것도 있지만 서비스업을 주로 해서 기민하게 상대의 감정을 포착할 수 있게 됐다. 지금 상대가 어떤 기분인지 나한테 무엇을 요구하려고 하는지를 금방 눈치챈다. 연기도 결국 감정을 표현하는 것 아닌가. 덕분에 좀 더 세밀하게, 본능적으로 감정을 묘사할 수 있게 됐다.

배우 박하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박하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지금까지 배우 박하은이 성장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을 꼽아본다면?
박하은: 첫 연기 선생님이 너무 좋은 분이었다. 김한희 선생님이었는데 당시 본인도 연기학원에서 숙식하고 돈이 많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더 돈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쓰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셨고,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3일 후에 돌아가셨다. 중환자실은 하루에 두 번 30분씩 면회를 허락하는데 쓰러지신 선생님을 보겠다고 몇 백 명의 제자들이 병원에 모였다. 장례를 치를 때도 대형버스 2~3대가 장지에 갈 정도로 사람이 모였다.

10. 은사님의 장례식이 인생의 변곡점이 된 건가?
박하은: 그때 내가 많이 바뀌었다. 사람은 능력이 아니라 자신이 베푼 배려로 살아간다는 걸 느꼈다. 능력은 내가 잘 난 걸 포장해주지만 배려는 다른 사람을 더 돋보이게 하는 거란 걸 깨달았다. 예전의 나는 연기를 누구보다 잘할 거란 독기와 오기로 채워져 있었다면 선생님이 떠나신 이후에는 연기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동료들과 같은 작품을 만들어가는 재미를 알았다.

10. 영화 ‘천사의 시간’의 주인공을 맡았다. 이전까지 주로 연극을 좀 더 많이 했는데 처음 영화에 출연해 본 소감이 궁금하다.
박하은: 영화 현장은 또 다르더라. 살아있는 감정들을 경험했다. 극중에서 점점 눈이 불편해지는 역할을 맡았는데, 장애를 몸소 경험하는 기회가 됐다. 덕분에 수화에 관심이 좀 생겼다.(웃음) 또 기주봉·이화영 선배들을 통해 많이 배웠다. 후배들을 일일이 품어주시는데 나도 저 위치가 됐을 때 후배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10. ‘천사의 시간’에 함께 출연한 배우 기주봉과 지난해 대종상 시상식 시상자로 참여했었다.
박하은: 내가 큰 시상식에 서도 되나 싶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게 시상식장에 들어서니 태도와 자세가 저절로 달라지더라. 원로 배우들이 계시고, 나 역시 배우로 만들어지는 기분이었다.

배우 박하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박하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롤모델이 있나?
박하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대장암에도 해외 봉사를 하다가 돌아가신 오드리 햅번을 닮고 싶다. 예전에 어머니따라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봉사활동을 하신 걸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중에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겠다고 했었다.(웃음) 아직 어떻게 그 꿈을 이뤄야 할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단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10. 연기적으로도 닮고 싶은 사람은?
박하은: 김수미 선생님의 뮤지컬 ‘친정엄마’를 보러간 적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는데 어떤 뮤지컬 배우에게서 들어본 적 없었던 살아있고, 무게감이 다른 노래를 들었다. 평생 무대 위에서 살았던 배우들의 내공을 느꼈다. 나도 평생을 무대 위에서 늙고 싶다.

10. 배우 박하은의 목표는 무엇인가?
박하은: 연기를 하면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목표지향성 삶을 살았다면 지금은 목표가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느낌이다. 모든 것에 호기심이 생기고, 모든 것이 새롭고 즐겁다. 이런 시선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끝까지 연기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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