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연극 ‘남자충동’ 포스터/ 사진제공=프로스랩
연극 ‘남자충동’ 포스터/ 사진제공=프로스랩
어찌나 집을 생각하는지, 또 가족이라면 그 무엇보다 끔찍하게 여긴다. 사나이 장정의 삶은 과연 ‘패밀리(Family)’로 시작하고 끝이 나며, 영화 ‘대부’ 속 알 파치노를 동경한다. 하나밖에 모르기에 순수해 보이면서도, 때로는 대책 없이 움직이는 바람에 멍청해 보이기도 한 장정.

지난달 16일 막을 올린 연극 ‘남자충동'(연출 조광화) 속 장정은 가족, 나아가 집 밖에 모르는 남자다. 어떻게든 패밀리(조직)를 지키기 위해 한 몸을 다 바치는, 이 과정이 너무나도 처절해 때론 실소가 삐져나올 정도다.

전라남도 목포의 어느 집. 알 파치노처럼 살기를 바라는 큰 아들 장정과 노름에 빠진 아버지 이 씨, 그런 그를 말리는데 평생을 바친 어머니 박 씨 그리고 자폐 증상을 보이는 여동생 달래와 기타를 연주하는 남동생 유정, 남성성을 부정하는 단단까지, ‘남자충동’에는 자신의 색깔이 뚜렷한 캐릭터들이 줄줄이다. 이들을 모두 훑다 보면 다른 곳에 정신을 팔 새가 없다.

극은 비교적 단조롭게 흘러간다. 장정의 눈과 귀를 중심으로, 그의 삶의 모토인 ‘패밀리 지키기’가 큰 줄기. 그러면서 누군가는 떠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누군가는 다치고, 또 죽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잔잔히 흐르는 베이스 기타 연주도 압권.

말도 거칠고 행동도 험하지만, 눈살을 찌푸리지는 않는다. 곳곳에 녹아든 건 우리의 삶이고 이 점이 웃음을, 또 뭉클함도 안긴다. 세상은 다르게 흘러가는데 오직 하나만을 바라보는 장정의 모습은 끝내 측은하기까지 하다. 보는 이들에게 진정으로 강인한 것이 무언인지 생각하게 만들며 뒤틀린 욕망으로 인한 허세를 속 시원히 긁는다.

연극 ‘남자충동’ 류승범(왼쪽), 손병호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연극 ‘남자충동’ 류승범(왼쪽), 손병호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캐릭터의 면면처럼 무대 역시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소극장에서 이뤄져 한층 몰입도를 높인다. 목포의 걸쭉한 사투리의 맛은 말할 것도 없고, 인물들이 속마음까지 읊어주는 통에 재미는 배가 된다. 1997년 초연 당시 관객,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낸 작품인 만큼 구성과 대사,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하다. 장정 역의 류승범은 말할 것도 없고 손병호, 황영희, 박도연, 전역산, 문장원 등도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낸다.

무대 위 한바탕 즐기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풍요롭다. 오는 3월 26일까지 대학로 TOM 1관.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