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박정민 / 사진제공=샘컴퍼니
박정민 / 사진제공=샘컴퍼니
“내 생애 로미오가 있을 줄이야.”
배우 박정민이 생각지도 못 했던 역할을 맡았다. 바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신선한 도전이다. 게다가 ‘키사라기 미키짱’과 ‘G코드의 탈출’ 이후 약 2년 만에 돌아온 무대다. 그간 박정민은 영화 ‘동주’로 큰 성공을 거뒀다. 2011년 ‘파수꾼’으로 데뷔해 약 5년 만에, 탁월한 연기력만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모든 행보가 신기하고 꿈같겠지만, 올해의 마지막 작품으로 택한 로미오는 더욱이 상상하지 못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숨가쁘게 달리다 보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나 잠시 멈췄고, 안전한 속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박정민의 올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은 로미오와 함께다.

10.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문근영과 연기 호흡 중이다. 잘 맞춰가고 있나.
박정민 : 잘 맞춰가고 있는 중이다. 아마 마지막 공연 때도 맞춰가는 중일 것 같다. 공연을 하면서 문근영과는 더 많이 친해졌다. 개인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다.

10. 작품에서는 첫 호흡인데, 상대 배우의 평가를 해본다면?
박정민 : 문근영은 인물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출중하다. 그 점이 항상 부러웠다. 나는 그런 것이 느려서 많이 애를 먹는 편인데, 문근영은 순간적인 집중력도 좋고 공감 능력도 탁월하다. 연습 때도 금방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자극도 많이 받았다. 연기 자체를 나와는 다르게 접근하는 것 같아서 항상 부러워하는 유형의 배우다.

10. 자극도 받고 그만큼 도움도 많이 받겠다.
박정민 : 연기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상대 배우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게 이번이 처음이다. 어려움이 많고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까,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10.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나.
박정민 : 우선 원작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사실 디테일한 개연성이 있는 극이 아니다. 갑자기 큰 사건들이 마구 일어나는데, 사이의 행간을 적절한 자극을 찾아가야 하는 식이다.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납득시킬까, 어떻게 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인물들의 정당성에 대해 얘기했다.

10. 사실 처음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을 때,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반응이 있었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했나.
박정민 : 내 인생에 로미오란 인물을 만날 것이라고는 감히 꿈도 안 꿨는데, 기회가 왔다. 초반에 대본을 보고 분석을 하면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여러 가지의 형태로 많이 공연이 된 작품이지 않나. 박정민의 로미오, 문근영의 줄리엣이 기존에 했던 것, 대중들이 봐왔던 똑같은 걸 한 번 더 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내 식대로 로미오를 표현해보자라고 마음먹었다.

10. 문근영과 이야기를 나누며 세운 분석이 연출의 방향과 같던가.
박정민 : 완벽하게 같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연출이 전체적으로 잡아주시는 연할이니까, 그분의 의도에 따라야 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처음부터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살려보자고 했기 때문에, 문어체의 문장을 최대한 말처럼 해보자는 게 목표였다. 그 접점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조금 시간이 걸렸다. 결국에는 좋은 공연을 만드는 것이 서로의 목표이다. 시행착오도 있지만, 합심이 돼 수정해나가면서 공연하고 있다.

박정민 / 사진제공=샘컴퍼니
박정민 / 사진제공=샘컴퍼니
10. 관전 포인트를 하나 꼽는다면?
박정민 : 출중한 능력을 갖춘 배우들이 나오는 고전이다. 많은 분들이 심각한 비극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먹고 오실 것이다.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 가볍게, 희비극이라고 불리는 작품이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오셔서 관람하시면 좋을 것 같다.

10. 로미오처럼 불같은 사랑을 해본 적 있나.
박정민 : 매번 할 때는 불같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나고 보면 또 뭔가 부족한 게 있고 미안함이 남는다. 목숨까지 바칠 사랑을 못 해봐서 지금 살아 있는 게 아닐까.(웃음) 매 순간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10. 연극 무대는 오랜만인데다, 서른의 끝자락 무대에 다시 올랐다. 연기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라고 봐도 될까.
박정민 : 사실 매년 한 편씩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3년 가까이 연극을 쉬게 됐다. 옛날과 지금은 느낌이 다르다. 관객들이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다. 사실 나란 인간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데, 공연을 하다가도 관객들이 잘 따라오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무서워진다. 무대는 관객들이 같이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루해한다고 느껴지면 많이 무섭고 힘들더라. 그 전과는 달리, 무대라는 공간에 서는 것 자체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전 공연과는 질이 조금 다른 공연인 것 같다. ‘키사라기 미키짱’은 형들만 믿고 까불면 됐는데, 지금은 극의 중심에 서서 끌고 가야 하니까, 다르다.

10. ‘연극 무대에 서면, 배우의 단점이 드러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더라. 이번에는 어떤 단점이 감춰졌고, 또 어떤 단점이 드러난 것 같은지.
박정민 : 연극에서 보고 싶었던 선배께 ‘다시 안 해주세요?’라고 물었을 때, ‘무대가 무섭다’고 하시더라. 그 말이 당시엔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는 그 마음을 알겠다. 매체에 적응이 되다 보니까, 영화는 다시 갈 수 있지 않나. 공연을 하면서 매회 ‘다시 갈게요’라고 하고 싶다. 하면서도 어색하다고 느껴지면 다시 하고 싶은 거다. 카메라는 배우를 기다려주고, 녹화도 있고 편집도 된다. 충분히 기다렸다가 감정이 잡힐 때 연기를 하는데 무대는 그렇지 않다. 관객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지난주 공연 초반에 확 느꼈고, 감정 몰입이 느리다는 게 이런 순간에 또 탄로가 나는 거다. 확실히 매체에 많이 적응이 돼 있으니까, 스태프들처럼 관객들에게도 기다려 주길 바랐는지 모르겠다. 브라운관, 스크린을 거치는 게 아니라 무대와 객석 사이엔 공기만 존재하는데 관객들에게 무리한 걸 원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점을 감추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이다.

10. 관객들의 냉정한 평가도 있다. 찾아 보는 편인가.
박정민 : 첫 공연 때 보고 이젠 안 본다. 내 문제는 스스로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분명 혹평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잘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평가를 해주시는 것에 하나하나 마음을 쓰면, 그것 때문에 오히려 관객들이 무서워질 것 같아서. 내 이름을 검색하는 게 낙이었는데 이젠 하지 않는다. 아마 내년 중반쯤부터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10. 문근영의 인간적인 장점은 무엇인가.
박정민 : 나는 생각보다 멘탈이 약한 사람이다. 포기도 쉽고, 아무튼 흔히 말하는 ‘유리멘탈’이다. 반면 문근영은 다년간의 훈련을 통해 다져진 강철 멘탈과 체력을 갖고 있다. 사실 또래 배우에게 나의 약점을 보여주는 게 쉽지 않다. 마음을 털어놓기는 더 쉽지 않고. 잘 하는 걸 보면 질투도 나고 자책도 하는데 문근영은 아주 큰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라. 남자가 ‘괜찮아’라고 다독여야 하는데, 반대다. 내가 먼저 ‘너무 힘들다’고 하면, ‘괜찮다’고 위로해준다. 그릇이 참 큰 배우, 인간, 또 선배님이다. 심리적으로 의지가 많이 되서 다 털어놓을 수 있다. 대본 이야기를 하자고 모여서, 3시간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연습을 하다가도, 3시간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눈다. 잘 들어주고, 아주 좋은 사람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장면 / 사진제공=샘컴퍼니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장면 / 사진제공=샘컴퍼니
10. 20대를 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 후회되는 순간도 있을 테고, 또 이건 정말 잘했다는 것도 있을 것 같은데.
박정민 : 20대는 연기가 하고 싶어서 백방으로 뛰어다닌 시절이었다. 연기 전공자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열심히 연기를 해보겠다고 뛰었다.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중간에 후회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이러려고 연기를 했나’ 싶었을 정도로(웃음) 그런 순간들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버텨온 것 같아서 기특하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하는 게 쉽지 않은 인간인데, 이렇게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걸 보면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후회되는 건 10년 동안 새해 목표를 ‘몸짱 되기’라고 세웠는데, 10년 동안 지키지 못한 것, 건강을 소홀히 한 게 조금 후회된다. 그렇다고 어디가 많이 아픈 건 아니다.(웃음)

10.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박정민 : 2016년을 정신없이 살았다. 마치 슈퍼마리오 게임을 하는 것처럼 벽돌도 부수고 버섯도 잡으며 바쁘게 보냈는데, 갑자기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함정에 빠져바린 느낌이다. 굴에 빠져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 것만 같은. 정신없이 살아온 내게 ‘로미오와 줄리엣’이 브레이크를 걸어준 것 같다. 다시 살아난 것 같은 기분이다. 끝냈을 때, 다른 건 모르겠고 제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뭔가를 해나갈 수 있는 상태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이 울 것 같다.

10. 박정민 앞에 수식어가 붙는다면, 어떤 게 좋은가?
박정민 : 아무것도 안 붙었으면 좋겠다. 그게 가장 오래 연기할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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