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클론 강원래가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클론 강원래가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클론의 원래 원래 강원래입니다. 오늘도 꿍따리 샤바라 신나는 하루 보내세요.”

강원래는 누구보다 시원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누군가의 점심시간을 책임지고 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흘렀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로 시작한 KBS3 라디오 ‘노래선물’의 DJ가 된 그는 계절이 숱하게 바뀌면서 많은 걸 깨닫고 또 얻었다.

당시 태어난 아이라면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만큼의 시간, 강원래도 한 뼘 성장했다. 다른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됐고, 세상엔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도 새삼 다시 느꼈다. 저마다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청취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강원래는 듣는 이들에게 힘을 안겼고, 반대로 그는 많은 이들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선물 받았다.

10.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다. 감회가 새롭겠다.
강원래 : 벌써 10년이 됐다니, 놀랍다. 시작할 때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숫자니까.(웃음)

10. 돌아보면, 아찔했던 순간은 없었나.
강원래 : 딱 두 번 있는데, 2년 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전날 학교에서 강연이 있었는데, 그때 휴대전화 볼륨을 줄여 놨다. 마치고 집에 늦게 도착해서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알람이 무음으로 울린 거다. 볼륨 조절을 깜빡 하고 말이다. 보통 알람을 9시 즈음에 맞추고, 11시에 KBS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방송을 시작하는 식이다. 그날은 5분을 늦었다. 방송사의 규칙상, 5분이더라도 진행을 시작한 DJ와 교체를 할 수가 없더라.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이가 DJ로 시작한 순간, 도착을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거다. 그렇게 다른 이가 진행하는 걸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10. 10년을 이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나.
강원래 : 전혀 못 했다. 사실 처음도 정식 DJ 제안을 받은 게 아니라, 당분간만 맡는 DJ였다. 원래 ‘윤선하의 노래선물’이었는데, DJ가 잠깐 못 하게 됐으니 당분간 맡아 달라고 해서 시작하게 된 거다. 당시 게스트였으니까.

10. 우연히, 또 운명처럼 시작한 것이 시간이 꽤 흘러 10년이 됐다.
강원래 : 처음엔 노현희와 ‘뮤직토크’의 DJ를 했는데, 2시간이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더라. ‘노래선물’은 1시간이니, 해볼 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선뜻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래할 줄은 예상 못 했다.(웃음)

10. 사실 말이 10년이지, 매일 정오 생방송을 진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행을 다녀올 수도 없고, 평일 점심 약속을 잡는 것도 힘들지 않나.
강원래 : 여행은 가끔 다녀오긴 했다. 녹음 스케줄을 미리 맞춰두고 길게는 일주일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젠 익숙해져서 전혀 불편함이 없다.

강원래/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강원래/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어느 순간은 슬럼프라고 해야할까, 익숙해져서 감흥이 떨어지는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도 있었을 것 같다.

강원래 : 있었다. 그걸 바꾼 건 공연이었다. 다른 무언가로 찾았다. 라디오를 하면서, 밖에서 이야기를 할 때도 먼저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책임감이 생긴 모양이다. 마무리도 제대로 해야할 것만 같고.(웃음) 강연과 공연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그러면서 라디오를 통해 내 목소리를 더 찾으려고 했다.

10. 라디오는 오롯이 목소리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매체이다. 춤과 노래를 하면서 관객들과 호흡하던 강원래에겐 충분히 새로운 도전이었겠다.
강원래 : 돌이켜보면, 그전엔 DJ 또 진행자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일부러 목소리를 만들고 예쁘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평소 그대로 ‘안녕하세요’를 해도 되는 거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때로는 까칠하다, 툭툭 내뱉는 것 같다는 평도 있지만 진정한 내 목소리로 전달하고 싶었다. 그게 내 성격이다.

10. 달라진 점이 많겠는데.
강원래 : 성격도 좀 바뀌긴 했다. 좀 더 성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10. 매일 같은 시간에 움직인다는 것, 가족들의 도움도 필요했을 테고. 고맙겠다. 아까 부인 김송의 편지에 ‘도시락’ 이야기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강원래 : 송이가 매일 도시락을 챙겨줬다. 방송 전 먹고 들어가는 거다. 가장 처음 라디오를 할 때, ‘매일 따라다닐 거다’라고 하더라. 하루 따라오더니, 그 이후부터는 오지 않더라.(웃음) 혼자 계속 멀뚱히 앉아 있는 게 쉽지 않았던 거지. 하하.

10. 라디오를 하면서 가장 즐거울 때가 있다면?
강원래 : 공개방송을 할 때다. 직접 청취자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 나는 내 상상 속 그들을 보고, 또 청취자들은 목소리를 듣고 상상했던 나를 직접 보고. KBS3 라디오를 하면서, 나 역시도 장애인에 대해 조금은 편견, 혹은 또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내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힘을 얻는다는 것 자체가 벅차고, 상상하지 못한 일들인데 실제로 청취자들을 만나면서 느낀다.

강원래/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강원래/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실제로 청취자들을 만나면 묘한 기분이 들겠다.

강원래 : 처음 방송을 할 때는 청취자들이 나보다 어린 분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했다.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보면, 나보다 훨씬 더 어르신들이니까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10. 라디오 하길 정말 잘했다, 싶은가.
강원래 : 사실을 하고 싶었다. 병원에 누워서 하반신 마비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우연히 라디오를 맡게 됐는데, 처음엔 조금 힘들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니까, 적응하는 것이 말이다. 그런데 일이 있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재활병원에서 배운 건, 재활의 끝은 ‘일’이라고 하더라. 어떤 장애를 갖고 있든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을 위해 장애마저도 익숙해진다는 거다. 처음 나와 약속한 게 ‘혼자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뭐든지 도와주니까, 그러면 또 나태해질 것 같아서 혼자 다녔다. 혼자 다니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바꿔보자 싶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지금도 혼자 다닌다. 불편한 건 없다.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10. 라디오를 시작하고 가장 변한 것이 있다면?
강원래 : 말투이다. 우선 그전까지는 말하는 입장이었다. 이제는 다른 이들의 말을 듣게 됐다. 내 말만 했고, 뭐든 혼자 찾아다니고 해결하려고 했다면 라디오를 하고 난 뒤에는 대화를 통해서, 다양한 이야기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귀가 열렸다. 중간자의 입장을 조금 알았다고 할까, 치우치지 않고 많은 사연을 듣다 보니까 이해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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