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배우 엄태구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엄태구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엄태구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기억한 것은 2012년 단편 스릴러 ‘숲’(감독 엄태화)에서였다. ‘숲’에서 그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관객들을 단숨에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엄태구라는 배우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이듬해 엄태구는 그의 형 엄태화 감독의 장편 독립영화 ‘잉투기’에도 출연, 다시 한 번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제2의 류승완, 류승범’으로 형 엄태화 감독과 함께 충무로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엄태구가 드디어 일을 냈다.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에서 송강호와 대립하는 일본 경찰 하시모토 역을 맡아 송강호에 밀리지 않는 압도적인 아우라로 관객들에 눈도장을 찍은 것이다. 역시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법이다.

10. ‘밀정’에서 하시모토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엄태구: 엄청 부담이 컸다. 처음으로 큰 역할을 맡게 됐고, 게다가 김지운 감독님 작품이었으니까. 나보다 훨씬 인지도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날 믿어주시고 캐스팅해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걱정이 됐다. 송강호 선배와 연기 호흡을 맞추는 것도 걱정되고, 일본어도 유창하게 해야 된다는 걱정이 있었다. 일부러 살을 뺀 것이 아닌데 살이 저절로 쭉쭉 빠졌다.(웃음) 작품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다. 아직도 포스터에 내 모습이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10. 김지운 감독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김 감독의 전작 ‘악마를 보았다’에서 형사4 역으로 출연했었던데?
엄태구: 6년 만에 다시 감독님 작품에 출연할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고, 감사했고, 뿌듯했다. ‘악마를 보았다’를 찍을 때 날 ‘형사4’로 부르지 않고 “태구야”라고 불러주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원래부터 김지운 감독님의 팬이었다. 당시 감독님께 사인을 받았었다. 배우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사인을 받았던 것이 그 때였다.

배우 엄태구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엄태구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밀정’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기억나는가?
엄태구: 회사에서 밀정 오디션이 잡혔다고 얘기했을 때, 아무 역할이라도 좋으니 출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김지운 감독님 작품에 또 출연하게 되는 것이고, 게다가 송강호 선배의 연기를 근처에서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하시모토랑 의열단원, 상해 정보원 역할을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오디션을 보러 들어가려는데 딸꾹질이 엄청 났다.

10. 오디션 장에 들어가고 나서도 딸꾹질이 났었는지?
엄태구: 다행히 들어가기 전에 딸꾹질이 멈췄다. 오디션을 보러 들어가니까 의자 2개만 놓여있고, 감독님의 지시대로 연기를 선보이면 됐었다. 감독님께서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연기 한 번 해보자’하시는데 정말 신나게 오디션을 봤다.

10. 간절히 출연하고 싶었던 작품이었으니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기뻤겠다.
엄태구: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정말 좋았다. 딱 2초만 좋았다.(웃음) 막상 캐스팅이 되니 도망가고 싶더라. 너무 중요한 배역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좋은 만큼 두려움도 생겼다. 내가 이걸 어떻게 하지?

10. 걱정이 정말 많았던 것 같은데, 하시모토란 캐릭터를 잡을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
엄태구: 매 사진을 많이 봤다. 의열단을 찾기 위해 기차를 수색하는 장면에서 하시모토의 눈빛은 먹잇감을 발견하기만 하면 바로 낚아채려는 매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표현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진심으로 진실 되게 하시모토에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배우 엄태구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엄태구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송강호가 여러 인터뷰에서 바로 그 ‘매의 눈빛’을 칭찬했더라. 대선배 송강호와 연기한 소감이 궁금하다.
엄태구: 엄청 부담됐다. 똑바로 송강호 선배 눈을 못 쳐다봤다. 지금도 쉽게 못 쳐다본다. 대본 리딩을 했을 때도 고개 숙이고 있다가 잠깐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 그리고 첫 장면 첫 리허설을 하면서 송강호 선배의 눈을 처음으로 마주쳤다. 정신이 핑 돌고 어지러움을 느꼈다. 잘못했으면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따로 얘기한 적도 없는데 송강호 선배는 내가 긴장했다는 걸 알고, 계속 배려해주셨다. 까마득한 후배한테 이것저것 하고 싶은 연기를 시도해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정말 감사했다. 선배 덕분에 내 장점이 많이 부각된 것 같다. 진짜 송강호 선배는 정말 후배 배우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선배였다.

10. 송강호와 함께 했던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엄태구: 송강호 선배의 눈빛을 보고 기절할 뻔 했던 첫 촬영과 식당 칸에서 김우진(공유)·이정출(송강호)과 만나는 장면이다. 기차 신을 찍을 때는 내가 송강호-공유 선배 사이에서 긴장감을 만들어야 했다. 부담이 많이 됐다. 내가 헤매고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친절하게 디렉션을 주셨다. 언제까지 두 사람을 쳐다봐야 하는지, 언제쯤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야 하는지 모두 감독님이 다 잡아주셨다.

10. 언제 처음 완성된 영화를 봤나?
엄태구: 기술 시사에서 처음 봤었다. 그때는 계속 내 부족한 점만 찾다보니까 영화를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언론시사회에서 두 번째로 영화를 볼 때 좀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영화를 보니까 재미있더라. 그래서 VIP 시사회 때 또 봤다. 한 번 더 볼 예정이다.(웃음)

⇒인터뷰②에서 계속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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