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박찬욱: 숫자를 예측하고 할 줄 몰라서 그런 생각은 안 했다. 반응이 좋을 것은 기대했지만, 언제나 그래왔다. 사실 만들면서 반응이 좋은 것을 기대하지 않나. (웃음) ‘박쥐’,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때도 믿기진 않겠지만, 좋은 반응을 기대했다.
10. 영화 ‘아가씨’는 권선징악에 해피엔딩 결말로 명확한 편이라 오히려 색다르게 다가온다.
박찬욱: 원작 소설에서 히데코의 원형이 된 ‘모드’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읽고 나서 모드에게는 이런 식의 엔딩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모드에게 행복한 것은 무엇일지 생각했고 누가 파멸해야 할지, 모드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무엇일지 생각했다.
10. 전작과 분위기 자체도 다른데.
박찬욱: 좀 더 유머러스하게 만들었다. 숙희는 자신이 세상 물정을 잘 알고 있고 히데코를 조정할 수 있므며, 갖고 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관객이 볼 때도, 히데코가 볼 때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 틈새에서 유머가 생긴다. (김태리처럼) 귀엽고 어리게 생긴 배우를 캐스팅해 표현하면 더 귀엽고 웃길 것 같았다. 백작도 마찬가지다. 너무 사악하기만 한 인물이라기 보다는 ‘보통 남자’에 가깝게 만들었다. 백작도 허술한 면이 있는 사람이고, 악당이라 할지라도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존재로 만들고 싶었다. 백작이 악한 짓을 할 때 관객이 느끼기에 ‘증오’보다는 ‘실망’을 느낄 수 있게.
10. 백작한테 속물적인 모습과 낭만적인 모습이 동시에 보인다.
박찬욱: 그렇다. 백작은 히데코에게 순정을 품었다. 자기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열렬히 사랑해요’가 아닌 좋아하는 감정인데 사실 백작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도 크게 베푸는 거다. 그런 사람이니만큼 순정을 품었다는 것도 귀여운 일이다.
10. 원작 속 ‘출생의 비밀’에 관한 반전도 과감히 들어냈는데 그 이유는.
박찬욱: 분량 때문에. (웃음) 그것도 그렇고, 그런 출생의 비밀은 빅토리아 시대의 통속 소설에서는 가능한 이야기다. 원작 자체가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쓰여졌으므로 그러한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쓴 작품이기도 하고. 독자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관객들에게 ‘아 이 클리세를 갖고 노는 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즐기게끔 하고 싶었다.
10. 눈에 띄게 문학적이다. 특히 같은 문장을 다른 인물들이 말함으로써 영화의 의미도 풍성해지는 것이 묘미다. 중의적 표현을 좋아하는가.
박찬욱: 중의적 표현도 좋아하고 반복을 통해 같은 표현에도 다른 의미를 얹는 것이 이 영화의 재미 중 하나다. 현대에 이르러서 한국의 언어 관습이 조금 단순하고 직설적인 쪽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동안은 잘 없었던 종류의 대사로 묘미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더군다나 일제강점기 시대 배경이니 관객들은 자막으로 일본말 문어체 대사를 읽게 되지 않나. 그런 식으로도 문학적인 표현이 가능하다. 특히 우아한 척, 점잖은 척은 다 하는데 숨은 뜻은 그렇게 우아하지 않은 표현들이 있지 않나.
10. 마치 코우즈키의 책처럼 이중적인 묘미가 있다.
박찬욱: 그렇다. 코우즈키의 음서들이 표지 디자인만 보면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내용이 지저분한 것처럼, 속으로는 자기의 욕망을 감추고 우아한 표현을 하는 이중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10. 특유의 통쾌한 복수 코드가 존재하는 것 같다.
박찬욱: 내 자신이 화나는 상황에서도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이것도 일종의 억압이겠지. 영화를 만들면서 해소가 되는 것 같다. 나는 내 기억이 미치는 한도 내에서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 그게 가능하다. 내가 너무 착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표현을 못해서 그런 거다. 뒤늦게 집에 와서 ‘이불킥’한다. ‘그때 왜 참았을까’ 생각하면서. (웃음)
⇒ 인터뷰②에서 계속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의 토대가 된 소설 ‘핑거스미스’는 여성들의 자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를 통해 여성들의 사랑, 혹은 인간 내면의 자연스러운 욕망에 관해 또 다른 이야기를 제시했다. 명확한 해피 엔딩에 문학적이며, 처음 시도하는 시대극이라는 것까지 그가 말한대로 참 ‘이채로운’ 작품이다. 권선징악의 흐름을 따르는 상업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깐느박’만의 상상력과 창조력 때문일 것이다. 박 감독은 ‘핑거스미스’의 뼈대 안에서 모드 모양을 한 ‘히데코’를, 수 모양을 한 ‘숙희’를, 젠틀먼 모양을 한 ‘백작’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아가씨’를 통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그를 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10. 이렇게 ‘아가씨’의 반응이 좋을 것을 예상했나. 19금 영화인데도 반응이 뜨겁다.
박찬욱: 숫자를 예측하고 할 줄 몰라서 그런 생각은 안 했다. 반응이 좋을 것은 기대했지만, 언제나 그래왔다. 사실 만들면서 반응이 좋은 것을 기대하지 않나. (웃음) ‘박쥐’,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때도 믿기진 않겠지만, 좋은 반응을 기대했다.
10. 영화 ‘아가씨’는 권선징악에 해피엔딩 결말로 명확한 편이라 오히려 색다르게 다가온다.
박찬욱: 원작 소설에서 히데코의 원형이 된 ‘모드’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읽고 나서 모드에게는 이런 식의 엔딩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모드에게 행복한 것은 무엇일지 생각했고 누가 파멸해야 할지, 모드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무엇일지 생각했다.
10. 전작과 분위기 자체도 다른데.
박찬욱: 좀 더 유머러스하게 만들었다. 숙희는 자신이 세상 물정을 잘 알고 있고 히데코를 조정할 수 있므며, 갖고 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관객이 볼 때도, 히데코가 볼 때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 틈새에서 유머가 생긴다. (김태리처럼) 귀엽고 어리게 생긴 배우를 캐스팅해 표현하면 더 귀엽고 웃길 것 같았다. 백작도 마찬가지다. 너무 사악하기만 한 인물이라기 보다는 ‘보통 남자’에 가깝게 만들었다. 백작도 허술한 면이 있는 사람이고, 악당이라 할지라도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존재로 만들고 싶었다. 백작이 악한 짓을 할 때 관객이 느끼기에 ‘증오’보다는 ‘실망’을 느낄 수 있게.
10. 백작한테 속물적인 모습과 낭만적인 모습이 동시에 보인다.
박찬욱: 그렇다. 백작은 히데코에게 순정을 품었다. 자기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열렬히 사랑해요’가 아닌 좋아하는 감정인데 사실 백작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도 크게 베푸는 거다. 그런 사람이니만큼 순정을 품었다는 것도 귀여운 일이다.
박찬욱: 분량 때문에. (웃음) 그것도 그렇고, 그런 출생의 비밀은 빅토리아 시대의 통속 소설에서는 가능한 이야기다. 원작 자체가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쓰여졌으므로 그러한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쓴 작품이기도 하고. 독자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관객들에게 ‘아 이 클리세를 갖고 노는 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즐기게끔 하고 싶었다.
10. 눈에 띄게 문학적이다. 특히 같은 문장을 다른 인물들이 말함으로써 영화의 의미도 풍성해지는 것이 묘미다. 중의적 표현을 좋아하는가.
박찬욱: 중의적 표현도 좋아하고 반복을 통해 같은 표현에도 다른 의미를 얹는 것이 이 영화의 재미 중 하나다. 현대에 이르러서 한국의 언어 관습이 조금 단순하고 직설적인 쪽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동안은 잘 없었던 종류의 대사로 묘미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더군다나 일제강점기 시대 배경이니 관객들은 자막으로 일본말 문어체 대사를 읽게 되지 않나. 그런 식으로도 문학적인 표현이 가능하다. 특히 우아한 척, 점잖은 척은 다 하는데 숨은 뜻은 그렇게 우아하지 않은 표현들이 있지 않나.
10. 마치 코우즈키의 책처럼 이중적인 묘미가 있다.
박찬욱: 그렇다. 코우즈키의 음서들이 표지 디자인만 보면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내용이 지저분한 것처럼, 속으로는 자기의 욕망을 감추고 우아한 표현을 하는 이중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10. 특유의 통쾌한 복수 코드가 존재하는 것 같다.
박찬욱: 내 자신이 화나는 상황에서도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이것도 일종의 억압이겠지. 영화를 만들면서 해소가 되는 것 같다. 나는 내 기억이 미치는 한도 내에서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 그게 가능하다. 내가 너무 착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표현을 못해서 그런 거다. 뒤늦게 집에 와서 ‘이불킥’한다. ‘그때 왜 참았을까’ 생각하면서. (웃음)
⇒ 인터뷰②에서 계속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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