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임시완(1)
임시완(1)
배우의 특정 이미지는 작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반대로 한 작품이 배우의 인생을 흔드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임시완은 후자에서 시작해, 전자로 이동 중인 배우가 아닐까란 생각을 영화 ‘오빠생각’을 보며 잠시 해봤다. 부조리한 국가권력에 항거한 ‘변호인’의 진우와 완성을 꿈꾸는 ‘미생’의 신입사원 장그래를 통과하는 순간, 임시완은 이전의 임시완이 아닌 특정 시대의 청춘을 대변하는 얼굴이 됐다. 반면 두 작품에서 쌓아올린 올곧은 이미지가 극대화돼서 투영된 게, 영화 ‘오빠생각’이지 않나 싶다. 솔직히, ‘변호인’과 ‘미생’에서 확인한 그의 놀라운 재능들이 ‘오빠생각’에서는 다소 희미하다. 임시완의 연기가 별로라기보다, 캐릭터 자체의 한계가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임시완이기에 빛을 발하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가령 다소 구태의연해 보일 수 있는 대사들이 임시완이라는 필터를 거치는 순간, 어떤 힘을 얻는다. 그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10. 첫 스크린 데뷔작이 천만 영화(‘변호인’)인 건, 배우에게 어떤 느낌일까요.
임시완: 아…어떤 느낌이지? 적절한 비유를 찾기 쉽지 않네요. 아! ‘정점을 찍어봤다’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작하자마자 제 인생의 정점을 찍은 셈인데,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첫 영화가 천만이니까, 다음 영화도 천만이 들어야 해!’ 하는 미션 같은 게 아니잖아요?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10. 마음이 편하다니, 성격이 긍정적인 건가요.(웃음) 아무래도 상대평가라는 게 작용할 테니, 작품이 좋을수록 차기작에 대한 부담이 있을 것 같거든요.
임시완: 시청률이든 관객수든 그게 절대로 작품의 근본적인 목적은 아니니까요. 이 현상에 대해서 인정해 버린 것일 수도 있어요. 저의 의지로 되는 거였다면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는데, 수치는 저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10. 가수로서는 아직 높은 고지를 밟지 못했어요. 단순히 수치적으로만 보면 아직 밟을 수 있는 단계가 많은 셈이죠.
임시완: 가수로서는 많이 부진했던 게 사실이에요. 연기와 비교했을 때 노래와 춤을 상대적으로 더 못한다고 생각해요. 노래는 좋아하지만 잘 하진 못해요. 춤은 뭐…애초에 좋아하지도 않았고 잘하지도 않았어요.(웃음) 감도 없고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운 좋게 가수로 데뷔했는데, 그땐 데뷔만 하면 끝이구나 생각했어요. 목표를 이뤘으니 됐다 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죠.(웃음) 저보다 월등한 실력의 가수들이 너무나 많지 뭐예요. 새로운 세상을 본 거죠. 그때 많은 고민이 들었어요. ‘도대체 얼마나 노력해야, 그들과 비슷해질까.’ 그런 고민들이 많았어요.
임시완(2)
임시완(2)
10. 그와 달리 연기적으로는 빨리 성취를 이루지 않았나 싶어요. 송강호-이성민 같은 대선배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연기를 펼친다는 평가가 많았죠.
임시완: 실제의 저보다 과하다 싶은 칭찬들이 쏟아졌죠. ‘내가 이런 평가를 받아도 되나’ 의문도 있었어요. 하지만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그런 말씀들이 저를 정말 춤추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가수보다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고요.

10. 노래는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않는다고 했어요. 연기는 어떤 것 같아요? 잘한다고 느끼나요?(웃음)
임시완: 아, 노래를 못한다고 한 건 상대적인 거예요. 그렇다고 연기를 잘한다는 건 아니고요. 하하하.

10. 원래 연기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던 걸로 알아요.
임시완: 네. 단지 연예인이 되고 싶었어요. 연예인이 되고 보니까, 그 안에 가수라는 게 있고 연기라는 게 있고 MC라는 게 있더라고요. 가수 안에도 밴드라는 게 있고 아이돌이 있다는 걸 알았고요. 연예계에 대해 굉장히 무지했던 사람인 거죠.

10. 연예계에 무지했던 임시완을 이 길로 이끈 계기는 뭔가요.
임시완: 공부요.(웃음) 공부를 더 이상 할 수 없겠다는 방황이 저를 연예계로 오게끔 인도했던 것 같아요. 공부를 잘 했냐고요? 속아서 공부했어요.(웃음) 어른들이 그러잖아요. “대학을 가야 한다. 대학을 가야 좋은 여자 친구도 만나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며 살 수 있다.” 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어요. 대학을 가면 정말 꿈의 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대학교 1학년인지 고등학교 4학년인지 모를 생활의 연속인 거예요. 방황이 시작됐죠.

10. 그러다가 가요제에 출전한 거군요.(임시완은 대학 1학년 때 출전한 가요제에서 예선 탈락에도 불구하고 소속사 눈에 띄어 명함을 받았다.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와 데뷔를 했고, 가수로 잠시 소강상태였다가 드라마 ‘해를 품은 달’ 한 편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임시완: 네. 아버지가 엔지니어 쪽 사업을 하세요. 전 제가 아빠를 따라 평범하게 엔지니어링 쪽 일을 하며 살 줄 알았어요. 그래서 대학도 기계공학부로 갔는데, 가요제 출전으로 인생이 바뀐 거죠.
임시완(3)
임시완(3)
10 명함을 받고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임시완은 어땠을까요.
임시완: 글쎄요. 아! 어떤 분이 답을 내려 주셨어요. 그랬으면 기계공학부를 졸업하고 한 명의 장그래가 됐을 거라고요.(웃음) 결론은 장그래!

10. 아버지 회사면… 낙하산인데.
임시완: 장그래도 낙하산이긴 하잖아요.

10. 아, 그렇군요.(일동 웃음)
임시완: 장그래는 저에게 운명이었던 거죠.

10. 아까 ‘정점을 찍었다’고 했는데, 그건 흥행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일 뿐 배우로서의 꿈을 아직 많이 남아있으리라 생각해요. 배우로서 구체적으로 목표를 가지고 가는 편인가요?
임시완:
목표는 없어요.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저를 옭아매는 족쇄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리고 제가 지닌 능력 이상의 사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보다 높은 목표를 정한다는 건 욕심인 것 같아요. 일단은 보내주시는 응원에 보답 하려고요. 그러고 나서 다른 걸 생각해 보려고 해요.

10. 보답의 방법은 뭔가요.
임시완: 실력인 거죠. 칭찬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는 것.

10. ‘미생’ 캐스팅 때 제작진과 이성민 씨가 “장그래는 인성이 착한 배우여야 한다”고 했던 걸로 알아요. 착한 배우를 찾다가 임시완이라는 배우를 만난 셈이죠.
임시완: 그러니까, 저를 잘 모르셨던 거죠.(일동 웃음) 몰랐기에 캐스팅 하지 않았나 싶어요.
임시완(4)
임시완(4)
10. 스스로 느끼기엔…착한 게 아니다?(웃음)
임시완: 마냥 착한 것 같지는 않아요.(웃음)

10. 대중이 느끼는 임시완과, 스스로가 느끼는 임시완 사이의 괴리가 크나요?
임시완: 괴리감, 있어요. 그래서 대중이 좋아해주는 임시완이라는 사람과 실제 저라는 사람을 분리시키려고 해요. 많은 분들이 배우 임시완을 굉장히 좋게 봐 주세요. 실제의 저보다 훨씬 더요. 어떻게 보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적인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연예인 임시완은 온전히 저의 것이 아닌 게 된 거죠.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환상의 임시완’이라는 사람이 충분히 칭찬받을 수 있도록 일단은 놔두고 싶어요. 그 환상 뒤에 숨어있길 바라요.

10. 그러한 환상이 당신을 제한할 때도 있지 않아요?
임시완: 없지 않죠. 그래서 말씀 드렸듯, 착한 ‘척’을 하기도 하고.(일동 웃음) 그런데 그건 저를 좋게 봐 주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제가 저 스스로를 착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해서 “저는 착하지 않아요. 저의 있는 그대로를 좋아해 주세요!”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10. 배우가 작품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한 작품이 배우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당신은 후자의 느낌도 강해요. ‘변호인’ ‘미생’에서 연기한 캐릭터 모두 어두운 환경 속에서 일말의 희망을 주는 캐릭터들이었죠. 해당 시대 청춘을 대변하는 느낌도 있고요.
임시완: 어느 정도 수긍을 해요. 이런 작품이 여러 개 쌓이면서 어떤 인격체가 제 안에 누적 된 느낌이 들어요. 정말 그래요.

10. ‘오빠생각’의 한상렬은 ‘변호인’의 진우-‘미생’의 장그래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훨씬 더 완벽하게 그려졌죠.
임시완: 제가 가장 고민했던 게 그 부분이에요. 캐릭터가 너무 인간미 없어 보인다는 거. 감독님께도 이야기를 드렸어요. “한상렬은 너무 완벽하고 정의로운 인물 같아요. 착한 말-착한 행동만 하는데, 자칫하면 인간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제 생각을 누그러뜨린 게 감독님의 말이었어요. “이 영화를 보고 한 사람이라도 더 순수해졌으면 좋겠다” 그 말씀을 듣고 ‘아, 이게 영화의 모토이자 감독님의 모토구나’ 인정했어요. 그러면서 ‘한상렬을 바꿔야겠다. 사람냄새를 조금 더 묻혀야겠다.’는 생각은 포기했던 것 같아요.
2016011510453173379-540x810
2016011510453173379-540x810
10. 배우로서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을 테니까요.
임시완: ‘오빠생각’은 한상렬보다는 아이들의 노래에 끌려서 선택한 작품이에요. 아이들의 순수함을 이끌어내는 조력자 역할인 게 좋아서 선택을 했을 뿐, 어떤 욕심은 크게 없었어요. 단지 한상렬이라는 사람이 너무 완벽해서 제가 접근하기 어렵지 않나하는 생각에 제안을 드렸던 거죠. 그게 잘못된 질문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고요.

10. 영화를 통해서 본 한상렬은 어땠나요.
임시완: 그냥 어른 같았어요.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어른. 제가 아직까지도 어리다는 방증일 수 있죠. 저의 정서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어려웠어요. 완벽한 어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 왔거든요. 그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다가 끝난 느낌이 있어요.

10. 빨리 어른이 되고 싶나요?
임시완: 음… 그렇지는 않아요. 적당히 어른이 돼 갔으면 좋겠어요.

10. 우리사회의 아쉬움 중 하나가 존경할만한 어른의 부재 같아요. 한상렬은 그런 의미에서 존경할 만한 어른이란 생각이 들고요. 실제 현장에서는 어땠나요. 아역배우들에겐 임시완이 어른이었을 텐데요.
임시완: 아역 배우들에게 어른으로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크게 없었어요. 오히려 한상렬이 어른처럼 행동해야 했던 인물은 악역인 갈고리(이희준) 쪽이 아니었나 싶어요. 진짜 어른은, 나이가 많아서 어른이 아니잖아요. 세상을 잘못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짜 어른이 뭔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10. 갑자기 궁금한데, 장그래에게 오차장은 어른이었겠죠?
임시완: 어른이죠! 굳이 평행선상에서 본다면, 오차장님과 한상렬을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10. ‘미생2’가 연재되고 있어요. 드라마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출연할 의사기 있나요?
임시완: 당연하죠. 시켜만 주시면 “감사합니다” 할 것 같아요.(웃음)
임시완(6)
임시완(6)
10. 연기를 시작한 후, 큰 실패는 없었던 것 같아요.
임시완: 굳이 실패를 꼽자면, ‘트라이앵글’이라는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시행착오를 겪었던 시기예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런 건 하지 말아야지’를 깨달았죠.

10.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하죠?
임시완: ‘트라이앵글’ 때 제가 악역을 처음 했어요. 악역이니까 바로 직전 작품 ‘변호인’에서 차동영 경감을 연기한 곽도원 선배님을 따라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게 실패했던 거죠. 생각했어요. 뭐가 문제였을까. ‘아무리 잘 하는 연기를 따라해 봐야 그건 외면 흉내내기 밖에 안 되는 구나. 알맹이는 따라갈 수 없는 거구나. 내면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죠.

10. 또래 배우 중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요?
임시완: 이준과 (변)요한이 형. 자주 만나요. 대단한 사람들 같아요. 살아온 인생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축해 놓은 내면도 탄탄한 느낌이고요. 요한이 형의 경우엔 진짜 배우 같아요. 천상배우 같달까. 제가 배우를 따라가고 있는 거라면, 형은 이미 배우의 위치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10. 그 또래 남자들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주로 해요?
임시완: 하하. 그렇게 깊숙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아요. 그냥 사는 이야기들을 하죠.(웃음)

10. 그나저나 말을 참 곱게(?) 하는 것 같아요. 거짓말 하지 못할 것 같은 눈으로 말이죠.(웃음)
임시완: 저에게 속고 계시는 거라니까요. 하하하.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