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딘 :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니까, ‘시작이 됐구나’라는 생각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실감은 나지 않는다. 생활적인 부분에서 달라진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Q. 시작은 어떻게 해서 된 것인가.
딘 : 계기는 자연스러운데, 어떻게 보면 활동적인 면에서는 많은 뮤지션들이 그렇겠지만 최대한 많은 분들에게 음악을 들려드리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또 그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나 역시 음악인으로서의 면모를 더 많이, 널리 보여드리고 싶었다.
Q. 많지 않은 나이에 작곡가로 이름을 올렸다. 음악에 빠지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딘 : 랩으로 처음 시작을 했는데, 랩을 듣다 보니 알앤비(R&B)를 접하게 됐고, 이후 흑인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고등학교 때는 흑인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나의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Q. 랩으로 시작됐다는 것이 신선하다.
딘 : 처음에 에픽하이를 좋아해 음악을 들으면서 ‘아 이런 게 힙합이구나’ 생각했다. 좀 더 알아보면서 깊게 들어갔다. 알고 보니, 다른 영역이 무궁무진하더라. 계속 찾아보면서 뭔가 새로운 걸 듣고, 또 심취했다.
Q.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행보인데, 어떻게 만들게 됐나.
딘 : 랩이 재미있어 보여서 처음에는 가사를 써봤다. 그러다 랩을 해볼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거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Q. 처음의 접근은 가사였나 보다. 글 쓰는 걸 좋아한 것 같은데.
딘 : 좋은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을 쓰고 글 쓰는 걸 좋아했다.
Q. 어린 딘은 어떤 아이었나.
딘 : 노래 듣는 걸 정말 좋아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한다기 보다, 즐겼다. 다른 아이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했을 수도 있겠다. 가사들이 와닿았다. 수업도 국어 시간을 좋아했다(웃음). Q. 처음 음악을 만들 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고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딘 : 보통 랩을 시작할 때, ‘나는 짱이다’는 내용을 주로 쓴다(웃음). 그런 가사로 시작하는데 나 역시 그랬다. 아무래도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보니까, 그런 노랫말이 나온 것 같다. 이후엔 점점 더 다양하게 음악을 많이 들으면서 가사적으로도 다양한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Q. 가사부터 시작했다. 멜로디를 입힌 건 언제부터인가.
딘 : 스무 곡 정도의 흑인 음악을 넣어서 학교를 가면, 집에 돌아올 때쯤 멜로디를 다 외울 정도였다. 하루에 스무 곡씩을 매일 하다 보니까, 듣는 음악도 많아지고 나도 모르게 멜로디를 쓰는 것과 여러 가지 부분에 있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또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됐다.
Q.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도 있었을 것 같은데.
딘 : 당시에는 음악인이 돼야겠다는 생각보다 놀이의 일환이었다.
Q. 그럼, 지금은 놀이에서 업이 됐다.
딘 : 막연한 생각이었다. ‘시작할 거야’보다는 열아홉 때 만들어 놓은 곡을 어딘가에 보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한테 들려줬는데 친구의 지인과 지인 등을 거쳐 당시 저스틴 비버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신혁 형에게 들어가게 된 거다. 그래서 연락이 왔다. 그게 스무 살 때였다.
Q. 실감이 나지 않았겠다.
딘 : 우선 작곡가가 된다는 것이 기뻤고, 작업실이 생긴 것도 좋았다. 실감은 잘 안 났고, 놀이에서 업으로 바뀌는 거니까 처음엔 좀 힘들었다.
Q. 슬럼프도 있었겠다. 빠르게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려서.
딘 : 고민을 많이 했다. ‘해도 되는 걸까’라는. 일단 당시에도 음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또 음악을 들으니까 풀리더라. ‘이겨내야 겠구나’라고 마음 먹었다. 엄청 많은 고민을 했고, 시도를 했다. 그 때를 돌아보니 중요한 시기였던 것 같다.
Q. 당시엔 많이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꽤 잘 넘겼다. 길어지지 않고.
딘 :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작곡가 3명이 소수로 시작했기 때문에 더 깊게, 조언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한층 음악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Q. 그때 위로받았던 노래가 있나.
딘 : 당시엔 음악을 즐기지 못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항상 만들어야 했고, 거기에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겁도 났다. 친구였던 친구가 어느날 어려워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흑인 음악에 치우쳐져 있었는데, 다양한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왜 듣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탁 트였다고 해야할까. 놀이로 시작했지만, 그러다 보니 내가 듣기 좋은 곡만 찾아 들었던 거다. 작곡가는 그렇지 않고, 남이 듣고 싶은 곡을 만들어야 하는데 거기에서 괴리감이 있었던 것 같아. 항상 높은 수준의 음악을 듣다가, 내가 만든 음악이 어느 정도 수준이 안되면 계속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욕심을 냈다.
Q. 맞다. 음악을 듣는 건 쉽지만, 그렇다고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딘 : 바로 그거다. 작곡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괴리감은 사운드를 견고하고 깊게, 그리고 실험적으로 만들지만 쉽게 들려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많이 느꼈고, 생각을 많이 했다.
Q. 한동안 작곡가 딘으로서 살았다.
딘 : 회사에는 작곡가로 들어왔다. 물론 아티스트를 언젠가 병행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준비를 한 건 아니다. 곡 작업을 해야 할 것이 계속 들어오고, 내가 부를 곡을 만들기 보다 다른 아티스트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들의 곡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분석하고.
Q. 첫 의뢰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딘 : 부담감이 컸다. 팔리지는 않았지만, 칭찬도 들었고.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자만에 심취했던 시기라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 같다. 지금 다시 들어보면서 필요한 것들을 느낀다.
Q. 시행착오를 겪었겠다. 생각과 실제는 다르니까.
딘 : 처음에는 ‘대표님(신혁)이 좋아할까’라는 걸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무서웠고, 그땐 지금보다 어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포커싱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에 포커스를 바꾸고 나니, 부담감도 덜해졌다. 많이 변했다.
Q. 처음 이름과 같이 실린 곡은 무엇인가.
딘 : 엑소의 음반에 ‘블랙 펄’이란 곡이다. 크레딧에 이름도 올라가고, 음반을 받기도 했다. 노력한 결과물이니까, 굉장히 좋았다.
Q. 놀이와 업의 중간지점을 잘 찾았나 보다.
딘 : 지금은 놀이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놀이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완벽하게 일이었고 다시 놀이와 융화되는 법을 알았다. 재미있다(웃음).
Q. 많은 고민을 했고 변화가 있었다.
딘 : 포커싱에 대한 건 스물두살, 지금으로부터 2년 전에 생각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샤워를 40분 정도할 정도로 생각이 많다.
Q. 스무 살 때 시작해서 스물넷,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겠다. 많은 일들이 있어서.
딘 : 대표님과 연락이 닿기 전, 굉장히 좋아했던 작곡가였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빌보드는 꿈이고, 신혁은 그런 곳에 최초로 이름을 올린 한국 작곡가이다. 막연하게 스물 다섯 쯤에 신혁과 같이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무 살에 만났고, 같이 일을 하게 돼 지금까지, 뭔가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돼 신기하다.
Q. 노래를 부르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했는데.
딘 : 작곡을 하면서도 취미로 노래를 부르고, 가이드도 직접 했다. 그게 연습 아닌 연습이 된 것 같다. 가이드로서 가수로서의 스텝을 밟았고, 그게 도움이 된 것 같다.
Q. 가이드와는 또 달리, 나의 첫 음반을 녹음할 때 감회는 남달랐을 것 같다.
딘 : 밥 먹는 것처럼 하던 대로 했다. 녹음실과 작업실은 나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이니까. 하지만 그전엔 고민을 많이 했다. 미국에서 싱글을 낸 건 ‘제2의’라는 수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내 색깔을 알려보고 싶었다. 인종이 아닌, 아티스트로서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Q. 한국에서 내놓은 첫 음반은 어떤가.
딘 : 곡을 많이 만들어놨다. 누구에게 가는 노래가 아니더라도, ‘내가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많이 쌓아놨는데 미국에서 싱글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면서, 한국으로도 이어졌다. 원래 아티스트의 꿈이 있었고, 당시에는 프로듀서로 먼저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좋은 기회가 와서 하고 있는 것 같다.
Q. 한국에서의 첫 음반 만족도는?
딘 : 내가 음악을 시작한 뿌리를 알려주고 싶어서 내가 듣고 싶은 곡을 만들었다.
Q.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보다.
딘 : 음악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외적인 걸 꾸며야겠다는 부담감 보다, 우선 음악에 신경을 많이 썼다. 아무래도 작곡가로 출발했고, 음악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Q. 만들면서 욕심도 생겼을 것 같은데.
딘 : 느낀점이 굉장히 많다. 사실 시행착오도, 어느 순간부터는 완벽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펙틀리 임퍼펙트(Perfectly Imperfect)’라는 말처럼 완벽에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이지 완벽할 수는 없는거다. 사람들의 각자 취향도 다르고 바뀌고, 트렌드도 변하니까. 첫 스타트의 곡을 한 건 후회는 없다.
Q. 많은 걸 느끼고, 내려놓은 것 같다.
딘 : 물론 항상 완벽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것조차도 즐기게 된 것 같다. 내가 음악 안에서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진심은 통한다는 것도 알았고, 내가 즐겁게 곡에 몰입할 수 있는 게 먼저인 것이다.
Q. 작곡가 딘과 가수 딘, 어디에 더 비중을 두고 있나.
딘 : 언젠가부터 그 시대를 대표하는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곡들은 음악성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다. 멋있고 듣기 좋고, 어려운 길을 가기 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런.
Q. 꿈과 목표가 크고 높아진 만큼, 전문적으로 더 공부를 할 계획은 없나.
딘 :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혼자 연구를 좀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개인적으론 필요할 때 배우는 게 중요할 것 같다. 흐림에 이끌려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까지도 독학을 통해 했고, 사실 음악은 배울 수 있는 소스들이 많다. 연구는 끊임없이 할거다.
Q. 놀이에서 업으로 그리고 융화까지 이르렀지만, 분명 이제는 고등학생 때처럼 노래를 마냥 즐겁게 들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딘 : 작곡가를 막 시작했을 때,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는데 요즘에는 즐겨서 들으려고 한다. 다음에 집중해서 듣고 싶은 부분에 포커싱을 둔다. 최대한 재미있게 들으려고 한다. 숨소리 하나도 그냥 넣는 것이 아니란 걸 아니까, 보통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을 좀 더 관심 있게 듣고, 더 큰 감동을 받으려고 한다.
Q. 이름을 건 음반을 국내에 냈고, 가수로서 무대 위에서 공연도 펼쳐보고 싶을 것 같다.
딘 : 미국에서 체류하면서 공연에서 얻는 즐거움이 굉장히 크다는 걸 알았다.
Q. 무대 위 딘은 어떨까.
딘 : 음악과 하나가 된, 음악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모션도 하나의 음악에 한 일환처럼 잘 표현할 수 있으면 한다. 한국 시장이 아이돌 가수들이 많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예쁜 표정을 짓는다. 견고하지만, 못 보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한 표정을 지어도 그렇게 해야 자연스러운 것이 분명 있다. 음악과 하나가 돼 어떤 표정이든,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음악 그 자체’처럼 보이길.
Q. 앞으로 가수로서의 딘을 자주 볼 수 있는 건가. 어떤 가수로 남고 싶은가.
딘 : 내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라고 이해받으면 좋겠다. 종잡을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음악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겠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
사진.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
어디서 나타났지? ‘풀어(Pour Up)’라는 곡으로 등장한 가수 딘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하지만 이내 그의 이력을 듣고 나면 ‘아~’하는 감탄이 새어 나온다. 4년 전 스무 살, 줌바스의 대표이자 프로듀서 신혁을 만난 건 그의 인생을 확 바꿔놨다. 음악이 마냥 좋았던 소년은 어느덧 성장해 자신의 이름을 건 음반을 내놓고, ‘딘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알리고 있다.Q. 자신의 이름으로 내놓은 음반을 소개하며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겠다.
영화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에서 따온 딘이란 이름, 처음부터 가수를 꿈꾼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노래를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부르고 싶어졌다. 노래로 ‘나’를 표현하고 싶었던 딘은 여전히 많은 가수들의 곡을 만들고, 또 자신의 노래도 완성하며 또 다른 목표와 꿈을 키우고 있다.
딘 :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니까, ‘시작이 됐구나’라는 생각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실감은 나지 않는다. 생활적인 부분에서 달라진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Q. 시작은 어떻게 해서 된 것인가.
딘 : 계기는 자연스러운데, 어떻게 보면 활동적인 면에서는 많은 뮤지션들이 그렇겠지만 최대한 많은 분들에게 음악을 들려드리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또 그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나 역시 음악인으로서의 면모를 더 많이, 널리 보여드리고 싶었다.
Q. 많지 않은 나이에 작곡가로 이름을 올렸다. 음악에 빠지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딘 : 랩으로 처음 시작을 했는데, 랩을 듣다 보니 알앤비(R&B)를 접하게 됐고, 이후 흑인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고등학교 때는 흑인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나의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Q. 랩으로 시작됐다는 것이 신선하다.
딘 : 처음에 에픽하이를 좋아해 음악을 들으면서 ‘아 이런 게 힙합이구나’ 생각했다. 좀 더 알아보면서 깊게 들어갔다. 알고 보니, 다른 영역이 무궁무진하더라. 계속 찾아보면서 뭔가 새로운 걸 듣고, 또 심취했다.
Q.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행보인데, 어떻게 만들게 됐나.
딘 : 랩이 재미있어 보여서 처음에는 가사를 써봤다. 그러다 랩을 해볼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거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Q. 처음의 접근은 가사였나 보다. 글 쓰는 걸 좋아한 것 같은데.
딘 : 좋은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을 쓰고 글 쓰는 걸 좋아했다.
Q. 어린 딘은 어떤 아이었나.
딘 : 노래 듣는 걸 정말 좋아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한다기 보다, 즐겼다. 다른 아이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했을 수도 있겠다. 가사들이 와닿았다. 수업도 국어 시간을 좋아했다(웃음). Q. 처음 음악을 만들 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고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딘 : 보통 랩을 시작할 때, ‘나는 짱이다’는 내용을 주로 쓴다(웃음). 그런 가사로 시작하는데 나 역시 그랬다. 아무래도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보니까, 그런 노랫말이 나온 것 같다. 이후엔 점점 더 다양하게 음악을 많이 들으면서 가사적으로도 다양한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Q. 가사부터 시작했다. 멜로디를 입힌 건 언제부터인가.
딘 : 스무 곡 정도의 흑인 음악을 넣어서 학교를 가면, 집에 돌아올 때쯤 멜로디를 다 외울 정도였다. 하루에 스무 곡씩을 매일 하다 보니까, 듣는 음악도 많아지고 나도 모르게 멜로디를 쓰는 것과 여러 가지 부분에 있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또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됐다.
Q.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도 있었을 것 같은데.
딘 : 당시에는 음악인이 돼야겠다는 생각보다 놀이의 일환이었다.
Q. 그럼, 지금은 놀이에서 업이 됐다.
딘 : 막연한 생각이었다. ‘시작할 거야’보다는 열아홉 때 만들어 놓은 곡을 어딘가에 보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한테 들려줬는데 친구의 지인과 지인 등을 거쳐 당시 저스틴 비버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신혁 형에게 들어가게 된 거다. 그래서 연락이 왔다. 그게 스무 살 때였다.
Q. 실감이 나지 않았겠다.
딘 : 우선 작곡가가 된다는 것이 기뻤고, 작업실이 생긴 것도 좋았다. 실감은 잘 안 났고, 놀이에서 업으로 바뀌는 거니까 처음엔 좀 힘들었다.
Q. 슬럼프도 있었겠다. 빠르게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려서.
딘 : 고민을 많이 했다. ‘해도 되는 걸까’라는. 일단 당시에도 음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또 음악을 들으니까 풀리더라. ‘이겨내야 겠구나’라고 마음 먹었다. 엄청 많은 고민을 했고, 시도를 했다. 그 때를 돌아보니 중요한 시기였던 것 같다.
Q. 당시엔 많이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꽤 잘 넘겼다. 길어지지 않고.
딘 :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작곡가 3명이 소수로 시작했기 때문에 더 깊게, 조언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한층 음악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Q. 그때 위로받았던 노래가 있나.
딘 : 당시엔 음악을 즐기지 못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항상 만들어야 했고, 거기에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겁도 났다. 친구였던 친구가 어느날 어려워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흑인 음악에 치우쳐져 있었는데, 다양한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왜 듣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탁 트였다고 해야할까. 놀이로 시작했지만, 그러다 보니 내가 듣기 좋은 곡만 찾아 들었던 거다. 작곡가는 그렇지 않고, 남이 듣고 싶은 곡을 만들어야 하는데 거기에서 괴리감이 있었던 것 같아. 항상 높은 수준의 음악을 듣다가, 내가 만든 음악이 어느 정도 수준이 안되면 계속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욕심을 냈다.
Q. 맞다. 음악을 듣는 건 쉽지만, 그렇다고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딘 : 바로 그거다. 작곡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괴리감은 사운드를 견고하고 깊게, 그리고 실험적으로 만들지만 쉽게 들려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많이 느꼈고, 생각을 많이 했다.
Q. 한동안 작곡가 딘으로서 살았다.
딘 : 회사에는 작곡가로 들어왔다. 물론 아티스트를 언젠가 병행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준비를 한 건 아니다. 곡 작업을 해야 할 것이 계속 들어오고, 내가 부를 곡을 만들기 보다 다른 아티스트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들의 곡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분석하고.
Q. 첫 의뢰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딘 : 부담감이 컸다. 팔리지는 않았지만, 칭찬도 들었고.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자만에 심취했던 시기라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 같다. 지금 다시 들어보면서 필요한 것들을 느낀다.
Q. 시행착오를 겪었겠다. 생각과 실제는 다르니까.
딘 : 처음에는 ‘대표님(신혁)이 좋아할까’라는 걸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무서웠고, 그땐 지금보다 어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포커싱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에 포커스를 바꾸고 나니, 부담감도 덜해졌다. 많이 변했다.
Q. 처음 이름과 같이 실린 곡은 무엇인가.
딘 : 엑소의 음반에 ‘블랙 펄’이란 곡이다. 크레딧에 이름도 올라가고, 음반을 받기도 했다. 노력한 결과물이니까, 굉장히 좋았다.
Q. 놀이와 업의 중간지점을 잘 찾았나 보다.
딘 : 지금은 놀이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놀이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완벽하게 일이었고 다시 놀이와 융화되는 법을 알았다. 재미있다(웃음).
Q. 많은 고민을 했고 변화가 있었다.
딘 : 포커싱에 대한 건 스물두살, 지금으로부터 2년 전에 생각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샤워를 40분 정도할 정도로 생각이 많다.
Q. 스무 살 때 시작해서 스물넷,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겠다. 많은 일들이 있어서.
딘 : 대표님과 연락이 닿기 전, 굉장히 좋아했던 작곡가였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빌보드는 꿈이고, 신혁은 그런 곳에 최초로 이름을 올린 한국 작곡가이다. 막연하게 스물 다섯 쯤에 신혁과 같이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무 살에 만났고, 같이 일을 하게 돼 지금까지, 뭔가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돼 신기하다.
Q. 노래를 부르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했는데.
딘 : 작곡을 하면서도 취미로 노래를 부르고, 가이드도 직접 했다. 그게 연습 아닌 연습이 된 것 같다. 가이드로서 가수로서의 스텝을 밟았고, 그게 도움이 된 것 같다.
Q. 가이드와는 또 달리, 나의 첫 음반을 녹음할 때 감회는 남달랐을 것 같다.
딘 : 밥 먹는 것처럼 하던 대로 했다. 녹음실과 작업실은 나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이니까. 하지만 그전엔 고민을 많이 했다. 미국에서 싱글을 낸 건 ‘제2의’라는 수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내 색깔을 알려보고 싶었다. 인종이 아닌, 아티스트로서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Q. 한국에서 내놓은 첫 음반은 어떤가.
딘 : 곡을 많이 만들어놨다. 누구에게 가는 노래가 아니더라도, ‘내가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많이 쌓아놨는데 미국에서 싱글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면서, 한국으로도 이어졌다. 원래 아티스트의 꿈이 있었고, 당시에는 프로듀서로 먼저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좋은 기회가 와서 하고 있는 것 같다.
Q. 한국에서의 첫 음반 만족도는?
딘 : 내가 음악을 시작한 뿌리를 알려주고 싶어서 내가 듣고 싶은 곡을 만들었다.
Q.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보다.
딘 : 음악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외적인 걸 꾸며야겠다는 부담감 보다, 우선 음악에 신경을 많이 썼다. 아무래도 작곡가로 출발했고, 음악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Q. 만들면서 욕심도 생겼을 것 같은데.
딘 : 느낀점이 굉장히 많다. 사실 시행착오도, 어느 순간부터는 완벽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펙틀리 임퍼펙트(Perfectly Imperfect)’라는 말처럼 완벽에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이지 완벽할 수는 없는거다. 사람들의 각자 취향도 다르고 바뀌고, 트렌드도 변하니까. 첫 스타트의 곡을 한 건 후회는 없다.
Q. 많은 걸 느끼고, 내려놓은 것 같다.
딘 : 물론 항상 완벽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것조차도 즐기게 된 것 같다. 내가 음악 안에서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진심은 통한다는 것도 알았고, 내가 즐겁게 곡에 몰입할 수 있는 게 먼저인 것이다.
Q. 작곡가 딘과 가수 딘, 어디에 더 비중을 두고 있나.
딘 : 언젠가부터 그 시대를 대표하는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곡들은 음악성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다. 멋있고 듣기 좋고, 어려운 길을 가기 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런.
Q. 꿈과 목표가 크고 높아진 만큼, 전문적으로 더 공부를 할 계획은 없나.
딘 :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혼자 연구를 좀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개인적으론 필요할 때 배우는 게 중요할 것 같다. 흐림에 이끌려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까지도 독학을 통해 했고, 사실 음악은 배울 수 있는 소스들이 많다. 연구는 끊임없이 할거다.
Q. 놀이에서 업으로 그리고 융화까지 이르렀지만, 분명 이제는 고등학생 때처럼 노래를 마냥 즐겁게 들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딘 : 작곡가를 막 시작했을 때,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는데 요즘에는 즐겨서 들으려고 한다. 다음에 집중해서 듣고 싶은 부분에 포커싱을 둔다. 최대한 재미있게 들으려고 한다. 숨소리 하나도 그냥 넣는 것이 아니란 걸 아니까, 보통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을 좀 더 관심 있게 듣고, 더 큰 감동을 받으려고 한다.
Q. 이름을 건 음반을 국내에 냈고, 가수로서 무대 위에서 공연도 펼쳐보고 싶을 것 같다.
딘 : 미국에서 체류하면서 공연에서 얻는 즐거움이 굉장히 크다는 걸 알았다.
Q. 무대 위 딘은 어떨까.
딘 : 음악과 하나가 된, 음악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모션도 하나의 음악에 한 일환처럼 잘 표현할 수 있으면 한다. 한국 시장이 아이돌 가수들이 많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예쁜 표정을 짓는다. 견고하지만, 못 보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한 표정을 지어도 그렇게 해야 자연스러운 것이 분명 있다. 음악과 하나가 돼 어떤 표정이든,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음악 그 자체’처럼 보이길.
Q. 앞으로 가수로서의 딘을 자주 볼 수 있는 건가. 어떤 가수로 남고 싶은가.
딘 : 내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라고 이해받으면 좋겠다. 종잡을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음악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겠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
사진.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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