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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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정시우 기자]하와이 피스톨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은 일본군과 매국노의 심장만 관통한 게 아니다. 총알은 스크린 너머 ‘여심’(女心)도 저격했다. “어머, 멋져!” 아마도 하와이 피스톨은 하정우가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멋들어진 인물일 게다. 짐짓 방관자 같이 굴던 이 인물은 절체절명의 순간 007 제임스 본드처럼 나타나 사건을 접수하는 단호한 멋을 지녔다. 유머러스하고, 낭만적이고, 여유롭고 (하정우의 말에 의하면)느슨하기까지 한 하와이 피스톨은 그러고 보니 하정우라는 배우가 평소 보여주는 매력과 상당부분 겹친다. 하와이 피스톨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하정우의 ‘어떤 것’이 투영 돼 지금의 유니크한 하와이 피스톨이 탄생한 셈이다.

Q. 하와이 피스톨의 매력, 뭐라고 생각하세요?
하정우:
느슨함? 귀차니즘이죠. 하하하. 하와이 피스톨이라는 이름 자체가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 것 같아요. 관객들로 하여금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거죠.

Q.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하와이 피스톨의 과거예요. 나라를 판 아버지들을 서로 대신 죽여주기로 한 ‘살부계’ 출신이란 설정. 대사 한마디로 압축됐지만 하와이 피스톨이라는 인물을 굉장히 풍성하게 해주는 설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정우:
네. 굉장히 경제적인 캐릭터인 것 같아요. 시간 대비 효율성이 최고죠.(일동웃음) ‘살부계’라는 설정은 안옥윤(전지현)과 연결시켜주는 끈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무정부주의자이기도 하지만, ‘살부계’의 한 사람으로 상처를 지니고 있는 인물. 그래서 일부러 더 덤덤한 척 연기하려 했어요.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인물이 무너질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하와이 피스톨은 영화가 시작하고 20분 후에야 등장하잖아요. ‘하정우가 나온다고 들었는데, 왜 안 나오지?’ 하실 관객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첫 등장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제겐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Q. 첫 등장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멀티캐스팅 영화일수록 배우가 등장하는 순간에 집중하게 돼요. 배우 입장에서도 나름 이 무리 중에서 내가 어떻게 등장할지 신경이 쓰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번 영화에서 당신은 뒷모습을 보이며 등장하죠.
하정우:
그게 저의 첫 촬영이었어요. ‘허삼관’ 끝내고, 하루 쉰 다음에 바로 상해로 넘어갔어요. 무지무지 피곤했는데 그걸 느낄 새가 없었죠. 빨리 촬영에 합류해야 했으니까요. 어금니 ‘꽉’ 깨물고 가서 첫 촬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어떤 촬영장이든 첫 대사 떼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그때는 더 했어요. 한 달 늦게 팀에 합류는 입장이라 뭔가 혼란스럽고 혼자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어떻게 할까’ 고민 했죠. 그런데 하와이 피스톨의 첫 등장에 있어 그런 겉도는 느낌이 도리어 효과적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현장에 발을 딱 못 붙이고 있는 게, 하와이 피스톨스럽다고 혼자 해석한 거죠. 갖다 붙인 거예요.(일동 웃음) 제가 좀 긍정적이에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떤 상황에서든 장점을 찾으려 해요.
하정우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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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런 긍정의 마인드가 발휘 된 또 다른 사례는요?
하정우:
조금 더 이전으로 돌아가자면 ‘추격자’(2008) 때 그랬어요. 심리분석 프로파일러가 지영민(하정우)를 취조하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 촬영이 이상하게 쉽게 풀리지 않았어요. 결국 3일을 찍었죠. 첫 번째는 대사 톤 맞추는데 시간이 오래 흘러서 촬영이 미뤄졌어요. 두 번째에는 제가 감기몸살에 걸렸어요. 너무 힘든 거예요. 도저히 안 되겠어서 양해를 구하고 촬영을 또 넘겼어요. 며칠 후에 세 번째 촬영을 했는데 감기 기운이 완전히 회복 안 된 상태였어요.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죠.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 지영민도 밤새 시달리면 피곤할 거야. 몸 상태도 안 좋고, 목도 잠기고, 집중력도 떨어질 거야. 내 상태 그대도 연기하면 되겠다!’ 그런데 그 상태로 연기한 게 느낌이 있었어요. 그때 ‘신체가 느끼는 피곤함, 낯섦과 같은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연기에 투영해야겠다. 그게 가장 설득력이 있겠구나’를 깨달았죠.

Q. 영화에서 하와이 피스톨은 관찰자적인 느낌이 강해요. 그럼에도 계속 바라보게 되죠. 문을 열지는 않지만, 묻을 닫는 느낌도 들고요.
하정우:
그것도 착시효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콤비로 등장하는 달수 형(포마드 영감) 아우라에 득을 본 게 있어요. 달수 형에 대한 관객들의 믿음은 상당해요. 형이 나오면 일단 기대를 하죠. ‘웃겨 줄 것이다!’ 마음을 열더라고요. 실제로 형이 총 하나 떨어뜨려도 관객들은 웃어요. 덕분에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이 등장하는 장면이 보다 신뢰를 얻었던 것 같아요.

Q. 하정우라는 배우에 대한 관객들의 신뢰도 상당하지 않나요? 그런 두 사람이 한 화면에서 만난 거예요.
하정우:
이런 현상을 ‘케미폭발’이라고 하는 거죠!(일동 웃음) 이번 영화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도움 받은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아까 말씀드린 하와이 피스톨이 주는 어떤 느낌. 두 번째는 달수 형이 주는 어떤 분위기. 아! 또 있네요. 지현 씨와의 이뤄질 듯 말듯 한 어떤 애틋함. 저는 그게 ‘베를린’(2012)에서 못다 이룬 관계의 연장선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요. 지현 씨와의 뽀뽀 씬의 경우 오글거리지 않을까 걱정을 했어요. 로맨스의 감정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뽀뽀가 들어오면 튈 수가 있잖아요? 더 진한 장면도 있었는데, 감독님도 결국 입술에 하는 건 편집에서 덜어내셨더라고요. 저 역시 로맨스의 감정보다는 연민과 우정, 더 나아가 동지애라는 복합적인 심정을 담으려고 했어요.

Q. 뽀뽀 장면은 호불호가 나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씀처럼 오글거린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뭐랄까…당신이 평소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정우:
아~! 네, 네, 네!

Q. 아! 이게 연기를 잘 하냐 못하느냐를 떠나서…
하정우:
아니에요!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알아요~ 하하하.
하정우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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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런 부분이 당신에겐 배우로서의 ‘숙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정우:
그럴 수 있네요. 그런데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장점이 더 많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하하하. 음… 조금 더 부연하자면, 하와이 피스톨은 그래도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암살’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재창조 됐다면 하와이 피스톨과 포마드 영감은 굉장히 영화적인 캐릭터예요. 어쩌면 최동훈 감독님 전작에서 보여준 캐릭터들의 연장선상일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모든 게 허용된다는 생각으로 연기 톤도 ‘툭툭’ 했던 것 같아요. 옥윤의 입장에서 보면, 하와이 피스톨은 판타지일 수도 있고요. 그런 느낌으로 뽀뽀 씬도 촬영했던 것 같아요.

Q 다른 배우들보다 한 달 늦게 촬영에 합류했다고 하셨는데, 사실 한 달이면 현장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을 시기에요. 배우에 따라서는 그 분위기에 섞이지 못할 수도 있는데, 당신은 뭔가 굉장히 능숙하게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요.
하정우:
그렇지 않아도 가장 신경 쓰이고 가장 힘든 부분이었어요. 다행히 감독님이 많은 배려를 해 주셨어요. 감독님은 도리어 ‘허삼관’을 더 걱정하고 조언해 주셨죠. ‘허삼관’ 촬영지인 합천에 내려오신 적도 있어요. 그때 은연중에 하와이 피스톨에 대해 이야기 했죠. 그게 또 가능할 수 있었던 게, 염석진(이정재)이나 안옥윤처럼 드라마를 끌고 가는 인물들이라면 뭔가 준비해야 할 게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 하와이 피스톨은 ‘독립적인 섬 같은 느낌’의 인물이어서 그 캐릭터만 떨어뜨려서 이야기 할 수 있었어요. 그 덕분에 가능했던 거죠.

Q. ‘허삼관’ 때 한 달 늦게 합류하는 하지원 씨를 위해 ‘월간 하지원’까지 만들어서 배려해 주셨죠? 입장이 뒤집힌 셈인데, 한편으로는 ‘배려에 있어서는 나도 좋은 연출자였구나’ 싶기도 했겠습니다.(웃음)
하정우:
하하. 또 그렇게 되네요~

Q. 현장에 적응하는데 ‘베를린’에서 함께 한 전지현 씨의 도움도 컸을 것 같아요. 전지현 씨는 당신 유머에 크게 반응하는 배우이기도 하죠.
하정우:
지현 씨는 늘 웃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에요. 제 개그코드나 개그방향에 대해서 늘 지지해주죠. 하하하.

Q. 지금 촬영 중인 박찬욱 감독님의 ‘아가씨’도 1930년대가 배경이에요. ‘암살’에서 하와이 피스톨을 연기한 경험이 동시대에 사는 ‘아가씨’의 백작을 연기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나요?
하정우:
워낙 다른 캐릭터들이라 연기에 크게 영향을 주는 건 없어요. 아, 일본어는 덕분에 조금 더 편하게 하고 있네요. 그런데 ‘아가씨’의 경우엔 일본어를 보다 체계적으로 배웠어요. ‘암살’ 끝나고 ‘히라가나가타카나’ 기초부터 다시 배웠죠. 한글 음이 달리지 않은 일본 글자만 보고 대사를 읽을 수 있게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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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베를린’ 때도 느꼈지만 영화를 보면 운동신경이 굉장히 좋아 보입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시나요?
하정우:
네. 운동을 굉장히 좋아해요. 요즘엔 핏빗(Fitbit)이라고 만보계 기능을 하는 게 있어요. 동료들과 단체 방을 만들어서 내기를 해요. 하루 운동량이 가장 적은 사람이 벌금을 내는 거죠. 한창 이거 가지고 놀고 있어요.

Q. 영화에서 쉬지 않고 뛰시는데, 평소에도 다르지 않네요.
하정우:
저는 걷고 뛰는 걸 좋아해요. 아무 의미 없다고 하실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고 보거든요. 신체 밸런스를 맞추는 일. 동물로서의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행위가 아닌가 싶어요.

Q. 그와 달리, ‘그림 그리는 건’ 일부러 찾아서 하는 행위잖아요? 그림 그리는 건 어떤가요. 처음과 비교해서 달라졌나요?
하정우: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암살’ 촬영 끝나고 LA에서 개인전을 했어요. LA에서 6주 정도 머무르며 작품을 준비하는데 못 그리겠더라고요. 왜 그럴까. 이전에는 쓱쓱 그리고 ‘완성!’ 이랬는데, 생각이 많아졌나? 불순물이 많아졌나? 이전에는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았는데, 그런 시기는 지났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LA전을 준비하는 게 너무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때려치워야겠다. 이젠 내가 그림을 그려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게 안 되는 구나’ 하는 마음까지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림 개수를 맞춰줘야 했기 때문에 억지로 그려서 넘겼어요. 그러고 나서 캔버스가 몇 개 남았길래 그냥 그렸는데 ‘어!’ 뭔가 느낌이 다른 거예요. 그때 무릎을 ‘탁!’ 쳤어요. 뭐가 문제인지, 조금은 알 것 같더라고요.

Q. 마음을 비웠더니, 깨달음이 온 거군요.
하정우:
맞아요. 그러면서 ‘이런 마음으로 내가 세 번째 연출작을 해야겠구나’라고도 깨달았어요. 복합적인 건데, 그건 ‘암살’ 최동훈 감독님을 보면서 느낀 부분이기도 해요. 저는 최동훈이라는 감독이 그럴 줄 알았거든요. 굉장히 치밀하고, 모든 걸 재단한 후 현장에서 ‘딱딱딱’ 찍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닌 거예요. 마음으로 찍어요. 열정으로 찍어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거지! 마음으로 찍어야지 왜 머리로 찍으려고 했지, 나는?’ 이랬어요.

Q. ‘허삼관’은 머리로 완성된 작품이군요.
하정우:
네. 제가 모든 걸 머리로 장악하고 찍으려 했다는 걸 알았죠.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LA에서 개인전을 준비하다가 새벽에 깼어요. 공포심에 깼어요. ‘어떻게 그리지?’ 너무 막연한 거예요. 붓을 못 들겠더라고요. 너무 창피하고. 그러면서 억지로 꾸역꾸역했는데 마지막에 너무 큰 깨달음을 얻은 거죠.
하정우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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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기 할 때도 그런 적 있나요? 공포심에 깬 기억.
하정우:
연기할 때는 공포심이 매번 들어요. 매번 들기 때문에 이제 익숙해 진거죠. ‘어떻게 연기하지?’ ‘어떻게 대사를 치지?’ ‘대사가 안 외워지면 어떻게 하지?’ 별의별 생각을 다 해요. 그러다보면 악몽을 꾸죠. 공연이 코앞인데 대사를 안 외운 내 모습이 꿈에서 불쑥 불쑥 나와요. 이게, 참…작품을 많이 하면 뭔가가 쌓였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안 그래요. 작품마다 캐릭터도 새롭고, 감독도 새롭고, 스태프들도 새롭고, 이야기도 새로우니까 매번 새로운 거예요. 그래서 초반엔 스트레스를 어마어마하게 받아요. ‘암살’ 첫 촬영 갈 때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질질 갔어요. 가면서 ‘X됐다! 어떻게 연기하지?’ 그랬어요. 배우가 느끼는 그런 압박감과 공포감은 감독도 모를 거예요.

Q. 당신은, 그걸 아는 감독이네요.(웃음)
하정우:
아! 그렇죠. 저는 자웅동체니까.(일동 웃음)

Q. 출연한 영화 초기작을 볼 때와, 초반에 그린 그림을 볼 때의 느낌은 다른가요?
하정우: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멋진 하루’ 같은 초기 작품들을 보면 귀여워요.(웃음) 거친 맛에서 오는 ‘날 것’의 느낌들이 있어요. 반면 근래의 연기를 보면 ‘에이~ 너무 느끼해졌다’ 싶어요. 좋게 말하면 능숙해진 건데 민망한 순간들이 있어요. 초기작을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의 창피함이에요. 그림도 그런 것 같아요. 제 초기작을 사람들이 좋아해 준 것은 ‘미술 전공이 아닌 사람이 그린 것에서 보여 지는 야생화 같은 느낌’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많다.” “너무 디자인 적이다” 하세요. 그럴 땐 창피하죠. ‘뭣도 없는데, 내가 티가 나는 구나.’ 그 싸움이 가장 힘들었어요.

Q. 싸움은 진행 중인가요?
하정우:
마침 뉴욕전시가 5월에 있었어요. LA전시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그림이 팔릴 것을 걱정하지?’ 그래서 LA전시가 끝나고 영화로 따지면 ‘예술영화를 만들자’는 느낌으로 뉴욕전시를 준비했어요. 뉴욕전시회 전에 갤러리 대표님에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이건 안 팔릴 거예요. 아마 내가 손해 볼 겁니다”라고. 신인작가들은 모든 비용을 스스로가 다 대거든요. 액자를 만들고, 비행기 편으로 보내고, 보험까지 들다보면 마이너스인 거죠. 그런데 그냥 궁금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뉴욕시리즈를 정말로 딱 한 장 팔렸어요.

Q. 흥미롭네요.
하정우:
그렇죠? 그땐 제가 인물만 그렸는데, 사실 인물 그림은 잘 안 팔리거든요. 그걸 알면서도 저는 제 느낌이 이끄는 대로 막 그렸던 거예요.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한 무서운 인물들을요. 왜 탱화 같은 느낌 있잖아요?(웃음) 그리고 역시나! 다시, 반품!

Q. 그 그림들은 어디 있나요?
하정우:
저희 집에 쫘악~하하.
하정우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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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래도 스스로는 만족하실 것 같아요.
하정우:
네. 뭔가를 조금 알게 된 것 같아요. 여러 고민이 많았던 LA전시 때 라크마 갤리리 관장님이 오셨어요. 그 분이 딱 지적해 주셨어요. “드로잉은 자유롭고 좋은데, 페인팅은 왜 이렇게 디자인을 생각했냐”고 하시더라고요. 속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웠어요. 머리로 그린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시작 된 거예요. 앞으로는 연기든 그림이든 뭐든 처음으로 돌아가자.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Q 기본으로?
하정우:
네. 기본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속이 비면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있잖아요.

Q. 화가로서 배우로서 감독으로서의 화두가 ‘기본으로 가자’라면, 인간 하정우의 화두는 뭔가요?
하정우:
겸허함? 겸손함? 그래야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난 왜 외롭게 괴물이 되려고 했지?’라는 생각. 어느 순간부터 저를 괴물로 보고 있더라고요. 처음엔 그게 좋았어요. ‘나는 괴물이야!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그땐 내 안에 쌓인 게 ‘경험’이라고 착각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젠 알아요, 괴물이 결코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사람으로 남아있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다는 걸.

Q. 준비 중인 연출 차기작 얘기 좀 잠시 해 주세요.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이야기?
하정우:
아이템은 정했어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그린 블랙코미디에요. 터치감은 ‘번 애프터 리딩’(코엔 형제)이나 ‘재키 브라운’(쿠엔틴 타란티노)입니다.

Q 와~멋지네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잘 먹히는 장르는 아니에요.
하정우:
맞아요. 안 먹혀요. 그런데 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걸 하자는 생각. ‘번 애프터 리딩’ 마지막 장면, 너무 웃기잖아요.

Q 어려운 길인 줄 알지만, 가겠다?
하정우:
어렵지만 즐거운 길이니까.

하정우는 연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연출을 한다. 연기가 그림에 영감을 불어넣고, 그림은 충만한 에너지로 치환 돼 그의 연기를 살찌운다. 그림과 연기가 서로를 견제하고 상호보완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연출은 그의 호기심과 창작열을 자극하며 ‘하정우의 세계’를 보다 다채로운 영역으로 이끈다. 그가 그려나가는 지도를 자꾸 염탐하게 되는 이유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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