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차가운체리
차가운체리
2007년, 군 제대 후 학교로 돌아온 김빨강은 후배 유현진을 보고 묘한 끌림(?)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유현진은 긴 구레나룻, 펑크족을 연상시키는 패션 등 남다른 비주얼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 유현진은 “가지고 있던 가방 중에 제일 예뻐서” 기타 가방을 메고 있었고, 김빨강은 “외적으로 내가 더 빛을 발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유현진에게 접근했다. 이들의 독특한 만남은 유현진이 군대를 다녀온 뒤인 2009년 다시 시작됐고, 차가운 체리라는 밴드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얼마간의 팬덤도 형성됐고 단독콘서트도 개최했다. 지난 2013년에는 SBS 드라마 ‘상속자들’의 OST ‘성장통2’를 발표하며 대중들에게도 제법 눈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련이 발생했다. 소속사의 대표가 잠적한 것. 설상가상으로 드러머가 팀을 탈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김빨강과 유현진의 태도는 사뭇 덤덤하면서도 우직했다. 혈혈단신이 된 두 사람은 앨범 제작에서부터 재킷 사진 작업, 보도자료 작성까지 직접 손을 걷어붙였다. 김빨강은 “내가 차가운 체리의 매니저이자 A&R을 맡고 있다”며 웃었지만,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이 같은 성장통은 ‘다시 좋은 날이 올 거다’라는 메시지가 되어, 하나의 앨범으로 탄생됐다.

Q. 팀명이 독특하다. 무슨 뜻인가?
김빨강 : ‘차가운’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서늘함과 ‘체리’가 가진 달콤함이 마치 우리 두 사람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어울리는 느낌이 있다. 양면성이 돋보이고 예측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까지가 방송용 멘트다.

Q. 그렇다면 실상은 뭔가?
김빨강 : 미국드라마 ‘덱스터’를 보면 살인자가 시체를 토막 내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그걸 ‘차가운 체리(Cold cherry)’라고 부른다. 그 살인자가 굉장히 불쌍했다. 아무한테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살인자가 그 시체만큼은 소중히 여기는 것 아닌가. 우리도 대중적이지는 않아도 누군가한테 소중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었다.

Q. 김빨강은 왜 김빨강인가?
김빨강 : 빨간색을 좋아해서 SNS상에서 닉네임처럼 썼던 이름이다. 공연에 오시는 분들 중 SNS로 나를 먼저 접한 분들이 많다보니, 빨강이라는 이름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더라. 음악이랑 매칭도 더 잘 되는 것 같고. 본명은 안 들으시는 게 낫다. 용상이다.

Q. 앨범명은 심오하다.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 무슨 뜻인가?
김빨강 : 생명의 반복, 삶의 반복 혹은 순환이라는 뜻이다. 얼마 전 기획사 대표가 도망가는 일을 겪고, 개인적으로도 안 좋은 일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많이 지쳤다. 우리가 나름 5년 정도 음악을 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다시 일어서자’라는 의미에서 지었다. 좋은 시절이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Q. 수록곡들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많다.
김빨강 : 앨범 콘셉트가 과거를 회상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멋있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내용이다. ‘12분의 1의 계절’도 지나간 계절에 대한 회상과 앞으로 올 계절에 대한 희망을 노래했다. ‘찬란했던 우리’도 찬란했던 과거와 행복했던 젊은 시절을, ‘는개’라는 곡도 지나간 이별에 대한 노래다. 전체적으로 희망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 전에는 사랑 얘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한 곡(‘는개’)을 제외하고는 삶에 관한 노래를 했다.

차가운체리 김빨강
차가운체리 김빨강
Q. 앨범이 6월 11일에 나왔다. 발매된 지 시간이 좀 지났는데, 반응은 어떤가?
김빨강 : 사실 회사 없이 작업한 앨범이라 걱정이 많이 됐다. 그런데 회사가 있을 때만큼 잘 돼서 다행이다.

Q. 팬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김빨강 : 팬들도 우리가 안 좋은 일을 겪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음원사이트나 SNS 댓글을 보면 ‘오빠, 노래가 나와서 너무 좋아요’ 같은 글보다는 ‘힘내요’ ‘응원합니다’와 같은 말들이 많더라. 재밌다.
유현진 : 음악에 대한 반응보다는 팀의 단결력을 돋워 주는 댓글이 많다. 하하.

Q. 타이틀곡 제목 ‘는개’는 원래 알던 단어인가?
김빨강 : 보통은 곡을 쓰다가 제목을 고르는데, ‘는개’는 단어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곡을 쓴 케이스다. 인터넷에서 어떤 책 소개를 하다가 봤다. 처음에는 오타인줄 알았다. ‘한국에도 이런 예쁜 단어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거기에 맞춰서 가사와 곡을 쓰고 현진한테 들려줬다. 그랬더니 현진이 기타보다 피아노가 감수성을 더 살려줄 것 같다면서 멋지게 편곡을 해줬다.

Q. 일본어 버전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김빨강 : 공식적으로 발표는 안 했지만 9월에 일본에서 카페 공연을 할 예정이다. 그 때 일본어 버전이 수록된 CD를 가지고 가서, 공연 때 판매를 하거나 선물로 드리려고 생각 중이다. 일본어를 잘 하는 지인이 있어서 번역을 부탁드렸다. 마침 음악을 하고 있는 형이어서 음절에 맞게 잘 바뀐 것 같다.

Q. 독특하게도, 피아노 연주에 디지털 사운드가 들어갔다.
유현진 : 우리 색깔을 찾고 싶었다. 피아노에 목소리만 얹은 편곡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우리만 할 수 있는 걸 해보자’하면서 나온 편곡이다.
김빨강 : 그렇다고 또 바이올린이나 첼로는 너무 뻔하니까. 이게 예전에 오락실에서 나오던 8비트 사운드인데 오히려 더 쓸쓸하게 느껴지더라. 우리 음악에 대해 ‘심심하다’ ‘아마추어 같다’는 평가가 더러 있다. 아무래도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로 이루어진 구성이라서 그런 것 같다. 사실 나와 현진이도 미디를 꽤 잘 다루고, 악기도 못 넣어서 안 넣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틀 안에서는 악기를 비우고 날 것의 느낌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한두 개의 악기가 들어가더라도, 곡의 느낌을 극대화 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Q. 이번에는 악기를 더 비웠는데?
김빨강 : 드러머가 빠지다 보니 영향을 좀 받게 됐다. 드럼이 나오기 시작하면 기본적으로 받쳐줘야 하는 악기들이 있다. 드럼이 빠지면서, 오히려 드럼에 얽매이지 않고 해보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밴드 규모도 작아지고 악기 편성도 더 간소화됐다.

차가운체리 유현진
차가운체리 유현진
Q. 드러머는 무슨 이유로 탈퇴한 건가?
김빨강 : 음악적인 견해 차이가 있었다. 힘든 상황이 닥치기도 했고. 그 친구도 좀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어 하지만 밴드가 힘들어지다보니 그런 여건이 안 되고. 자기 음악도 안 되고 차가운 체리음악도 어설퍼지는 순간에 그친구가 고민을 한 것 같다.

Q. 멤버 충원 계획은 없나?
김빨강 : 정말 잘생기거나 정말 예쁘거나 어린 게 아니라면 굳이 정식멤버로 들일 생각이 없다. 머릿수가 늘어나면 수익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니까. 하하하.

Q. 그럼 음악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간소한 편성으로 가는 건가, 아니면 세션으로라도 더 채울 건가?
유현진 : 우리가 전략적으로 앨범을 만들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다가 채우고 싶으면 채우고 비우는 게 나으면 비우고. ‘어떻게 하자’라는 것에 대한 생각은 크게 가지고 있지 않다.
김빨강 : 곡이 원하는 대로 진행하려고 한다. 전에는 굳이 악기가 없어도 되는데 드러머가 있다 보니, 악기를 넣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 없이, 오히려 선택지가 간단해졌다.

Q. 2인조로 바뀌다 보니 곡 작업 방식도 달라졌겠다.
유현진 : 제일 좋은 건 의견 충돌이 덜하다. 둘이 되니 소통을 하기가 좀 더 편하다.
김빨강 : 당시 나와 탈퇴한 멤버(드러머)가 날선 대화를 하게 될 때가 있었다. 그 때 현진이가 중간에서 중재를 잘 해줬다.
유현진 : 드러머 형은 음악을 전공으로 했고 우리는 독학으로 했다. 그 때문인지 그 형은 정해진 규칙을 따라가던 경향이 있었고 우리는 ‘꼭 그래야 되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런 충돌이 덜해지니까 좀 더 편하다.

Q. 두 사람은 좀 더 즉흥적인 느낌을 따르는 편인가?
김빨강 : 그렇다. 이 곡에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우리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다. 사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라는 고민도 했었는데 지금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우리를 잘 표현하는 색깔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다.
유현진 : 그래서 편곡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Q. 그런데 어떤 평론가는 차가운 체리에 대해 ‘편곡이 아쉽다’고 말했다. 혹시 봤나?
김빨강 : 봤다. 내가 먼저 보고 현진이한테도 보내 줬다. 맞는 말일 수도 있는데 사실, 그 안에는 그 분의 취향이 반영돼 있을 것 아닌가. 물론 무시할 수 없는 얘기지만, 한 사람의 취향이 들어간 말을 너무 귀담아 듣는 것도 좀 아닌 것 같다.
유현진 :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만족이다.
김빨강 : 곡에 대한 얘기보다 ‘될 것 같은데 안 되는 느낌의 밴드’라는 말이 슬펐다. 그래도 ‘우리한테 될 것 같은 요소가 있는 거구나’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그 분이 말했던 ‘좋은 노래와 연주 실력을 가졌다’는 장점에서 조금 더 노력을 하려고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평론가도, 대중들도 다 좋아하지 않을까.

Q. 이번 앨범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유현진 : 80% 정도? 녹음 환경에 대한 아쉬움, 장비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돈이 더 들어갔으면 더 좋은 사운드가 나왔을 텐데, 아무래도 홈 레코딩으로 진행하다 보니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김빨강 : 나 같은 경우에는 세곡만 발매하게 된 게 안타깝다. 여러 곡들이 뭉쳐서 스토리가 형성이 되면 각 곡의 색깔, 이를테면 왜 이 곡은 이렇게 편곡했는지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려드릴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는 정규 앨범을 제대로 내고 싶다. 곡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차가운체리
차가운체리
Q. ‘우리끼리 보이는 라디오(이하 우끼보라)’라는 콘셉트의 공연을 진행해왔다. 회사 없이도 진행이 가능한가?
김빨강 :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 사실 팬분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끼보라’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당분간은 격월로 계속 공연을 할 생각이다. 우리 음악에 맞는 우리만의 공연이 될 것이다. 일단 8월에 있는 공연은 카페 공연으로 개최한다. 우리끼리 진행을 하다 보니 사이즈를 키우기보다는, 적은 수의 관객을 모시더라도 만족을 드릴 수 있는 공연을 하려고 한다.

Q. 이번 공연은 어떤 콘셉트로 진행되나?
김빨강 : 일단 이번에 나온 곡들을 완벽하게 들려드릴 것이다. 그리고 밴드가 소규모 편성으로 변한 만큼 지난 곡들도 재편곡해서 들려드릴 것 같다.
유현진 : 새로워진 체제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 같다.
김빨강 : 서정성이나 감수성을 보여주려고 한다. 세션맨으로는 건반과 베이스 기타 정도까지만 생각하고 있다.

Q. 아까 일본 공연을 열 수도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연결된 건가?
김빨강 : 우리끼리 모든 걸 진행하려다 보니 한국에서의 활동에는 한계가 보이더라. 우리가 전에 SBS ‘상속자들’ OST를 불러서 일본 분들에게 좀 익숙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일본에 계신 팬 분들과 접촉을 했다. 발 벗고 도와주신다는 분들이 계셔서 한국이랑 같은 콘셉트의 카페 공연을 계획 중이다. 잘 되면 격월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연을 하는 게 최종적인 목표다.
유현진 : 정말 ‘잘 되면’이다. 그 만큼 우리가 더 노력을 해야겠지.
김빨강 : 당분간은 수익이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할 생각이다.

Q. 요즘엔 밴드 시장이 워낙 커져서 좋은 회사를 찾을 수도 있을 텐데?
김빨강 : 어떤 회사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사실 이젠 ‘우리를 정말 좋아하는 회사면 먼저 연락을 하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회사의 문을 두드리게 되면,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면 회사에 치이고 결국에는 손해를 보게 되더라. 우리가 좋으면 어디선가든 연락이 올 테니 억지로 회사에 가서 손 벌리지 말자는 생각이다. 당분간은 우리끼리 할 것 같다.
유현진 :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우리끼리 하려고 한다.

Q. 어떤 음악을 하는 밴드로 기억되고 싶나?
유현진 : 소통과 공감이 가능한 음악을 하고 싶다. 우리 따로 관객 따로가 아니라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음악, 우리가 슬픔을 얘기하면 관객들도 슬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이다.
김빨강 : 사실 얼마 전에 회의가 왔다. 지난 5년 동안 우리가 많이 쉬어봤자 6개월 정도였다. 매해 앨범을 내면서 쉴 틈 없이 오다 보니 어느 순간 음악을 한다는 것에 의무감이 들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매년 음반을 내도 매년 들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 아닌가. 우리의 음악을 계속 갈고 닦아서 더 좋은 형대로 발전시키면, 더 많은 분들이 들어주실 것이란 생각이 제일 크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지치지 않고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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