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섭 의상실장
심현섭 의상실장
심현섭 의상실장

[텐아시아=정시우 기자]의상감독이라 칭하니, 손사레를 치며 실장으로 불러 달란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인가 했는데 또 작품에 있어서만큼은 주위 눈치 따위 보지 않는 강단이 대단하다. 심현섭 의상실장은 옷에 철학을 입히는 사람이다. 그가 만든 영화 의상은 과장하자면, 인물의 내면을 읽는 거울이다. 배우가 캐릭터를 통해 제3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심현섭 실장 역시 자신이 만들어 낼 의상을 상상하고 재단하며 캐릭터의 삶을 대리한다. 시집가는 딸에게 직접 옷을 지어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

‘판도라’ ‘사도’ ‘순수의 시대’(2015) ‘소원’(2013) ‘관상’(2013) ‘점쟁이들’(2012) ‘연가시’(2012) ‘열여덟,열아홉’(2011) ‘평양성’(2010) ‘김종욱 찾기’(2010) ‘불꽃처럼 나비처럼’(2008) ‘님은 먼곳에’(2008) ‘궁녀’(2007) ‘왕의 남자’(2005) ‘효자동 이발사’(2004)

Q. 어떻게 이 길에 들어서게 됐나.
심현섭:
시작이 영화는 아니었다. 패션디자인 전공 후 대학원에서 무대의상을 하다가 우연히 아르바이트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SF 부분을 맡았다. 그때는 영화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을 때여서 크레딧에 이름도 올리지 말아달라고 했다.(웃음) 무대의상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 프로필이 내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그 작품을 인연으로 ‘예스터데이’(2002) 특수의상을 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한 게 ‘예스터데이’부터다. ‘내가 참여한 작품이니까 영화관에서 한 번 볼까?’ 해서 갔는데 큰 극장에 나를 포함해서 딱 두 명이 있었다.(웃음) 비록 영화가 흥행은 안 됐지만, 큰 스크린을 통해 내 작업물을 보는 경험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영화판에 들어오게 됐고, 2년 후 ‘효자동 이발사’로 입봉을 했다.

Q. 세 작품 만에 바로 입봉 한 건가.
심현섭:
빠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이 넘은 상태였고, 영화판의 메커니즘이 중요하긴 하지만 나름 학교에서 의상을 오래도록 공부했다. 그리고 사실 공연 쪽 의상을 6-7년 정도 했던 상황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공연 의상은 한다.
심현섭 의상실장
심현섭 의상실장
Q. 의상실장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 혹은 사람이 있다면.
심현섭: ‘효자동 이발사’가 첫 메인이긴 했지만 그땐 옷만 만들 줄 알았지 영화라는 메커니즘을 잘 몰랐다. 그런데도 그땐 나름 자존심이 있어서 ‘왜 나를 인정 안 해줘’ 했던 것 같다. 영화가 나온 후에는 ‘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상당히 건방진 생각을 했다.(웃음) 전환점이 된 작품은 ‘왕의 남자’다. 원작인 연극 ‘이’를 워낙 좋아해서 꼭 하고 싶었다. 없던 프로필도 만들어서 이준익 감독님을 찾아뵀는데, 다행히 감독님 좋게 봐 주셨다. 이후 이준익 감독님 작품의 80-90%에 참여했다. 올해 개봉하는 ‘사도’(송강호, 유아인 주연)도 함께 했다.

Q. 여러 감독과 작업을 했는데 가장 자극이 됐던 감독은 누구인가.
심현섭:
지금 준비하는 ‘판도라’의 박정우 감독님. 박정우 감독님과는 ‘연가시’ 때 한번 했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예전에는 싫은 부분들도 많았다.(웃음) 감독님이 굉장히 세다. 말 뿐 아니라 모든 게 ‘상남자’ 스타일이다. 그에 반해 나는 생긴 건 동네 아저씨 같아도 의상을 하다 보니 여성적이고 내성적인 부분들이 있다. 성향이 다르다보니 ‘연가시’ 때는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왜 또 작품을 함께 하느냐! 일단 감독 이전에 작가로서의 박정우를 너무나 존경한다. 이번 작품 역시 시나리오를 보고 반해서 하겠다고 했고, 하면서 감독으로서도 그 분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이준익 감독님의 경우엔 내게 선생님에 가깝다. ‘왕의 남자’때 경험이 별로 없는 나를 가르치면서 했겠지, 설마 의존을 했겠나. 그때부터 나에게는 선생님이셨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나는 작품선택을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절대 다작을 원칙으로 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시나리오도 안 보고 무조건 달려가는 분이 바로 이준익 감독님이다. 왜, 가족은 선택하지 않지 않나.

Q. 다작을 원칙으로 하지 않는 것은 소모되지 않기 위함인가.
심현섭:
아직까지는 그러자는 주의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확실한 건 돈이 우선은 아니라는 거다. 작품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두 개 정도는 해도 무관하다. 그런데도 그러지 않고 한 작품을 몇 개월씩 기다리는 것은 아직은 내게 작품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심현섭 실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로 꼽은 수애
심현섭 실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로 꼽은 수애
심현섭 실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로 꼽은 수애

Q. 그러다보면 하고 싶은 작품을 놓치기도 할 텐데.
심현섭:
많이 놓친다. ‘순수의 시대’를 하기 위해 다른 작품을 안 받고 6개월 이상 기다렸다. 우연히 시나리오를 접했는데 너무 좋아서 먼저 하겠다고 했다. 감독님 만나서 PT 하고, 승낙을 받은 후엔 영화가 투자를 받기까지 또 6개월을 기다렸다. 엄밀히 말해 ‘순수의 시대’가 거장 감독님 작품은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기다린 것은 시나리오를 보고 의상적으로 풀어낼 것들이 많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찾아가고 전화하고 그랬다. 나는 작품 욕심이 생기면 눈치를 안 보는 스타일이다.(웃음)

Q. 의상 스태프들은 남녀비율이 어떻게 되나.
심현섭:
나 빼고 영화 시장에서 남자를 두 명 본 것 같다. 메인으로 활동하시는 분은 권유진(‘최종병기 활’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선배 밖에 못 본 것 같고. 내가 많은 영화사와 작업을 한 게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그렇다. 대부분이 여자다.

Q. 의상감독이 바라보는 배우는 좀 다를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배우가 있다면.
심현섭:
‘님은 먼곳에’와 ‘불꽃처럼 나비처럼’를 함께 했던 수애 씨.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경우 여주인공 비중이 높은 작품이고 캐릭터 성격상 의상에 공을 많이 들여야 했는데, 수애 씨 도움을 많이 받았다. 수애 씨가 내 스케줄에 맞춰서 기다렸다가 피팅을 하기도 하고, 감독님이나 제작사가 없는 상황에서도 달려와서 피팅을 해 줬다. 그리고 수애 씨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컨셉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의상이 보류됐을 때 “저는 실장님을 믿습니다. 언제든 피팅이 필요하면 불러주세요”라고 했다. 그 이후 한 번도 못 봤는데 수애라는 배우는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리고 예쁘고 아니고를 떠나서 내 마음속에 너무나도 감사한 배우로 남아있다. 왜 힘들고 어려울 때 믿어줬던 사람이 기억나지 않나. 기회가 돼서 다시 만나면 최선을 다해서 그 분의 의상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심현섭 실장이 많은 걸 시도한 ‘순수의 시대’
심현섭 실장이 많은 걸 시도한 ‘순수의 시대’
심현섭 실장이 많은 걸 시도한 ‘순수의 시대’

Q. 작업물 중 의상 적으로 가장 매력 있었던 작품은?
심현섭:
‘순수의 시대’다. 잘 했다기보다는 재미있게 했다. 일단 사극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시도한 작품이다. 보통 사극이라고 하면 궁, 양반집, 저잣거리, 기생집 등이 나온다. ‘관상’이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전쟁터가 나온다. 우리나라가 아닌 이종 마을도 나오고. 그리고 조선 건국 초기의 질풍노도의 시기, 즉 고려 느낌도 나고 조선 느낌도 나는데 인물들 성격도 너무 다르니까 의상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에 비해 ‘사도’ 의상은 상대적으로 정형화된 부분이 있다. ‘사도’는 워낙 인물의 감정이 중심인 영화이기 때문에 의상을 튀지 않도록 했다. 이준익 감독님과 의상 컨셉을 잡을 때에도 ‘사도’는 정공법으로 담백하게 가자고 했다.

Q 편집과정에서 가장 먼저 잘려나가는 게 아마도 의상이나 소품 같은 숏들일 거다. 결과물을 보고 허탈한 경우는 없었나.
심현섭:
과거에는 그런 경우가 많았다. 가령 ‘불꽃처럼 나비처럼’ 파티 장면의 경우 화면에 준비된 의상의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화면에서) 잘릴 거, 왜 그리 공 들였어?” 이런 얘기를 우스갯소리로 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엔 시스템이 선진화 되면서 약속들을 잘 지킨다. 표준근로계약서가 시행되면서 그런 변화가 더 크게 일어났는데 최근에는 프리프로덕션이 강화돼서 옷 한 벌 한 벌까지도 정확하게 개산해서 들어간다.

Q. 표준근로계약서와 관련해서 ‘국제시장’ 길영민 대표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런 고민을 얘기하더라. 촬영부나 조명부와 달리, 의상과 미술팀의 경우 촬영 외의 시간에도 일을 하기 때문에 명확한 근로시간을 계산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팀 간의 형평성을 맞추는 관건이라고 하더라.
심현섭:
맞다. 그래서 사실 개인적으로 불만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프리프로덕션 뿐 아니라 프로덕션에 들어가서도 사전 준비 때문에 다른 팀들보다 일찍 움직여야 하니까. 나야 메인이니까 그나마 괜찮은 편인데 서브 디자이너들은 정말 고생이다. 하지만 내가 영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좋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3-4년 전과 비교해서 스태프들 페이도 조금씩 올라가고 있고. 이런 것들이 보다 넓게 정착되면 영화판에 훌륭한 인력들이 더 많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Q. 표준근로계약서의 직접적으로 혜택을 받는 스태프들과 아닌 스태프들로 조금 나뉘지 않을까 싶다.
심현섭:
그건 모든 팀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중간급 스태프들의 상실감이 없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막 일을 시작한 막내들은 자신들이 표준근로계약서로 인해 얼마나 큰 혜택을 받는지 잘 모를 거다. 솔직히 말해 현재 막내급들과 중간급의 페이 차이가 얼마 안 된다. 연차는 꽤 차이가 있는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표준근로계약서라는 게 중간급들의 희생이 어느 정도 강요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중간급들이 후배들을 위해 많은 양보를 하며 일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심현섭 의상실장
심현섭 의상실장
Q. 심협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다면.
심현섭:
남보다 특별히 잘 하는 건 없다. 다만 굉장히 감성적인 인간이라는 생각은 한다. 나는 이것이 이 일을 하는데 있어 70-8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보는데, 감성적인 면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왜, 배우가 연기를 할 때 캐릭터에 빠져 산다고 하지 않나. 나 역시도 의상을 만들 땐 여자가 됐다가 할머니도 되고 아저씨도 된다. 의상은 내게 취미이자 놀이터다.

Q.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장인의 마인드가 있다.
심현섭:
장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목표가 나이 70에도 현장에 나가는 거다. 모니터 뒤에 내 이름이 박힌 의자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한 다음에, 내가 만든 의상을 현장에서 보는 게 나의 꿈이다.

Q.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극받은 의상감독이 있나.
심현섭:
일본의 와다 에미 선생님. 1986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란’으로 아시아인 최초의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하신 분이다. 우리나라 작품도 많이 하셨는데 현재 중국에서 주로 활동하신다. 어떤 인터뷰에서 “나는 영화의상을 하고 싶은데 이 나라(일본)에서는 제작할 공간도 제작할 영화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나라를 떠난다” 식의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나이 70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다. 박찬욱 감독님의 차기작 ‘아가씨’도 이야기가 오고 간 걸로 안다. 사실 나도 ‘아가씨’ 쪽과 접촉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물 먹었다.(웃음) 너무 하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어필했는데 안 시켜 주더라고. 하하하.

Q. 오프 더 레코드인가?
심현섭:
알려져도 상관없다. 사실인데, 뭐. 말하지 않았나. 나는 하고 싶은 작품에는 눈치 안 보고 덤빈다고. 그게 창피한 건 아니지 않나.

Q. 오,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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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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