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걸’ 조여정.
‘워킹걸’ 조여정.
‘워킹걸’ 조여정.

조여정은 수많은 여배우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방자전’과 ‘후궁’은 조여정은 남다른 여배우로 만들었다. 과감한 노출도 노출이지만, 두 영화에서 보여준 조여정의 모습은 배우로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인간중독’에서의 조여정은 또 달랐다. 짧은 분량임에도 조여정은 분명했다. 조여정만의 코믹함이 더해진 베드신 장면에서의 차진 대사는 귀에 쏙쏙 꽂혔을 정도다.

그리고 ‘워킹걸’. 이 영화는 성인 코미디다. 주된 배경이 성인용품점이다. 베드신도 자주 등장한다. 또 섹시냐고, 또 베드신이냐고 따져 묻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질문한다면, 반드시 영화를 봐야 한다. 그럼 알 수 있다. 조여정이 왜 ‘워킹걸’을 선택했는지. 굳이 그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매력도 가득하다.

‘워킹걸’은 여자 이야기다. 성인용품점을 꾸려가는 인물이 여자들이다. 극 중 조여정은 축구 경기에 나서는 딸이 무슨 포지션인지도 모르지만, 회사에선 똑 부러지는 그런 ‘워킹맘’이다. 그리고 가정과 직장 사이, 이 시대 ‘워킹맘’이 가질만한 고민을 가득 품고 있는 현실적인 여성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남편과의 관계도 주도할 만큼 당당하다. 그런 모습이 멋지다.

Q. 분명 누군가는 또?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조여정 : 정범식 감독님과 해보고 싶었다. ‘기담’을 공포영화로 알고 봤는데 멜로로 느껴졌다. 그런 독특한 매력이 있는 것 같더라. 그래서 ‘워킹걸’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하려고 할까, 어떤 면을 보고 나를 선택했을까 궁금했다.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나라는 배우를 선택했을 테니까. 그래서 해보고 싶었고, 나도 모르는 뭔가가 꺼내질 것 같았다.

Q.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뭔가가 꺼내졌나.
조여정 : 그런 것 같다. 축구장 신을 보니까. (웃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모습이 나오면 재밌겠다, 그걸 보고 좋아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축구장 신에서 많이 웃더라. 그럼 된 거지. 하하. (조여정이 언급한 축구장 신은 극 중 보희가 딸의 축구 시합을 응원하러 간 경기장에서 신상 성인용품의 오작동으로 인해 독특한 행동을 보여준 장면을 말한다.)

Q. 정범식 감독님과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기담’ 이후 보여준 게 많진 않고, 그만큼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조여정 : 감독, 배우, 뮤지션도 다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한번 보인 예술적 감각이나 실력은 어디 안 간다고 생각한다. 그냥 때가 있는 것 같다. 배우도 똑같다. 작품이 잘 되면 배우가 다 한처럼 생각하기 쉽다. 또 꾸준히 하면 당연히 불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과정이라고 본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보다 직접 만났을 때 느끼는 건 다르다. 그걸 믿고 가는 거다.

Q.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드러났다는 점도 작품 선택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조여정 : 당연하다. 주체적인 축을 이루는 캐릭터가 많지 않은데, 이런 기회를 왜 안 하고 싶겠나. 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다. 그리고 그만큼 겁도 났다. 해낼 수 있을까, 끌고 갈 수 있을까 등등.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시나리오를 읽어봐도 모르겠는 거다. 그런 게 궁금했다. 어떤 게 나올지. 특히나 만화적인 귀여운 톤 앤 매너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들에 가까워서 더 궁금했다.

‘워킹걸’ 조여정.
‘워킹걸’ 조여정.
‘워킹걸’ 조여정.

Q. 이해한다. 초반 보희(조여정)의 직장인 장난감 회사 ‘토이 앤 조이’ 출근할 때 상당히 만화적이더라. 갑자기 꼬마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고, 사무실 내부도 아기자기하고. 촬영하면서 의심이 들기도 했을 것 같은데.
조여정 : 귀엽죠. (웃음) 똑 부러지는 여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타고 가니까. 감독님이 워낙 치밀하게 일을 한다. 그래서 의심이 없는 현장이었다. 근데 신기했던 게 나중에는 현장에 동화돼서 먼저 아이디어를 내고, 서로 뭔가를 더 해보려고 하는 거다. 감독님께서 ‘스태프들이 받아줘서 고맙고 기분 좋다’고 하더라.

Q. 실제 장난감회사는 그렇지 않겠죠. (웃음)
조여정 : 저도 토이 앤 조이 밖에 안 다녀봐서…. 근데 귀엽게 보이지만, 결론은 야근이다. 새벽 3시에 들어오지 않나. 그런 차만 타고 다니는 거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힘들고. 어차피 일하는 건데 기왕이면 뭐라도 재밌게, 신 나게 하면 좋지 않을까. 그런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일종의 판타지네요.) 맞다. 그게 매우 좋았다.

Q. 최근 작품을 보면 강한 여성 캐릭터는 혼자 다하는 것 같다. ‘인간중독’에서도 조연이지만, 심상치 않은 캐릭터였고.
조여정 : 그 여자가 심상치는 않죠. 하하. 기다린다. 만나길 기다리는 거다. 기왕이면 매번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면서 주체성도 있으면 좋겠고. 그렇게 따지다 보면 만나기 쉽지 않다. VIP 시사회를 보고 나오는데 행복한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여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많이 없는데, 참 복이 많구나 싶었다.

Q. 베드신에서도 그렇다. ‘인간중독’에서도 그랬지만, ‘워킹걸’에서 보희는 남편과의 베드신을 주체적으로 이끈다. 베드신에서도 주체성이 확실하다. 하하.
조여정 : 어! 그러네. 재밌다. 맞다.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하하.

Q. 여하튼 노출이 포함되는 건데,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 않나. 그럼에도 과감하게 도전한다는 생각이다.
조여정 : 영화에 필요하고, 이해가 되니까. 충분히 받아들여지니까 한 거다. 그게 과감하고, 대담하다고 생각하는 건 보시는 분들이 느끼는 점 같다. 나는 영화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거다.

Q. 지금 말하는 걸 보면, 충분히 겁을 낼 수도 있는데 조여정은 그런 거 없이 작품만 보고 선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시나리오가 많이 가는 게 아닐까 싶다.
조여정 : 그럴 수도 있겠다. 작품 안에서 역할이 아니라 행보를 봐주시고 작품이 들어오는 거라면 사실 아주 좋은 거다.

‘워킹걸’ 조여정.
‘워킹걸’ 조여정.
‘워킹걸’ 조여정.

Q. 주된 배경이 성인용품점이다. 대다수가 어느 정도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런 배경이다. 그 때문에 고민은 없었나.
조여정 : 책 자체에 있는 설정들이 귀여웠다. 감독님이 어떻게 준비했는지 구체적인 계획들을 보여줬는데 성인용품점을 러블리하게 만들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예쁘겠다고 생각했다. 소재 때문에 그런 걱정은 없었다.

Q. 한편으론 남자 입장에서 참 질문하기 어렵다. 성인용품을 직접 사용해 봤느냐고 물어보기도 그렇고. 또 남자들이 알 수 없는 여자들만의 성적인 부분도 있다. 일이라곤 하지만, 남자인 감독과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 어색함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조여정 : 그런 것들이 바로 감독님이 철저하게 준비한 것 중에 많은 부분이다. 실제 공부를 해서 만드신 영화니까. 그걸 현장에서 공유하는 거다. 남자 감독님과 여배우, 이런 걸 떠나 동료로서 작업하는 입장이었다. 그 순간에는 학생과 선생님의 분위기였다. 선생님이 먼저 공부하는 것을 알려주는 분위기라고 할까. (웃음)

Q. 또 초반부터 ‘섹스’란 단어가 계속 나온다. 어느 순간에는 민망하기도 하고,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여정 : 과하다는 게 설정인 것 같다. 책에 보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아주 현실적으로 붙고, 초반에는 ‘이런 일이 어디 있어’라고 할 정도다.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이런 엄마가 어디 있어, 이런 여자가 어디 있어 이런 느낌으로 시작한다. 그게 톤 앤 매너였다. 그래서인지 과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리고 어차피 과한 설정으로 간 캐릭터기 때문에 와 닿고 와 닿지 않고는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이 말도 안 되는 거다. 보희 입장에서는 자기만 정상이고, 나머지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 면에서 관객은 보희이지 않을까. 그런 게 매력이다.

Q. 클라라와 ‘여여케미’도 돋보인다.
조여정 : 영화 보면 다 알 거다. 서로 진짜 재밌어하는지 숨길 수가 없다. 스크린이 커서 눈동자에 숨겨지지 않는 것 같다. (Q. 실제 눈도 크다.) 하하. 감사합니다. 진짜 열정 있고, 그 친구도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연습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다. 정말 즐겁게 작업했다.

‘워킹걸’ 조여정.
‘워킹걸’ 조여정.
‘워킹걸’ 조여정.

Q. 클라라는 첫 주연이라서 도움을 많이 줬을 것 같은데.
조여정 : 나 하기도 바쁘다. 감히 누구한테 도움을. 작품 할 때 항상 내 코가 석 자라, 누가 ‘어떡하지’라고 물어보면, ‘나는’이라고 하는 스타일이다. 후배고 뭐고 그런 개념이 없다. 나도 처음이야, 죽겠어. 우리 잘해보자 그런다. 보희하고 난희는 어미 새 바라보듯 감독님을 바라봤던 것 같다.

Q. 평소 클라라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을 텐데 이 작품을 하고 나서 바뀐 게 있다면.
조여정 : 몇 년 전에 소속사가 같았다. 작품만 처음 한 거지, 같이 화보를 찍기도 했고, 숍에서도 보고. (Q. 아! 그럼 편했겠다.) ‘오랜만이에요’ 인사하고 시작하니까, 바로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은 건 있었다.

Q. 근데 정말 ‘섹시’ 대결은 없었나.
조여정 : 많은 분이 원하시는 것 같다. 우리는 생각 못 해봤는데. 뭐가 있었어야 했나,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웃음)

Q. 섹시가 우선이지만, 그 안에는 ‘워킹맘’의 고충이 깔렸다. 가정(육아)과 사회(일)에서 모두 완벽하길 바라는 시선도 있고.
조여정 : 20~30대 일하는 여자, 아니 40대까지. 아무튼, 일하는 여자들이 보면 많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래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일차적으로 여자 기자들이 다 일하는 여자인데, 좋다고 해서 기분 좋았다. 공감됐구나 생각했다. (Q. 남편 입장도 충분히 공감됐다.) (일동 웃음) 공감대 형성이 만화적인 것 같으면서도, 잘 버무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화두가 은근히 땅에 붙어 있다. 나머지는 만화처럼 가더라도, 우리 가족은 현실에 딱 붙어서 간다.

Q. 여자들에게 있어 대단히 큰 화두다. 실제 조여정이라면 가정과 사회,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조여정 :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지금의 나를 보면 최대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할 것 같다. 물론 어느 정도 맞출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확실한 건 워커홀릭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작품 안 하는 시간을 나름 잘 보낸다. 혼자 정말 잘 논다. 이 카페(인터뷰 장소인 광화문의 ‘크렘’)에도 혼자 와서 책보기도 하고.

Q. 또 한편으론 ‘방자전’ ‘후궁’ ‘인간중독’ 그리고 ‘워킹걸’까지 다 다른 작품이고, 극 중 조여정의 모습도 다르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이 작품을 다 본 사람한테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은 대중들에게는 선입견을 줄 수 있는 행보다.
조여정 : 그럼요, 그럼요. 영화 메시지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 직업이 동반하는 편견과 선입견에 맞서서 일한다. 물론 영화에서는 극적 재미를 위해 성인용품점이란 소재를 들여온 거다. 그런데 메시지가 좋았던 게 맞서 싸우겠다는 게 아니다. 이왕이면 즐기면서 주체적으로 하자는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여배우로서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다거나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냥 직업이 동반하는 그런 거다. 그리고 사실 그런 선입견 같은 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 거다. 어떤 실체가 아니라 그냥 말뿐이지 않나. 그에 대해 무딘 편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라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아 그렇구나’ ‘저런 배우구나’ 그러면 될 것 같다.

Q.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조여정 : 갑자기 생각이 변한 건 아닌 것 같다. 배우다 보니까 ‘내가 저 사람이라면’ 이런 상상을 하면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직업도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직업도, 어느 조직을 가도 마찬가지다. 단지 배우는 대중이 보기에 특별해 보이니까 더 많이 짊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워킹걸’ 조여정.
‘워킹걸’ 조여정.
‘워킹걸’ 조여정.

Q.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힘든 일이다. 다음 작품에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궁금하고.
조여정 : 나도 그게 제일 궁금하다. (웃음) 내가 다음에 뭘 할지. 계획하고 의도한 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나. 절대 그럴 수가 없다. 배우는 선택받는 입장이다. 누군가는 매번 다르게 보인다고 하지만, 사실 나와 회사 차원에서는 매번 안갯속이다. 다음에 뭐를 할 수 있을까, 뭐를 해야 다를까, 이런 생각을 한다.

Q. 최근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천우희에게 남긴 SNS의 말 한마디가 큰 울림을 안겼다. 단순한 축하 인사가 아니라 여배우를 대변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조여정 : 혼잣말에 가까운 거다. 우희 양한테 한 말은 아닌데 너무 거창하게 포장됐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느꼈다. 왜냐면, 같은 줄에 앉아 있던 여배우들이 다 울었다. 펑펑 울었다는 게 아니라 들으면서 다 눈이 촉촉해졌다. 그리고 자고 일어났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 친구의 수상소감이 내가 쓴 것처럼 ‘모든 여배우들한테 같이 힘내자’란 응원과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순간에 나온 그 친구의 저 안에 있던 마음이 느껴져서 눈이 빨개졌던 것 같다.

Q. 그렇다면 조여정에게 ‘포기’의 순간은 없었나.
조여정 : 다행히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최선을 다해 버텨보자. 다른 단어지만 같은 내용이긴 하다. 잘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한다. 잘 버텨내고 싶고, 잘 버텨온 것 같다. 그런 표현을 스스로 하는 것 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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