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
유희열
유희열

유희열과 십센치는 야한 게 닮았다. 유희열은 방송에서 서슴없이 야한 이야기를 던져서 ‘감성 변태’란 별명을 얻게 됐고, 십센치는 한국에서 가장 야한 가사를 쓴다. 남녀 사이에 흐르는 욕정의 허실을 최성수의 끈적대는 내레이션으로 풀어간 ‘누드가 있는 방’이란 노래가 있다. 유희열은 FM ‘라디오 천국’에서 DJ를 할 때 이 노래를 틀며 즐거워했고, 급기야 십센치는 이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2집의 19금 타이틀곡 ‘오늘밤에’를 만들었다.

토이와 십센치는 공교롭게 새 앨범 발매 시기가 겹쳐 음원차트에서의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십센치는 유희열이 진행했던 FM ‘라디오천국’에 1년 반 정도 출연한 적이 있다. 키득거리며 야한 농담을 주고받던 게 엊그제 같다. 권정열은 “라디오를 오래 함께 하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관계가 됐다”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래도 되는 겁니까?”라며 언짢음을 드러냈다. “올해 토이 앨범 못 낼 것 같다고 해서 내심 좋아하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1위를 하고 아들이 2위를 한다면 아름답지 않을까요?”(권정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둘 다 ‘윈윈’했으면 좋겠습니다.”(윤철종) 이들의 바람대로 토이와 십센치는 음원차트 상위권에 공존하고 있다. 음악은 어떨까?

토이의 ‘다 카포(Da Capo)’와 십센치의 ‘3.0’은 사실 배신감이 느껴지는 앨범들이다. 예전과 달리 화려한 게스트들이 참여해서가 아니다. 기존의 여섯 장의 앨범들과는 여러 가지가 다르다. 기존 토이의 히트곡들은 김연우, 김형중, 변재원, 조원선, 윤상 등의 보컬들의 음색과 거의 맞춤형이라 할 정도로 잘 어울렸고, 거기서 음악의 힘이 극대화됐다. 토이의 매력은 유희열이 가수의 감성과 조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자신의 스타일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그런 시너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화려한 객원보컬을 자랑하지만, 가수의 음색을 살리기보다는 그저 유희열 본인의 작법을 고집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제가 아이돌 가수를 기용했다면 아마 어려운 곡을 줬을 거예요. 일종의 악취미와 같은 것인데 가령, 유명 스타가 홍상수 영화에 나오면 어떤 느낌일지 보고 싶은 거지요. 엑소를 초빙해 김동률 노래를 부르게 하면 어떤 느낌일까요? 다이나믹듀오의 경우 제가 이들과 트렌디한 힙합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이 친구들이 제 앨범이 아니면 이런 복잡한 트랙에 랩을 얹을 기회가 또 있을까요?”(유희열)

유희열의 말처럼 다이나믹 듀오와 자이언티가 함께 한 ‘인생은 아름다워’는 힙합이 아니고 퓨전 재즈에 가까운 곡이다. 때문에 자이언티의 목소리도 본인의 앨범 때와 사뭇 다르고, 개코와 최자의 랩도 조금 힘겹게 들린다. ‘굿바이 선 굿바이 문(Goodbye Sun, Goodbye Moon)’에서 수현의 노래 역시 악동뮤지션 때와 느낌이 다르다. 이 곡은 ‘뜨거운 안녕’과 같이 80년대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풍의 팝의 감성을 유희열 식으로 재현한 곡이다. 의도치 않게 성탄절 풍의 노래가 되다보니 조원선과 같은 성숙한 보컬보다는 10대 아이의 앳된 노래가 더 어울렸을 것이다. 수현은 굳이 귀엽거나 예쁘게 노래하려 하지 않고, 딱 곡에 맞게 건조하게 노래하고 있다.

가장 배신감이 느껴지는 곡은 유희열 본인이 ‘토이 표 발라드’라고 소개한 ‘세 사람’이다. 이 곡은 다소 복잡한 스토리를 노래 한 곡에 담아냈는데, 가사뿐만 아니라 멜로디의 전개도 변화무쌍하다.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는 어려운 노래다. 이렇게 복잡한 게 ‘토이표 발라드’였단 말인가? 토이 타이틀곡이 이렇게 어려웠던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 곡이 음원차트 1위를 한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은연중에 난 아직 현역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기존에 무심타법이었다면 이번에는 배트를 강하게 쥐고 흔들려고 했던 것 같다”는 유희열 본인의 말처럼 음악적으로 과시하고 싶었을까?
십센치_개인컷합
십센치_개인컷합
십센치의 3집 ‘3.0’에서 배신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야한 가사들이 전보다 적어졌다는 것이다. 질펀한 가사와 달콤한 멜로디로 우리들을 사로잡은 이 엉큼한 2인조는 ‘통기타와 젬베’ 열풍을 설명하는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한국에서 야한 가사를 가장 잘 쓰는 팀이기도 했다. 여성관객 앞에서 ‘킹스타(Kingstar)’와 같은 노래를 아무렇지 않게 불러재낄 수 있는 것이 십센치의 미덕이었다.

2집 ‘2.0’에 담긴 ‘너의 꽃’과 ‘고추잠자리’는 제목부터 가사 전반에 이르기까지 섹스에 대한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노래였다. 섹스를 노래하고 싶은 욕망이 시적인 가사로 승화된 노래랄까? ‘3.0’에는 그런 가사들이 적어졌다. 본인들 말로는 ‘쓰담쓰담’도 야한 가사가 아니라고. “얘깃거리가 떨어져서 그런지 야한 노래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 ‘쓰담쓰담’은 전혀 야한 곡이 아니고요. 심연을 위로하는 노래에요. 야한 곡은 ‘드림스 컴 트루(Dreams Come True)’ 한 곡뿐입니다.”(권정열)

음악적인 면에서는 본인들에게 어울리는 어쿠스틱 음악으로 돌아왔다. 자신들이 잘하는 것에 충실하다보니 ‘담배왕 스모킹’과 같이 통기타로 메탈을 연주하는 듯한 재밌는 곡도 나왔다. 이런 시도가 십센치다운 것이고, 이는 다른 어쿠스틱 팀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3집에 대한 불안감’에서 십센치는 ‘어떤 노랠 만들어야 하나, 아메리카노 같은 거면 되나, 사실은 소 뒷발로 쥐 잡은 듯이 얻어 걸린 거라 더는 못 만들지, 야한 노랠 만들어야 하나, 막 끈적하고 더럽고 그럼 되나, 솔직히 내 생활은 너무 순진해서, 주워들은 이야기도 바닥났네’라고 허심탄회하게 노래하고 있다. 이런 솔직담백함 역시 십센치 나름의 ‘스피릿’이다. 하지만 야하지 않으면, 또 끈적거리지 않으면 십센치가 아니다. 이런 배신자들 같으니라고. 어서 제자리로 돌아와!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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