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베이비드라이버 피쳐사진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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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에서 이어짐) 빅 베이비 드라이버는 조용하고 순둥이 같은 분위기라 솔직히 인터뷰를 앞두고 특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꺼리가 없을까 걱정을 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첫 질문부터 ‘잘 모른다’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여 난감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가 뭘 하는 것 같을 텐데 정작 저는 취미는 아닌데 음악 이걸 왜하지? 내가 하는 음악과 나 외에는 제 음악을 듣고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는 관심 없었습니다. 완벽하게 이기적인 것은 아니고 내 음악을 들어주는 고마운 분들에 대한 생각이 좁았던 거죠.”

칼럼 성격상 기본적으로 묻는 프로필의 생일 질문에서 그녀는 출생한 년도는 말했지만 월일은 “아버지와 동생과 비슷한 날이라 싫다”고 머뭇거려 평범치 않은 재미난 음악여정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났다. 본명이 최새봄인 빅 베이비드라이버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1975년 2월 10일 석재관련 자재업을 했던 아버지와 평범한 주부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2살 때부터는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성장한 그녀는 또래보다 왜소했고 5살 때까지 언덕과 계단을 네발로 기어 올라갔을 정도로 겁이 많은 아이였다. 동네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해도 깍두기처럼 옆에 서있을 뿐 어울리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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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집에서 아버지가 사주신 계몽사 50권짜리 계몽사 동화책과 한국, 세계 위인전집을 혼자서 읽었다. 미동초등학교 2학년 때 빨간색 포터블 라디오겸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구입했다. 10분 테이프 B면에 들어있는 척 멘지오니의 연주음악 ‘필 소 굿’이 좋아 많이 돌려 들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한 적이 없던 그녀가 3학년 때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동네 피아노학원에 다녔다. “동네 친구들이 다 다녀서 가고 싶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피아노를 잘 쳐서 콩쿨에 나갔는데 저는 한 번도 나가질 못했습니다. 6학년 때까지 체르니30번까지 치다 말았는데 쉬는 시간에 손가락 연습인 ‘하농’을 즐겨했던 기억이 납니다.”
빅베이비드라이버 피쳐사진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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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친구들 대부분은 중앙여중에 진학했는데 전교에서 단 2명이 갔던 배화여중에 진학했다. “비교적 평온했던 초등학교 때는 쾌활한 구석도 있었는데 중학교에 가면서 저들과 나는 같이 사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있는 듯 없는 듯 나서지 않는 아이로 변했습니다.” 보통 58년 개띠 생들은 모든 시험 케이스를 경험한 특별한 세대로 유명하다. 그녀 역시 모든 규제가 우선적으로 채택되는 시범학교에 주로 다녔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토요일, 남학생들과 어울린 친구들과 달리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걸어가 책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중1때부터 라디오에서 듣고 마음에 들었던 노래가 들어 있는 음반들을 샀다. 중앙여고 옆에서 살았던 그녀는 동네 음반점에서 팝 음반만 구입했는데 최초로 샀던 음반은 조지 마이클의 ‘페이스’다. 이후 월간 핫뮤직과 GMV 같은 음악잡지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헤비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음악을 듣기위해 전영혁이 진행하는 방송을 찾아들으면서 종로 신나라, 뮤직랜드, 광화문의 작은 중고 cd삽들을 순례했다.
빅베이비드라이버 피쳐사진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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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화여고에 들어가 1학년 때 합창부에 지원했지만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지금까지도 자신이 노래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뭐든 열심히 해본 적이 없어요. 중고등학교 때 아빠가 답답한 마음에 못해도 좋으니 뭔가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죠.(웃음) 저는 그때까지 각종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비현실적 삶은 살았는데 뭐든지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방관자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녀는 1994년에 시행된 첫 수능 세대다. “학교공부에 열중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하면 1등할 때도 있었어요. 내신보다 수능점수가 좋아 점수에 맞춰 홍익대 영문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니 너무 시끄럽고 이상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 사무실에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꼬시는 선배들이 많았어요. 그때 허클베리핀 이기용선배가 시와 소설이 있는 학회 소모임에 가입하라 했는데 잘생긴 외모에 반해서 가입했습니다.(웃음) 아무것도 안하면서 말만하는 선배였지만 후배들에게 까칠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기용 선배가 있던 모임은 재미가 없어 몇 번 나가다 그만두고 운동권학회에 들어가 이념서적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모임도 책을 읽는 사람이 거의 없고 술 마시고 말만 앞세우는 분위기였죠.”
빅베이비드라이버 피쳐사진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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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했던 그녀는 음악 감상동아리 ‘짜라투스라’에 가입했다. “재미있었습니다. 시완 레코드에서 나온 프로그레시브 음악을 듣고 잘난 체하고 그랬죠. 저는 그때까지 술을 한 번도 마셔보지 못했는데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 술을 마시고 병원에 실려 갔을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빅베이비드라이버) 문화적 충격의 연속이었던 신입생 시절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엄청난 골초인데 얼굴은 초딩 수준으로 동안이었던 그녀는 30살 될 때까지 담배를 살 때 주민등록증을 보여줘야 했다.

94학번은 문화적으로 축복받고 경제적인 호황을 누렸던 신세대문화를 향유하며 성장한 소위 X세대다. 당시 학교 친구들은 거의 다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갔다. 3학년이 된 그녀도 진로에 대학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인도 일주여행을 떠났다. “처음엔 일본을 가려했는데 경비가 싸 더 오래 있을 것 같아 혼자 인도 붐바이로 떠나 6개월 동안 머물렀습니다.” 인도에서 공연을 많이 접했고 저렴한 복제CD, 테이프를 많이 구입했다. 그때 시타 연주를 들으면서 월드 포크음악에 빠지기 시작했다.
빅베이비드라이버 피쳐사진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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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경험한 더 큰 세상과의 만남이었죠. 작은 것도 큰 것처럼 느껴졌는데 새벽 3시 기차를 타기 위해 대합실에서 혼자 자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조차 엄청난 일로 느껴졌습니다.” 동전 한 닢 없이 붐바이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그녀는 신발을 도난당했다. 역무원이 준 찢어진 쪼리를 싣고 거의 거지 행색으로 귀국했다. 돌아오자마자 복학했을 때 머리가 노랗게 탈색되고 까맣게 타버린 그녀를 친구들은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변해있었다. (파트3로 계속)
빅베이비드라이버 피쳐사진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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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빅베이비드라이버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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