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는 이름 따라 간다고 하던가? 정말 이름처럼 됐다. 더 클래식(김광진, 박용준)의 ‘마법의 성’ ‘여우야’를 비롯해 김광진의 ‘편지’ ‘동경소녀’와 같은 곡들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들려지고 있고, 수많은 후배들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있다. 김광진과 박용준의 만남은 정말 찰떡궁합이었다. 김광진의 섬세한 감성이 담긴 음악은 박용준의 손에 의해 딱 맞은 옷을 입은 결과물로 탄생했다. 공감의 멜로디와 세련된 어법을 함께 지닌 그들의 음악은 가요의 클래식으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17년 만에 미니앨범 ‘메모리 앤 어 스텝(Memory & A Step)’으로 돌아오는 더 클래식의 김광진과 박용준. 공백기간 동안 둘의 꽤 다른 삶을 살았다. 한 명은 애널리스트, 또 한 명은 세션 연주자로 각자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다. 박용준은 더 클래식을 결성하기 전인 1991년 SM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인 SM기획에서 나온 김광진의 첫 솔로앨범 ‘버진 플라이트(Virgin Flight)’부터 편곡자로 함께 했다. 당시에도 김광진은 회사원이었고, 박용준은 연주자였다. 더 클래식으로 의기투합 후 ‘마법의 성’이 히트했을 때에도 김광진은 회사에 다녔다고 한다. 어찌 보면 늘 한결 같았고, 감성도 변함없었다.

오랜만에 더 클래식의 이름으로 재회한 둘은 또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형의 감성이 진득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좋았어요.”(박용준) “제가 쓴 멜로디를 용준이가 편곡해서 음악이 완성될 때 정말 좋아요. 그런 기쁨은 다른데서 찾기 힘들죠.”(김광진) 신곡 ‘우리에겐’을 들으니 이건 역시 더 클래식의 음악이다. 세월이 지났지만, 소중한 것은 변하지 않듯이 이들도 그 자리에 있어줬다. 반갑다. 다음은 일문일답.

Q. 더 클래식으로는 1997년 이후 무려 17년 만의 컴백이다.
김광진(이하 김): 난 2002년에 ‘솔베이지’를 발표 한 후 음악을 오래 쉬었다. 여러 가지 한계에 봉착했던 것 같다. 쭉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더 클래식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용준이와 함께 하는 작업은 항상 좋았으니까. 2009년부터인가 다시 하자고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 같이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작업이 금방 진행이 안 된다.(웃음) 시간이 좀 걸리지 않나. 얼마 전에 동물원 멤버 분들을 만났을 때에도 그런 이야기 하더라. “음반이 나와야 나오는 거지”라고. 2012년부터 더 클래식 다시 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앨범이 언제 나올지는 나도 궁금했다. 그런데 음반이 이렇게 나오게 되니, (눈을 반짝이며) 정말 좋다! 17년 만에 다시 나와서 다른 음악을 들려드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더 클래식의 맥을 잇는 음악들이 나왔다. 팬들은 어떻게 느낄지 아직 모르겠지만, 난 예전의 색이 느껴져서 좋더라.
박용준(이하 박): 광진 형과 작업하는 건 항상 재밌다. 더 클래식도 그렇고, 광진 형 솔로앨범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들과 비교해봤을 때 형의 곡은 편곡의 길이 많이 보인다. 이런 저런 편곡 아이디어를 해볼 여지가 많아서 늘 즐겁게 작업했다. 이번 작업도 그랬고.

Q. 어떤 계기로 다시 뭉치게 됐나?
김: 내가 몇 년 전부터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사실 용준이가 이런 저런 녹음 스케줄로 매우 바쁘다. 먼저 내가 만든 곡을 들려줬다. 10개 정도 곡이 나왔는데 그 중 3곡을 고르고 용준이 꺼 2곡을 더해서 미니앨범으로 내게 됐다. 사실 옛날에는 만든 곡 중에 골라서 앨범을 내지 않았다. 난 10곡을 만들면 10곡을 모두 앨범으로 낸 스타일이라서 곡이 남은 경우가 없었다.

Q. 오랜만에 서로의 곡을 들어보니 어땠나? 예전과 변한 것이 있던가?
박: 난 형의 감성이 진득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편곡도 예전과 변화를 주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곡들이지만 알맹이는 그대로 살아있다. 가령 명절날 큰 형수가 매년 같은 손으로 요리를 하듯이, 메뉴는 변하지만 기본적인 맛과 정성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김: 더 클래식을 하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박용준의 음악 세계를 더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굉장히 역량이 뛰어난 친구다. 나 혼자 하는 것보다 용준이와 함께 하는 것이 훨씬 깊이 있는 음악이 나와서 좋다.

Q. 김광진이 음악을 쉰 기간에 박용준은 다양한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을 해왔다. 더 클래식으로 작업하는 것과는 달랐을 것 같다.
박: 내가 인테리어 업자라면 내 집과 남의 집을 만드는 차이랄까? 물론 노력의 양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 것을 만든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내가 잠잘 곳을 마련한다고 할까?

Q. 더 클래식에서 둘의 역할은 황금비율이라고 할 만큼 좋은 것 같다. 더 클래식의 음악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도 둘의 궁합이 잘 맞아서인 듯.
김: 박용준의 편곡은 10년 지나고 들어보면 ‘그게 정답이었구나’라고 느껴질 정도로 탁월하다. 매우 절제하는 스타일로 되도록 불필요한 음을 없애고 심플하게 가는 편이다. 내가 화려한 편곡을 요구할 때도 있는데 지나고 보면 용준이의 선택이 옳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곡이 ‘편지’다. 난 이 곡을 만들 때 화려한 스트링이 깔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출한 피아노가 중심이 된 박용준의 편곡이 처음에는 심심하다고 여겨졌는데 십수 년 지나고 들어보니 그게 정답이더라. 본래의 곡이 가진 ‘절절함’을 살린 사운드였다. 이제는 내가 용준이를 굉장히 신뢰하기 때문에 요구가 점점 줄어드는 편이다.
박: 광진 형은 하늘로 날아가려는 성향이 있고, 난 바다로 들어가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음악은 수평선을 그리는 것 같다.

Q. 예전 이야기를 해보자.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이 어땠나?
김: 1991년에 이수만이 대표로 있던 SM기획에서 처음 만났다. SM기획의 1호 앨범이 한동준 형의 앨범이었다. 동준 형에게 곡을 주기 위해서 작업실에 갔다가 용준이를 처음 만난 것이다. 당시 용준이는 참 어렸는데 곡도 잘 쓰고 연주도 잘하고 편곡 실력도 대단했다. ‘될 성 싶은 나무’였던 거다.
박: 그날 광진 형을 만나기 전에 먼저 동준 형에게 주기로 한 곡 데모를 듣고 매우 감성적인 멜로디와 서정적인 목소리에 감탄했다. 그런데 첫 인상이 완전 피곤한 회사원의 모습이더라.(웃음) 음악과 사람이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날 형은 회사 퇴근하고 작업실에 온 거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보통 회사원은 아니더라.

Q. 김광진은 대학시절에 ‘연세대 100주년 기념 교내 가요제’에서 김창기(동물원), 안치환을 제치고 1위를 대상을 받았다고 하더라.
김: 그때 기억이 난다. 그때 난 지금으로 말하자면 조금 이념적인 노래를 불렀다.

Q. 솔로로 계속 할 수 있을 텐데.
김: SM기획에서 나온 내 솔로 1집이 별 반응이 없었다. 후속 앨범을 제작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승환에게 준 ‘덩크슛’ ‘내게’와 같은 곡이 히트하면서 작곡가로 더 알려지게 됐다. 그때 이승환이 박용준과 셋이서 함께 프로젝트로 앨범을 내자고 제안했다. 그러다 막판에 이승환이 빠지면서 나와 용준이가 자연스럽게 더 클래식으로 나오게 된 거다.

Q. 박용준은 하나음악 뮤지션들을 비롯해 다양한 음악인들의 앨범에 참여하고 있다.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나?
박: 내가 젊었을 때에는 통기타 카페가 많았다. 그런 카페에서 노래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변진섭의 작곡가인 지근식을 처음 만나고, 이후 알음알음 한동준, 이수만 등을 만나면서 녹음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돌이켜보니 우연치 않게, 아니 우연히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천천히 흘러온 것 같다. 그러다가 조동익을 만났고 같이 작업을 하면서 조동진 사단이라 할 수 있는 하나음악 뮤지션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지금도 그러고 있고.



Q. 새 앨범 ‘메모리 앤 어 스텝(Memory & A Step)’에는 5곡이 실린다. 지금 ‘우리에겐’ ‘종이피아노’가 먼저 공개됐고, 3곡이 추가로 나온다.
김: 더 클래식은 ‘마법의 성’과 같은 곡이 알려진 편이지만, 사실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비 유어셀프’라는 곡은 펑키한 디스코 곡으로 ‘여우야’보다 템포가 빠른 곡이다. ‘소소한 행복’은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한 잔잔한 곡, 그리고 용준이의 피아노 연주곡 ‘느린’이 담긴다. 절제되고, 아름답고, 감성적인 곡들.

Q. ‘마법의 성’은 컴퓨터게임 ‘페르시아 왕자’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지금은 악상을 게임에서 받기는 힘들 것 같다.
김: ‘우리에겐’은 이탈리아 친퀘테레 여행을 갔다가 받은 감동을 토대로 만들었다. 그곳의 바람과 바다 풍경이 참 좋더라. 라디오를 듣는데 자주 나오는 곡들을 보면 굉장히 멜로디 위주의 곡들이었다. 더 클래식의 감성과 상당히 닮은 곡들도 있었다. 심지어 내가 이태리에서 작곡가로 활동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웃음) ‘우리에겐’은 당시 받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간 것 같다. 이탈리아어로 노래해도 좋을만한 곡이다. 그래서 이 곡 부제를 ‘친퀘테레’로 할까 했는데, 찾아보니 최근에 에피톤 프로젝트가 곡 제목으로 썼더라.(웃음)

Q. 에피톤 프로젝트도 거기를 다녀와서 곡을 썼다.
김: 하하, 거기를 많이 가는구나. 여행을 하는데 젊었을 때에는 몰랐던, 나이를 들어서 비로소 알게 된 그런 감동들이 느껴졌다. 이번 앨범 가사들에 그런 것들이 담겼다. 이제 20대와 같은 사랑을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에겐’ 노래가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은 걸까’로 끝을 맺는데, 이 가사에는 20대 때에는 노래하지 않았던 체념 같은 것이 담겼다. 이제는 남겨진 시간, 그리고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Q. 이제는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인가?
김: 오래 쉰 것이 음악을 만드는데 좋은 영양분이 된 것 같다. 우리는 좋은 음악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었다. 더 클래식이 좋았던 것은 음악 활동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마법의 성’이 히트했을 때에도 우리는 스케줄을 많이 잡지 않았다. 그때도 내가 회사를 다녀서 매니저가 스케줄을 잡을 수 없어 곤란해 했다. 기껏해야 퇴근하고 라디오 한두 개 하는 스케줄이었으니까. 그래서 다른 스케줄 때문에 지쳐본 적이 없다.

Q. ‘마법의 성’이 굉장한 히트를 했는데도 전업 가수를 고민하지 않았나?
김: 고민 많이 했다. 사실 난 솔로 1집이 나왔을 때 내가 스타가 될지 알았다. 그래서 가수 활동을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런데 전혀…. 당시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공전의 히트를 쳤던 때였고, 내 앨범은 철저히 묻혔다. 그래서 ‘마법의 성’이 히트를 했어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겠더라. 그런데 회사를 병행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노래가 히트하니 회사 내에서도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주더라.(웃음)

Q. 한때는 김광진의 ‘동부 더 클래식 펀드’가 대박을 치기도 했다. 지금은 회사를 정리했다. 음악에 몰두하는 것인가?
김: 그동안 참 치열하게 살았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그래도 음악 작업할 때가 가장 좋았다. 이번에도 작업실에서 내가 쓴 멜로디를 용준이가 편곡해서 음악이 완성되는 것을 보니 정말 좋았다. 녹음실에서 음악을 만들어가는 희열. 그런 기쁨은 다른데서 찾기 힘들다.

Q. 함춘호, 신석철 등 오랜 동료들과 다시 작업하는 모습도 보기 좋더라.
박: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너무 재밌고, 기쁘고, 놀랍고, 신기하기도 한 순간이다. 그들이 아니면 난 아무것도 못한다. 내 편곡은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이번에 ‘비 유어셀프’라는 곡 녹음할 때에는 드럼에 대한 아이디어 없어서 아예 드럼 악보를 안 그렸다. 그런데 석철이가 내가 예상한 것 이상의 훌륭한 연주를 하더라. 그래서 앞으로 석철이와 작업할 때 다시는 드럼 악보 안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웃음)
김: 이번에 앨범에 참여한 이들은 거의 20년 전부터 함께 한 이들이다. 그들이 앨범과 공연을 모두 함게 한다. 그래서 그들은 단지 녹음에 참여한 세션 연주자 이상의 파트너들이라 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할까? 최고의 연주자들이고, 서로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앨범 녹음할 때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

Q. 주식과 음악의 공통점이 있다면?
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주식은 보통 미래를 잘 예측하고, 떠오르는 산업, 신기술을 맞추는 예측 투자가 중요하다. 난 그것보다는 가치 대비 저평가된 주식을 꾸준히 유지하면 저평가가 해소되면서 수익이 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음악도 그랬다. 여러 가지 내가 하고 싶은 장르를 시도했지만, 트렌드를 쫓거나 한 적은 없다. 단 한 가지 지키려 한 것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감동을 주려하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감정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었다. 오래 사랑받는 클래식을 만들고 싶었다.

Q. 팀 이름도 더 클래식이다.
박: 앞서 말한 그 이유 때문에 팀 이름도 더 클래식으로 지었다. 유행가처럼 반짝 하고 지나가지 않고, 그렇다고 구닥다리처럼 느껴지지 않는 고전으로 남을만한 곡을 만들고 싶었다.

Q. 실제로 그렇게 됐다. ‘마법의 성’ ‘여우야’ ‘편지’ ‘동경소녀’ 등이 후배들에 의해 계속 리메이크되고 있으니 말이다.
김: 덕분에 우리도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우리를 북돋아준 게 오히려 후배들이었던 것 같다. ‘이 노래가 안 좋았었나?’라고 염려하다가도 후배들이 노래하는 걸 보고 ‘아니, 괜찮았었나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Q. 오는 11월 15~16일에는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콘서트 홀에서 결성 20주년을 기념한 공연을 갖는다.
김: 공연에서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TV보다는 라디오에 나가는 정도로 활동할 것 같다. 이번엔 뮤직비디오도 찍지 않았다. 우리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다. 공연을 통해 최대한 음악을 많이 들려드리고 싶다. 그리고 슬슬 정규앨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오랜 기간 슬럼프에 빠져서 곡이 안 나올 때도 있었다. 지금은 언제든지 곡을 쓸 수 있는 상황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P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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