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 적극적인 대중문화 소비 늘어나지만 폄훼하는 시선도 여전. 해법은?
요즘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보면 지친 얼굴이 대부분이다. 직장 내에서 더 높이 승진하지 못하고 대열에서 밀려날까 전전긍긍하는 이가 대다수다. 집에 가도 가장으로서 마음 편히 쉴 수도 없다. 끊임없이 올라가는 물가와 아이들 교육비 상승이 목을 죄어 온다. 책임질 사람이 없는 싱글인 내가 너무나 부럽다고 하면서 딱 일주일만 혼자 아무 생각 없이 모든 책임감을 내려놓고 푹 쉬고 싶다는 푸념에 마음이 짠해진 적도 있다.
남자 동창뿐 아니라 또래 여자 동창들의 삶도 먹먹하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이들은 돈은 똑같이 벌지만 가사부터 아이들 교육까지 ‘엄마’이기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직장 내에선 아직도 남성 중심 사회인지라 40대 중반이면 중심에서 밀려나는 분위기여서 더욱 마음 고생을 해야 한다. 남자들은 밖에서 술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지만 ‘엄마’들은 스트레스를 안으로 삭이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일하는 대한민국 아빠 엄마들은 모두 지쳐 있다. 일과 가정과 상관없는 힐링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힘든 대한민국 중장년층들에게 ‘대중문화 스타’가 작은 위로가 되고 있다. 내 또래의 점잖은 대기업 부장님이나 선생님들 중 걸그룹의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같은 나이대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자 후배들도 연예기자 출신인 나에게 김수현이나 이민호 사인을 받기 위해 연락을 끊은 지 거의 십 몇 년 만에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소위 엑스(X) 세대로 불렸던 현재 중장년층이 10대 때나 20대 초반 때는 열정적으로 팬덤 문화를 마음껏 즐길 사회 분위기는 아니었다. 군사독재시절이 막 끝나 어수선했던 데다 한류가 꽃피기 전이라 대중문화를 폄훼하는 시선이 많았다. 대중문화는 사회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만 대접해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있는 그대로 즐기는 방법을 몰랐고 팬덤은 아직 철없는 아이들의 치기로 치부됐다. 나라 걱정을 해야 할 시기에 무슨 ‘딴따라’들을 좋아하느냐는 시선도 많았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걸어다니는 연예가중계’로 불렸던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 ‘별종 취급’을 받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중장년층도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즐기게 된 것이다. 아무리 치열하게 살아도 현실은 도돌이표를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더욱 멀어져만 간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의 대중문화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잠시 쉬어가며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대중문화를 즐기는 순간만큼은 나이에서 오는 책임감, 체면 다 벗어버리고 ‘어른 아이’가 돼 ‘힐링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중장년층들의 부모 세대가 힘든 날 TV 드라마를 보며 다음날 살아갈 자양분을 채웠던 것처럼 드라마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등 대중문화를 즐기며 현실을 잠시 잊고 버틸 힘을 받고 있다. 젊은 시절 꿈꿨던 미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아줌마들도 김수현 이민호의 드라마를 보며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삶의 원동력을 되찾고 스트레스에 찌든 아빠들도 에이핑크나 걸스데이 같은 걸그룹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활력을 찾는다.
난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조용필이 지난해 ‘바운스’로 저력을 과시했을 때 심장이 정말로 ‘바운스 바운스’하며 내 일 같이 기뻤다. 한세대 아래인 god는 팬은 아니었지만 최근 나온 ‘하늘색 풍선’의 뮤직비디오를 볼 때 왠지 가출했던 동생들이 집으로 돌아온 거 같은 느낌이 들어 눈물이 핑 돌았다.
남자 그룹들이 계속 컴백하는 행렬을 보면서 SES가 컴백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도 들었다. 난 SES와 핑클이 인기경쟁을 펼칠 때 절대적으로 SES의 팬이었다. SES의 노래는 지금 들어도 실험적이고 세련됐다. 에프엑스의 실험성과 소녀시대의 대중성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SES 때의 경험으로 만들어낸 결과나 다름없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연예인을 ‘공공의 적’으로 치부하는 이들이 꽤 있다. 일부 중장년층들은 연예인들이 돈 벌기에만 혈안이 돼 있고 사회적인 책임은 다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쏟아낸다. 분명히 잘못 한 건 비난 받아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할 건 져야 한다. 그러나 그 도덕적 잣대와 한계치가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건 우리 사회가 고민해볼 만한 문제다.
연예인들을 무조건 비난하고 하대하는 목소리 뒤편에는 아무 노력 없이 너무 많은 보상과 편의를 받고 있다는 심리가 깔려있다. 연예기자를 오랫동안 한 내가 목격한 바로는 돈을 많이 버는 이는 아주 극소수이고 포기하고 살아가는 부분도 아주 많다. 또한 정상의 자리에 올라가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타 뒤에 수많은 스태프들이 있기에 그 돈을 모두 스타가 가져가는 것도 아니다. 불로소득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분명한 건 우리 사회에는 연예인보다 별다른 노력없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이들이 있다.
무조건 애정 어린 눈으로 보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근거가 있을 때는 따끔히 꾸짖고 비난해야 한다. 그러나 근거 없는 비난과 질시는 이제 그만두자. 수없이 만들어내는 가설과 추측, 유추로 남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들도 누구의 아빠이고 엄마이며 아들이고 딸이다.
진정한 스타는 대중이 만들어낸다는 말이 있다. 무조건 숭배할 필요도 없고 근거 없는 비난은 삼가야 한다. 애정은 없더라도 균형감각을 갖고 바라보는 시각을 키워야 악플이나 비방글 등 삐뚫어진 팬덤문화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중장년 ‘어른아이’들이 올바른 팬문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글. 최재욱 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YPC 프로덕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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